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혼(招魂)
- 송옥(宋玉)
朕幼淸以廉潔兮(짐유청이렴결혜) : 나는 어려서부터 욕심없고 청렴하고 결백하여
身服義而未沫(신복의이미말) : 몸소 인과 의를 행하여 주저하지 않았도다.
主此盛德兮(주차성덕혜) : 성한 덕성을 생명처럼 여겼으나
牽於俗而蕪穢(견어속이무예) : 세속에 이끌려 짓밟히고 무시당하였도다.
上無所考此盛德兮(상무소고차성덕혜) : 임금이 이런 덕을 돌아보지 않으시니
長離殃而愁苦(장리앙이수고) : 이렇게 화를 만나 시름 오래 겪으신다.
帝告巫陽曰(제고무양왈) : 무양을 불러놓고 천제께서 이르시기를
有人在下(유인재하) : 저 아래 세상에 사람이 있는데
我欲輔之(아욕보지) : 내가 그 사람을 도와야겠구나.
魂魄離散(혼백리산) : 혼백이 떨어져 흩어지려한다
汝筮予之(여서여지) : 있는 곳을 점쳐보아 돌아오게 하여라.
巫陽對曰(무양대왈) : 무양이 듣고서 천제께 아뢰기를
掌夢上帝(장몽상제) : 꿈을 맡은 이는 상제이어니
其命難從(기명난종) : 아무래도 그 명은 따르기 어려우리라
若必筮予之(약필서여지) : 만일 점을 쳐서 돌아오게 한다 해도
恐後之謝(공후지사) : 세월이 흐른 뒤라 때가 이미 늦으리라 두려워
不能復用巫陽焉(불능복용무양언) : 무양 점을 다시 쓸 수가 없도다.
乃下招曰( 내하초왈) : 이에 하계에 내려와서 혼을 부르며 말하기를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어서 돌아오라
去君之恒幹(거군지항간) : 그대는 육신을 미련 없이 버리고
何爲四方些(하위사방사) : 무엇 때문에 사방을 떠돌며
舍君之樂處(사군지락처) : 그대 살기 좋은 즐거운 곳을 두고
而離彼不祥些(이리피불상사) : 도적이 들끓는 그런 곳을 달리는가.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어서 돌아오라
東方不可以託些(동방불가이탁사) : 동방은 그대가 위탁할 수 없는 곳
長人千仞(장인천인) : 키가 천 길인 장인국 사람
惟魂是索些(유혼시색사) : 오직 사람의 혼만을 찾아 먹는데
十日代出(십일대출) : 열개의 태양이 번갈아 나와
流金鑠石些(류금삭석사) : 무쇠도 흘리고 돌도 녹인다는데
彼皆習之(피개습지) : 그들은 무두가 몸에 익어 탈 없지만
魂往必釋些(혼왕필석사) : 다른 곳에서 혼이 가면 꼭 녹아버리거니
歸來歸來(귀래귀래) : 혼이여 돌아오라 어서 빨리 돌아오시라
不可以託些(불가이탁사) : 그 곳에는 아무래도 의탁할 곳이 못되느니라.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돌아오라
南方不可以止些(남방불가이지사) : 남방에는 잠시도 머물 수 없는 곳
調題黑齒(조제흑치) : 이마에 그림 새겨 이를 검게 물들이고
得人肉以祀(득인육이사) : 사람 잡아 살코기로 제사 지내고
以其骨爲醢些(이기골위해사) : 사람 뼈는 추려서 젖담아 먹는단다.
蝮蛇蓁蓁(복사진진) : 큰 독사 살무사가 사방에 득실대고
封狐千里些(봉호천리사) : 커다란 여우는 천리를 뛰어 달리고
雄虺九首(웅훼구수) : 대가리가 아홉인 흉측한 이무기
往來儵忽(왕래숙홀) :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번개처럼 오간다.
