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삼장면에 위치한 장당계곡은 지리산 써레봉 자락에서 발원하여 무재치기 폭포를 거쳐 덕산사 앞에서 내원천과 합수해 대포마을 지나, 삼장천이되고 덕천강으로 흘러든다.
20km가 넘는 긴 계곡으로 마을에선 장데이라 불렀고 초정골 윗쪽에 사지매리고개를 기준으로 안장당과 바깥장당으로 구분지었는데 안쪽은 석남,석하 마을에서, 바깥쪽은 대포리에서 이용했다고 한다.
농경 사회에선 약초나 땔감등과 같이 산이 주는 경제적 이득이 많았기에 마을간에 관리 경계를 두었다.
지금도 경작지가 많이 있고 옛집들은 농막으로 사용하고 있다.
길이가 50여리(약 20㎞)나 되는 긴 골짜기라 폭포가 없이 민밋한 계곡이지만 연중 맑은 물이 흘러 소가 잘 발달되어있고 넓은 계곡에 완곡을 이루며 유유히 흐른다.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곳답게 청정 그 자체이고, 주변의 빼곡한 나무들의 숲은 적막감을 더해준다
그래서 홀로 계곡을 타고 올라갈수록 신비함보다 두려움을 느낄 정도다.
예전에 안쪽에 마을이 있어서 일부는 시멘트 포장길이 남아있고 중간에 태풍으로 유실된곳을 지나면 비포장 길이 장단골보호소(해발667m)까지 이어진다. 예전에 경상대 자연학습림 관사로 사용한곳인데 주차장에서 왕복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계곡을 횡단하는 다리가 많은데 갯수를 세면서 올라가면 지겨움도 덜 할것이다.
장당계곡은 지리산의 광대함과 비극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깊은 골짜기로 인해 피란과 비극의 역사 현장이기도 했다
1862년 산청일대 농민항쟁과 그에 이은 동학혁명에 실패한 사람들이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일제강점기에는 의병의 은신처,
6·25전쟁때는 빨치산의 은거지가 되었다.
많은 애환을 간직한 장데이는 오늘도 말없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가는 길은
덕산사 주차장에서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 계곡을 찾아가면 된다
소막골 주차장 인근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삼장면 분소가 있어서 단체로 들고나기가 상그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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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당(長堂)골은 그 이름처럼 골짜기가 길고 깊다. ‘장당’이란 이름의 유래는 확실하지 않으나 장수가 태어난 집이 있었다고 하여 원래는 ‘將堂’으로 불렸다는 설도 있다. 또 지난날에는 이 골짜기가 큰 가람인 내원사를 비롯하여 암자가 많았던 만큼 불가에서 쓰는 용어인 ‘長燈’이라 불렀는데 그것이 음운변화하여 장당골로 되었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부처 앞에 불을 밝히거나, 밤새도록 등불을 켜두는 것을 장등이라고 한다. 또 대문 밖과 처마 끝에 매달아 놓고 밤새도록 켜는 등을 장명등(長明燈)이라고 한다. 이 골짜기는 아주 길고 깊어 띄엄띄엄 떨어져 있던 집집마다 어둠이 덮이는 밤중에는 장명등을 내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바깥 세상과는 완벽하게 차단된 곳이 이 장당골이다.
장당골은 지리산의 많은 계곡 가운데 아주 독특한 골짜기이다. 장당계곡은 써레봉 남쪽에서 발원하여 대포리의 덕천강(德川江)에 합류하기까지 그 길이가 20여㎞에 이른다. 이 계곡의 상류에는 유명한 무재치기 폭포가 있다.
상단부의 물줄기가 아래 바위에 부딪치며 유별나게 짙고 넓게 퍼져 무지개를 스스로 치는 폭포라고 하여 ‘무지개치기’가 줄어 ‘무재치기’로 불린다는 말도 있다. 치밭목산장 2m 아래 위치한 이 무재치기 폭포는 분명히 장당 계곡에 걸려있는 멋진 폭포이다.
그러나 천왕봉~중봉~써레봉~치밭목을 거쳐 이 폭포를 지나가는 등산객들은 폭포 상하 2백 m 거리에서 한번씩 이 계곡을 건넌 뒤로는 곧장 유평리나 새재 마을로 넘어가 버린다. 반대로 유평리(대원사)나 새재에서 무재치기 폭포를 지나 치밭목~천왕봉으로 오르는 이들도 폭포 아래쪽과 위쪽에서 한 차례씩만 이 계곡을 건너게 된다.
천왕봉~유평리 코스를 지나는 등산객들은 대개 대원사계곡(油坪계곡) 만 생각할 뿐 무재치기 폭포가 걸린 장당계곡은 별로 의식조차 하지 않게 된다. 지리산의 계곡은 어느 곳이든 등산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뱀사골 칠선계곡 피아골 백무~ 한신계곡 모두가 똑같이 그러하다. 그런데 장당계곡만은 유평계곡에서 연결되는 등산로의 통과지점에 그치고 있다.
