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독후감 마이너리그 / 은희경 / 창작과비평사

[평상심]

마이너리그 / 은희경 / 창작과비평사

초판 2001년 4월 10일

성장소설이자 시대소설이다. 58년 개띠 사내들의 이야기이다. 학창시절부터 중년의 남자가 되기까지의 개인의 고뇌를 이야기했다는 것보다는 역사의 흐름에서 그들이 처한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냈는지를 풀이한 소설이다. 요즘 서점가에서 순위에 오르는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과 같은 부류라고 해도 될 것이다. 

백승주

장두환

조국

김형준

이상 만수산 4인방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삶에,

고교 때 해외펜팔부로 활동으로 엮인 여학생 소희와 

여러 동창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58년 개띠는 내 나이의 남자들에게 있어서 동네에 하나둘은 반드시 존재하는 큰 형님이다. 이민 와서 살지만 지금도 주변에서 58년 개띠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이야기가 동창 사이에서 벗어 날 수 없는 것은 남자에게 고교동창이라는 것이 사회에서 힘이 되어주는 3대 주요 관계 중에 2가지(지역, 학연)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더욱이 비슷한 일을 하는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내가 서울에서 막 직장을 잡고 느꼈던 것이 연줄이라는 것의 힘은 이런 것이다. 직장 생활 중에서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놓였을 때 내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서 풀어야 하는 문제, 아이디어를 개진하는 문제, 즉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서 나는 다른 동료들에 비교해서 한 번도 뒤진 기억이 없다. 개인의 능력은 개인이 홀로 보유하고 있는 능력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만수산 4인방은 우연히 하나로 묶였다. 물리 시간에 숙제를 하지 않은 학생을 묻는 말에 함께 모여 앉아있던 4명이 일어났던 것을 계기로 붙여진 별명으로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으로 하는 시조에서 따온 것이다. 시작이 그래서인가 이 소설은 "마이너"의 삶으로 불러도 좋을 4명의 삶에 대한 것이다. 

삶에 메이저가 있고 마이너가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이름을 붙이다 보니 나뉜 것이고 게임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책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연봉 총합이 박찬호 연봉의 70%에 불과하다면 메이저 리그와 마이너 리그는 돈을 기준으로 불 때 구분되어야만 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누군가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세대라고 도장을 찍는다. 가난한 환경에 많은 인간이 한 시대에 태어나서 살아가려고 하니 불가피한 것이라고 확정한다. 과연 그런 것인가. 책끝 부분에 누군가 이런 말을 한다.

239. 동창회에서 어떤 놈이 그러던데 우리가 뭐, 베이비붐 세대라면서?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왔다고 하던데, 그랬나? 그러고 보니 우리는 참 여러가지로 장한 인생이야.

소설 속, 만수산 4인방의 삶은 결단코 그런 세간의 정의와는 관계가 없는 삶이었다. 어느 시대이든지 살기 위해서는 발버둥 쳐야 한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람에게 이마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신은 선언했다. 우리는 땀을 흘릴 뿐 친구들과 경쟁하지 않는다. 도우며 함께 땀을 흘린다. 이상한 틀을 만든 사람들은 주로 땀을 흘리지 않는 사람들의 "어록"이다. 이상하게 마이너리그의 사람들은 "어록"을 진실인 양 받아들였고, 지금도 같다. 

사회가 복잡하면 복잡할수록 그 근본을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 정의해 놓은 "어록"을 나에게 들이댔을 때는 그 타당성을 고민해봐야 한다.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의 진의를 근본으로 돌아가서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다름과 옳고 그름을 생각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슬리자는 것이 아니다.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하는 수많은 소용돌이가 우리 주변에는 많지 않은가!

만수산 4인방의 삶은 평범한 듯하지만 독특하다. 두환이는 일찍이 사랑하는, 4인방 모두에게 첫사랑이었던 소희와 가출해서 별도의 삶을 꾸렸다. 늘 여자들의 조명을 받기를 원했던 승주, 발로 뛰는 조국 그리고 화자인 형준은 우리 시대에 가장 보편적인 사람일 것이다. 형준이 우열반으로 나뉘는 고 3으로 올라가면서 "우"반으로 편성이 되었다. 그가 뱉은 말을 보자.

