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본찰 봉선사에서 청정한 수행자들과 함께
일요일도 없는 선원
일요일 아침 일찍 글 하나 써 놓고 봉선사로 향했습니다. 원담스님과 점심공양전에 뵙기로 했습니다. 일요일이라 마음 놓고 쉬는 날입니다. 공무원이나 큰기업에 다니는 사람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은 쉬는 날이지만, 자영업자나 장사하는 사람들은 토요일에도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일요일이나 되어야 부담 없이 쉴 수 있습니다. 선원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원담스님과 카톡으로 시간을 정했습니다. 사회에서는 일요일이 마음 놓고 쉬는 날이라 일요일 오전 일찍 다녀 오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 인줄 곧바로 알았습니다. 선원에서는 일요일도 없었던 것입니다. 평일과 똑같이 정진하는 날입니다. 점심공양이 11시 반이라 합니다. 오후 2시까지는 시간이 된다고 합니다. 11시를 목표로 남양주 제25교구본사 봉선사로 차를 몰았습니다.
원담스님의 봉암사일기
안양에서 봉선사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닙니다. 자동차로 한시간 조금 더 걸립니다. 평소 존경하던 스님을 만나 보고 싶었는데 마침 하안거를 봉선사에서 보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난 겨울 동안거를 지냈으므로 연속에서 두 번 봉선사에서 안거를 보내는 것입니다.
원담스님을 4월 29일 문경 봉암사에서 뵈었습니다. 멀리 진주에서 신도분들과 함께 총무원장직선제 토론에 참가 했습니다. 참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섭세일기에 남겼습니다.
아침 해야 할 일을 마치고 봉암사 갈 채비를 하다. 아침 8시30분 출발. 도암거사 운전하여 3시간 걸려 봉암사에 도착하다. 산천은 쇄락하고 풍광이 찬란하다. 가람이 일신되어 전각마다 영광이요, 마당엔 금모래가 깔린 듯 반짝인다. 울창한 솔숲과 옹울한 희양산 봉우리, 法乳법유가 흐르는 용추계곡. 희양선원은 문을 잠근 채 선정에 들어있는데 솔바람은 사통팔달로 거래가 자유롭다.
객스님들이 나타나고 재가불자도 슬금슬금 모여든다. 공양간에서 <청정승가 구현과 직선제를 위한 토론회>가 시작되다. 수좌회 공동대표 현묵스님(송광사 유나)과 의정스님(양평 상원사 선원장)의 말씀이 있었다. 월암스님이 좌장을 맡고 범허스님이 발제한다. <조계종의 현실진단과 개선방향>을 말하다. 이어서 윤남진 거사가 <한국사회와 불교10년 성찰과 2025불교미래의 모색>을 이야기 하다. 곧이어 자유토론이 펼쳐졌다. 용주사 범계 주지(용주사 주지 성월은 은처승의 혐의를 받고 있다) 퇴출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거사님의 발언을 시작으로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이 발언한다.
자승 총무원장의 전횡과 총무원 기득권승려들의 권력독점으로 승가의 화합이 파괴되었고 포교에 실패하여 불자가 감소하였으며 국민들에게서 불교의 신뢰도가 하락했다. 현재 한국불교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는 위기에 처해있다는 진단은 모두가 동의한다.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우희종 교수는 조계종 수좌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정곡을 찌르는 답은 없었다. 아마도 현재의 간화선 수행법과 교화방법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유도하는 질문이었는데 거기에 치중하다보면 논의가 장황해져 시간이 부족할뿐더러 직선제 쟁취에 대한 실천에 대한 논의가 동력을 잃을 것 같아서 간과된 것 같다.
여의도 포교원장 현진스님은 ‘수좌계의 어른 스님들이시여, 이번엔 총무원 문제 꼭 해결해주이소! 라면서 눈물을 흘리며 읍소한다. 직선제 운동을 처음 발의하여 그 실현에 주력하는 허정스님이 직선제 쟁취를 향한 대중의 행동을 촉구한다. 또 인권관련단체에서 오신 젊은 보살님이 말한다. 촛불민심으로 박근혜 체제의 적폐가 청산되듯이 조계종의 적폐도 불자들의 촛불로 청산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기회가 왔다. 이런 기회를 놓치면 불교는 다시 일어나기 힘들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고양이 목에 방울은 누가 어떻게 달 것인가?
