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구름 텀벙 내려앉았나
호수는 비로소 꽃잔치
캐나다 로키산맥의 밴프, 한국인들의 유럽여행 단골코스인 스위스의 인터라켄에 가는 사람들은 그곳 자연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겨 버리기를 결코 주저하지 않는다. 만년설 봉우리와 그것들이 침엽수림 사이로 눈녹은 물을 내려 그려내는 비취색 호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호수 위에 고요히 떠 있다가 사람들에게 칭얼대며 다가오는 고니들과 더불어 여행객들은 자연공동체의 가족이 된다.
만년설은 없지만 이제 한국에도 호수들이 호수다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각 지방자치단체와 수자원공사가 펼쳐온 조경 등 수변공간 가꾸기가 무르익어 호수가 이제 휴식과 여행지 구실을 하기에 이르렀다.
하루일정 '종합 문화 여행길'
국내 곳곳에는 크고 작은 1200여개의 호수가 있는데, 그동안 용수공급이나 홍수조절 등의 구실은 알려져 왔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호수를 중심으로 각종 문화, 생활, 체육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고, 지역 관광 및 경제 자원으로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도 호수의 가치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활용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수자원공사가 댐을 막아 만든 호수는 모두 26곳이다. 이 호수들은 모두 호수 주위 공간이 잘 가꿔져 있다. 그리고 호수 주변 공간의 범위를 넉넉히 잡으면 각종 사찰, 장터, 자연생태공원, 온천, 민속촌, 농촌체험마을 등 종합 문화 관광지로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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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광사 들머리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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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차내리면 바로 공원들
한국의 강 가운데 깨끗하고 주변 풍치가 아름답기로 섬진강에 견줄 데가 없다. 섬진강의 새끼강 보성강 유역에 주암호가 있다. 대부분의 세상에 꽃잔치가 휩쓸고 지나간 요즘 주암호 주변엔 아직 벚꽃과 진달래의 어울림이 현란하다. 습하고 찬 산간 호수지역의 날씨 탓에 다른 곳보다 꽃의 동작이 더디다. 하얀 벚꽃 사이사이 밭둑에서 자목련이 휘늘어진 가지를 흔들어댄다거나 요염한 입술처럼 새빨간 홍도화가 돌담 귀퉁이에 걸려 있는 것이 요즘 이곳 꽃철 표정이다. 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 나들목으로 들어가 송광사 부근에서부터 핀 벚꽃은 산굽이를 네댓 돌고 다리를 서너개 건너 산골짝 깊은 곳 보성 대원사에 이르도록 남아 있다. 특히 보성 대원사 계곡(6㎞)은 ‘좁고 길고 깨끗하다’는 계곡미의 세 요소를 갖춘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 이 길 양쪽에 지금 산벚꽃이 한창 피어 멀리서 보면 계곡에 흰 구름이 길게 깔린 듯하다.
주암호 여정은 종합 문화여행이라 할 수 있다. 송광사와 고찰 선암사, 쌍봉사가 있고, 주암호의 보완 호수 상사호, 낙안읍성 등 하루 일정으로 다 둘러볼 수 있는 명소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다. 주암호 호안도로에서 차만 내리면 바로 들러볼 수 있는 곳으로는 고인돌공원, 전망좋은 곳, 명설원, 서재필공원이 있다. 고인돌공원은 주암호 수몰지역에서 나온 고인돌들을 모아놓은 곳으로, 고대 생활문화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명설원은 녹차 제다원이어서 요즘 갓 만든 차를 시음할 수 있다. ‘전망좋은 곳’은 전라남도가 여행객들이 풍치를 쉽게 감상하도록 하기 위해 뽑아 단장한 전망대인데, 해안풍경 10곳, 호숫가 풍경 5곳, 산악 풍치 5곳, 농촌 취락 경관 5곳, 문화경관 5곳 등 총 142곳이 있다.
주암호에서 조계산에 물굴을 뚫어 주암호의 보조 호수로 만든 것이 상사호다. 상사호 주변엔 특히 진달래가 많은지라 상사호를 바라보는 산 중턱에 선 아젤리아호텔은 이 무렵 잠을 자기보다는 침실 문가에서 호수에 비친 진달래를 보려는 숙박객들이 줄을 잇는다.
순천/글·사진 최성민 기자 smchoi@hani.co.kr>smchoi@hani.co.kr
☆여행정보☆
가는 길=호남고속도로 주암(송광사)나들목으로 들어가 좌회전하여 올라간다. 명설원까지 10분, 송광사까지 15분, 고인돌공원과 전방좋은 곳까지 20분, 서재필기념관까지 25분, 대원사까지 30분 걸린다.
상사호는 주암나들목을 다시 나와 승주(선암사)나들목으로 들어간다. 3분을 올라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선암사까지 50분, 왼쪽으로 아젤리아호텔(061-754-6001)까지 5분 걸린다. 아젤리아호텔은 주말엔 예약을 해야 한다.
선암사에서 나와 상사호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 고개를 넘어가면 낙안읍성이 있는데, 낙안읍성 1km 못미쳐 금둔사 아래에는 지난 12일 문을 연 낙안온천(061-753-0035)이 있다. 이 온천은 이 지역 유일의 온천으로 선암사 금둔사 송광사와 낙압읍성 등 여수 순천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의 피로를 풀어주기에 맞춤한 자리에 있다. 낙안온천은 국내 온천 가운데 가장 전망이 좋은 온천으로 평가되고 있다. 온천탕에서 낙안읍성 일대 산과 들, 읍성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온천은 탕의 전면에 유리를 설치해 온천욕을 하며 풍광을 즐기는 본격적인 ‘온천 즐기기’를 도입하고 있다.
최성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