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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기사보는 오스트리아의 유명산악인 로베르 샤우어가 맡았는데,
그는 폴란드의 보이테크 쿠르티카와 단 둘이서 가셔브룸4봉의 유명한 서벽, 즉 ‘빛나는 벽’을 초등했고,
8,000m급 5개봉을 등정했으며, 12편의 산악영화를 제작한 바 있다.
스페인 여성 아라셀리는 시샤팡마(8,027m) 남벽을 알파인 스타일로 등정했고,
에베레스트 북벽 7,800m 지점까지 진출한 등반경력이 있으며,
일본 여성 수미오 스즈키, 그리고 초등자 텐징 노르게이의 아들 잠링 노르게이와 함께 등반팀에 합류했다.
영국의 등반사가이자 독일어판 산악서적을 여러 권 영역한 바 있는 오드리 셀켈드 여사가 등반대 활동의 홍보를 담당했고,
신혼 중인 부대장 에드 비스터즈의 아내 폴라가 BC 매니저로 채용됐다.
이 등반대의 주요 과제는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과정의 촬영과
에베레스트 사우스콜에 지구상 위치파악시스템(GPS)과 기상관측장치를 설치하는 작업이었다.
GPS를 설치하는 이유는 히말라야산맥 아래 지각판의 움직임을 측정하기 위해서인데,
콜로라도대학교의 지질학 교수 로저 빌햄이 이 작업을 감독했다.
등반팀과 촬영팀 대원들은 모두 고소적응이 덜 된 상태로 BC(5,364m)에 도착,
움직일 때마다 호흡곤란을 겪었다.
원형극장처럼 둘러싼 산에서 우르르쾅쾅 거리며 쏟아져내리는 눈사태의 굉음과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굴러 떨어지며 천둥처럼 포효하는 소리가 마치 교향곡 ‘1812년 서곡’을 듣고 있는 것 같다.
대원들은 쿰부 빙하가 이동하며 내는 삐걱거리고 우지끈거리는 소리에 밤잠을 설쳤다.
그 해 에베레스트 남쪽 BC에는 미국의 스코트 피셔 대장의 상업등반대,
뉴질랜드의 롭 홀 대장의 상업등반대, 대만팀, 남아공팀, 유고팀 등 모두 14개 등반대가 모여 들었다.
웨스턴쿰 입구에서 아파트 건물 규모의 거대한 얼음덩어리들이 거칠게 돌출하며 수많은 불안정한 빙탑과 크레바스,
그리고 가파른 청록색 빙벽의 미로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 쿰부 아이스폴이다.
이곳은 눕체와 에베레스트 사면에서 발생하는 눈사태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빙하의 이동으로 인하여 갑작스럽게 빙탑이 붕괴되고 크레바스가 더 벌어져 수시로 등로가 변경되며,
숨은 크레바스가 형성되어 죽음의 덫이 되는 곳이라서
얼음이 단단히 얼어붙는 이른 아침에 통과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1963년 미국팀의 제이크 브라이튼바흐 대원이 9m 높이의 빙탑에 깔려
이곳에서 서양인 최초로 목숨을 잃은 이래 18명이 더 희생됐다.
여러 등반대가 협동으로 쿰부 아이스폴에 1,800m의 고정로프와 60여 개의 알루미늄 사다리를 설치하고 루트를 개척했다.
다큐 제작 등반대는 웨스턴쿰 입구에 C1(5,943m)을, 중앙에 C2(6,492m·ABC)를 설치하고 이어서
복사열기에 시달리며 1952년 스위스대가 ‘침묵의 계곡’이라고 명명한
웨스턴쿰 상부를 지나 로체 서벽에 C3(7,315m)를, 사우스콜에 최종캠프 C4(7,925m)를 구축했다.
브레셔즈, 비스터즈와 로베르가 C3에 도착했을 때는
화물열차 소리를 내서 로베르가 ‘라사-카트만두 간 급행열차’라고 명명한 돌풍,
즉 티벳에서 불어오는 사나운 바람이 사우스콜을 넘어 웨스턴쿰울 휩쓸고 지나갔다.
대만 대원 한 명이 크레바스에 빠져 내상을 입고 하산하던 중 사망하여 자일에 매달려 있었다.
브레셔즈, 비스터즈, 로베르 샤우어는 그의 시신을 C2로 운반하고,
다큐 제작 등반대는 촬영작업과 안전상 문제 때문에 다른 등반대의 등반이 끝날 때까지 등정을 미루기로 했다.
5월10일 롭 홀 대, 스코트 피셔 대, 대만 대의 25명이 남동릉을 등반했다.
C4에서 정상까지 왕복하는 데 18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안전한 귀환을 위해서 오후 2시 이전에 등정을 끝내야 했다.
그런데 높이 12m의 힐러리스텝에 고정자일 설치가 예정보다 늦어지고,
너무 많은 인원이 함께 등반했기 때문에 한 번에 한 사람씩 밖에 오를 수 없는 병목현상이 발생했다.
때문에 예상보다 늦은 오후 3시에 스코트 피셔 대의 13명, 롭 홀 대의 8명, 대만 대의 3명이 등정했다.
그러나 밤이 되자 폭풍설이 에베레스트를 강타하여 미처 하산하지 못한 사람들이 조난 위기에 처했다.
남봉 너머에서 더그 한센이 탈진으로 쓰러졌고, 롭 홀 대장이 그의 곁에서 구조대를 기다렸다.
