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원(渺遠)한 상통
김덕용
자리에 걸맞은 호의(好意) 얻으려거든
마음을 먼저 너그러이 건네 보아요.
내 빗장은 단단히 걸어두고서
여는 이가 없음을 탓으로 돌려
인사가 갈수록 메마르다 손사래 말고
스스로 반추(反芻)해 보아야지 않을까요.
그러해야 할 정나미 휑하다 싶은데
무슨 감흥(感興)이 생겨서 건네겠어요.
의욕으로는 한껏 충만(充滿)이라 하여도
말문 잘라 그런 데요 어떻다고
심심상인(心心相印)이 시원스럽지 못함이라서
물에 뜬 기름처럼 따로 겉도네요.
위아래 분간(分揀)이 엄연하다 해도
순리를 따름은 고하(高下)가 없을 진데
단호함으로 위상(位相)을 내세움은
당장에야 효험이 지극해 보일지라도
시나브로 다가오는 외로움이라
과욕을 비움에서 상통(相通)하는 게지요.
잠시 맡기어 앉는 의자(椅子)와 같은데
영원히 꿰찰 법한 위세로다가
의도대로 따르지 않음을 빌미 삼아
때로는 단정(斷定) 짓기를 즐겨 찾음으로써
임자인 듯이 자처하는 꼴이라니
호흡 맞춤은 공허한 메아리인가요.
보수공사
김덕용
길을 가다 마주하게 되는 시선엔
안전을 생각해 둘러친 가림막 안으로
손발의 움직임이 사뭇 신중하다.
제각기 맡기어진 일거리에 맞추어
가감 조율로 호흡이 제법 맞나 보다.
안팎으로 살피어 흠결을 진단하고
상태에 따라 이리저리 드르륵드르륵
한참이나 쿵쾅쿵쾅 요란이더니
재고 자르고 맞추어 박기로 툭탁툭탁
메우고 때우고 두루두루 점검이다.
하루도 아니고 여러 날에 걸쳐서
조금이라도 하자가 생겨나지 않도록
마무리 지어질 때까지 섬세하게
둘러보고 살펴보고 두드려보고
몸단장한 듯이 깔끔이라 번듯하다.
나도 이네처럼 하면 어떤 모습일까.
병든 오장육부 수술대에 올리거나
이쁘고 예쁘게 뜯어고치는 성형 말고
외관 치장으로 겉멋 부림도 아닌
그냥 그대로 때깔이 고우면 어떨까.
일부러 꾸미지 않아도 마냥 괜찮은
속치레도 애써 드러낼 필요 없는
가만히 있어도 기품이 배어나고
위엄이 저절로 느껴지는 그런 사람
들거나 나기보다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