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제 첫 키스를 엄마한테 당하다니 너무 억울해요!”
딸아이는 내가 한 뽀뽀에 기겁을 하고 소파 위에 벌러덩 들어 누워 버렸다.
“엄마가 언제 네게 키스를 했니? 우리가 한건 뽀뽀야!”
나는 아이가 억울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을 재미나게 쳐다보며 말을 했다.
“엄마, 제가 엄마께 얼마나 많은 키스를 당한 줄 아세요? 그것도 첫 키스를 엄마께 당했다니.....흑흑흑”
아이는 얼굴을 감싸고 누워서 우는 흉내까지 내고 있었다.
사춘기 소녀답게 표현마저 신선한 아이를 쳐다보다가 불현 듯 내 첫 키스가 떠올랐다.
나는 몇 살에 누구와 어디에서 첫 키스를 하였던가?
나는 입시학원을 다니면서 소개 팅을 몇 번 했었던 것 같다.
처음 소개 팅에서 만났던 남자와 일행들과 나이트를 갔었는데 그는 브루스를 참 멋있게 잘 추었었다.
무대 위를 고루 돌며 제스처도 멋졌던 그가 내게 브루스를 가르쳐 주려고 했던 것은 두 번째 만났을 때였다.
그는 스테이지 위에서 나를 끌어 당겼다가 밀쳤다가 맘대로 손에 힘을 줘 가면서 나를 이끌면서 내 몸을 움직이게 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던 그는 춤 동작으로 내 몸의 부위별로 마음껏 주무른 것 같다.
귀가 멍멍해질 무렵에 어둠이 익숙하게 내려진 거리로 나서게 되었는데 에너지 소모로 인하여 홀쭉해진 위를 채우려고 한식집에서 얼큰한 밥을 함께 먹었었다.
더 캄캄해진 거리에 나와서 어느 정도 몸의 밀착으로 감정에 달떴던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입술을 내 얼굴 가까이로 기울이고 있었는데 택시가 그와 맞은편에서 달려오며 불빛을 너무도 밝게 비추었다.
겸연쩍게 웃던 그.
그의 앞니 사이에 커다랗게 자리했던 고춧가루.
나는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열아홉이었던 나는 그의 멋스럽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던 잇 사이의 고춧가루를 내내 잊을 수가 없었다.
몇 번의 연락에도 그와는 더 이상 만나지 않았었다.
그는 내 첫 키스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구였던가?
남편과도 그 즈음에 만났었다.
그렇다면 그때 친구였던 남편과...
흠, 정숙한 여자의 모양으로 남으려면 그래야 했겠지만...진실만으로 당당해야 한다.
진실만이 한 사람에 대한 눈가림을 거두고 진진한 모습을 알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보다 여섯 살 많던 언니의 커플 모임이 있었다.
나에 대해서는 그저 청순하고 발랄한 소녀 분위기로 늘 인식하던 언니가 그 날에 나를 그 자리에 데리고 갔었던 것은 언니 친구의 애인 친구 중에 솔로인 한 사람을 일행들에게 소개해 주기 위해서였다.
그는 짙은 눈썹에 눈 코 입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었고 선이 굵은 듯 하면서도 부드러워서 얼굴 전체의 느낌이 좋았다.
몸 전체를 떠 올려 보자면 마르지도 않았고 살이 찌지도 않아서 보기에 좋았고 키도 175센티 정도였으니 내가 딱 바라던 형태의 외모를 갖추었다고 해야겠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굵은 톤의 퍼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쟁쟁거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표준말을 쓰는 그의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모였던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언니의 의도대로 그는 내 파트너가 되었다.
내가 그를 만날 때마다 언니는 내가 입어야할 옷과 그 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하여서 꼼꼼하게 설명하고 강요했다.
그를 세 번 만났을 적에 우린손을 마주 잡을 수 있었다.
영화 보러 절대 가지 말라는 언니의 당부에도 불구하고 그와 나는 하릴없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영화관에 갔었다.
