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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1392 |
고려 멸망, 조선 건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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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4 |
한양천도 |
1417 로마교회, 교황 선거로 교회 대분열 끝냄 |
1418 |
세종 즉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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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9 |
이종무, 쓰시마 정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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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0 |
집현전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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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3 |
‘고려사’ 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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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4터키, 콘스탄티노를 제외한 전 동로마 영토 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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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1 영국, 잔 다르크 처형 |
1433 |
4군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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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34 |
6진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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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1 |
측우기 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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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 |
훈민정음 창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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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6 |
훈민정음 반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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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3 |
수양대군, 김조서 죽이고 정권 장악(계유정난) |
1453 백년전쟁 끝남 투르크,콘스탄티노플 점령 동로마 제국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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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5영국, 장미 전쟁 시작 |
1456 |
사육신 처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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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8 |
고려사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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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0 |
신숙주, 여진 정벌 |
1460터키, 그리스 전 영토 점령 |
1466 |
직전법 실시 |
1467 일본, 오닌의 난 일어나 센코쿠시대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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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0 이탈리아 보카치오, ‘데카메론’간행 잉카 제국, 정복활동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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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2 교황청, 면죄부 남발 |
1475 |
인수대비‘내훈’펴냄 |
1474 이탈리아 토스카넬리, 세계지도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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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9스페인 왕국 성립 |
1481 |
서거정 등, 동국여지승람 지어올림 |
1480이반 3세, 킵차크한국 멸망시키고 몽고 속박 벗어남 |
1482 |
폐비 윤씨에게 사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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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1484 |
경국대전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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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7포르투갈 바르폴로뮤 디아스, 희망봉 도착 |
1491 |
여진족, 경흥에 쳐들어감 |
1492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에서 이슬람 세력 쫓아냄 콜럼버스, 아메리카 항로 발견 |
1493 |
성현 등, ‘악학궤범’완성 |
1494 이탈리아 메디치가, 피렌체에서 쫓겨남 중국나관중, ‘삼국지연의’펴냄 |
1498 |
무오사화 일어남 |
1498포르투갈 바스코 다 가마, 인도 항로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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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9스위스, 독일과 바젤협약 맺고 스위스동맹 맺음, 독립 |
1500 |
과부 재혼 금지 |
1500인도, 타무르 제국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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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 명, 타타르족 침략으로 영하 함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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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 명,‘대명회전’완성 이란, 사파비 왕조 성립 |
1503 |
승려의 도성 출입 엄금 |
1503일본, 조선통신사 요청 알프스 이북에 르네상스 발흥 |
1504 |
갑자사화 일어남 경연 폐지 성현, ‘용재총화’펴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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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6 |
중종반정 |
1506 이탈리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완성 네덜라드 에라스무스,‘우신예찬’지음 |
1510 |
삼포왜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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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2 |
임신약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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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영국 토마스 무어, 유토피아 지음 아라비아, 아라비안 나이트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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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루터의 종교개혁 투르크, 이집트 점령, 칼리프 칭호 사용 |
1518 |
소격서 혁파 |
1518 스위스 츠빙글리, 종교 개혁 주장 |
1519 |
향약 실시, 현량과 실시 기묘사화 일어남 |
마젤란, 세계 일주 |
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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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4 독일, 농민전쟁 일어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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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6인도, 무굴 제국 성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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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2 스페인 피사로, 페루 정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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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3잉카제국 멸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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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4 영국, 수장령 발표 료올라, 예수회 창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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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6칼뱅의 종교개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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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1 투르크, 헝가리와 알제리 정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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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2 영국, 아일랜드 왕국 성립 |