88. 경쟁이 치열한 우반에서는 남과 다르다는 것이 별로 자랑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까. 작가는 화두로 "환멸"이란 단어를 던져준다. 환멸(幻滅)이란 어떤 일이나 사람에 대해 가졌던 기대나 이상, 꿈 등이 깨어질 때 느끼는 실망감이나 허무감을 일컫는다. 남의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할 때 그 결과는 과연 어떨 것인가. 책의 초반에 나왔는데 마지막쯤 다시 등장했는데 다시 뒤져보니 어디에서 나왔는지 찾을 수 없다.

38. 남의 눈에 보이는 사랑과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위선에 가득차 있는지 너는 모를거야. 요즘 늘 내 머릿 속을 차지하고 있는 단어는 바로 환멸이야.

마이너의 삶이란, 이런 것일터,

241. 말하자면 내가 세월과 함께 닳아가고 있구나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돼. 산에 한번 가봐. 전나무 숲, 대나무 숲,소나무 숲, 이름은 그렇게 붙이지만 어디까지만 그간 전나무 대나무 소나무 입장에서만 본 거지. 사실 숲을 울창하게 만드는 것은 이끼 같은 거, 그리고 드렁칡 같은 하찮은 식물이더라고.

그러나 이런 글귀도 눈에 띈다. 아마도 그 시절 마이너리그의 삶을 살았다고 치부하는 만수산 4인방의 아래에는 리그에도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언제나 밤늦게 새벽에 움직이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마치 밤벌레처럼 취급한 적은 있지 않았나 되물어야 할 때이지 않을까?

229. 새벽바람은 몹시 차가웠다. 내 앞으로 청소차가 한대 와서 멈춰섰다. 짐칸 뒤쪽에 가로로 질러진 벌판을 딛고 서 있던 몇명의 환경미화원이 차에서 내렸다. 무겁고 냄새가 지독한 쓰레기봉투를 힘겹게 청소차에 옮겨싣기 시작했다.  그들이 올라타자 정소차가 다시 출발했다. 그때 내 눈에는 동작이 약간 굽뜬 청소부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는 신참인 것 같았다.선배 청소부들은 발판을 차지하고 나란히 짐칸에 서 있는데, 뒤늦게 올라탄 그는 미처 두 발을 얹을 자리가  남아 있지 않았으므로 간신히 한 발만을 올려놓고 가고 있었다. 마치 뛰어가다가 순간정지한 사진처럼 그의 다른 한쪽 발은 허공을 향해 떠 있었다. 한 발만을 바다에 딛고 서 있는 그의 몸은 청소차가 흔들릴 때마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앞뒤로 비틀거렸다. 주 손으로 손잡으롤 꼭 붙들고 있는 그의 입에서는 유난히 많은 입김이 날렸다. / 청소차가 사라질 때 아주 역한 냄새를 남겼으므로 나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서 토하기 시작했다. 내 손 안에 있던 신문이 땅으로 미끄러졌다. 대통령 당선자의 얼굴로 토사물이 튀어올랐다.

위 문장을 책의 제일 끝에 배치했다면 책은 다른 느낌으로 나의 뇌리에 남았을 것이란 느낌이 들면서.... (2018년 3월 6일 평상심)

[소리와 진동]

안그래도 소위 말하는 58년개띠들이 금년에 환갑을 맞습니다.
이동네도 남자분또 여자분도 계십니다. 그리고 사무실에도 계신데 사무실의 키위는 사실 우리나라 58년 개띠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사람이죠.

58년 개띠들의 삶이 우리나라 현대사라 할 수 있지않을까합니다.
개발 독재 민주화 등등.

이제는 그들의 역사가 애를 덜 낳는 결혼을 덜하는 세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개발국형 세대에서 어찌보면 선진국형 어찌보면 선진국의 못사는 사람들 형 세대로 넘어가는 듯합니다. 아직도 정신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입니다만.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