제목은 기억에서 아련하지만 내용이 아마도 로맨틱했던 분위기였던 것 같다.
남자와 처음 나란히 앉아서 보는 영화라서 내 볼은 참 많이도 빨개졌었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관 입구에 걸려진 거울을 쳐다보면서 민망할 정도로 붉었던 얼굴.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었다.
그가 내 집 앞까지 나를 바래다주고는 악수하고 돌아서 가다가 되돌아와서 나를 껴안았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모아 잡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입술을 내 입술에다가 갖다 대었었다.
순간에 벌어졌던 그 당혹함.
참으로 가슴이 벌렁대고 그에게 포획(捕獲)당한 듯 끌려지고 있었다.
“사랑해, 너를 만나면 순수가 무언지 알 것 같다. 어머니가 개가를 하여서...그것도 우리 집에 일을 해주던 일꾼이었던 남자와 살림을 차리고부터 나는 여자라는 동물에 대한 모든 기대감을 버렸었지. 지금껏 여자라고는 사귀어 보지 못했었는데 네게 자꾸만 마음이 가서.....”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우울하게 하늘을 쳐다보던 그.
난 그 밤 내내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정아야, 덕이 결혼한다!”
호들갑스럽게 화장을 하고 있던 언니가 한 말에 나는 사형선고 받은 사형수의 얼굴을 하고 마음을 욱신거려야했다.
“내 친구 민주 있지? 그 기집애가 덕이 한테 완전히 뻑이 갔더구나. 너랑 덕이 아무 일 없었겠지? 남자로서 괜찮기도 하지만 니가 걔를 사귀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넌 당장 시험도 쳐야하고 니 앞길만 쳐다보고 살아야 하지 않니?”
손거울 쥐고 앉아서 눈썹을 그리느라 내 표정을 살피지 못했던 언니는 거울을 옆으로 내리고 나를 쳐다보았다가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너,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냐?”
내 얼굴 표정이 몹쓸었던지 언니의 목소리는 낮고 급했다.
“일은 무슨 일. 아무 일도 없었어. 그리고 일이 있을게 뭐 있냐?”
키스 한번 당했다고 결혼까지 생각하였다니 나는 진짜 순수한 사람이었던가?
그의 나이 스무 일곱이었고 언니 친구의 나이는 스무 다섯 살이었으니 그들이 삶을 진행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나 싶다.
그는 언니의 친구와 삶을 안착시켰고 민주 언니는 한동안 나를 견제(牽制)했었다.
“엄마, 이제는 제게 뽀뽀도 하지 마세요! 뽀뽀든 키스든 엄마와는 하지 않겠어요!”
영어학원에 다녀온 녀석이 또다시 강조하고 있었다.
“그래, 네가 싫다면 하지 말아야지 뭐. 그렇지만 가족들은 다 해야 되는데 네가 거부한다면 가족 못 되는 거지 뭐.”
나는 뽀로통해진 척하며 막내를 불렀다.
“종완아, 엄마랑 뽀뽀하자! 네 누나 사춘기 되더니 이상해졌어.”
막내는 “넵!” 하더니 나를 향해 힘 있게 달려오고 있었다.
첫댓글 옛일을 생각나게 하네요.
잘 읽엇습니다. 저두 오래 전, 까뭇한 기억들을 되짚어 보게 되었어요. 제임스 틴이 나온 영화 '에덴의 동쪽'을 중학교 때 봤는데 거기서 뽀뽀를 이상하게 하는 겁니다. 어머나, 외국 사람들은 뽀뽀를 혀로 하나 보다. 괴상하게 보였지요. ㅎㅎㅎ요즘 아이들은 참 영특하죠?
안녕하시지요? 세번째 만남에서..재미있습니다.. 그런데..음..으음...세번째는 쫌 늦은 감이..ㅇㅎㅎㅎ..운영자님이 디게디게 미인이신가부네여~~언제나 아이들 이야긴 귀엽고 천진합니다..건강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