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받아들임 The Deepest Acceptance
-제프 포스터 Jeff Foster 지음
<통증과 고통의 차이>p166~188까지의 내용을 요악함:
“지금 경험하는 것이 틀림없이 통증이야”라는 결론을 놓아버리고,
지금 여기에 실제로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세요. 통증이라는 감각은 실제로는 무엇인 것 같은가요? 그 감각들을 느껴 보세요. 정말로 깊이 느껴 보세요. 그 감각들은 애정 어린 관심을 직접 기울여 보세요. 그 감각들이 어떤 식으로든 바뀌기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그 감각들을 사라지게 하려 애쓰지 않으면서…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만나 보세요. 그 감각들이 어떻게 움직이나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이름 붙여 확신하지 마세요. 아는 척하지 마세요. 언제나 ‘탐험가’가 되세요. 지금 실제로 있는 것과 언제나 친밀해지세요. 그토록 오랫동안 거부당하고 무시당하고 사랑받지 못하고 집을 잃은 이 가여운 작은 물결들에게 사랑의 관심을 주세요. 그러는 동안 그 모든 것이 여기에 있도록 허용되고 있음을 알아차리세요. 그 물결들이 아무리 이상하고 불편해 보여도 참된 당신은 이미 허용했습니다. 감각들은 아무리 극심하게 느껴져도 당신의 적이 아닙니다.
‘통증’이라는 단어-아주 많은 짐을 지고 있는 단어-를 넘어설 때 자기의 현재 경험에서 실체로 직접 발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당신은 통증이라고 불리는 포괄적인, 정지된, 움직이지 않는 덩어리를 결코 발견하지 못합니다. 통증은 당신의 몸 속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증은 언제나 그보다 훨씬 더 살아 있습니다. 당신은 결코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오로지 지금 이 순간 감각, 모습, 감촉, 온도의 춤을 발견하며, 그것들은 말 속에 담길 수가 없습니다. 모든 언어적 묘사를 그만두고, 거기서부터 탐사를 해보세요.
말로 이야기를 지어내려는 짓을 그만두면, 삶은 온통 불가사의입니다. 심지어 통증이라는 경험도 불가사의로 가득합니다. 통증조차도 불가사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통증은 의식으로 자각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험은 ‘나의 몸’이라는 것 안에서 일어난다고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아차리세요.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감각들은 놀랍도록 활발한 춤을, 욱신거리며, 일정한 형태가 없고 경계가 보이지 않는 무리를 발견합니다. ‘몸’이란 참된 당신 안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관념, 이미지, 그림, 생각일 뿐이지 않은가요?
실제로는 감각들이 참된 당신인 공간-알아차림(앎) 자체의 공간-안에서 춤을 출 뿐입니다. 당신은 감각들을 ‘바깥’의 반대인 ‘안’에 있는 것으로 경험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지금 여기에 있고 활발히 살아 있습니다. 그런 감각들이 ‘내 몸 속’에 있다는 것은 그 후에 덧붙인 여분의 생각이 아닌가요? 사실 ‘통증’이라는 꼬리표는 하나의 판단이나 의견일 뿐, 당신과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통증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통증은 소유될 수도 없고, 소유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건에 따라 생성 소멸하는 경험일 뿐입니다. ‘나에게 통증이 있다’, ‘나는 아픈 사람이다’ 라는 진술은 모두 덧붙인 생각일 뿐입니다.
또 ‘통증에서 벗어나고 싶어’, ‘통증의 피해자가 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은 ‘통증이 있는 상태’와 ‘통증이 없는 상태’라는 상반된 두 개의 개념을 만들어 마음 속에 갈등을 일으킨 상태입니다. 그러니 실제 통증의 고통스런 느낌에다가 그것을 받아드리지 못해 감정적으로 저항하고 짜증부리며 빨리 거기에서 벗어나길 욕망하니까 욕구불만, 화가 덤으로 따라옵니다. 통증은 그것이 사라질 만한 조건이 오지 않는 한 지속될 것이기에, 통증이 빨리 사라지길 욕망하는 건 불가능한 바람입니다. 이것은 두 번째 화살을 맞는 것으로 비유되는 심리적 고통입니다.
‘나는 아파도 괜찮아’, ‘나도 아플 수 있지’라는 깊은 받아들임은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 나는 예외야, 나는 항상 건강해야 해, 아프면 안 돼’라는 자만심이나 과도한 자기확신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게 해줍니다. ‘나는 아파도 괜찮아’라고 자신에게 말해주는 즉시, ‘나는 괜찮아’와 ‘나는 괜찮지 않아’를 초월한 우주적인 괜찮음이 됩니다. 실제 현실을 부정하던 습관에서 벗어나 일어나는 그대로를 통째로 받아드리며 자유롭게 반응하게 되면 모든 것을 품어 안는 전적인 괜찮음, 우주적인 괜찮음이 온 몸을 감싸는 전율로 다가옵니다. 이 깊은 받아들임은 통증에 관한, 통증과 우리의 관계에 관한, 통증과 연관된 두려움에 관한 우리의 태도를 혁명적으로 바꿉니다. 극심한 두려움이 있다한 들 ‘두려워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더라도 ‘아픈 사람’은 없습니다. 갑자기 이제 통증은 아무리 아파도 우리의 적이 아닙니다. 통증은 지금 이 순간 참된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며,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줍니다. 통증은 우리 자신에 관한 모든 환상을 파괴하고, 통증에 물들지 않는 참된 자신을 만나게 해줍니다. 통증은 참된 자신 안에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통증이 참된 자신을 파괴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이 깨달음은 궁극적 차원에서 통증을 치유합니다. 삶은 지금 여기에서 이미 완전합니다. 당신은 불완전함 가운데에서도 정확히 있는 그대로 완전합니다. 이것이 존재의 아름다운 궁극의 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