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 골닷컴 기자. 다양한 축구 소식을 전하는 스토리텔러
[서호정의 킥오프] 정우영의 월드컵 꿈은 흔들리지 않는다2017.12.22 오후 04:38 | 기사원문
국내축구 서호정 現 골닷컴 기자. 다양한 축구 소식을 전하는 스토리텔러
지난 16일 일본 도쿄도 조후시의 아지노모토 스타디움.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이하 동아시안컵) 남자부 최종전에서 한국은 일본을 4-1로 대파하며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 최초로 남자부 2연속 우승의 기록이었다. 최종예선을 통과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던 경기력, 히딩크 감독 부임설 논란, 10월 유럽 원정에서의 2연속 완패로 위기를 맞는 듯 했던 신태용호는 11월 국내 평가전에서의 반전과 한일전 완승으로 마무리한 동아시안컵 우승으로 분위기를 크게 바꿨다. 7년 7개월 만의 승리, 그리고 35년 만의 3골 차 승리로 끝난 78번재 한일전의 하이라이트는 역전골이자 결승골이 된 정우영의 ‘무회전 프리킥’이었다. 한일전을 넘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역사에서 꾸준히 회자될 환상적인 골이 나왔다. 정우영은 자신의 A매치 데뷔골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비중 큰 경기에서 멋진 장면으로 연출했다. 울산 학성고, 경희대를 거친 정우영은 2015년 A대표팀에 선발되기 전까지 축구 팬들이 러시아 월드컵에서 보게 될 주요 선수라는 기대를 받지 못했던 이름이다. 2011년 J리그 교토 상가에 입단해 2015년까지 일본 무대에서 뛰었다. 주빌로 이와타, 비셀 고베를 거친 정우영은 2015년 고베의 주장이 되며 홍명보 이후 처음으로 J리그에서 주장 완장을 찬 한국인이 됐다. 그만큼 기량과 리더십, 통역 없이 일본어로 동료들과 대화할 정도의 적응력이 높이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존재감이 많이 가려진 선수였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선발됐지만 한국영의 부상으로 인해 본선 직전 긴급히 호출된 케이스였다. 실제로 경기 출전은 0-3으로 패한 브라질과의 4강전이 유일했다. J리그에서의 활약상도 큰 비중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2016년부터는 충칭 당다이 리판 소속으로 중국 슈퍼리그에서 뛰고 있다. 팬들이 정우영의 경기를 볼 수 있는 기회는 대표팀에서가 유일하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A매치 22경기에 나설 정도로 대표팀의 신임은 높다. 그를 대표팀에 처음 발탁한 전임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현재의 신태용 감독 모두 정우영의 기량과 필요성을 인정했다. 준수한 수비력과 체격 조건, 전방으로 나가는 긴 패스와 슈팅 능력을 갖춘 대형 미드필더는 기성용을 제외하면 정우영 정도기 때문이다. 감독들의 신뢰는 확실했지만 팬들은 여전히 국가대표 정우영을 의심한다. 대표팀의 확고한 주전이 아닌데다 그나마도 공을 소유하기보다는 상대 선수와 부딪히는 역할이 많은 수비형 미드필더다. 경기가 중계되는 화면으로는 그의 진가를 확인하기 힘들다. 이번 동아시안컵, 그리고 모두의 예상을 깬 골이 정우영을 새롭게 평가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다. 동아시안컵 3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전한 정우영은 기성용이 없는 상황에서 중원의 새 리더가 됐다. 전형과 전술에 따라 선발 명단이 바뀌어도 정우영은 항상 있었다. 무회전 프리킥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궤적만큼이나 신선한 그의 무기였다. 