呑人以益其心些(탄인이익기심사) : 사람을 집어삼켜 주린 배 채우니
歸來歸來(귀래귀래) : 돌아오시라, 돌아오시라
不可以久淫些(불가이구음사) : 그 곳은 더 오래 노닐 수 없느니라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돌아오시라
西方之害(서방지해) : 서방도 마찬가지 사람을 해치니
流沙千里些(류사천리사) : 모래가 흘러가는 천리 사막길
旋入雷淵(선입뢰연) : 이 곳을 빙 둘러 뇌연에 들어가면
爢散而不可止些(미산이불가지사) : 육신이 부서져 쉴 수가 없는 곳이라
幸而得脫(행이득탈) : 다행히도 몸을 피해 그 곳을 벗어나도
其外曠宇些(기외광우사) : 그 밖은 또다시 아득한 벌판이라
赤螘若象(적의약상) : 코끼리 크기만한 붉은 왕개미에
玄蜂若壺些(현봉약호사) : 표주박만큼 시커먼 벌이 있어
五穀不生(오곡불생) : 오곡은 독기로 돋아나질 못한다.
藂菅是食些(총관시식사) : 먹을 것이라고는 떨기나 왕골이로다.
其土爛人(기토난인) : 그 땅은 사람의 살을 익히고
求水無所得些(구수무소득사) : 물 한 모금 마시려 해도 얻을 수가 없도다.
彷徉無所倚(방양무소의) : 아무리 헤메어도 의지할 곳이 없고
廣大無所極些(광대무소극사) : 너무도 크고 널리 끝이 없도다.
歸來歸來(귀래귀래) : 돌아오시라, 돌아오시라
恐自遺賊些(공자유적사) : 그곳에 오래 머물면 스스로 해침을 남기리라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돌아오시라
北方不可以止些(북방불가이지사) : 북방도 발붙일 수 없는 곳이라
增氷峨峨(증빙아아) : 산더미 같이 얼음 첩첩 쌓여있고
飛雪千里些(비설천리사) : 찬 눈비 천리를 펄펄 날린다.
歸來歸來(귀래귀래) : 돌아오시라, 돌아오시라
不可以久些(불가이구사) : 그곳도 있을 수가 없느니라.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돌아오시라
君無上天些(군무상천사) : 그대는 하늘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라
虎豹九關(호표구관) : 호랑이 표범이 천문을 지키는데
啄害下人些(탁해하인사) : 올라오는 사람마다 물어뜯어 죽인다 한다
一夫九首(일부구수) : 대가리가 아홉인 힘센 사나이
拔木九千些(발목구천사) : 종일 두고 큰 나무 구천수를 뽑아내고
豺狼從目(시랑종목) : 늑대와 이리가 눈을 곤두세우고서
往來侁侁些(왕래신신사) : 한숨에 삼킬 듯 떼를 지어 오가며
懸人以娭(현인이애) : 사람을 매달고 좋다고 날뛰다가
投之深淵些(투지심연사) : 깊은 연못에 던져 버리고는
致命於帝(치명어제) : 천제께 이 사실을 아뢴 뒤에야
然後得暝些(연후득명사) : 편안히 누워 잠잘 수가 있도다.
歸來歸來(귀래귀래) : 돌아오시라, 돌아오시라
往恐危身些(왕공위신사) : 그곳을 가는 날에는 그 몰이 위태해지리라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돌아오시라
君無下此幽都些(군무하차유도사) : 그대는 지하에도 내려 갈 수 없는 몸이라
土伯九約(토백구약) : 지하는 수문장은 아홉구비 굽은 몸
其角觺觺些(기각의의사) : 사람을 해치는 뾰족한 뿔이 있고
敦咴血拇(돈회혈무) : 두툼한 등발에 빨간 엄지손가락이라
逐人駓駓些(축인비비사) : 사람을 휘몰아 번개처럼 날뛰고
參目虎首(삼목호수) : 호랑이 대가리에 세 개의 눈을 박은
其身若牛些(기신약우사) : 몸뚱이는 소같은 괴상한 것들이
此皆甘人(차개감인) : 사람의 고기를 모두 달게 먹는다.
