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라고 해서 무조건 모든 불의와 죄를 용납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님. 가난한 자라도 공의롭지 않은 행동에 대해서는 심판을 받아야 함.
맞습니다. 이것은 이사야 11장의 하나님의 공의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사야 11:4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여기서 "가난한 자를 심판한다"는 표현은 가난한 사람을 정죄한다는 뜻이 아니라,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의 억울함을 바르게 판단하고 보호한다는 의미입니다.
동시에 성경은 가난함 자체가 의로움의 증거는 아니며, 부함 자체가 악의 증거도 아니다라는 균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가난한 사람인가, 부자인가 ❌
힘 있는 사람인가, 약한 사람인가 ❌
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가
정직한가
회개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가
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가난하지만 악한 사람도 나옵니다.
나발은 부유한 사람이었지만 어리석고 교만했습니다(사무엘상 25장). 반대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의로운 것은 아닙니다.
잠언도 이렇게 말합니다.
"가난한 자는 자기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자는 친구가 많으니라."
(잠언 14:20)
이 말씀은 가난한 자를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자를 사랑하셨지만, 죄를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11)
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가 함께 있습니다.
긍휼: 죄인을 용서하심
공의: 죄에서 떠날 것을 요구하심
하나님은 약자를 보호하시지만, 약자의 죄까지 인정하시는 분은 아닙니다.
이것은 이사야 11장의 메시아 모습과 정확히 연결됩니다.
세상의 통치자는 종종:
힘 있는 자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거나
약한 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옳다고 여기거나
여론에 따라 흔들립니다.
하지만 메시아는: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기준으로 판단하십니다.
따라서 메시아의 공의는 약자를 위한 공의이면서 동시에 죄를 심판하는 공의입니다.
정리하면:
세상의 정의
→ 강자의 편에 서기 쉽거나, 반대로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용납하기 쉬움
하나님의 정의
→ 약자를 보호하지만 죄는 죄라고 하며, 모든 사람을 진리로 판단함
그래서 예수님은 사랑과 공의를 동시에 가지신 왕으로 이사야 11장에서 예언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