1543 |
주세붕,백운동서원 세움 |
1543코페르니쿠스 지동설 발표 |
1545 |
을사사화 일어남 |
1544 로마교회, 트리엔트 공익회 개최 |
1551 |
문정왕후, 영종선과 재설치, 도첩제 부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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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4 |
비변사 설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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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5 |
을묘왜변 발생, 제승방략 반포 |
1555 아우구스크르크 종교 화의, 루터파 신교 공인 |
1556 |
이황 주자서절요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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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9 |
이황, 기대승 사전칠정 논쟁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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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0 |
이황 도산서원 세움 |
1560 일본 교토에 기독교 포교 허용 |
1561 |
이지함, 토정비결 지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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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2 |
임꺽정 처형 |
1562 프랑스, 위그노전쟁 일어남 |
1565 |
보우, 제주도에서 처형 |
1565 일본, 교토의 선교사 추방 포르투갈, 마카오 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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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8네덜란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전쟁 일으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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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1 일본, 나가사키항 개항 스페인, 레판토해전에서 투르크에 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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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3 명, 장거정의 개혁 |
1575 |
동서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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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7 |
이이, 해주향약 실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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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 |
이이, 십만양병설 건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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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8 |
일본 사신, 통신사 요청 정철‘사미인곡’,‘속미인곡’지음 |
1588 영국, 에스파냐 무적함대 물리침 |
연월일 |
한민족사 |
세계사 |
1589 |
정여립 모반 사건 |
1589 도요토미 히데요시, 일본 전국 통일 |
1592 |
임진왜란 일어남 한산대첩, 진주대첩 |
1592 도요토미 히데요시, 조선 침공 |
1593 |
평양 수복, 한성 수복, 행주대첩, 훈련도감 설치 |
1593 영국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지음 |
1594 |
속오군 편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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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6 무굴 제국, 인도통일 일본,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음 |
1597 |
정유재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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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8 |
도요토미 히데요시 죽은 뒤 일본군 총 퇴각 시작 |
1598 프랑스, 낭트 칙령 발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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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9 일본 세키가하라 전투 |
1600 |
공명첩 발급 |
1600영국, 동인도 회사 세움 |
수정했습니다. ^^
훈민정음 창제와 집현전의 업적은 분명 세종의 혼자 힘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부족한 점은 채워가면서 자만하지 않은 점이 세종의 업적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정신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할 것입니다.
5) 집현전은 -> 집현전의 업적은
우리나라의 화폐에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선조들의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세종대왕께서는 가장 고액의 화폐인 만 원짜리 화폐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세종대왕의 업적이 가장 뛰어난 업적이다 고 말한다면 조금 비약일 수 있겠으나, 그 만큼 세종대왕의 업적이 돋보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이 이토록 뛰어난 업적을 남긴 것은 그가 한반도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뛰어난 리더십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 와서도 그런 세종대왕의 뛰어난 업적을 본받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수많은 책이 발간되고 있으면 세종에 대한 연구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1) 그 중에서도 -> 그중에서도 2) 업적이다 고 말한다면 조금 비약일 수 있겠으나, 그 만큼 -> 업적이라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만큼 3) 않을까? 생각합니다. -> 않을까 생각합니다. 4) 발간되고 있으면 -> 발간되고 있으며
세종대왕이 이와 같이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온고지신’을 올바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은 역사를 아는 자가 성공을 쥔다는 생각을 가지고 과거를 바탕으로 해서 미래를 창조해 나갔습니다. 과거의 인습을 단지 버리는 것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그 인습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교훈을 모두 찾아서, 인습은 버리지만 그 속에서 전통을 찾아 낼 수 있는 안목과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현 시대도 세종대왕과 같은 뛰어난 리더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 같이 역사에 남을 뛰어난 리더가 또 다시 나오기는 매우 힘든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역사를 바로 공부하고 그 속에서 현 시대를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지혜를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면 제 2의 세종대왕, 제 3의 세종대왕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을 듯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역사를 올바로 배우고, 또한 배우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코멘트, 좋아요. 5) 또 다시 나오기는 매우 힘든 일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또다시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6) 제 2의 -> 제2의 7) 제 3의 -> 제3의
박보람 학우의 발표 잘 들었습니다. 차분하게 조목조목 잘 설명해 주셔서 좋았던 발표입니다. 세종은 역대 왕들 중에서 대왕(大王)이란 호칭을 가지고 있는 아주 훌륭한 왕이라고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한 분야에서만이 아닌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균형적인 발전을 이룩하였고, 가장 중요한 업적인 훈민정음도 창제하였기 때문이죠. 세종이 이만큼의 훌륭한 업적을 펼칠 수 있던 데에는 세종의 뛰어난 능력을 물론 첫 번째로 손꼽을 수 있겠지만, 세종의 뒤에서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던 여러 신하들의 몫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1) 설명을 해주셔서 -> 설명해 주셔서 2) 이루셨고, -> 이룩하였고 3) 훈민정음을 창제하시기도 하였기 -> 훈민정음도 창제하였기 4) 손 곱을 수 -> 손꼽을 수
수정했습니다.