歸來歸來(귀래귀래) : 돌아오시라, 돌아오시라
恐自遺災些(귀래공자유재사) : 그곳에서 어정거리면 잡아먹히고 말리라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돌아오시라
入修門些(입수문사) : 영도의 성문으로 들어오시라
工祝招君(공축초군) : 공축이 그대 소리 높이 부르며
背行先些(배행선사) : 그대의 앞을 서서 인도해 주신다.
秦篝齊縷(진구제루) : 진나라 채롱에 제나라 비단실
鄭綿絡些(정면락사) : 정나라에서 만든 채롱 꾸밀 망사
招具該備(초구해비) : 혼백을 부를 차비를 다 갖추어 놓고서
永嘯呼些(영소호사) : 휘파람 길게 불며 큰 소리로 부르니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시여, 돌아오시라
反故居些(반고거사) : 그대 살던 옛집으로 급히 돌아오시라
天地四方(천지사방) : 천지와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多賊姦些(다적간사) : 사람을 해치는 간악한 것 뿐이로다
像設君室(상설군실) : 그대 방에는 모시어 둔 그대의 초상
靜閒安些(정한안사) : 고요히 말없이 편히 쉬고 있도다
高堂邃宇(고당수우) : 높은 집, 깊숙한 방
檻層軒些(함층헌사) : 가로지른 난간 위에 둘러친 널조각이라
層臺累榭(층대루사) : 층층이 쌓아 올린 우뚝 선 정자
臨高山些(임고산사) : 높은 산마루에서 아래를 굽어보면
網戶朱綴(망호주철) : 주색으로 꾸며진 그물 같은 문짝에
刻方連些(각방연사) : 곱게 새긴 모서리를 서로 이어 붙였도다.
冬有穾廈(동유요하) : 겨울에는 추위 막을 아늑한 온실
夏室寒些(하실한사) : 여름에는 더위 막을 서늘한 냉방
川谷徑復(천곡경복) : 냇물 계곡물을 정원으로 흘러 들여
流潺湲些(류잔원사) : 돌아가는 급한 물이 맑고도 깨끗하도다.
光風轉蕙(광풍전혜) : 비 개인 맑은 바람 혜초를 불어주고
氾崇蘭些(범숭란사) : 향기로운 난초들 한들한들 흔들린다
經堂入奧(경당입오) : 당을 지나 서남쪽 모퉁이에 들어
朱塵筵些(주진연사) : 붉은 막 대자리에서 즐겁게 함께 쉬도다.
砥室翠翹(지실취교) : 매끈한 돌 집에 물총새 긴 꼬리
桂曲瓊些(계곡경사) : 옥으로 다듬은 옥갈고리에 걸어놓고
翡翠珠被(비취주피) : 비취 깃 수를 놓고 진주 입힌 도포
爛齊光些(란제광사) : 한꺼번에 빛을 뿜어 눈부시게 빛난다.
蒻阿拂壁(약아불벽) : 부들자리 풀어서 침대 가에 둘러치고
羅幬張些(나주장사) : 아롱진 비단휘장 벽모서리를 드리우고
纂組綺縞(찬조기호) : 가는 실로 엮어 짠 비단 끈을 매고
結琦璜些(결기황사) : 주렁주렁 옥구슬로 휘장을 꾸몄도다.
室中之觀(실중지관) : 방안을 한바퀴 빙 둘러보니
多珍怪些(다진괴사) : 갖가지 보배와 괴상한 것이 많도다.
蘭膏明燭(란고명촉) : 난초향 기름불이 유난히 밝은데
華容備些(화용비사) : 숱하게 모여 선 아름다운 여악들
二八侍宿(이팔시숙) : 여덟씩 양편에 줄지어 세워두고
射遞代些(사체대사) : 싫증이 나는 대로 번갈아 즐기도다.
