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암공(휘 영복)의 간찰이다. 다암공은 존재집을 간행하여 세상에 내놓은 이로 알려져 있다. 이 간찰에 나오는 을해년이 1875년이다. 공교롭게도 이 간찰 작성한 시점과 존재집을 간행한 시기가 딱 맞물린다. 이 시기에 다암공은 존재선생 유고를 엮고자 노사 기정진에게 청탁했으나 거절 당한다. 하지만 노사의 송서를 얻어 충청도에 사는 고산 임헌회에게 존재집 교정과 서문을 부탁 의뢰한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완성된 존재집과 서문을 들고 그 해 11월에 방촌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다음작업으로 1875년 11월 그믐에 다산(현 다산재)에다 간소(刊所)를 설치하고 존재집 인출을 준비한다. 그 다음해인 1876년 8월 그믐에서야 비로소 장책(粧冊)을 끝낸다. 목판에다 글자 각을 해서 이를 인출하려면 비용과 공력이 엄청나게 들어갔을 것이다.
<존재집>은 다암 위영복(1832-1884) 이 주도하여 1875년 간행했다. 다암공은
<존재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처음에 남파 이희석(南坡 李僖錫, 1804-1889)을 통하여 노사 기정진(1798-1879)을 찾아가 교정 편집을 부탁했다. 갑술(甲戌)년 즉, 1874년 2월의 일이었고 다암 위영복이 족손 위춘백과 서울을 다녀오는 길 등 네 번에 걸쳐 노사를 찾아갔지만 이루지 못한다. 다만, 노사 기정진은 다암에게 송서(送序)를 지어준다. 이어 1875년 2월에 전의에 살던 고산 임헌회(1811-1876)를 찾아가 부탁하여 성사된다.
이 간찰을 받았던 이는 과연 누구일까? 혹여 장흥부사 송기로가 아닐까. 이 간찰이 인사동에 나온 상황을 추적해보니 송기로는 아니더라도 송씨 집안이었다는 일설이 있다. 여하튼 본 간찰은 존재집 인출작업이 한창이었던 시기와 겹친다. 혹여 존재집 인출작업에 연관된 비화라면 가치성이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필자주)
¤ 원문 :
諺封出給女息焉/ (별도로) 언문(한글) 편지를 봉하니 딸에게 물건을 내주어라
謹拜上書
城下逢別 殆若春夢中 游天台 伏未審
宵來
旅中體候 更若何區區 伏溯之至 其常?
暮間關以還省候 粗安伏幸伏幸 就萬事
百以思之 難可奉敎 此將奈何 一則彼行旣
送半年經營不可猝罷 二則議于家中則
欲一留念其外小小曲折不可盡煩 大抵 此事
若成則人必曰 於我好而於彼則 別無格好之
¤ 번역 :
성 아래에서 만나고 헤어진 후 자못 봄 꿈에 천태산에서 노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추운 겨울) 밤 사이에 객지에서 건강이 재차 어떻하시는지 살피지 못했습니다.
저의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합니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에 모시고 있는 부모님의 안부가 그러저럭 편안하다니 다행스럽습니다.
제가 말씀 드릴 일은 백가지로 생각을 해봐도 이미 가르쳐 준대로 받들기 어렵습니다.
장차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한가지 인즉 이미 반년이 지나고 나서야 계획이 불가하다고 갑자기 그만둔 일이고
두 번째는 집안의 식구들과 논의를 해 본즉
한가지 염두에 둔 것 이외는 그 밖에 사소한 곡절은 번거롭게 다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대체적으로 이일을 말할 것 같으면 이 일은 만약 성사가 된다면 사람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나에게도 좋고 그쪽에도 좋다면 별탈 없이 좋을 것입니다만
註) 천태(天台)
석가산을 가리킨다. 진(晉)나라 손작(孫綽)의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에 “아 기이하게 우뚝 솟은 천태산이여, 신명이 그야말로 붙들어 일으켜 주셨나 봐.[嗟台嶽之所奇挺 寔神明之所扶持]”라는 구절이 나온다. 《文選 卷11》
¤ 원문 :
說而其於時不利力不及何也 如有不鄙寒之
益則待秋 如無他道理 以此俯恕 與彼家善
爲說辭俾無情外之責如何如何 上客合不好
云雖足俗忌不爲一邊欠事也 此難之0再明
以期無啓行之六足玆敢出送幸無多日
之費耶去使無忙云云 回粮似或有不足之
難故以一紙(돈민)仰補仰補餘在去使口遣不備禮 下察
¤ 번역문 :
그때에 이르러서야 이롭지 못하여 힘이 미치지 못하면 어떻게합니까?
만약 저를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면 겨울에 있을 이득 보다는 가을을 기다려보면 어떻겠습니까?
가을 이후로 다른 도리가 없다면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그 집과 더불어 착하게 말을 한들 도리어 뜻밖의 책망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상객으로 갈 사람이 합당하지 않다고 하여도 비록 민간에서 족히 꺼리는 일이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유감스러운 일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어렵다면 모레 기약을 하여서 떠날 무렵에 말과 하인이 없으니 이렇게 감히 내 보내주신다면 다행히 여러 날을 허비하지는 없을 것입니다.
가는 사령은 바쁘지 않다고 하니 돌아올 때 식량은 부족하면 어렵기 때문에 한 꾸러미 돈으로 돕게할 것이며 나머지 말은 가는 사령이 다 할 것입니다.
예를 갖추지 못하니 살펴주십시오
註) 육족(六足)은 말 한 마리와 하인 한 명을 가리키는데, 말의 발은 넷, 하인의 발은 둘, 도합 여섯이므로 이렇게 부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