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추모로 더 유명해진 순교자 기념교회
최광희 목사/신학박사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Edinburgh) 중심부에는 1620년에 완공된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Greyfriars Kirk, 스코틀랜드에서는 교회당을 kirk라고 한다)가 있다. 고딕양식과 바로크양식이 어울린 절제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 이 예배당은 종교개혁 이후 에든버러에서 건축된 첫 교회당이다. 특히 1638년에는 바로 이곳에서 스코틀랜드 귀족, 성직자, 일반인들이 함께 “국민언약”(National Covenant)에 서명함으로 장로교 신앙을 수호하고 국가(왕)의 교회 간섭을 배제했다. 이는 스코틀랜드 종교·정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인데 이 “국민언약”을 계기로 “언약도”(Covenanter)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 소속인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는 지금도 매 주일 오전에 주일 예배를 드리며, 오후에는 게일어(아일랜드 켈트계 언어) 예배도 드리고 있다. 이 교회 내부에는 ‘Story of Greyfriars’ 박물관이 있어 교회의 역사적 사건과 관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특히 1638년의 “국민언약” 원본도 전시되어 있다.
이 예배당 뜰에는 1706년에 세워진 순교자 기념비(Martyrs’ Memorial)가 있는데 1661년부터 1680년대까지 신앙 때문에 처형된 18,000여 명의 이름과 Greyfriars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추모 문구가 새겨져 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장로교 역사에 중요한 인물들이 Greyfriars Kirkyard에 묻혀 있다. 그중에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이자 초기 언약도 운동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이며, 언약도의 첫 순교자인 제임스 거쓰리(James Guthrie)가 있다.
이 뜰의 많은 비석 가운데는 얼굴이 새겨진 사람이 있는데 바로 장로교 저항이론의 초안자 조지 뷰캐넌(George Buchanan)이다. 그는 르네상스 인문주의의 대표적 지식인으로 종교개혁 지지자였다. 그는 메리 스튜어트 여왕의 정치적 행보를 비판했고, 그녀의 아들 제임스 6세(잉글랜드 제임스 1세)를 교육한 사람이다.
이들과는 별개로 왕당파 변호사로서 언약도들을 대거 재판에 회부하고 처형시켰던 조지 맥켄지 경(Sir George Mackenzie)도 언약도들과 함께 이 뜰에 묻혀 있음이 아이러니하다. 그 외에도 윌리엄 맥고날(시인), 제임스 허튼(지질학자), 제임스 크레이그(신도시 설계자), 윌리엄 스멜리, 앨런 램지 등 계몽주의 시대 인사들이 여기에 잠들어 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그 유명한 지붕 없는 감옥(Covenanters’ Prison)이 바로 이 Kirtyard 끝자락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1679년 보스웰 브리지 전투(Battle of Bothwell Bridge)에서 패배한 언약도(Covenanter) 1,200명은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옥외 감옥에 갇혔다. 비를 피할 지붕이 없었던 그들은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습기 속에 4개월간 방치되어 상당수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일부는 처형되었고 나머지는 갤리선에 끌려가서 노를 젓다가 배와 함께 수장되었다. (그들이 양심을 지키느라 도망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미화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그레이프라이어스 커크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역사에서 가장 슬픈 장소이며 모든 기독교인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교회는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한 분들을 추모하며 바른 믿음을 다잡는 일보다 다른 사연으로 찾아오는 인파가 더 많다. 그들은 강아지 바비(Bobby)를 추모하는 사람들이다. Greyfriars Bobby로 유명한 그 강아지는 경찰의 야간 경비원이었던 존 그레이(John Gray)의 소유였다. 1858년에 그레이가 죽어 여기에 묻히자, 바비는 14년을 하루 같이 무덤 곁을 지켰는데 결국 바비도 주인의 무덤 근처에 묻혔고 1873년에 바비의 동상이 세워졌다. 1961년과 2005년에 각각 바비를 다룬 영화가 제작되었고 여러 기사가 바비를 소개하면서 이곳은 에든버러 관광의 단골 코스가 되었다. 특히 바비 동상을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속설 때문에 더 많은 단체 추모객이 찾아오고 있다.
바비의 충성심을 되새긴다는 명분은 나쁘지 않지만, 복을 받겠다고 바비 동상이 반짝거리도록 만지는 관광객들은 정말 못 말리는 사람들이다. 참고로, 그레이프라이어스 교회에서 가까운(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데이비드 흄(David Hume)의 동상도 발가락을 만지면 복을 받는다는 속설 때문에 흄의 엄지발가락이 반짝반짝하다. 이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만이 아니라 종교개혁을 완성한 스코틀랜드 사람들도 미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종교개혁 이후 장로교회 정치제도를 완성한 것이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이다.(언약도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문서 작성의 지대한 공로자들이다) 그리고 현재 세계 최대의 장로교회가 한국교회이다. 이를 생각하면 Greyfriars Kirkyard는 우리에게 신앙의 선조들을 기억하기에 적절하고 중요한 장소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곳에 하나님께 충성하여 죽음으로 신앙을 지킨 선조들을 추억하는 사람보다 주인에게 충성하여 매일 무덤을 지킨 강아지 바비를 추모하는 관광객이 더 많다는 사실에 적잖이 씁쓸하다. Greyfriars Kirkyard, 어떤 이에게는 이름도 생소하겠지만, 여기는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충성한 언약도를 기억하기에 알맞은 장소이며, 죽도록(끝까지) 충성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기에 좋은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