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봉지(배재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
드니 디드로 (Denis Diderot)는 1713년 프랑스 동부 랑그르의 부르주아 가정에서 태어났다. 처음에는 성직자가 되려고 하였으나 신앙심을 잃고 법률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역시 중도 포기하고 문필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이 때문에 부유한 칼 제조인이던 아버지와 불화하게 된다. 1746년 ≪백과사전≫의 편집을 맡게 된 그는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총 10권의 사전 편집과 출판을 마무리한다. 이 일은 원래 영국에서 출판된 백과사전을 번역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으나, 디드로는 이를 전혀 새로운 백과사전으로 발전시켰으며, 이후 이 사전은 18세기 계몽철학 사상을 집대성한 기념비적 저작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디드로는 단순히 ≪백과사전≫의 편집자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디드로는 사전을 편집하는 틈틈이 문학, 철학, 미술비평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많은 작품을 썼다. 먼저 소설로는 ≪경솔한 보석들(Les Bijoux indiscrets)≫, ≪수녀≫, ≪운명론자 자크(Jacques le fataliste)≫ 등이 있으며, 철학 서적으로는 ≪장님에 관한 편지≫, ≪농아에 관한 편지≫, ≪달랑베르의 꿈≫ 등이 있고, ≪사생아≫, ≪가장(家長)≫ 등의 희곡과 ≪배우에 관한 패러독스≫, ≪사생아에 대한 대담≫ 같은 연극 이론서도 썼다. 또한 ≪라모의 조카≫, ≪부갱빌 여행기 부록≫ 등과 같은 장르가 분명하지 않은 작품들과 수많은 콩트도 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단순히 ≪백과사전≫의 편집자로만 알려졌으며, 작가로서 그의 진면목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의 일이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의 사상이 너무 시대에 앞선 대담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매우 급진적인 유물론을 신봉하였는데, 이 사상은 당시 매우 위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실제로 1749년, 유물론적 사상을 담은 ≪장님에 관한 편지≫가 위험한 책으로 단죄되고, 작가인 디드로는 체포되어 뱅센 감옥에 투옥된다. 겁을 먹은 그는 그 이후 다시 한 번 그런 위험을 무릅쓰느니 차라리 출판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이 때문에 그의 주요 저작들은 대부분 그의 생전에는 출판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정은 ≪수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수녀원 제도를 비판한 이 소설은 1760년부터 집필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소설의 초판이 발간된 것은 작가 사후 12년이 지난 1796년의 일이었다. 그 사이 프랑스 사회에서는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매우 급진적인 변혁이 일어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여전히 큰 스캔들을 일으켰으며, 프랑스의 여러 지역에서 금서 판결을 받았다. 금서 판결의 이유는 주로 두 가지였다. 그 첫째는 ≪수녀≫에 나타난 종교 비판이다. 이 소설은 부모의 강요로 억지로 수녀가 된 쉬잔 시모넹이란 수녀가 크루아마르 후작에게 자신의 과거를 알리고, 도움을 청하는 긴 편지 형식의 글이다. 그녀는 이전에 수녀 서원을 취소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가 패소한 적이 있으며, 그 후 박해를 견디다 못해 급기야는 수녀원 담을 넘어 탈출하였다. 그러나 짧은 생애의 대부분을 수녀원에서 보낸 그녀에게는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종교경찰에 쫓기는 위급한 상황에서, 수녀 서원 취소 소송 당시 그녀의 사건에 호의적인 관심을 보여주었던 마음씨 좋은 늙은 귀족에게 도움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디드로는 이 소설에서 쉬잔의 순진한 눈을 통하여 수도원이란 제도의 비인간성을 우회적으로 공격한다. 그러나 그의 공격은 수녀원 제도에 국한되지 않고 그러한 제도를 용인하는 기독교 자체로까지 확대된다. 그는 쉬잔을 박해하는 수녀들의 잔인하고 일탈된 행동을 수녀들 개개인의 인간적인 허물로 보지 않는다. 디드로에 의하면 그것은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본성에 반하여 감금해 놓을 때 일어나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금을 찬양하고 조장하는 기독교는 반인간적인 종교인 것이다. 