1. 2025년 을사년(乙巳年)의 새해가 밝았습니다. 을사년에서 사는 뱀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올해는 뱀띠 해입니다. 성경에서 뱀은 교활함의 대명사입니다. 창세기 3장 1장에는 뱀은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실제로 뱀은 하와를 유혹해서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게 만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간교한 뱀에게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십니다. 공생활 중에 열두 사도를 파견하시면서 하신 당부에 그런 점이 드러납니다. 너희는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마태 10,16) 독도 잘 쓰면 약이 되듯이 뱀의 간교함도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활하고 간교한 성품을 잘 다스리고 다듬으면 꾀가 많거나 지혜로운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살다 보면 풀기 어려운 숙제와 같은 일을 자주 만납니다. 거기에 잘 대처하려면 뱀처럼 슬기로워야 합니다. 또한 세상에는 악과 부조리와 같은 어둠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런 어둠에 물들지 않으려면 비둘기와 같은 순박함이 필요합니다. 올 한 해 우리가 뱀처럼 슬기롭게,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풍성한 은총으로 도와주시기를 자주 청하도록 합시다.
2. 우리는 오늘 미사에서는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그레고리오라는 두 성인을 기념합니다. 그분들은 4세기에 지금의 튀르키예의 카파도키아 지역에서 태어나 활동한 분들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전하는 이단 세력, 오늘 독서의 표현을 빌리면 ‘그리스도의 적’(1요한 2,22)과 맞서 싸우면서 정통 교리를 수호한 것이 그분들의 주요 업적입니다. 올바른 가르침을 지키려고 이단과 싸우는 것은 꼭 필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매우 힘들고 부담되고 스트레스 쌓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두 성인이 이런 고된 일을 감내했던 것은 예수님을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클수록 그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도 커집니다. 올 한 해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지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에 대한 사랑이 깊어지려면 그분을 자주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실하게 준비해서 미사에 자주 참례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사에는 예수님께서 가장 분명하게 현존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2025년 사목교서에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는 성체성사, 곧 미사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우선 미사 중에 봉독되는 성경 말씀을 통해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서를 읽을 때 당신 친히 말씀”(<전례 헌장> 7항)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하면서 그분의 손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가 기도하고 찬양할 때,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전례 헌장> 7항)하시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교회 공적 신앙 고백인 ‘사도 신경’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어떤 분인지를 올바로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체를 영함으로써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 친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서 머무른다.”(요한 6,56)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미사에서 현존하시는 주님을 만나려면 우선 그분이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2025년에는 미사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경 말씀에 초점을 두고 신앙생활을 하자는 권고를 드렸습니다. 성경을 부지런히 읽고 묵상하면, 성경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게 되는 기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기쁨을 자주 누리게 될수록 주님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 것입니다.
3. 주님께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이 바로 그런 인물이었습니다. 요한의 말과 행동을 보면서 메시아로 여기는 이들이 점점 많아지자 백성의 지도자들은 요한에게 와서 확인하려고 합니다. 요한은 당신이 메시아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잘라 말합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이 메시아이고 자신은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대답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요한이 그랬듯이 예수님이 주님이고 자신은 그분의 일꾼임을 분명하게 인정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잘나지 못했으면서도 앞으로 나서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잘났으면서도 앞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지내는 제관이었습니다. 고귀한 신분의 사람이었지요. 그의 부인 엘리사벳이 나이가 들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어느 해 즈카르야가 성소에 분향하러 들어갔다가 천사를 만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전갈을 받습니다. 즈카리야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요한을 낳을 때까지 벙어리가 됩니다. 그러다가 아들이 할례를 받는 날 극적으로 다시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신기한 사건을 보고 놀라워하면서, 요한이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하게 됩니다.
4. 이렇게 세례자 요한은 그 탄생에 얽힌 이야기로 보나, 집안 배경으로 보나, 본인의 열정으로 보나 무엇 하나 부족한 게 없었는데도 결코 앞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 뒤로 물러나며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면서 자신을 낮춥니다. 요한은 사심 없이 자기 자리를 지킬 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길을 닦고 고르게 하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면 그분을 세상에 전하려는 열망이 생깁니다. 그분을 이웃에게 전하기 위해서 세례자 요한처럼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부지런히 실천하면서도, 자비와 정의를 위해 열성적으로 투신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에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다 하고 나서도 ‘저는 그저 주님의 도구이며, 그분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라고 고백하면서 뒤로 물러설 줄 압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올 한 해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자주 만나 그분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손을 잡고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주실 것이며,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순박하게 해주실 것이고 그분의 지혜로 우리를 슬기롭게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 사람만이 다른 이들에게 힘 있게 그분을 전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 우리 모두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주님께 은혜를 구하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