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화면 / 남호탁
컴퓨터 모니터를 새것으로 교체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는데 막상 바꾸고 나니 진료실이 달라 보였다. 큼지막한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TV밖에 모르던 놈이 대형스크린 앞에 선 것만큼이나 마음이 들뜨기까지 하곤 했다. 물론 오래 가지 않을 얄팍한 감정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튼 교체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엔 그랬다. 환자나 환자의 가족들도 만족해하는 눈치는 마찬가지였다. 번거로이 고개를 쭉 빼고 얼굴을 앞으로 들이밀지 않고도 앉은 자리에서 쉬이 병변을 볼 수 있는 것이기에. 잠깐이긴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보면 뭔가 내 쪽에서도 변화를 줘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압박감 같은 것이 피어오르곤 한다. 해서 나는 묵은땅을 갈아엎는 봄날 농부마냥 모니터의 배경화면부터 갈아치우기로 마음먹었다.
장엄한 풍광을 심자니 다들 고만고만하고, 미끈한 여체를 올리자니 남의 눈치가 보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끙끙대며 한동안 골머리를 앓는 것인데, 불쑥 사내 하나가 내 머릿속으로 소낙비처럼 들이닥쳤다. 그래 맞다, 그라면……! 나는 반색한 얼굴로 눈을 반짝이며 컴퓨터 앞으로 바싹 당겨 앉아서는 부리나케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잠시 후 화면 가득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색 끝. 더 이상의 검색은 시간낭비였다.
회색 추리닝 차림에 검은색 빵떡모자를 눌러쓴 건장한 체격의 사내. 운동을 마친 그의 추리닝에는 땀이 흥건하다. 처진 눈에 일그러진 표정으로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는 그는 미남과는 거리가 멀지만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물론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뭐가 그리 불만인지 잔뜩 우그러진 인상을 하고 녹슨 쇠망치를 두드려대는 듯한 탁한 목소리를 내는 그는 호감은커녕 내게 거부감만 안겨줄 뿐이었다. 한데 어느 날 우연히 엿보게 된 그의 과거는 일순간 그를 가장 아름다운 사내로 뒤바뀌어 놓았다.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로, 그건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그의 삶은 출생부터 비극적이었다. 산도(産道)를 나오면서 신경을 다친 탓에 그의 얼굴근육과 눈은 흉하게 일그러졌고, 입마저 비뚤어져 발음도 엉망이 되고 말았다. 유년시절 역시 암울하기만 했다.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렸고 친구들로부터는 왕따를 당했다. 그렇듯 성장한 청년의 앞길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가 쓴 시나리오의 주인공처럼 혹독한 운명의 펀치를 숱해 맞으면서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다. 결국 그는 나이 서른에 시나리오를 완성해 할리우드라는 엄청난 거인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맹랑하게도 106달러가 전부인 그는 30만 달러에 시나리오를 팔라는 제안을 배짱 좋게 거부하고는 자신을 주연으로 발탁해줄 것을 고집스레 제안한다. 무명인 그를 주연으로 발탁할 감독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했고 결국 주연으로 발탁되는 기적을 일구어낸다. 그러기까지 그는 무려 1885번을 거절당하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수모와 빈정거림, 비웃음 따위는 그가 넘어야 할 숱한 장애물 중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바로 그 청년이 내 바탕화면을 장식하고 있는 ‘실베스터 스탤론’이고, 그가 주연으로 보기 좋게 세상을 향해 한방 먹인 영화가 그 유명한 ‘록키’라는 영화다. 생각해 보면 나는 반반한 얼굴을 한 이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킨 적은 있어도 아름답다는 탄성을 내지르며 넋을 놓은 적은 없다. 반반함, 그건 눈요깃감이거나 호기심이었을망정 아름다움이나 감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데 무슨 연유로 그의 일그러진 얼굴과 처진 눈은 내 가슴속 깊은 곳으로부터 아름다움에 대한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인지…….
바탕화면도 새로이 깔았겠다,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병실로 향했다. 아파 죽겠어요, 똥을 누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회진 차 병실을 들른 나를 향해 환자들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경쟁하듯 고통을 호소하기 바빴다. 평소 같으면 나 역시 얼굴을 찡그렸을 것만 같은데 오늘만큼은 아니다. 늘 아픈 사람만 대하는 직업이 의사이니만큼 안됐다며 나를 향해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이 많은데, 천만에 모르고들 하는 소리다. 고통으로 일그러졌을망정 몸부림치며 고군분투하는 그들의 얼굴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모르기에 내뱉는 경박함에 다름 아니다. 퇴근에 앞서 컴퓨터 전원을 끄자니 왠지 아쉬워 다시금 모니터를 지그시 내려다본다. 우그러진 얼굴, 비뚤어진 입, 처진 눈의 사내 역시 지긋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다시 봐도 아름답다. 그가 컴퓨터가 아닌 세상의 바탕화면이었으면……. 병원을 나서자 산뜻한 봄기운이 와락 내게 안겨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