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다채로운 집/ 김필로
문학관을 장식하는
은빛 장대 위에서
그분의 넋처럼 무언가 펄럭입니다
맨 처음엔 무언지 몰랐습니다
해설사의 설명 보다 빠르게
누가 말합니다
시의 깃대라고
'껍데기는 가라' 저분이 저기서
우릴 보고 있다고
시는 낮은 곳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날 빗방울이
대롱거릴 때나
눈 오는 날 눈꽃이
피었을 때는
더욱 신비롭고 재주스런
시가 된다고 합니다
밤새 시를 암송했습니다.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찌니'
그리고 허리를 붙잡고
꿈을 꾸었습니다
알 수도 없는 남자와
알 수도 있는 여자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혼례 치르는 꿈을
그 남자가 저기서 치열하게
시를 쓰고 쓰다가 말았습니다
나는 그 사이를 걸으며
시를 잡으며 어루만집니다
때론 성내며
때론 온유하게
다독이는 시가 살아서
지친 나를 위로합니다
햇볕이 좋은 구석구석
전체가 시입니다
씨를 품고 있는
푸른 박 속에
시의 열쇠가 있지 않을까
가까이 박쪽으로 가다가
은빛 장대에 핀 시의 구절을 다시 올려다봅니다
첫댓글 미성님의 섬세한 은유가
은빛 장대에 걸려 빛이 납니다
씨를 품고 있는 푸른 박 속에
시의 열쇠가 영글어 있을 것입니다
오페라하우스의 공연을 보고 나온 느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