골의 강렬함은 정우영을 향한 시선을 바꿔놨다. 지난 월드컵이 끝나고 대부분이 주목하지 않았던 이 선수는 어떻게 지금 러시아 월드컵에 다가서게 된 걸까? 행운이나 요행으로는 나올 수 없는 완성도 높은 프리킥은 어떻게 구사할 수 있었을까? 바닥에서 차근차근 올라온 정우영의 굳은 심지는 그의 프리킥처럼 흔들리지 않고 러시아 월드컵이라는 꿈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Q. 일본전이 끝나고 닷새 정도가 지났네요. 그 경기를 졌다면 지금 어땠을까요? A. 상상도 하기 싫네요. 밖을 못 돌아다녔겠죠. 일단 진다는 걸 생각하기도 싫어요. 좋은 거 같아요. 자선경기에 참가한 마음도 편했고요. 휴식을 갖는 마음가짐이 상쾌합니다. 겨울이 이렇게 따뜻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예요. Q. 다들 궁금한 게 어떻게 한일전에서 그런 압도적인 내용과 대승을 거둘 수 있었을까 입니다. 경기를 앞두고 사실 밖에서는 불안한 시선이 많았는데, 대표팀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요? A. 조직적인 준비를 어느 때보다 섬세하고 철저하게 했어요. 정확히는 대회 내내 그렇게 해 왔죠. 밖에서 보시기엔 안 좋게 평가하는 경기, 마음에 안 드는 경기가 있었을 겁니다. 저희가 다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준비만큼은 잘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 나름의 자신감과 확신이 있었어요. 중국전에서 승리를 못했지만 좌절할 상황은 아니라고 선수단 내부에서는 마음을 모았어요. 북한전이 가장 어려운 경기가 될 거라 봤죠. 상대가 수비적으로 나오는 경기는 늘 어려워요. 그리고 첫 경기를 비겼기 때문에 북한전에는 무조건 결과를 내야 했어요. 골을 넣기 위한 준비를 나름 했는데 결국 자책골로 이겼지만 마지막 한일전을 결승전으로 만들겠다는 1차 목표는 달성했죠. 한일전을 앞두고는 선수단 내부에 자신감이 감돌았어요. 방심이 아니라 우리가 더 강하고,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는 마음이었죠. 북한전을 마치고 일본이 중국과 경기하는 걸 보면서 더 그런 마음을 가졌어요. 일본은 홈이고, 그들도 한국을 상대로는 맞불을 놓을 테니 그 상황에서는 우리가 제대로 뚫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경기 중에 그들의 약점이 보였어요. 한일전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했지만 질 거란 걱정은 이번 대회에서 가장 적었던 경기였거든요. 준비된 자신감이 그 경기에 100% 나온 것 같아요. Q. 그 섬세한 준비라는 게 선수들 개인의 준비나 마음가짐이 컸나요, 아니면 팀 전체 차원의 준비인가요? A. 저는 신태용 감독님의 영향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대표팀 코치 시절에는 위치가 위치인만큼 본인의 색깔을 다 보여주긴 어려웠죠. 감독이 된 지금은 축구에 대한 자신만의 섬세한 철학과 확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계세요. 전술적으로 우리가 이 경기에 들고 나가는 포메이션에 따른 압박 방법과 시점, 위치, 사이드로 몰았을 때의 수비 형태와 공을 뺏은 뒤의 작전이 무엇인지를 하나하나 다 설명해주세요. 수비수의 움직임과 미드필더의 움직임이 다 철저히 약속이 됩니다. 그 방식은 이해하기 쉬운 수준이고요. 대표팀은 짧게 준비하기 때문에 조직적인 약속이 매우 중요해요. 그 부분이 디테일하면서도 어렵지 않으니까 경기를 치를수록 대표팀이 점점 좋아지는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 준비가 다 결과로 나오진 않아요. 그건 스포츠가 가진 상대성 때문이죠. 비디오도 굉장히 많이 봐요. 