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품연지회는 매주 일요일 불국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불국사를 해설하는 자원봉사 모임이다. 1997년 월성본부 직원 4명이 불국사의 가치를 알리고 싶어 창립했는데, 지금은 문화재와 봉사에 관심 있는 다양한 지역 회원들도 모여 활동한다. 문화유산 자원봉사 모임의 효시, 구품연지회 회원들을 만나기 위해 불국사로 향했다.
사진에 다 담을 수 없는 큰 의미
오전부터 내린 비로 땅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천 년의 사찰 불국사. 구품연지회 초기 멤버이자 회장인 최상우 팀장(지역상생협력처 지역협력팀)이 이른 아침부터 안내소를 지키고 있었다. “수학여행, 가족여행으로 불국사를 많이 찾지만 관광객들이 불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사진만 찍고 가는 것이 안타까웠죠.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는지 잘 모르는 분들도 있어요. 불국사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구품연지’는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세계의 연꽃이 피는 연못. 불국사를 창건할 때 청운교와 백운교 앞 광장에 위치했던 연못의 이름이기도 하다. ‘청운교와 백운교에서 내려다보면 연못이 얼마나 멋졌을까?’생각하며 마음속에서라도 구품연지를 되살리자는 뜻에서 모임의 이름을 정했다고. 처음 시작할 때는 자원봉사가 정착되지 않았던 때라, ‘사례를 해야 한다’는 인식에 관광객들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불국사에서도 정기적인 지원금을 내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수 자원봉사 모임으로 남기 위해 금품이나 지원금을 받지 않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모토로 삼고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40여 명의 회원들이 일요일마다 순번을 정해 한 달에 1~2회 정도 봉사활동을 한다. 매주 10명 내외의 회원이 돌아가며 불국사 해설과 안내를 담당하는 것. 이 중 우리 회사 현직, 퇴직 직원은 7~8명 정도이며, 나머지는 지역주민들이다. 직장인, 교사, 자영업자, 문화해설사 등 직업도 다양하다. 최상우 팀장의 경우 문화재 사랑으로 시작한 봉사활동이 어느덧 회사에도 보탬이 되는 일이 되었다. “우리 회사를 내방하는 손님들, 임원들, 사원들에게 제가 직접 관광해설자로 나서기도 해요. 회사 워크숍 프로그램으로 불국사 방문을 넣기도 하고요.”
깊이가 다른 맞춤형 해설
“혹시 지금 안내가 가능한가요?” 때마침 관광객이 안내소 문을 두드린다. “몇 명인가요?”, “17명이요.”, “네.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출발할 수 있습니다.” 최상우 팀장이 첫 번째 방문 팀을 안내하기 위해 목에 마이크를 건다. 불국사 구조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관광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한다. 20분 후 최상우 팀장이 관광객을 이끌고 자리를 옮기자, 뒤를 이어 임병직 회원이 최 팀장이 해설했던 자리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 한 팀에게 해설을 시작한다. 불자를 대상으로 해설하는 최상우 팀장과 달리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 해설한다. 임병직 회원은 인터넷을 통해 2015년 구품연지회에 들어왔고, 해설을 하기 위해 경전도 공부했다. 3~4시간 정도 경전을 중심으로 깊이 있게 불국사를 해설하는데, 너무 즐거워 봉사를 하는 일요일만 기다려진다고.
조상호 회원 역시 업무차 경주에 오는 사람들에게 경주를 어떻게 알려드릴까 고민하다 동서의 소개로 2006년 구품연지회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안내 교본과 복원 기록을 기초로 공부했죠. 선배 가이드를 따라다니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고 성지순례를 통해 해설을 보완했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불국사에 왔다가 해설을 통해 불국사에 대해 알고 가는 관광객의 마음이 제가 처음 해설을 시작할 때와 똑같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는 어떤 관광객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서 해설을 하게 되는 것이 또 하나의 매력이라고 덧붙인다. 구품연지회는 해설용 기본 시나리오가 있지만 자신이 소화하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해설을 한다. 다른 문화재 해설 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 점이기도 하다. 관광객의 수준과 호응도에 따라 짧게는 1시간, 길게는 4시간까지 깊이 있는 맞춤 해설이 가능하다.