조계종 적폐 청산의 단초는 자승 총무원장의 퇴출이다. 그러기 위해선 교계 언론이 스님들과 불자들 사이에서 여론을 불러일으켜 힘을 모은다. 수좌회는 재가불자와 연대하여 총무원에 대항하고, 종헌을 개정하여 직선제를 채택하게끔 압력을 행사한다. 이것은 점진적 합법적인 단체행동이다. 초합법적 단체행동으로는 승려대회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카드이다.
예전에는 승려대회를 개최한다고 사발통문이 돌면 수좌들은 누구나 할 것이 없이 참석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이권에 걸린 수좌들이 있어 승려대회에 참가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그래서 승려대회를 개최한다하더라도 다수의 수좌들이 참석해서 승가의 정의를 천명할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따라서 수좌계 내부에서 서로의 의식을 깨우는 대화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데는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런 식으로 논의가 전개되니 스님들의 실천의지가 약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시간이 흘러 4시30분쯤 되었다. 사회를 보는 월암스님이 어째든 승려대회를 개최하리라 선언하고 결말을 맺는다. 현묵스님은 조계종개혁과 자기수행이 둘이 아니니, 분노와 적의를 가지고 개혁을 하려하지 말고 항상 정진과 인욕과 자애로써 하면 이루어질 것이라는 축원으로 대미를 장식한다.
오랫동안 인터넷 공간에서 알고 지내던 진흙속의 연꽃님을 상봉하다. 연꽃님은 한 눈에 나를 알아보고 웃으면서 인사를 나누었다. 기념사진을 찍고 회의장으로 들어온 후 그대로 헤어졌다.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아름다운 기약의 문자를 보냈다. 안동에서 온 아원보살도 먼 빛으로 바라보고는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 물 따라 돌고, 골짜기 따라 휘어지며 달리고 달린다. 도암거사가 운전하기에 피곤할 것인데도 정성을 다한다. 원지에서 저녁 공양하고 진주로 돌아오니 10시 가량. 긴 하루, 먼 여정이었다.
(2017년4월29일(토)맑음, 섭세일기 2017년 봄 7, 원담스님)
편의상 문단으로 나눈 것입니다. 원담스님은 섭세일기에서 4월 29일 봉암사모임에 대하여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모두 침묵하고 있을 때 80여명 되는 수좌스님 중의 한분으로 참가한 것입니다. 많이 배우고, 똑똑하고, 양심바른 스님들은 모두 주변으로 내 몰리고 반승반속의 무리들이 중앙을 차지하여 이득을 취하고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됩니다.
스님은 글에서 필명 ‘진흙속의연꽃’도 언급했습니다. 이날 처음으로 원담스님을 만났습니다. 평소 원담스님의 카페 ‘마음의 호숫가에서’ 스님의 섭세일기를 즐겨 읽고 있기 때문에 스님의 상호는 익숙합니다. 인터넷에서 오로지 필명으로만 소통합니다. 그러다 보니 스님은 처음에 못 알아 보았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고 짧게 인사만 하고 헤어졌습니다.
입장료도 주차료도 없는 절
부처님오신날 이후 7일째, 즉 사월보름날에 하안거가 시작됩니다. 스님은 진주에서 선원을 개원하여 진주불자들을 위한 전법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활동상에 대해서는 카페를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멀어서 가 볼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사는 지역과 가까운 곳에서 하안거를 나신다 하기에 일요일 아침 시간을 내서 찾았습니다.
5월 21일 일요일 오전은 빛나는 날입니다. 눈부시게 밝은 태양과 푸른 하늘, 그리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하고 상쾌한 날씨입니다. 봉선사가 있는 남양주 진접면은 광릉수목원이 있는 곳이라 가까이 갈수록 신록천지입니다. 수목원 가운데 있어서 사방은 온통 숲입니다.
봉선사는 포근한 절입니다. 높은 산도 없고 커다란 바위산도 보이지 않습니다. 야트막한 야산 분지에 자리 잡고 있어서 아늑한 분위기입니다. 주변은 온통 숲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숲의 절이라 볼 수 있습니다.
