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큐의 히메유리(1987, 요나조 노부코), 46.
● 제 IV부 제 9장 오후의 산책
친구 중 한 명이 와타나베 중사가 보낸 편지를 가지고 왔다. 보고 싶으니까 혼자 와달라고 쓰여 있었다. 도대체 어떤 일일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며 특별히 바쁜 일도 없었기 때문에 가 보기로 했다.
나는 운을 타고나서 인지 적의 잦은 공습에 신경이 마비되어서 인지 생명의 소중함에 둔감해져 있었다. 신이 나를 버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과신때문인지, 대낮이지만 미야다이라(宮平)까지 걸어갈 결심을 했다. 미군이 일본군을 이기고 있는 것은 누구의 눈에도 분명했다.
내가 밟고 가는 길은 미국의 폭탄으로 파인 구덩이들이 몇 발자국 간격으로 수킬로미터나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파인 곳 투성이 땅에서 눈을 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파괴의 흔적밖에 없었다.
2~3주 전까지는 고구마 밭이나 사탕 수수 밭이었을 텐데, 그 녹색들의 땅이 검은색이나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 살풍경한 풍경이 "일본은 질 거야?"라고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미야다이라는 너무 조용해서 까치발 걸음으로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
반쯤 부서진 와타나베의 숙소에 도착하자 와타나베는 팔베개를 하고 툇마루에 잠들어 있었다. 어딘가에서 아이의 울음 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어쩌면 그 소리는 실제가 아니라 기분 탓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툇마루에 기대어 와타나베 옆에 섰다.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선 채로 말없이 그가 일어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떴다. "노부코 씨군요" 라며 그는 기뻐하며 얼굴을 붉혔다. "노부코 씨의 꿈을 꾸고 있었어. 눈을 뜨니 당신이 옆에 서 있잖아. 꿈이 현실이 되었어.” 나는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다른 군인들은 모두 벙커에 들어갔나요" 라고 물었다.
매일같이 사람이 죽어갔다. 전선은 바로 눈앞까지 와 있다. 다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전쟁은 언제 끝날까요? 솔직히 우리는 언제 죽을까요? 어차피 죽을 거면 빨리 죽어버리는 게 마음이 편할 텐데..." 라고 나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전선은 가깝다" 라고 와타나베(渡辺)도 혼잣말하듯 말했다. 우리 둘은 잠시 잠자코 있었다. "노부코 씨" 라고 그가 침묵을 깨뜨렸다. "네?" "같이 죽자... 적이 오면" 나는 와타나베의 그 말이 싫었다. 죽는 것이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남자와 함께 죽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이 싫었다.
특히 와타나베와 함께 죽은 모습을 보인다는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도 몰랐고, 특별히 잘 알고 지내는 사이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기 위해 나에게 위험을 감수하게 하면서까지 이토스에서 일부러 오라고 한 것일까. 나는 일어섰다.
"왜 그러냐"고 그가 물었다. "이토스로 돌아가야 해요" 라고 대답했다. 와타나베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가 "적은 가까이에 있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라" 고 나를 저지했다. "하지만 돌아가야 합니다. 적이 마을에 오기 전에 이토스로 돌아가겠습니다" 라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이토스로 돌아갔다.
이토스의 벙커로 돌아가자 마사코(政子)가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마사코는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고 한다. 슈리에서 알게 된 군인과 전쟁이 끝나면 결혼할 사이였던 것 같다. 함포의 포탄 파편을 맞고 즉사했다는 것이었다. 약혼자는 슬퍼하며 그 자리에서 그녀를 묻었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모두가 이미 듣고 있었지만, 마사코의 죽음은 '연애'가 얽혀 있기도 하여 여러가지 뒷말이 많았다. "마사코 씨는 애인의 팔에 안겨 죽었구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름다운 이야기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은 위험을 무릅쓰고 마사코 씨를 만나러 온 거야. 분명 마사코 씨를 진심으로 사랑했을 거야."
"그렇지. 힘들여 땅을 파서 마사코 씨를 묻었다는 거지. 정말 대단하네, 그 군인. 대낮에 땅을 파다니, 적의 총에 맞을지도 모르는데.” “그 군인, 몹시 슬퍼하고 있대. 땅을 판 삽을 손에 든 채 마을을 돌아다니는 모습을 본 사람도 있대요."
마사코의 죽음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친구들은 마사코의 죽음에 너무나 낭만적인 말들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죽음에 부자연스러움과 섬뜩함을 느끼고 있었다. 마사코는 뛰어난 미모는 아니었다. 오른쪽 관자놀이 부분에 동전 크끼의 탈모가 있어 보통 사람보다 못생긴 얼굴이었다.
그 마사코에게 애인이 생겼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약혼자였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전쟁 중이라 어떤 가능성이든 있었지만 마사코의 로맨스에 대한 친구들의 찬사는 나에겐 수긍이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과장해서 슬퍼하거나 감상적인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다.
마사코는 나에게 친절했다. 우리는 사이가 좋은 친구였다. 나는 마사코를 잘 알고 있었던 만큼, 그녀의 죽음은 나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그녀가 함포 파편으로 즉사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마음에 걸렸고 믿을 수 없었다. 나는 마사코가 피를 극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전에 인간의 혈액에 대해 선생님이 설명하고 있을 때 마사코가 빈혈 증상을 일으킨 것을 기억하고 있다. 피를 무서워하는 것은 그녀의 본능적인 체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즉사를 믿을 수 없었다. 허벅지에 받은 약간의 상처로 그녀가 즉사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아마 그녀는 허벅지에서 나오는 피를 보고 빈혈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빈혈로 정신을 잃은 것을 즉사로 착각했을 뿐만 아니라, 슬픔과 놀라움으로 정신을 잃은 약혼자가 그녀를 생매장한 것은 아닐까.
나는 내 생각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마사코를 되살리기에는 너무 늦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땅속에 묻힌 지 벌써 두세 시간이 지났기 때문이다. 친구의 한숨이나 동정의 목소리에 나는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와타나베와의 만남도 재미없는 체험이었다.
나는 벙커를 나와 마을로 향했다. 히가 이장집의 마당에는 다섯 살과 일곱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흰색과 빨간색의 화려한 기모노를 입고 두 아이는 나비가 춤추듯 마당을 뛰어 다니며 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입고 있는 기모노 무늬에 눈길을 멈추었다. 그것은 흰색 바탕에 노란색과 빨간색의 세로 줄무늬였다. 내가 짐속에 넣어 가지고 온 기모노의 모양과 똑같은 것이었다. "어디서 산 기모노야?" 나는 물었다. "엄마가 만들어 줬어요" 라고 동생이 대답하며 자랑스럽게 소매를 펼쳐 보였다.
"엄마는 어디서 그렇게 예쁜 기모노를 찾아왔어?" 라고 거듭 물었다. 모른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짐을 염소 오두막 구석의 짚 속에 숨겨 두었던 나는 염소 오두막에 가서 짐의 소재를 확인했다. 내 짐꾸러미는 짚 속에서 꺼내져 벽에 기대어져 있었고, 그 짐꾸러미는 방석처럼 납작해져 있었다. 짐 안을 조사하니 기모노가 없었다.
나는 마당에서 놀고 있는 천진난만한 여자애들에게 돌아갔다. "-- 좋아요" 라고 나는 말했다. "전시인걸.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써야 해. 왜 그러냐면... 왜 그러냐면...” 두 여자아이는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는 바느질을 잘하나 보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34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