지역사회와 함께 지키는 문화재
구품연지회가 단순히 문화재 해설만 하는 것은 아니다. 7년 전 우리 회사에서 정년퇴임한 최문규 전 구품연지회 회장은 구품연지회가 2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를 ‘순수 자원봉사 모임’으로 지역사회와 공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구품연지회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죠. 경주에는 관광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600명이 넘거든요.” 구품연지회는 오히려 그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문화재나 역사 관련 간행물, 논문, 삼국유사, 사적 문헌들을 공부해 참고문헌을 바탕으로 안내 교본을 만들어 배포한 것도 그 일환 중 하나. 창립 초기부터 문화재 관련 분야의 저명인사를 초청해 ‘불국사 고대 미술의 조명, 불국사 조형미’ 등의 문화 강좌를 열고, 불국사 내 쉼터 의자 만들기를 건의하는 등 지역사회에 보답할 수 있는 일을 끊임없이 해왔다. 단지 관광객들을 위한 음수대로 남을 뻔했던 통일신라시대 석조 수조가 보물로 지정될 수 있었던것도 구품연지회의 역할이 컸다. “수조 바닥에 새겨진 무늬가 심상치 않아 물을 퍼보니 연꽃무늬가 있었죠. 관련 서적과 문헌을 찾아 문화재청에 자료를 제출했고, 지금은 국가지정문화재가 되었어요” 수조뿐 아니라 불국사 내 다양한 구조물을 관광객들에게 보물로 선보일 수 있도록 일조하는 것도 구품연지회의 역할이다. 이러한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아 경주시에서 주는 자원봉사상도 수차례 받았다.
배움은 끝이 없다
20년이나 되었지만 구품연지회 회원들은 여전히 불국사의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한다. 한 달에 한 번 열리는 정기모임에서는 운영 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불국사와 불교 건축에 대한 논문을 소개한다. 관광객들이 한 질문 중 답하기 어려웠던 것이 있다면 이를 공유하고 함께 답을 찾는다. 이 모든 활동은 불국사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한 구품연지회 회원들의 식지 않는 열정 덕분이다. 박물관학교를 다니다가 최상우 팀장의 소개로 구품연지회를 알게 된 박진열 회원은 구품연지회를 ‘한 번 들어오면 탈퇴할 수 없는 곳’이라고 말한다. 16년째 외국인을 대상으로 불국사를 해설하는 문화관광해설사회원도 직업적으로 활동할 때보다 봉사활동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며, 회원들에 대한 무한 신뢰와 애정을 보였다. 회원들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해 떠나는 현장 답사와 성지순례도 공부의 연속이다. 최문규 전 구품연지회 회장은 “문화재는 결국 비교 문화이기 때문에 주로 불교 사찰 건축을 보러 갑니다. 불국사와 다른 점을 발견하면서 불국사에 대한 이해를 높여가는 거죠. 한국에 있는 사찰뿐만 아니라 중국의 4대 불교 성지 등 해외로도 갑니다”라고 말한다.
우리나라에 자원봉사 제도가 정착되기도 전에 시작된 구품연지회. 현재 서울의 궁궐 프로그램이나 문화재 지킴이, 다른 지역 사찰 프로그램들은 구품연지회 활동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래서 구품연지회 회원들에게는 문화재 자원봉사의 효시라는 남다른 자부심이 있다. “앞으로도 다른 문화재 자원봉사 단체의 리더로 남아 지속적으로 모범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는 최상우 팀장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창립 20주년을 맞아 문화재 세미나를 기획 중이라는 최상우 팀장 뒤로 20명이 넘는 관광객을 이끌고 움직이는 임병직 회원이 보였다. 분명 처음 해설을 시작할 때는 가족 한 팀만 있었는데 어느덧 한 무리를 이끄는 모습이었다. 4명으로 조촐하게 시작했지만 모든 문화재 자원봉사 단체의 좋은 본보기가 된 지금의 구품연지회를 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