봉선사는 큰 절입니다. 그러나 입장료가 없습니다. 교구본사이면서도 입장료가 없는 절은 보기 힘듭니다. 드넓고 넉넉한 주차장은 오백대 이상 수용할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주차료도 없습니다.
연지에는 수련이
봉선사 가는 길에 커다란 연지(蓮池)가 있습니다. 해마다 7월이 되면 이곳에서 연꽃축제가 열립니다. 커다란 홍련이나 백련은 아직 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련에는 작은 연꽃이 피었습니다.
여유있게 일찍 도착했습니다. 점심공양시간 11시 30분 이전까지만 가면 됩니다. 느긋하게 봉선사 이곳저곳 둘러 보았습니다. 아마 너댓차례 정도 온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올 때 마다 새롭습니다. 그것은 자연이 주는 혜택일 것입니다. 또한 봉선사만이 갖는 아늑함 때문일 것입니다.
춘원 이광수비문
일주문을 지나 봉선사 입구로 들어서면 우측에 비석군이 있습니다. 수 많은 비속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춘원 이광수(1892-1950)입니다.
춘원 이광수는 봉선사에서 머물며 글을 썼다고 합니다. 사촌형인 운허스님의 영향을 받아 원효대사와 같은 불교소설을 쓴 것입니다. 기념비 측면에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중에 1949년에 쓴 글을 보면 “내 평생에 지은 이야기 서른 어느 분 읽으신고 어느 분 들으신고 그 얼굴들을 눈 앞에 그랴 놓으면 모두 반가오셔라 살 닿는 듯 하여라”라 되어 있습니다. 납북되기 일년전에 쓴 글 중 일부분입니다.
춘원은 평생 쓴 글이 30권 가량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써 놓은 글을 누군가 읽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읽어 주는 것에 대하여 “살 닿는 듯 하여라”라며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반기고 있습니다.
써 놓으면 읽는다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팔린다고 합니다. 잘 만들지 못한 것도 결국 팔립니다. 땡처리 해서라도 파는 것입니다. 글도 써 놓으면 누군가는 읽게 됩니다. 춘원 이광수는 주옥 같은 많은 소설을 썼습니다. 특히 불교관련 소설이 많습니다. 그러나 공도 있으면 과도 있기 마련입니다.
춘원은 일제에 협력했습니다. 영욕의 인생을 산 춘원 이광수는 한국전쟁당시 납북되었습니다. 납북 되기 전까지 머물렀다는 방이 지금도 봉선사에 있습니다. 청풍루 바로 역 ‘회랑’입니다. 그러나 문이 잠겨져 있어서 안은 보지 못했습니다.
글은 써 놓으면 남습니다. 또한 글은 누군가는 읽게 되어 있습니다. 춘원이 오래 전의 사람이지만 글로서 소통하고 있습니다. 물건을 만들어 놓으면 팔리듯이, 글은 써 놓으면 누군가 읽습니다. 한마디로 “써 놓으면 읽는다”입니다.
마치 돈을 달라는 것처럼
봉선사의 특징은 ‘봉선사대종’입니다. 봉선사 찾아 가는 길 입간판에는 봉선사대종이라고 크게 쓰여 있습니다. 봉선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보물 397호입니다.
봉선사대종 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있었던 종루자리에는 약사여래부처님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개금불사중입니다. 그런데 입구가 독특합니다. 양옆에 손모양의 상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설명문이 없어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돈을 달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손바닥에는 동전이 담겨 있습니다. 더구나 개금불사를 알리는 기왓장까지 있어서 두 손으로 돈을 달라는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오백년 전에도 산스크리트어가
봉선사를 대표 하는 문화재 봉선사대종은 새로 조성된 2층 형태의 종루로 이전되었습니다. 예종 원년 1469년에 조성된 것으로 548년 된 종입니다. 예종이 세조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봉선사를 건립할 때 만들었다고 합니다. 세조와 인연 있는 왕실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548년 동종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문자가 눈에 띕니다. 관세음보살상과 함께 있는 산스크리트어 문자는 ‘옴마니반메훔’이라 합니다. 오백년 전 한문문화권에서 산스크리트어 문자가 종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 경이롭습니다.