이것은 무재치기 폭포~유평리 또는 새재마을의 거리가 불과 6km로 가까운 반면에 무재치기 폭포~대포리의 17km가 부담스러운데 따른 것이다.
●등산로 통과지점 그쳐
그러나 장당골은 산행 거리로 따질 수 없는 그나름 대로의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으뜸인 매력은 등산객 행락객의 발길이 뜸하여 언제나 조용한데 있다. 내원사에서 지리산 깊숙히 파고드는 이 계곡은 마치 꽁꽁 숨겨놓은 골짜기처럼 써레봉의 지맥이 길게 감싸고 있다. 그런데 이 골짜기는 거의 평지처럼 10km가량 평탄하게 이어져 있고, 계곡을 끼고 산판도로가 연결돼 있다. 이 도로는 50년대 말 작전용으로 만들어졌으나 현재는 ‘경상대연습림 장당보호소’가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등산로 역할도 하는 내원사~장당 보호소의 도로는 골짜기로 들어가면 갈수록 계곡미가 한층 더 아름답게 열려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데다 경사도 아주 완만하여 ‘산행'이라기보다 ‘도보여행'을 하는 기분을 갖게 된다. 장당계곡을 끼고 10km가량 이어진 이 산판도로 주변이 철따라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세계를 보여주는지는 자주 찾는 사람만이 알고 있는 ‘소중한 비밀' 같은 것이다.
장당골의 산판길은 내원사 주차장 조금 못미친 곳에서 오른쪽 산비탈로 연결돼 있다. 5분가량 비탈길을 올라선 뒤 내원사를 발아래로 내려다보며 산모롱이를 돌아가게 된다. 다시 10분 가량 걸어가면 도로가 계곡을 건너는데 이때부터 짧은 거리에 무려 여덟 차례나 계곡을 건너게 된다. 비가 많이 내렸을 때는 계곡을 건너갈 수 없는데 처음 마주치는 계곡 오른쪽 산허리에서 마지막으로 계곡을 건너간 곳까지 비상루트가 잘 이어져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여덟 번째 마지막으로 계곡을 건너면 대나무밭 사이로 도로가 이어지는데 그 입구에서 왼편으로 지름길인 오솔길이 있다. 계곡 주변에는 묵은 논밭들이 계속 이어져 있어 지난날에는 이 일대에 농가가 많았던 것으로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실제 장당골에는 6. 25동란 전까지 50여 가구의 화전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내원사에서 4km 거슬러오른 도로 옆에 김형수옹 집만이 유일하게 남아있다. 김옹은 깊고 깊은 장당골의 주인 아닌 주인이다.
김옹의 집을 지난 뒤에도 여전히 도로는 완만한 부분 경사를 이루거나 평탄하게 이어진다. 다시 4km가량 더 들어가면 길가에 작은 농막 한 채가 있는데 산죽이나 나무열매 등을 채취할 때만 이용된다.
이 농막을 지나 무성한 숲지대를 통과하면 산판도로가 마지막 계곡을 건넌다. 계곡을 지난 도로는 ‘경상대연습림 장당보호소’가 있는 곳에서 끝나는데 통나무 집 두 채가 따로 서 있다. 하나는 관리동이고 다른 하나는 농막인 듯하다.
장당골에는 경상대연습림이 엄청나게 넓게 자리하고 있어 지리산 자연자원의 경이로운 세계가 이곳에 압축돼 있는 듯하다. 특히 도로가 끝난 곳에서 오솔길을 따라 또한차례 계곡을 건넌 뒤 무재치기 폭포로 이어진 오솔길 주변에는 아름드리 잣나무가 하늘을 가린 채 빼곡히 서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다.
전봇대처럼 서있는 잣나무가 2천2백여 그루라니 그 규모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잣나무는 일제시대에 조성된 큐슈대(九州大)연습림일 때 심은 것인데 경상대연습림은 해방 이후에 인수받은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일찍이 지리산 골짜기를 찾아들어 큐슈대와 교토대(京都大)의 연습림을 조성했던 사실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지리산36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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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지리산 이야기란은 지리꾼들이 모두 가본곳이라 필히 알아야 할지명의 유래와 역사 문화을 알아야할 귀중한 좋은 정보 입니다
울 ㅡ칠성대장 덕분에 유용한 정보 감사해요
<산영>형님이 조언을 해주셔서
좀더 수정해서 보완했습니다
장당골 세밀한 流域圖 예술이네요.
물받아내는 골자기 크기를 비교해
보고 싶어서 그려봤는데
혈관처럼 얽힌 지계곡들이 보이더군요
https://m.blog.naver.com/iammarx/222035903385
명옹대
https://m.blog.daum.net/ajr3308/3864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