존 크라카우어와 몇 명은 C4로 무사히 귀환했지만, 가이드 해리스는 실종됐다.
시속 96km의 강풍과 심한 눈보라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고,
가시거리가 몇 m밖에 되지 않는 악천후 속에서 사우스콜 캠프를 찾아내지 못하고,
360m 떨어진 동쪽 측면, 즉 캉슝벽 부근에서 탈진상태로 추위에 떨며 웅크리고 앉아 있던 5명 중
3명은 러시아 산악인 브크레예프가 캠프로 안전하게 인도했지만,
등정자 야스코 남바(47세의 일본 여성 산악인)는 사망했고,
8,400m 부근의 발코니까지 진출하고 전에 수술받은 시력악화로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한 미국인 베크 웨더스는 발견되지 않았다.
5월11일 다른 상업등반대의 토드 빌슨과 피트 에이선스는 실종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강풍 속에 C3에서 사우스콜로 올라갔다.
브레셔즈 대장은 무선으로 다큐 등반대의 텐트에서 필요한 물건을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시속 130km의 강풍이 계속되는 사우스콜에서 피트와 토드는
다큐 제작 등반대가 비축해둔 산소통 28개를 각각의 텐트로 배달해 주었다.
그들은 캠프 위쪽 300m 지점에서 대만 등반대장과 피셔 대장을 발견했는데,
대만 등반대장은 발에 심한 동상을 입고 있었다.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자인 스코트 피셔 대장은 이번에는 산소를 사용했는데도 캠프에서 가까운 곳에서 운명했다.
2명의 셰르파가 롭 홀 대장과 한센을 구조하기 위해 남봉의 240m 아래까지 올랐으나,
강풍으로 인해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산소통과 스키폴을 그곳에 남겨 놓고 하산했다.
롭 홀 대장과 한센은 끝내 하산하지 못했고, 셰르파 한 명도 사망했다.
에베레스트 북쪽에서도 3명의 인도인과 오스트리아 산악인 한 명이 사망했다.
야스코 남바의 시신 옆 눈밭에 얼굴을 묻고 미동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어서 사망자로 간주했던
베크 웨더스는 유령의 모습을 하고 기적적으로 C4로 생환했는데,
그의 코와 양손은 심한 동상에 걸려 있었다. 롭 홀 대장과 한센은 끝끝내 하산하지 못했다.
피트와 토드는 사우스콜에서 베크를 데리고 하산했는데,
C3 위쪽까지 마중 나온 로베르와 비스터즈의 영접을 받고,
C3에서 구조작업에 나섰던 브레셔즈 대장과 합류했다.
네팔 육군 조종사 마단 K. C. 중령의 노련한 조종술 덕분에
웨스턴쿰 C1 부근의 6,000m 설원에서 심한 동상에 걸린 대만 등반대장과 미국인 베크는 헬기에 태워 카트만두로 후송됐다.
희생자들의 장례식을 마치고 구조에 사용된 산소통의 대부분이 보충되자,
다큐 제작 등반대는 등반을 재개했으나 피트와 토드 대는 C2에서 등반을 포기했다.
5월22일 밤 11시 무산소 등정을 계획하는 에드 비스터즈가 사우스콜의 C4에서 먼저 출발했다.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으로 2시간 등반 후 얼굴과 상체가 눈으로 덮여 있는 스코트 피셔 대장의 사체를 발견했다.
에드는 8,400m 지점의 발코니를 지나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속으로 계속 전진했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스미오 스즈키가 연락요원으로 캠프에 남고,
자정에 캠프를 출발한 브레셔즈 대장, 로베르, 아라셀리와 잠링 노르게이는 발코니에서
아이맥스 카메라를 운반하는 셰르파들을 기다렸다.
잠링은 발코니 아래 겨우 작은 텐트 한 동 설치할 만한 평평한 지점을 살펴보았다.
그곳은 자신의 부친 텐징 노르게이와 힐러리의 마지막 캠프지였다.
오전 9시 브레셔즈와 비스터즈는 남봉에 도착했다.
그들은 남봉 너머에서 롭 홀의 사체를 발견했다.
그 옆 눈에 덮여 불룩한 것이 한센의 시신으로 추정되었다.
브레셔즈는 힐라리스텝의 루트가 많이 변했고 과거보다 더 험난해져 시간이 더 소요된다는 것을 알았다.
5월23일 오전 10시55분 비스터즈(무산소 등정)와 브레셔즈가 먼저 등정했고,
장부, 잠링, 락파 도르제(무산소 등정), 아라셀리도 정상에 도착했다.
뒤를 이어 로베르와 3명의 셰르파도 등정했다.
잠링은 43년 전 자신의 부친이 섰던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합장하고 감사와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브레셔즈 대장과 샤우어는 정상에서 촬영을 마치고 하산했다.
스웨덴에서 네팔까지 자전거여행을 하고 에베레스트 단독등정을 꿈꿨던
스웨덴 산악인 괴란 크로프도 세 번째 시도에서 등정에 성공했다.
등반대원들은 사우스콜에 GPS 장비와 기상관측장치를 설치했고,
로저 빌햄 교수는 사우스콜이 해마다 4mm 융기하며, 연간 18mm씩 인도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계산을 해냈다.
5월25일 남아공 등반대에 합류했던 영국인 브루스 해로드가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그 해 5월의 12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저자 코번은 미국인 저술가다. 1997년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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