九侯淑女(구후숙녀) : 구국 제후들의 어여쁜 딸들이
多迅衆些(다신중사) : 날듯 몰려와서 득실거리는데
盛鬋不同制(성전불동제) : 살쩍도 여러 모양 제각기 꾸미고서
實滿宮些(실만궁사) : 방안을 가득 채워 버렸도다.
容態好比(용태호비) : 아름다운 얼굴에 귀여운 모습들
順彌代些(순미대사) : 고분고분 사이좋게 차례를 바꾸니
弱顔固植(약안고식) : 부드러운 얼굴에 단단한 마음 바탕
謇其有意些(건기유의사) : 아, 진중하고 예의도 바르도다.
姱容修態(과용수태) : 어여쁜 예쁜 모습에 날씬한 몸매
絙洞房些(환동방사) : 조용한 방에 가득하도다.
蛾眉曼睩(아미만록) : 나방 같은 눈썹에 곱게 뜬 실눈
目騰光些(목등광사) : 사람을 반하도록 반짝거린다.
靡顔膩理(미안니리) : 팽팽한 얼굴에 흐르듯 고운 살결
遺視眄些(유시면사) : 아득히 훔쳐보는 까만 눈동자
離榭修幕(이사수막) : 저만큼 떨어진 정자나 휘장 속에
侍君之閒些(시군지한사) : 기다렸다가 그대를 번갈아 모신다.
翡帷翠帳(비유취장) : 붉고 푸른 물총새 고운 깃으로
飾高堂些(식고당사) : 덩그렇게 높은 당에 휘장을 꾸미고
紅壁沙版(홍벽사판) : 붉고 흰 벽칠에 단사로 그린 난간
玄玉梁些(현옥양사) : 대들보는 유별난 흑 옥으로 꾸몄도다.
仰觀刻桷(앙관각각) : 고개 들어 서까래를 쳐다보니
畫龍蛇些(화룡사사) : 용 그림, 뱀 그림 문채어려 눈부시고
坐堂伏檻(좌당복함) : 당 위에 올라앉아 난간에 엎드리니
臨曲池些(임곡지사) : 굽이쳐 흐르는 연못이 보이도다.
芙蓉始發(부용시발) : 못 속에는 몽실몽실 연꽃이 피어나
雜芰荷些(잡기하사) : 마름과 한데 얼려 곱게 떠있고
紫莖屛風(자경병풍) : 보랏빛 줄거리의 물풀이 한들거리니
文緣波些(문연파사) : 잔물결 이는 대로 문채를 이루는구나.
文異豹飾(문이표식) : 호랑이 표범가죽 색다른 옷차림
侍陂陁些(시피타사) : 시종들이 줄지어 섬돌 아래 모셨도다
軒輬旣低(헌량기저) : 덮개를 내려놓고 기다리는 침대차
步騎羅些(보기라사) : 걷는 이들과 말 탄 이들이 숱하게 줄지어있다
蘭薄戶樹(난박호수) : 문 앞에는 빽빽이 난초를 심어놓고
瓊木籬些(경목리사) : 옥수를 둘러 심어 울타리를 해놓았다
魂兮歸來(혼혜귀래) : 혼이여, 돌아오시라.
何遠爲些(하원위사) : 어째서 그렇게 먼 곳으로 가야 했던가.
