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과세관청 지나친 재량권으로 납세자 불안
재경부, "국세청이 인정 안해주면 불복청구 하면 될 것"
건물을 상속, 증여받은 납세자들이 세금신고를 세법에 맞게 제대로 했음에도 '시가 의제'<유사매매사례> 라는 '함정 같은' 규정으로 뒤늦게 세금을 추징당하거나 가산세까지 물어야 하는 기막힌 일이 발생하고 있다.
즉 아파트를 증여받은 후 증여세 신고를 보통 법에서 허용하는 보충적평가방법(기준시가)으로 하게되는데 증여 아파트의 같은 동이나 인근 아파트 등 그동안 주위에서 아파트 매매가 이루어 졌는지 또 그 아파트가 얼마에 거래되었는지를 알아보지 않고 그냥 기준시가에 맞춰 신고한 '죄'에 해당되는 것.
최근 서울에 사는 L씨는 지난해 아버지에게 아파트를 증여 받아 조세전문가인 세무사의 도움까지 얻어가며 증여세를 기준시가로 계산해 신고했다. 그러나 L씨는 최근 국세청의 '조사결과 신고가 잘못됐으니 가산세까지 합쳐 세금 1100여 만원을 더 내라'는 통지를 받고 아연 실색했다.
서울 강남의 A씨도 같은 상황. 아파트를 증여 받은 A씨도 세법에 따라 8억5000만원으로 평가해 증여세를 냈지만, 국세청으로부터 뒤늦게 '아파트 평가액은 2억8000만원이 더 많은 10억3천만원인 만큼 세금을 더 내라'는 통지를 받고 영문을 몰라 발만 동동 굴러야 했다.
건물의 상속·증여시 원칙적으로 세법상 시가에 따라 세금을 신고해야 하지만, 시가를 모를 땐 국세청 기준시가를 보충적으로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상속·증여의 경우 상속일 전후 6개월(증여는 3개월) 이내의 기간 동안 상속(증여)재산과 면적·위치·용도 및 종목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다른 재산에 대한 매매나 감정·수용·경매가 있는 경우엔 '유사매매사례가격'을 시가로 봐 기준시가보다 먼저 적용토록 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상속·증여는 특성상 무상이전이 전제되기 때문에 받은 재산의 시가를 알 수가 없고, 부득이 세법에 따라 국세청 기준시가로 신고한 납세자들은 뒤늦게 인근 아파트에서 실제 매매가 이뤄진 경우 세금추징과 함께 가산세 부담을 피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납세자들은 시가를 알 길이 없으나 국세청은 조사 등을 통해 근처에서 매매가 이루어진 사실을 발견하게되고 또 그 매매가가 증여신고자들보다 높을 땐 꼼짝없이 세금을 추징당할 수 밖에 없게 돼 있다. 납세자가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인근 부동산중개소나 주위 사람들에게 매매여부와 매매가액을 탐문해야 한다. 그러나 이 또한 중개사들이 매매와 관련한 개별사례를 유출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돼 있다.
결국 세금신고를 제대로 했다고 해도 세무서에서 <유사매매사례>가 있다고 하면 꼼짝없이 당하는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와 관련 조세전문가들은 "현실적으로 증여재산의 경우 매매가 됐거나 감정평가를 받지 않고는 시가를 알 수 없어 국세청 기준시가로 증여세를 신고·납부할 수밖에 없는데도 누가 언제 거래할 지도 모르는 '유사매매 사례'라는 함정 같은 조문으로 인해 납세자들이 뒤늦게 세금추징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부당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조세전문가는 "인근지역의 유사매매사례 등 시가확인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현행 세법대로라면 재산과 면적·위치·용도·종목이 동일하거나 유사한 다른 재산의 거래가액 등이 있는지 시가를 확인하고, 그럴 수 없을 때 국세청 기준시가를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더구나 세법 규정이 매매사례가액을 채택할 때 거래횟수나 거래시기, 신고가액과 매매사례가액 차이 등 구체적인 범위도 없이 불확정 개념으로 규정돼 있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가격은 개별성이 매우 강해 같은 아파트동 안의 규모가 같은 아파트라 하더라도 층마다 그 가격이 다르고, 같은 층에서도 그 층의 위치와 시설상태 그리고 통로와 가까운지 등 위치에 따라 가격이 다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급하게 매물로 내놨는지도 시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설명.
또 다른 조세전문가도 "납세자는 증여일부터 석달안에 증여재산을 평가해 증여세를 신고납부해야 하는데, 매매정보를 과세관청에서 독점하고 있는 상태에서 증여자가 매매사례가액을 조사해서 신고해야 한다면 조사비용과 신고납부에 대한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납세자가 증여세 신고를 위해 여러 부동산중개사무소와 증여 받은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사람들 또는 다른 곳에 사는 집주인에게 매매여부와 매매가액을 탐문하는 것을 기대하기도 힘들뿐만 아니라, 비밀유지의무 때문에 부동산중개업자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따라 조세전문가들은 "사례의 범위가 같은 층만인지 또는 같은 동까지인지, 단지 전체인지, 인근 아파트까지인지 등이 법령에 명확치 않기 때문에 과세관청이 자의로 과세할 가능성이 높아 납세자는 불안할 수밖에 없다"며 관련법 손질 등 대책마련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세전문가들은 "현재 1년에 한번 고시되는 국세청 기준시가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이같은 법령이 만들어졌다면, 국세청이 기준시가를 고시하는 시기를 매주 또는 매달 등으로 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문했다.
이와 관련 재정경제부 세제실 관계자는 "증여세 신고는 '시가'에 따른 신고가 원칙"이라며 "지난해 전문가단체에서 이 부분에 대한 법개정을 요구해왔지만, 법을 바꾸지 않기로 최종 결론을 내린 상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증여세는 시가주의 과세가 원칙이기 때문에 납세자가 시가를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경우에만 기준시가가 적용돼야 한다"며 "시가는 '납세자가 증여 받은 재산을 시장에서 환가할 경우 받을 수 있는 금액'으로 봐 신고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설령 국세청이 납세자가 신고한 금액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충분한 성의를 다해서 시가로 추정되는 금액을 신고한 경우라면, 이의신청이나 심사·심판청구 등 불복절차를 통해 충분히 구제받을 수 있다"고 말해 납세자와 과세당국간의 시비는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