제 아무리 뛰어난 리더가 있다고 해도 그 리더를 진심으로 존경하며 따라 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개혁은 불가능한 것이니까요. 또한 세종은 개인적으로도 뛰어났지만 옳은 말에 귀 기울이는 습관을 가진 것은 지도자가 꼭 갖추어야 하는 조건에 충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집권층을 보면 반대 세력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을 굽히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세력이 옳다하며, 끝까지 밀어붙여서 관철시키려 하지만 이는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는 길입니다. 현대 사회를 사는 우리는 타인의 옳은 말에 대하여 적극 수용해 절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하겠습니다.
5) 따라주는 -> 따라 주는 6) 지도자층들을 -> 집권층을
수정했습니다.
또한 한글을 창조한 세종의 불굴의 의지는 나약한 현대인들이 꼭 본받아야 할 사항입니다. 한글을 “창조”한다는 작업은 말 그대로 창조입니다. 無에서 有를 만든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한 세종의 끝없는 노력과 불굴의 의지력을 본받아 앞으로 학문을 하는 데에 있어서 끊임없이 정진하여 自立의 정신을 추구해야겠습니다.
7) 본받아야할 -> 본받아야 할
수정했습니다.
진정한 지식인은 아는 것에서 그치는 사람이 아니라 아는 것을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세종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잘못된 것과 싸울 줄 알고, 더 많이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진정한 지식인이자 리더라고 생각합니다. 세종의 이러한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사회도 많은 발전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이러한 노력과 열정, 그리고 실천을 본받고 이런 인재를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발표주제상 저도 세종대왕에 관한 자료를 여러 개 구해 읽었었습니다. 목적은 훈민정음의 창제자로서의 세종을 확인하는 것이였지만, 알면 알수록 경외감을 들게 하는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었습니다. 문화, 사회, 정치, 경제, 더 나아가 국토확장과 국력에까지, 그야말로 다방면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어냈죠. 세종은 온유와 카리스마를 동시에 지닌 왕이었습니다. 흔히 세종을 생각할 때 好學子, 덕이 많았던 어렸을 때를 기억하여 마냥 어질고 너그러운 왕으로 기억하지만, 민본정치와 같은 정치적 제스쳐와 뜻한 바를 펼 때 보이는 무서우리만큼의 추진력은 그가 천상 타고난 정치가이며, 리더임을 보여줍니다.
1) 발표주제상 -> 발표 주제상 2) 것이였지만, -> 것이었지만, 3) 국토확장과 -> 국토 확장과 4)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어냈죠. -> 놀랄 만한 성과를 이루어 냈죠. 5) 민본정치 -> 민본 정치 6) 제스쳐와 -> 제스처와 7) 보여줍니다. -> 보여 줍니다.
능력과 천성적인 면이 잘 조화된, 노력하는 천재가 바로 세종이 아니였을까요. 이러한 위인이 있었기에 조선의 태평성대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위대함이 어울리는 대왕 세종을 통해 삶의 원리를 무한대로(?) 도출시켰던 보람학우의 발표, 정말 잘 들었구요^-^ 수고 많았어요!
8) 아니였을까요. -> 아니었을까요. 9) 보람학우의 -> 보람 학우의
삭제된 댓글 입니다.
1) 조목 조목 설명한 -> 조목조목 설명한 2) 경제 과학 법 윤리 등 -> 경제, 과학, 법, 윤리 등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훌륭한 리더가 만들어질 수 있는 건가요? 구체적으로 말해 보기 바랍니다.
이번 발표를 통해서 세종이 외교, 경제, 과학, 문화 등 속에서 얼마나 많은 발전과 노력을 했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백성을 생각하고 백성을 위한 발전을 추구했다는 것에서 세종의 홍익인간의 정신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교사회에서 왕이란 백성을 아껴야 한다지만 사실 상위 계층에서도 가장 위에 있는 왕의 자리에서 자신만 편하게 살려면 다른데 신경 쓰지 않고도 충분히 즐기며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행함으로써 널리 백성과 함께 이롭게 사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러한 세종의 정신은 현재의 리더들이 배워야 할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