전경준, 김남일, 차두리, 김해운 코치님이 모여서 종일 분석을 하고 계신 걸 봤어요. 틈만 나면 그 분석 내용이 저희에게 오니까 선수들도 거기 따라가는 분위기가 된 거죠. 지금 대표팀은 집중력이 높다고 할까? 다들 내용과 결과를 만드는 데 굉장히 집중하고 있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노력하기 때문에 대표팀이 서서히 좋아지는 거라고 봅니다. Q. 한일전에서 2분 만에 실점했을 때, 그런 준비나 좋은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수 있었잖아요? A. 사실 저희는 오프사이드라고 생각했고, 나중에 다시 봐도 오프사이드 같았어요. 그건 둘째 치고 오프사이드이든 아니든 모두 끝까지 붙어야 했었고, 잘 막아야 했죠. 그런데 저는 실점을 했음에도 질 거 같지 않았어요. ‘우리가 따라붙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여전했어요. 동료들하고도 “시간 많으니까 1골만 내면 충분히 뒤집을 수 있다”고 말했고요. 그런 마음을 유지한 게 결국 뒤집는 결과를 낸 것 아닌가 싶어요. Q. 경기 후 일본 선수들 인터뷰를 보니 한국의 전술적 대응이 다양하고 빨랐다고 하더군요. 정우영 선수를 비롯해 김민우, 장현수, 김진현 선수처럼 J리그를 잘 아는 선수들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믹스트존에서 일본 기자들과 유창한 일본어로 인터뷰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A. 일본 대표팀 멤버들은 저희가 정말 다 아는 선수들이고, 다 붙어 본 선수들이죠. 얘기하신 것처럼 J리그에서 오래 뛴 우리 선수들은 일본어가 능통해 그들이 하는 말을 다 알아 듣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일본 친구들은 저희가 하는 대화를 전혀 모르잖아요. 그래서 경기 중에 그들이 외치거나 지시하는 것을 바로 다른 동료들에게도 알려줬어요. 곤노 야스유키 같은 경우는 J리그 경험이 많은 선수들이 일본을 이기기 위해 꼭 봉쇄해야 하는 선수라고 분석했어요. 수비형 미드필더인 곤노가 빌드업의 출발점이 되거든요. 그래서 (김)신욱이 형, (이)근호 형에게 상대 센터백들은 놔둬도 되니까 1차 압박 라인을 중국, 북한전보다는 조금 내려서 곤노부터 괴롭히자고 얘기했어요. 형들도 일본 경기를 보며 그 부분은 파악했겠지만 일본 선수들의 특징과 습관에 대한 정보의 공유가 조금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경기 당일 믹스트존에서 곤노는 “상대 공격수 한명은 반드시 내게 붙었다. 수비가 타이트 해 패스를 뒤로 내릴 수 밖에 없었다. 패스를 앞으로 넣으면 금방 막혀 역습을 당했다”라고 말했다. 곤노는 이번 대표팀에서 A매치 경험이 가장 많은 팀의 중심이었는데 그가 무너지며 한국은 승기를 잡았다.) Q. 국내에서는 이번에 대파한 일본 대표팀을 3군이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승리의 의미를 평가절하 하기도 하는데요? A. 글쎄요. 이번 대회에 나온 일본 대표팀도 개별로 보면 다 좋은 선수들입니다. 쇼지 겐, 쿠라타 슈, 이데구치 요스케, 곤노 야스유키, 도이 쇼마, 고바야시 유, 카나자키 무는 모두 수년간 J리그에서 실적을 낸 탑 레벨의 선수였어요. 대표팀에도 꾸준히 뽑혔었고요. A매치 출전이라는 표면적 수치만으로 그런 식으로 표현될 선수들은 아닙니다. 다만 조직적인 준비에서 차이가 컸던 거 같아요. 저희는 울산에서 조기 소집을 한 뒤 꾸준히 준비를 했고, 마음가짐도 더 절실했던 것 같습니다. 그 차이가 결과를 만들었지 우리는 몇군이고, 상대는 몇군이다라는 평가가 만든 결과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Q. 한일전을 이틀 앞두고는 대표팀이 전면 휴식을 취했죠. 사실 이전의 한일전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조치인데, 선수들이 느끼기엔 어떤 효과가 있었나요? A. 