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월 꾸리아 훈화- 죽음
찬미예수님!
떨어진 낙엽들을 보면서, 자연은 우리에게 한 해를 마무리지어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올해도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네요. 11월은 교회력으로 위령성월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무거운 주제이지만 죽음에 대해서 한번 묵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죽음과 더불어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라면 인간은 참으로 가련하고 불쌍한 존재일 것입니다. 죽음의 비극을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는 없겠지만, 죽음이란 인생의 모든 가치 있는 것들을 부정해 버리는 강력한 허무의 힘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돈, 명에, 권력, 쾌락 등과 같은 지극히 세속적인 가치들뿐 아니라 예술, 사상, 학문과 같은 ‘영원한’ 정신적 가치라 할지라도 인간을 죽음으로부터 보호해 주지는 못합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하지만 죽음 앞에선 예술도 인생도 모두 없는 것으로 되고 맙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명까지도 바칠 수 있다고 믿는 정의와 사랑과 평화를 위한 도덕적 헌신과 투쟁도 종국에 가서는 죽음이 가져다주는 회의와 허무 앞에서는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고 맙니다.
죽음이 우리를 아픔과 슬픔 그리고 허무로 몰아세운다고 하지만 죽음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옛 그리스인들은 인간의 죽음을 다음의 네 가지 범주에서 설명했는지도 모릅니다.
첫째, 누구든지 홀로 죽는다. 같은 죽음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같이 죽으려고 약을 같이 먹어도 홀로 죽는다.
둘째, 대신 죽을 수 없다. 자식의 죽음을 부모가 대신 죽어 줄 수는 없다.
셋째, 언제 죽을지 모른다.
넷째, 반드시 죽는다. 즉 죽음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은 죽음에로의 존재’라고 고백했는지도 모릅니다. 분명 인간은 죽음의 필연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다’(코헬 3,2)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존재는 인간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에 앞서 인간은 죽음이 지금까지 가꾸어 오고 지켜 온 삶의 지속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저항의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누구든지 지금의 삶을 지속하고 싶고 또한 자신이 가꾸어 오고 지켜 온 노력의 결실들을 마음껏 누리고 싶어합니다. 죽기 싫은 것입니다. 더욱이 이렇게 ‘싫은 것에 직면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사실이 또한 두려움을 낳게도 합니다.
그 밖에 죽음 이후의 사실에 대한 어떤 증인도 접할 수 없다는 데서 불안이나 공포는 더욱 커 갑니다. 단지 죽음 뒤에 남는 차고 굳어진 시체와 그것이 한 줌 흙으로 남는다는 ‘주검’의 현상이 어떠한지를 알 뿐 죽은 어떤 것도 죽음 뒤에 삶의 지속이 어떠하리라고 우리에게 증언해 주지는 못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체험이 과중하고 때로는 고통스런 문제들을 야기시키기에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몹시 꺼리며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꺼내려고 하면 즉각 거부 반응을 보이기가 예사입니다. 간혹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게 되더라도 ‘나’는 아닌 타인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죽음의 필연성 앞에서 자신을 감추어 버리거나 도피하게 됩니다.
이러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회피와 함께 착하고 열심한 많은 사람들의 비참한 죽음, 의롭고 정직한 사람들의 불의한 죽음, 그리고 순수한 어린이들의 죽음은 우리에게 삶의 회의마저 안겨 줍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왜?’라는 물음과 함께 인간에게 죽음을 허락한 신(神)을 미워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서는 지혜서에서 이렇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자들의 멸망을 기뻐하시지 않는다. 하느님은 모든 것을 살라고 만드셨으며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원래가 살게 마련이다”(지혜 1,13-14).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죽음의 문제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해답은 그저 위안을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으로 말미암아 이미 패배당한 악을 거슬러 투쟁하라고 호소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죽음이 패배요, 멸망이며, 허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에게는 삶의 완성이요, 새로운 생명에로의 시작이 됩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