봉선사는 꽃대궐
봉선사는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는 사찰입니다. 주변에 높은 산도 없고 위압감을 주는 바위도 없습니다. 너른 평지에 온통 숲으로 둘러 쌓인 꽃대궐 같습니다. 오월의 신록과 함께 울긋불긋 작약이 한창입니다.
찬불가 ‘우리도 부처님 같이’
일요일 오전입니다. 청풍루에서는 일요법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약 사오백명을 수용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지만 참석자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신도조직이 잘 되어 있다는 봉선사에서 일요법회 식순에 찬불가가 있습니다. 다른 절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찬불가 ‘우리도 부처님 같이’를 신도들이 합창합니다.
봉선사는 교학본찰
봉선사는 교학의 사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사촌인 운허스님이 이곳 봉선사에서 역경했습니다. 운허스님은 법화경 등 대승경전 다수를 우리말로 역경했습니다. 그런 운허스님을 ‘한국의 구마라집’이라 일컫는 이도 있습니다.
봉선사 역경의 전통은 월운스님으로 이어졌습니다. 구십이 다 된 노스님을 도량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도량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스님은 천진불 같습니다. 종무원들이 마치 천진불 대하듯 스스럼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특색있는 절이 있습니다. 제2교구 본사 수원 용주사는 효와 관련된 사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처자식이 있는 주지스님으로 인하여 세간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사찰입장료를 받고 있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봉선사의 경우 보물이 있어도 입장료도 받지 않고 주차비도 받지 않습니다. 점심공양도 무료입니다. 또한 정부나 지자체로부부터 일체지원을 거절했다고 합니다. 자강한 것입니다. 그래도 사찰이 유지되는 것은 월운노스님의 역할 때문이라 합니다.
오늘날 봉선사가 있게 된 것은 천진불 같은 노스님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치 전통있는 회사에 노련한 장인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장인은 문제가 생기면 경험과 노우하우로 해결해 줍니다. 사찰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운허스님으로부터 월운스님으로 이어지는 역경의 전통은 봉선사를 오늘날 교학본찰로 만들었습니다. 최근에는 현진스님이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경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다리던 원담스님을 만났습니다. 찻집 봉향각 앞 전망좋은 곳에서 앉아 있으니 원담스님이 보였습니다. 두 번째 만남이니 구면(舊面)입니다. 만남을 위하여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준비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떤 이는 미얀마 고승을 만나기 위해 많은 질문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만났을 때 한마디 말도 못했다고 합니다. 청정한 빅쿠와 그냥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그자체로 만족했다고 합니다.
원담스님과의 만남은 만남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미 글로서 무언의 소통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다 알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스님은 실제로 글을 매일 보고 있다고 했습니다. 매일 글을 보고 있다는 말에 놀랐습니다. 그 말을 듣고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서 “감사합니다.”라 말했습니다.
인터넷에 국경이 없습니다. 한번 올려진 글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볼 수 있습니다. 불자는 물론 타종교인도 볼 수 있습니다. 스님도 많이 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매일 보고 있다는 원담스님의 말씀에 약간은 부끄러워졌습니다. 내면을 들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더구나 외면까지 공개 되었으니 안팍으로 다 드러난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매우 고마웠습니다.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보통불자의 글을 꾸준히 지켜 보아 주신 것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감사합니다”라 했습니다.
보이차를 서로 맞교환 셈
스님에게 드릴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주고 별도로 선물을 사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선물로 받은 보이차를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스님도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역시 보이차입니다. 동그란 모양의 보이차는 모양이 비슷합니다. 그러다 보니 보이차를 서로 맞교환한 셈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염된 음식이 정화되는 듯
스님들의 공양시간은 11시 30분입니다. 12시가 되기 이전에 식사를 끝내는 것은 오랜 전통일 것입니다. 스님의 안내로 종무원들이 먹는 작은 방으로 갔습니다. 언제나 접하는 절밥은 청정한 것입니다.