그 하루가 한일전 승리에 미친 영향력이 정말 컸어요. 울산 소집 당시에 대표팀 선수들의 컨디션과 감각이 다 달랐어요. 슈퍼리그가 가장 일찍 끝났고, K리그가 그 다음, J리그는 가장 늦게 끝났죠. 코칭스태프에서는 먼저 소집된 선수들이 휴가 동안 떨어진 몸 상태를 끌어올리게 하기 위해 울산에서 굉장히 강도 높게 훈련을 진행시켰어요. 그렇게 일본으로 들어와서 사흘 사이에 중국, 북한 경기를 치르고 나니 체력적으로 지쳤죠. 코칭스태프에서도 그런 내용을 파악하고 장시간 회의해 내린 결론이 전면 휴식이었어요. 저는 룸메이트인 (이)재성이랑 푹 자고 호텔에서 쉬며 회복에 집중했어요. 마사지를 받거나 개인 운동을 한 선수도 있고, 시내로 나가 바람을 쐬고 온 선수도 있었고. 다들 한일전을 앞두고 육체적,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 있었는데 그 하루 때문에 많이 이완되고 회복이 됐어요. 일본은 그날 훈련을 했지만 결국 경기 당일 더 많이 뛰고 치열하게 부딪힌 건 충분히 휴식을 취한 저희 쪽이었죠. Q. 무회전 프리킥 골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정우영의 재발견을 이끈 골이랄까요? A.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이 세트피스에 대한 준비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밖에서 세트피스 골이 너무 오래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감독님도 여러 루트를 준비하셨고요. 그런데 대부분이 코너킥, 간접 프리킥처럼 짜서 맞추는 거고 직접 프리킥 훈련에 할애한 시간은 적었어요. 이전 대표팀에서는 유럽파들이 주로 프리킥을 찼어요. 저도 성격상 다른 선수한테 양보하는 타입이라 이전에는 나서지 않았고요. 상대적으로 이번에는 기회가 좀 있을 것 같았지만 앞선 2경기에서 프리킥 기회는 1번 나왔죠. 룸메이트인 재성이한테 상대 위험지역에서 프리킥 좀 얻어 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이번에는 내가 한번 차야겠다’고 마음 먹고 있었거든요. 일본전에서 (주)세종이가 프리킥을 얻자 ‘이건 내거다’ 싶었어요. 그런데 각도가 왼발에게도 유리한 지점이라 (김)진수도 차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 각도에서 본인이 여러 차례 성공했다니까. 저는 좀 멀다고 판단해서 제가 차겠다고, 한번 믿어보라고 했어요. 진수가 아쉬워하며 비켜주더라고요. 뒤에서는 감독님이 우리가 준비한 세트피스 작전을 해 보자고 하시는데 그때 판단이 제가 가장 자신 있는 걸 해보고 싶었어요. 차기 전에 근호 형이 와서 직접 때리는 거랑, 준비한 거 시도하는 것 중 뭐가 더 자신 있냐고 하길래 직접 때리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찬 거죠. Q. 본인의 프리킥 리듬이나 루틴대로 이뤄진 슛이었나요? A. 제 프리킥 습관이 완벽하게 이뤄졌어요. 소속팀에서도 많이 시도하지만 굉장히 작은 차이로 어이 없는 실패를 하게 되는 예민한 방법이에요. 힘이 조금만 더 들어가도, 고개를 들거나 몸을 젖히면 공이 무조건 뜨거든요. 연습할 때의 잘 되는 리듬과 스텝이 완벽하게 됐어요. 골대 안으로 찬다는 목적 하나만 있었어요. 무회전 프리킥은 골대 안으로, 골키퍼 근처로만 가도 충분히 위력적인데 골대를 벗어나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골대 안으로만 차자고 했는데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잘됐어요. 공이 발을 떠난 뒤 궤적을 봤는데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됐다 싶었죠. 올 시즌 충칭에서도 이미 2번 성공했고, 프로 와서 따지면 그 프리킥으로 6골을 넣었는데 경기의 중요도로 따지면 당연히 이번이 최고였죠. 