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연 시집 {울음, 태우다} 출간
현상연 시인은 경기도 평택에서 출생했고,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계간 {애지}로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가마우지 달빛을 낚다』가 있으며, 현재 ‘시원문학 동인회’와 ‘애지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상연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울음, 태우다}에서는 그의 시가 삶의 기저에 내재한 여러 층위의 대상을 관찰하여 그만의 시적 진실이나 지극한 애착으로 포착해내는 일면을 보여준다. 특히 기억을 바탕으로 하여 이미지를 획득하는 상상력은 현상연 시인에게는 시 쓰기의 즐거움과 시인으로서 역할을 분명하게 하고, 또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자정이 가까운 여수역
무리에서 떨어진 새 한 마리
썰렁한 경계심 틈으로
누군가 건네준 빵
곱씹은 생각으로 꾀죄죄하고
초점 잃은 눈은 핫바 한 개와 우유 한 병에
울음을 터트린다
날기도 전, 떨어지는 법부터 터득한
새의 울음 속 두려움을 먼저 읽는다
잘근잘근 물어뜯는 초조가 기억을 더듬고
바닥을 비벼대는 운동화 끝은
어미 새에 대한 항변일 거라고
수군거리는 역 주변 어둠들
-「버려진 새」 부분
현상연 시인에게 기억은 오래된 서정을 소환하는 형식을 취한다. 그에게 기억은 불편하고 현실사회에 대한 부조리 또는 비정상적인 면들을 자주 들춰낸다. 이런 점에서 그의 기억은 트라우마 같은 형태로 시를 지배하여 그의 기억으로부터 시적 상상력을 여러 통로로 거쳐 배출해내어 왔다. 이 시도 “자정이 가까운 여수역”에서 소외되고 잊혀져가는 “무리에서 떨어진 새 한 마리”의 기억에서 결국은 “초점 잃은 눈, 바닥을 비벼대는 운동화 끝, 적막만 날아다니던 공간” 등의 오래된 기억을 굴착하여 “버려진 새”의 서정을 추동한다. 그에게 오래된 서정은 그 자신의 잠재의식에 내재한 기억이고, 그런 기억 또한 시를 쓰게끔 추동하는 일종의 모티프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어 기억과 서정이 각기 다른 별개의 것이 아닌 현상연 시인에게는 기억과 서정이 하나의 유기체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특이하다.
“버려진 새”에서 화자의 포근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단순히 “울음 속 두려움”을 알게 해주는 “새 한 마리”가 아니라 “우수에 젖은 눈이 기억 저 편을 더듬”으며 타자가 맞닥트려야 할 두려움마저 짚어낸다는 점에서 깊은 동질성을 갖게 해주는 것에 있다. 즉, 화자는 이미 “버려진 새”의 기억 속을 파고 들어가 그의 “썰렁한 경계심”이나 “어미 새에 대한 항변”을 노출 시키는 것보다 시인 자신의 이타적인 친근감을 내세워 “대합실에 내미는 손”의 이미지에서 “버려진 새”를 잘 잡아주는 것으로 획득해낸다. 이러한 예로는 다음의 시 「울음, 태우다」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맨드라미 붉게 타오르던 날
그녀가 불 속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세상이 서늘하였기 때문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길들어진 인내는 잿빛 바람이 되고
해묵은 생의 파편들은 숯이 되었다
문밖을 서성이던 어떤 울음은 불이 되고
까맣게 뚫린 심장 사이로 들락거리던 울음은
토하지 못하는 울음이 되었다
-「울음, 태우다」 부분
시인은 죽음을 바라보는 자세를 울음을 태우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길들어진 인내는 잿빛 바람이 되고/ 해묵은 생의 파편들은 숯이” 된 그녀의 내력에서 온전하지 못한 삶의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그녀가 불 속으로 들어”가고 “잿빛 바람”이나 “숯이” 될 때까지 “문밖을 서성이던 어떤 울음은 불이” 된다. 그리고 “까맣게 뚫린 심장 사이로 들락거리던 울음은/ 토하지 못하는 울음이” 될 만큼 화자에게는 일생에서 지울 수 없는 기억 속의 기억으로 “마지막 유언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울음, 태우다」라는 제목에서 나타나는 상상력과 이미지다. 보통 우리가 시의 제목을 정할 때는 “울음을 태우다”로 하는 게 일반적인데, 현상연 시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울음, 태우다”로 시 제목을 사용하였다. 시인은 왜 그렇게 하였을까?
몇 가지 추론을 해볼 수 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울음과 태우다를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지 않고 오직 대상에 대한 애정과 회한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여 대상에게서 보이지 않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성과 성찰의 계기를 갖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 “울음을 태우다”라는 단순한 표면적인 방식을 선택하여 기억을 울음으로 태워버림으로써 기억이 기억을 소거하는 형태로 존재하게 한다는 것이다.
현상연 시인에게 “화구에 들어간 그녀”는 잿빛 바람 또는 숯이 된 새의 파편들이 부추기는 울음이 아니라 불이 된 울음이었고, “울음을 토하지 못하는 울음”으로 태워도 울음이 멈추지 않는 영원한 시적 대상자로서 여전히 “까맣게 뚫린 심장 사이로 들락거리”고 있다. 이러한 일면의 서정이 나타나는 작품이 참으로 많은데, 그 시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숫돌에 물 먹이며/ 녹슨 기억 벗겨”(「날을 세우다」)보는 장면이나 “제 본분”(「못의 담론」)을 잃지 않고 항상 곧게 펴져 있어야 하는 못의 기능을 지적하거나 “조상의 내력”에서 “파도의 묘지가 된 방파제”(「테트라포드」)를 기억해내기도 한다. 또 “밀착된 낡은 기억, 대기권 밖에서 깜박거리는 행성, 기억의 균열”(「치매」)로 잘 탐색해낸 “치매” 또한 오랜 서정을 소환하는 기억의 한 부류로 작용한다. 이외에도 「폐차」나 「간판」, 「1시와 3시 사이」 등에서도 현대문명의 이기나 정당하지 않은 노동의 환경을 적나라하게 지적하는 작품도 모두 오랜 서정을 추동하며 이미지를 시작품에 잘 적용시켜낸다.
----현상연 시집 울음, 태우다, 도서출판 지혜,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