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신드롬.
그리고, 가정사.
이제,
한강은 한국의 대표 입니다.
아닙니다.
세계적인 한강이 되었습니다.
한강은
10월 10일 날 발표된,
스웨덴 한림원의 결정으로,
노벨 문학상을, 12월 10 일에
수상하게 됩니다.
세계적인 관심을, 받았습니다.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이
화제입니다.
수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습니다.
<한강의 신드롬>
그 파급효과는 끝을,
알 수 없습니다.
경이적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폭발력이 큽니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감히,
가공할 만한 위력입니다.
초미의 관심.
세계적인 반응.
무한대의 증폭.
마음이 여리고 섬세한,
그녀가
이 충격과 파장을,
어떻게 이겨내고
견디어 나갈지,
상당히 염려스럽습니다.
걱정도 됩니다.
우려가 뒤따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한강의 가정사> 가
세간에 알려졌습니다.
부군이었던,
홍용희씨와 몇년 전에
이혼한, 사실입니다.
그 원인은
알려진 바, 없습니다.
요즈음,
세상이야 이혼은
다반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별,
특별한 흠도, 아닙니다.
어쨌거나,
한강은
그런 사정을,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치열하고 심오한
글을, 만들어 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독하면서도, 우수에 젖은 글.
그리고,
깊은 아픔과 슬픈 아름다움을,
자아내게 하는 글.
그렇게,
독자들의 가슴속에 스며들게
합니다.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내면에 잠겨 있는,
감성을, 흔들고, 있습니다.
공감을, 불러 일으킵니다.
침잠의 세계로,
빠져들게 합니다.
흡인력이 있습니다.
대단한,
통찰력과 표현력에
압도당하게 만듭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준으로 작품을,
끌어올리고 승화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강 작가 자신이 겪고 있는
가정사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위대한 작가의 고난과 고통.
어쩌면,
그러한 조건들이,
오히려,
더 깊이가 있고,
더 처연한 묘사로 이어지게 했을,
것입니다.
독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울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 작가의
치열한 삶과
우수와 고뇌로 이어져 온,
철학적인 삶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손을, 높이 들어주었습니다.
한강은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그 아들은
종로구 통의동에서
<책방 오늘> 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한승원 (85세) 작가는
<아제아제 바라아제> 외
수 많은 책들을, 썼습니다.
오빠 한동림은
소설 <유령>을, 집필했습니다.
그러나,
오빠가 동화를, 쓸 때에는
본명 한규호라는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남동생 한강인은 서울 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습니다.
소설을 쓰고 만화를, 그립니다.
한강인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펼쳐가는
중견 작가입니다.
그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한강이 아들을,
출산하게 된 이유가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당시,
남편이었던 홍용희 교수가,
"세상에 맛있는 게
얼마나 많아.
여름엔 수박이 달고,
봄에는 참외도 있고,
목마를 땐 물도 달잖아,
그런 것,
다 맛보게 해주고
싶지 않아?
빗소리 듣게 하고,
눈 오는 것도 보게
해 주고 싶지 않아?"
라고, 넌지시
권유를, 했습니다.
그때,
한강은,
"그래 맞아.
다른 건 몰라도,
여름에 수박이 달다는 건,
분명한 진실이야!"
라고 동의를, 했답니다.
그리고,
설탕처럼 부스러지는
붉은 수박의 맛을, 생각했답니다.
그 맛을, 떠올렸답니다.
웃음 끝에 말을, 잃었다고도, 했습니다.
그 것만은 절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았다고 했습니다.
이 내용은
한강이 쓴 책. <침묵> 이라는
자전적인 소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전 남편,
홍용희 교수는
1967 년생.
올해 나이 57세 입니다.
경북 안동 출신입니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평론가입니다.
경희 사이버대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한강의 어머니 임강오 (83)세
어머니께서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 내조하며
3남매를, 올곧게 키워내셨습니다.
자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무한 애정을, 쏟았습니다.
어머니는
3남매에게 은연중,주입시켰습니다.
"사회에서 아무리
잘 나가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지만,
소설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소설가는 세상에 이름을,
남긴다"
라는 가르침으로
문학의 중요성. 소설가의 위상과
자긍심을, 심어주셨습니다.
어느 기자가
한강의 어머니.
임강오 여사와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강이는 어려서부터
한눈 팔지 않고,
알아서 공부를, 잘했습니다.
열 살이 넘어서는
늘, 뭔가 자기 생각에
빠져 있는 모습이
소설가가 되려나 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설은 영문과를 가도,
쓸 수 있으니 그 과를,
선택하면 어쩌겠니 하고,
딱 한번, 권유했습니다.
취업을 고려한,
충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강은 소신대로,
국문과를 선택했습니다.
결국,
연세대 국문학과에
지원했고, 수석합격했습니다"
라는 소회를, 밝혔습니다.
이에 대해 한승원 작가는
아내를 향해서,
"한씨 가문의
가족소설 공장의 공장장"
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습니다.
아무튼,
노벨 문학상은
피나는 과정을, 거쳐서 탄생되었습니다.
한강은
힘든 과정과
말할 수 없는
마음의 고초를, 겪었습니다.
위대한,
<노벨 문학상> 을,
조국의 품에 안겼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은,
대한민국의 자존심.
대한민국의 위상을 위해,
<한강>을,
지켜내야 합니다.
그 것만이 애국입니다.
민주시민의 긍지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서원합니다.
인동초를,
좋아하셨다는
(고) 김대중 대통령.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그 인동초 같은 여인.
<한강>
노벨 문학상의
금자탑을,
후대에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 파급효과를,
생각하니,
어깨가 올라갑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녀가
최근에 보이고 있는
겸손과 겸허한 마음이
더욱 심금을, 울립니다,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쾌거입니다.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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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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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1 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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