비셀 고베 시절 가시마와 경기 때 넣은 프리킥도 기억에 남아요. 그때 팀을 1위로 올려놓았던 골이거든요. Q. 무회전 프리킥을 그 정도로 소화하는 선수가 국내에 많지 않은데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나요? A. 일단 슛의 궤적은 차는 선수도 예상 못했요. 그걸 계산하고 차는 건 호날두 같은 선수나 가능하죠. 핵심은 킥의 높이 조절인데요. 잘 맞추는 건 가능한데 제가 원하지 않는 높이로 솟아서 홈런이 되기도 하고…(웃음) 차는 순간까지 공을 보며 정확한 임팩트에 집중해야 해요. 학창 시절에는 감아 때리는 게 원래 제 프리킥 구질이었거든요. 그러다가 호날두가 무회전 프리킥을 본격적으로 시도할 때 저건 어떻게 구사하는 건지 궁금해서 혼자 연습을 해 봤어요. 독학이었어요. 호날두 프리킥 영상을 봤어요. 임팩트 시점에서의 방법은 완전히 호날두를 따라한 거죠. 계속 해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 지 느낌이 오더라고요. 실제 경기에서 시도하고 넣기 시작한 건 J리그로 온 뒤였어요. 하나 둘 들어가니까 이걸 확실한 내 무기로 만들어야겠다 싶어서 꾸준히 연습하고 있습니다. Q. 일각에서는 호날두 못지 않았다고 찬사를 보냈는데요? A. 그날의 그 프리킥만큼은 저도 스스로에게 칭찬해주고 싶네요. 주변에 있는 선수들도 다 놀란 것 같아요. 아마 아무도 기대를 안 했을 건데…(웃음) 영상을 다시 보니까 제가 찰 때 쇄도하는 선수들이 놀라는 표정이더라고요. 신태용 감독님도 기대를 안 하셨을 건데… 나중에 감독님이 너 그런 것도 할 줄 아냐며 놀란 눈치였어요. 그러더니 앞으로는 자주 맡기겠다고 어깨 두드려 주시고. 프리킥은 계속 실패하면 자신감이 떨어져요. 특히 대표팀 경기에서는 프리킥을 차는 순간의 시선도 많고 기대도 높잖아요. 우즈베키스탄 원정 때도 시도했다가 어이 없게 날리기도 했어요. 자신감이 떨어져서 10월과 11월에는 말도 안 꺼내다가 이번에는 꼭 한번 제대로 차 보겠다고 마음 먹고 기다렸죠. 다시 느꼈어요. ‘프리킥도 내 심리적인 준비가 이렇게 완성을 시키는구나.’ 호날두도 차기 전 자신감을 높이는 자기만의 루틴을 하잖아요. 앞으로는 더 자신 있게 해야 하고, 이번 골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신뢰를 준 것 같아요. Q. 11월부터 대표팀의 경기력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분위기가 달라진 게 변화의 시작이고 그 기저에는 동기부여가 확실히 주어진다는 느낌인데, 대표팀에 속한 선수의 의견은 어떤가요? A. 11월 콜롬비아, 세르비아 소집 때 신태용 감독님이 얘기하신 게 있어요. “여기에 모인 선수들은 자신들이 월드컵에 가야 하고, 갈 수 있는 선수라는 마음을 먹어라.” 감독님이 우리를 뽑은 근거와 이유가 분명하니까 자신이나 주변 상황을 의심하지 말고 월드컵 갈 수 있다고 확신하라는 얘기였어요. 이전 같으면 선수들이 ‘다음엔 안 뽑힐지 모른다, 나는 월드컵에 가기 어려운 선수다’라는 불안감과 포기가 있었어요. 경쟁을 한다는 게 두려웠죠. 하지만 지금은 ‘나도 월드컵에 갈 수 있다’고 믿으니까 더 책임감을 갖고 경기하며 자신 있게 경쟁을 하는 거죠. 그게 경기력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어요. Q. 지금 대표팀이 가장 두려운 건, 팀 내의 경쟁자나 상대 팀, 결정권을 지닌 감독이 아니라 대표팀을 바라보는 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정도로 대표팀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부정적이죠. A. 저희도 기사를 보고, 인터넷을 하니까 알아요. 선수들의 심리 상태와 팀 분위기에 분명 나쁜 작용을 하죠. 그렇다고 저희가 “욕하지 말아주세요, 악플 안 다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할 순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현재 대표팀에 대한 관심의 성질은 분명 그것이죠. 