이처럼 강력한 반종교적 메시지를 가진 이 소설이 인구의 대부분이 가톨릭 신자인 프랑스에서 쉽게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웠을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소설에는 레즈비언 수녀원장이 등장하고, 또한 그녀의 일탈적 성행위가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이 때문에 이 소설은 선정적인 소설로 분류되기도 하였으며 이것 역시 금서 판결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다. 이러한 검열은 20세기에 이르러서도 계속되었다. 1966년, ≪수녀≫는 자크 리베트에 의해 영화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프랑스 사회에서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킨 끝에 결국 상영금지 처분을 당하고 말았다. 이것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작품이 18, 19세기 프랑스 사회에 던진 충격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수녀가 특히 20세기 문학비평가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러한 내용적 측면보다는 그 형식적 측면 때문이다. 물론 ≪수녀≫의 기본 서술 형식인 서간문 형식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것은 18세기 후반 프랑스 소설, 더 나아가 유럽 소설 장르를 특징짓는 지배적인 형식으로, 디드로가 찬양하여 마지않은 리처드슨의 ≪파멜라≫, ≪클라리사≫를 비롯하여 루소의 ≪신엘로이즈≫,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등 18세기의 주요 소설들은 대부분 서간체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디드로의 ≪수녀≫는 이러한 전통적인 형식을 그대로 답습하지 않는다. 그는 소설 속에 서간체 형식을 벗어나는 여러 가지 기제를 사용하여 감동을 극대화하고 있으며, 또한 현재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메모 형식을 도입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수녀≫는 ‘장르의 경계를 혼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형식적 참신성은 ≪수녀≫뿐만 아니라 그의 저술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기도 하다. 20세기 중반 누보로망의 대두 이래, 디드로의 소설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된 것도 소설 형식에 대한 디드로의 실험적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 드니 디드로의 이름은 더 이상 ≪백과사전≫만을 연상시키지 않는다. 그는 20세기 중반 이후의 재평가를 통하여 당당히 18세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수녀≫ 역시 이러한 재평가에 힘입어 18세기 프랑스의 주요 소설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장르 파괴적 특징은 20세기 후반 대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미학과 연관되어 다시 한 번 재조명을 받고 있다.
≪수녀≫는 1796년, 파리의 뷔송(Buisson) 출판사에서 최초로 발간되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디드로는 뒤늦게야 그 중요성이 인정되었다. 따라서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몽테스키외 등과 같은 18세기 프랑스 계몽철학자들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그의 작품이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들어서 겨우 그의 소설 ≪수녀≫와 ≪운명론자 자크≫가 번역되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만 읽혀졌을 뿐이다. 그러나 2000 년대에 들어 ≪라모의 조카≫, ≪부갱빌 여행기 보유≫ 및 ≪배우에 관한 역설≫ 등과 같은 그의 주요 작품들이 속속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도 이제 디드로의 작품의 독창성과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디드로의 ≪수녀≫는 독자에게 수도원 제도에 대한 판단을 요구한다. 먼저 독자는 편지의 수신인인 크루아마르 후작과 마찬가지로 쉬잔의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 판단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수도원 제도를 단죄해야만 하며, 그것의 폐지를 요구해야 한다. 물론 이 문제는 18세기 프랑스 사회의 특유한 문제일 뿐, 오늘날 쉬잔 시모넹처럼 강요에 의해 억지로 수녀가 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녀≫가 제기한 문제는 관점을 달리하여 재조명될 때 20세기의 독자에게도 현실성을 가질 수 있다. 지구상에는 아직까지도 다른 여러 유형의 강제에 의해 자유를 구속받고 있는 사람이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자유를 위해 항변하는 쉬잔 시모넹의 절규는 그 절박성을 잃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