채식위주의 청정한 식사를 하니 어제 먹은 오염된 음식이 정화되는 듯 합니다. 마치 작은 쐐기로 커다란 쐐기를 쳐서 뽑아 버리는 것처럼, 쐐기로 쐐기를 빼는 것 같습니다. 독을 독으로써 제독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을 음식으로 정화하는 것은 일종의 동종요법일 것입니다. 청정한 음식을 감사한 마음으로 한톨도 남기지 않고 깨끗이 남김 없이 비웠습니다.
다실(茶室)은 작을수록 좋다
점심공양을 끝내고 차담시간을 가졌습니다. 봉선사 선원장 명고스님 방에서입니다. 대웅전을 바라보고 서쪽편 선열당입니다. 다실은 매우 작습니다. 명고스님이 팽주가 되고 원담스님은 탁자 옆에 앉았습니다. 방안이 꽉 차는 듯합니다. 다실은 작은 공간이 더 좋을 듯 합니다. 탁 트인 너른 공간 보다 한평정도 되는 공간이 소통하기에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 NHK대하드라마를 보면 전국시대 다실에서 차 마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한평도 되지 않습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합니다. 차를 마시면서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라 합니다.
오늘날 일본 차문화를 정립한 센 리큐의 다실을 보면 아주 작은 공간입니다. 얼굴을 마주 보며 숨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작은 공간입니다. 명고스님 방에 있는 다실 역시 서너명이 들어 가면 꽉 찰 정도로 매우 비좁습니다.
이것 저것 챙겨주는 스님
작은 다실에서 한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다고 “도가 무엇입니까?”라거나 “깨달음은 무엇입니까”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세상 돌아 가는 이야기, 주변 이야기 등을 나누었습니다.
청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서 달리 들을 것이 없습니다. 청정한 사람들과 앉아 있는 그 자체가 이미 도에 대하여 깨달음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주로 명고스님이 이야기 했습니다. 선원장 소임을 맡고 있는 스님은 봉선사에서 삼십년 이상 살고 있다고 합니다. 스승인 월운스님이 좋아서 봉선사가 좋아서 한곳에서 오래 살고 있는 듯합니다.
봉선사선원장 명고스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108염주를 주었습니다. 손목에 세 번 감아찰수 있고 108할 때 사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 보이차 덩어리를 주었습니다. 찾아 온 손님에게 이것 저것 챙겨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경청의 리더십
원담스님은 옆에 앉아서 조용히 경청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말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대화할 때는 듣는 것이 남는 장사입니다. 말을 많이 하기 보다 잘 들어 주는 것이 가장 대화를 잘 하는 것이라 합니다. 리더의 덕목중의 하나는 잘 경청하는 것입니다. 잘 경청할 줄 아는 자는 관용과 자애와 지혜 있는 자입니다. 이런 예를 상윳따니까야 ‘제석천상윳따(S11)’에서 접합니다.
제석천상윳따에 따르면 신들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석천과 아수라의 전쟁입니다. 신들의 제왕 제석천은 경청의 리더십이라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힘에 의존하는 아수라대왕은 독재형입니다. 제석천은 인내와 화평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붙잡힌 아수라대왕을 풀어줍니다. 그러나 아수라대왕은 강력한 처벌로 다스려야 함을 말합니다.
아수라대왕의 리더십을 보면 칠팔십년대 철권통치를 연상케 합니다. 그러나 제석천은 모든 면에서 관용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힘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 없는 자에게 인내하네.”(S11.5) 라는 게송으로 알 수 있습니다.
약자는 늘 인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약자에게만 인내를 강요하면 독재가 됩니다. 진정한 리더는 인내하는 것입니다. 힘 있는 자가 인내하고 관용을 베풀어야만 꼬인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아수라대왕의 리더십은 힘에 의존한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지만, 제석천은 힘이 있어도 남용하지 않는 관용과 자애와 지혜의 리더십입니다.
경청할 줄 아는 자가 진정한 리더입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 보다 경청하는 것이 더 나은 장사입니다. 회사에서 사장만큼 많이 아는 자가 없습니다. 사장은 각 부서로부터 보고를 받습니다. 주로 경청합니다. 잘 듣는 것이 남는 장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이 다 노출됩니다. 상대방은 힘들이지 않고 많은 것을 얻어 갈 수 있습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 보다 잘 듣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합니다. 그런데 잘 들어 주면 줄수록 대화는 더 잘된다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리더는 잘 경청하는 자입니다.