부정적이고, 의심스럽고. 다만 저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바뀔 수 있겠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다시 대표팀을 보고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무관심보다는 낫잖아요. 감사해야죠. 다만 축구와 관계 없는, 사실과 다른 조롱은 그냥 웃고 말죠. 실명제의 필요성을 느낄 때도 있는데…(웃음) 대표팀이란 왕관의 무게 같은 거예요. 열심히 준비했다는 걸 경기장에서 몸으로 증명해야죠. 팬들이 볼 수 없는 영역에서의 노력을 무조건 다 이해해 달라고 하긴 힘든 거 같아요. 좋은 경기를 하면 결국 바뀌더라고요. 국가대표니까요. 선배님들도 그랬고, 아마 후배들도 이런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Q. 사실 2017년의 정우영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중국 슈퍼리그에서 아시아쿼터제가 폐지되며 다른 한국 선수들처럼 소속팀(충칭)에서 5월까지 경기를 제대로 못 뛰었죠. A. 지난 6월에 2년 만에 처음으로 대표팀에 선발이 안 됐어요. 각오는 했어요. 소속팀에서 경기를 못 뛰고 있었고,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마음 속에 월드컵이라는 꿈이 커서 한국이든, 일본이든 이적을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어요. K리그로의 임대 이적도 진행이 됐고요. 그러다가 5월 말에 극적으로 기회가 왔어요. 개막전에 뛴 뒤 9경기 연속 결장했는데 당시에 팀이 3연패를 당했어요. 분위기 전환 차원에서 제가 출전했는데 팀의 경기력이 나아진 거죠. 그때부터 다시 기회를 잡고 경기에 나섰어요. 자신감이 회복됐고, 대표팀에 돌아와서도 한 사람의 몫은 할 수 있을 정도가 됐어요. 요 1년은 반전의 연속이었어요. 큰 파도를 경험했는데 그걸 헤쳐 나오니까 많이 배우고 성장한 거 같아요. 경기에 못 나갈 때는 불만이 쌓이고, 운동도 열심히 안 했어요. 그러면 안 되지만 한동안 경기 못 나가는 게 납득이 안돼 의욕이 바닥까지 추락했어요. 심리 상태부터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고 2군 훈련에 적극적으로 임했어요. 2군 경기에는 감독님이 안 오시는데, 있든 없든 열심히 했죠. 부끄러운 선수가 되기 싫었어요. 동료들에게 정우영이, 또 한국 선수가 안 좋은 이미지로 남는 게 싫어서 마음을 잡고 최선을 다하니까 1군에 복귀하고 경기를 뛸 기회가 오더라고요. 그때 신체적으로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면 다시 기회를 잃었겠죠. 올해는 그 3개월 동안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큰 성장을 한 것 같아요. 축구선수로서 오래 잊지 못할 2017년이 될 거 같아요. Q. 슈퍼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는 ‘중국화’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습니다. 그에 해당하는 선수로서 그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A. 물론 팬들은 납득 못할 부분이 있으실 거예요. 중국에서 뛰는 선수들이 대표팀의 주축으로 뛸 때 경기력이 안 좋은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사실 중국화 논란이 불거졌을 때 대표팀 전체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어요. 상황과 타이밍이 맞아 떨어지며 더 그랬고요. 솔직히 해당 선수들이 부진했던 이유는 다 제각각이라 얘기하고 싶어요. 그 문제를 단순하게 ‘쟤들은 중국에서 뛰기 때문이다’라고 매도하는 건 너무 단순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해요. 제도 때문에, 감독과 팀의 상황 등 여러 이유 때문에 경기를 못 뛰고 감각과 체력이 떨어진 건 팩트였어요. 그 안에도 개인 차는 있었고, 이겨 내기 위해 각자 노력했어요. 대표팀의 무게와 같은 문제 같아요. 선수가 이겨내야 하는 문제죠. 그런데 그게 엄청 부담으로 작용해요. 악순환도 됩니다. 믿고 응원해주시면 더 힘을 받고 이겨낼 수 있을 거 같은데, 무조건 그렇게 해 달라 부탁드릴 수도 없고. 중국화 논란은 지금도 유효한 거 같아요. 아직 사라지지 않은 말이죠. 이번 소집 기준으로 보면 저와 (권)경원이 둘이 해당하는데, 그 말이 사라질 수 있게 계속 노력해야죠. ‘그런 얘기 하지 말아주세요’가 아니라 경기장에서의 플레이로 바꿔보겠습니다. Q. 월드컵이 6개월 남았습니다. 현재 시점에서는 월드컵 본선에 갈 수 있는 자격을 꾸준히 증명하고 있는 선수 중 1명입니다. 2014년에도 현재 위치의 근처에도 오지 못했죠. 브라질 월드컵은 어떤 심정으로 봤나요? A. 비셀 고베로 이적하고 첫 시즌이었어요. 그 직전 시즌에 주빌로 이와타에서 많이 안 좋았죠. 부상도 잦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경기도 못 나온 최악의 시즌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준비가 안 된 선수라서 월드컵은 언감생심이었죠. 물론 올림픽 대표팀 시절 동료들 다수가 월드컵에 가는 걸 보면서 부러웠죠. 저도 선수로서 꿈꾸는 가장 큰 무대 중 하니니까요. 하지만 제가 준비가 안 돼 있으니 자격이 없다는 걸 받아들이고 월드컵을 보며 응원했죠. 당시 결과가 좋지 않고, 여러 논란으로 친한 동료, 선생님들이 힘든 모습을 보면서 월드컵이라는 무대가 더 크고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어요. Q.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 때 어땠나요? 2015년 6월이었죠. A. 그때도 월드컵을 바라 볼 정신은 없었어요. 대표팀에 1번만 들어가서 기회를 잡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어요. 제 자신이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는지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Q. 언제부터 생애 첫 월드컵에 갈 수 있다는 의식이 들기 시작하던가요? A. 자신감을 갖게 된 건 최종예선 마지막 2연전을 거치면서예요. 일단 우리가 월드컵에 갔기 때문에 희망이 생겼잖아요. 그리고 저는 우즈베키스탄 원정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잘 했다고 개인적으로 평가했어요. 그럴 때가 있어요. 팬들은 칭찬하지만 저는 만족 못하는 경기가 있는 반면, 어떤 경기는 팬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만족하는 때가 있어요. 우즈베키스탄전이 그 후자였어요. 팬들께서 많은 질타를 하셨지만 저는 그 경기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100% 하고 나왔다고 자신해요. Q. 사실 그 경기를 현장에서 본 기자들은 3선에서 헌신적으로 뛰어 준 정우영이 숨은 MVP라고 많이들 평가했습니다. A. 언제부터 잘하고, 열심히 해도 제 이름은 부정적으로 거론된다는 걸 알면서 더 겸손해진 거 같아요. 제가 만족해도 밖에서는 ‘정우영 못한다, 왜 저 선수를 대표팀에 뽑냐’고 하니까요. 오히려 칭찬 받기 위한 경기를 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웠어요. 상처 받지 말고, 내가 팀을 위해 해야 할 역할에 집중하자고 마음 먹었죠. Q. 10월 모로코전에 교체 출전한 뒤 보여준 플레이가 그런 마음가짐이 잘 드러난 거 같아요. A. 그 전에 러시아전이 끝나고 감독님이 “우리가 너무 얌전했다. 