흥분한 안철수
진정한 리더는 남의 말을 잘 경청할 줄 압니다. 설령 자신을 비난하고 비방해도 인내하는 자가 이깁니다. 비방하는 자에 대하여 자비의 마음으로 섭수했을 때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자가 이깁니다. 이는 “분노하는 자에게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기기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네.”(S11.5)라 한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싸움이든지 흥분하면 집니다. 먼저 화내는 사람이 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 대선 때 안철수는 흥분했습니다. 몸을 부르를 떨 듯 “제가 갑철수입니까?” “제가 MB아바타입니까?”라고 다그치듯 물었을 때 대선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안철수는 다음 번 대선 때 이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자야망갈라가타에 따르면, 부처님은 야차 알라바까가 싸움을 걸어 올 때 인내와 자제로 섭수했습니다. 가짜 임신녀 찐짜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주었을 때도 적멸과 안온으로 섭수했습니다. 힘 있는 자는 힘 없는 자에게 인내하며 참아 내었습니다.
힘 있는 자는 힘을 행사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힘이 넘쳐 날 때 어떤 식으로든지 힘을 표출시키고자 합니다. 그러나 힘 있는 자가 인내하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관용과 자애 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자비로운 자에게 적은 없습니다. 자비무적입니다.
선방스님들에게 공양하면
원담스님과 다음을 약속하고 헤어졌습니다. 일요일임에도 오후 정진을 위하여 선원으로 향합니다. 한국불교가 부패 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선원에서는 주말 없이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수좌스님들을 한국불교의 마지막 보루라고 하는 가 봅니다.
선방스님들에게 공양하면 공덕이 크다고 합니다. 그래서일까 어떤 불자들은 선방스님들만 찾아 다니면서 공양하기도 합니다. 진주에서 신도들이 6월 17일(토) ‘대중공양’한다고 합니다. 참석 예정입니다. 더구나 11월에 인도순례가 예정되어 있는데 역시 참가할까 합니다.
화창한 신록의 계절에 숲속 봉선사에서 청정한 삶을 추구하는 수행자들을 만났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진실된 이야기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자들의 말은 진실되기 때문입니다. 귀가길이 경쾌했습니다. 마치 봉사를 마치고 귀가했을 때 밀려오는 잔잔한 행복감 같은 것입니다.
2017-05-2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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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흙속의연꽃 원문보기 글쓴이: 진흙속의연꽃
첫댓글 봉선사를 다녀온 후일 담을 이렇게 담담하게 들려주시니 읽고 난 제 마음도 청정해지는 듯 합니다~~
언제 한 번 꼭 뵙고 싶네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진흙 속의 연꽃님, 저희 스승님을 뵈러 봉선사 다녀 오셨다니 참 반갑습니다.
원담스님께서 진훍 속의 연꽃님 카페를 소개 해 주셔서 저도 가끔 좋은 글들을 읽곤합니다.
진주에서 대중공양 가는 날 뵐 수 있다하니 더없이 반갑습니다.
카페에 자주 들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_()_
진흙 속의 연꽃님, 저희들이 모시는 스님께서 이렇게 훌륭하신 분인 줄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도에도 같이 가신다니 반갑습니다. 글을 읽으니 제가 스님을 직접 만나뵙고 온 듯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진주선원 불자님들 반갑습니다. 어제 봉선사 다녀 왔습니다. 가까이 있어서 찾아 뵈었습니다. 다음달 6월 17일 대중공양일날 뵙겠습니다. 그리고 인도순례 함께 하기를 희망 합니다. 좋은 인연 입니다. ()
부산 범어사도 본사사찰이지만 입장료안받고 있어요.
연꽃님~ 스승님과 함께한 시간들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동입니다. 스승님과 연꽃님의 만남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요? 평소 연꽃님의 글을 많이 읽고 있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리며 인도성지순례에서 만나뵐 수 있겠습니다. _()_
연꽃님의 블로그를 인연으로 이곳까지 오게되었습니다. 올 정원대보름때 봉선사에서 불놀이(용어가 생각안나네요) 멋지게 본 기억나네요. 조만간 다시 들리겠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