싸우지 않고 신사적으로 축구를 했다. 상대에게 압박감을 전혀 주지 못하고 편하게 축구를 하게 내버려뒀다”라고 지적하셨어요. 러시아전 비디오를 다시 보는데 압박을 하지 않고 쉽게 상대를 놓치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 부분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어요. 모로코전에 선발 출전을 하지 못했지만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초반에 분위기가 안 좋게 흘러가는 걸 보며 감독님 애기가 떠올랐어요. 상대가 우리를 상대로 너무 쉽게 플레이하고 전진하니까 만일 들어가게 되면 압박감을 주고 강하게 부딪히겠다고. 실제로 투입이 된 뒤 경고 1장 정도는 각오하고 부딪혔어요. 거칠게 하니까 상대 선수가 화도 냈지만 그때는 그걸 감수하고 누군가가 했어야 할 일이었어요. 축구는 11명이 하지만 1-2명이 적극적으로 부딪혀 주고 강하게 하면 나머지 선수들에게도 영향이 가요. 1명이 하면 다른 선수들도 같이 해요. 그런 역할이 제가 할 가장 중요한 몫이 아닌가 싶어요. Q. 그런 역할이 팀에 꼭 필요한데, 사실 프리킥 골 때문에 그 부분이 제대로 평가를 받기 시작하는 거죠.(웃음) A. 그런 걸 느껴요. 다 필요 없고 일단 골을 넣어야 하는구나…(웃음) Q. 월드컵까지는 아직 6개월이 남았습니다. 대표팀에서 점점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지만 아직 월드컵행을 확신할 단계는 아닌데요. A. 러시아로 가기 위한 경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신태용 감독님 스타일상, 그리고 대표팀이라는 곳은 항상 경쟁이 살아 있어야 하는 자리입니다. 제가 가진 것은 월드컵에 대한 희망이고, 가고 싶다는 마음이지 제가 간다는 확신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1월 전지훈련, 3월 평가전도 남았어요.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뭔가를 보여줘야 합니다. 월드컵이라는 무대를 가본 적은 없지만 당연히 얻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Q. 가장 큰 변수는 소속팀에서의 상황이 언제 바뀔 지 모르는 거겠죠? 장외룡 감독님이 떠나고, 아시아쿼터제 부활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A. 휴식을 취하지만 생각이 많은 시기예요. 포르투갈의 파울루 벤투 감독님이 새로 왔어요. 이번 시즌 하반기 기준으로 보면 다음 시즌도 경기를 뛸 가능성이 높지만, 감독 교체는 외국인 선수에게 큰 변수를 부릅니다. 올해 제가 겪은 일이 너무 컸어요. 1년 간 경기를 제대로 못 뛸 수도 있다는 걱정을 하고 있다가 급격히 상황이 바뀐 거죠. 아시아쿼터 폐지와 외국인 선수 제한 이후 슈퍼리그에서 맞고 있는 상황이 너무 살벌해요. 제가 앞에 9경기를 못 뛴 것처럼 제가 출전하기 시작한 뒤에는 다른 외국인 선수 2명이 그 뒤 거의 못 뛰었어요. 앞으로도 상황이 더 안좋아질 거고요.(※22일 슈퍼리그는 기존 아시아쿼터 포함 5명 보유 3명 출전의 외국인 선수 규정을 4명 보유 3명 출전으로 줄인다고 발표했다) 지금 현재 제겐 월드컵에 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됐어요. 그걸 위해서라면 안주할 수 없죠. 늘 스스로에게 물음을 갖고 의심을 해야 할 거 같아요. 월드컵에 가기 위해서라면 지금은 무슨 선택이든 해야죠. 돈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지난 2년 간 제가 받은 보상이 정상이 아니었다는 걸 받아들여야죠. 경기를 뛰기 위한 결정을 해야 할 거 같아요. 글=서호정 사진=대한축구협회, 비셀 고베, 충칭 리판 기사제공 서호정 칼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