室家遂宗(실가수종) : 돌아오면 일가들이 그대를 우러러
食多方些(식다방사) : 갖은 솜씨 내어서 음식을 차리리라
稻粢穱麥(도자착맥) : 찰벼, 메기장에 익은 보리 먼저 거두어서
挐黃梁些(나황량사) : 메조와 함께 섞어 구수하게 밥을 짓고
大苦醎酸(대고함산) : 장국에는 산초 생강 짜고 신것
辛甘行些(신감행사) : 맵고 단 것 모두 맛내리라
肥牛之腱(비우지건) : 살찐 소, 맛좋은 심줄 살을 끊어다가
臑若芳些(노약방사) : 보글보글 끓이는 향기로운 냄새
和酸若苦(화산약고) : 신맛, 쓴 맛 주물러 맛있게 하여
陳吳羹些(진오갱사) : 솜씨 좋은 오나라 국을 진열해 내었도다.
聏鼈炮羔(이별포고) : 자라는 지지고 염소 새끼는 싸서 굽고
有柘漿些(유자장사) : 사탕수수 즙을 내어 마시는 것으로 두었다
鵠酸臇鳧(곡산전부) : 초자로 고니와 물오리 국 끓이고
煎鴻鶬些(전홍창사) : 기러기와 왜가리는 기름으로 튀긴다.
露鷄臛蠵(로계확휴) : 큰 자라와 들 닭은 곰국을 하니
厲而不爽些(려이불상사) : 칼칼한 맛, 감칠맛이 입에 슬슬 녹는구나.
粔籹蜜餌(거여밀이) : 동그란 중배끼와 달콤한 꿀떡
有餦餭些(유장황사) : 말린 기장 엿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瑤漿蜜勺(요장밀작) : 옥색 맑은 술에 술 떠는 구기 들고서
實羽觴些(실우상사) : 새깃모양 술잔을 남실남실 채운다
挫糟凍飮(좌조동음) : 찌꺼기는 버리고 맛좋은 청주 떠서
酌淸涼些(작청량사) : 얼음 위에 채워둔 서늘한 맑은 술이로다
華酌旣陳(화작기진) : 찰랑찰랑 넘치는 술통을 벌려 놓고
有瓊漿些(유경장사) : 옥색 맑은 술을 마음대로 마시거니
歸來反故室(귀래반고실) : 돌아오시라, 옛 살던 집으로
敬而無妨些(경이무방사) : 모두가 공경해서 길이 화가 없으리라
肴羞未通(효수미통) : 안주 고루 차려놓고 주연이 한창인데
女樂羅些(녀낙나사) : 단아래 벌려 선 여악의 주악소리
敶鐘按鼓(진종안고) : 쇠북을 차려놓고 북을 둥둥 울리며
造新歌些(조신가사) : 새로 지은 노랫가락
涉江采菱發揚荷些(섭강채능발양하사) : 섭강으로 들어가 채릉과 양하 세 가락을 뽑는다.
美人旣醉(미인기취) : 미녀들 벌써부터 얼큰히 취해서
朱顔酡些(주안타사) : 어여쁜 그 얼굴에 빨갛게 꽃이 피었다
娭光眇視(애광묘시) : 즐거운 빛을 띠고 아득히 흘겨보는
目曾波些(목증파사) : 물결 같은 그 눈빛 추파를 보내준다
被文服纖(피문복섬) : 문채나는 비단옷 고운 차림
麗而不奇些(려이부기사) : 아름답고도 희한한 모습이도다
長髮曼鬋(장발만전) : 치렁치렁 긴 머리 어여쁜 살쩍
豔陸離些(염륙리사) : 반지르르 윤기 흘러 눈부심에 빛난다.
二八齊容(이팔제용) : 여덟씩 두 줄로 벌려 선 무희들
起鄭舞些(기정무사) : 일제히 일어서서 정나라 춤을 춘다.
衽若交竿(임야교간) : 낚싯대 엇갈리듯 치마를 돌리더니
撫案下些(무안하사) : 옷자락 손에 잡고 천천히 내려온다.
竽瑟狂會(우슬광회) : 생황과 비차 세차게 한창 어렸는데
搷鳴鼓些(전명고사) : 숨 막히게 몰아치는 북소리로다
宮庭震驚(궁정진경) : 찌렁찌렁 흔들리어 궁전 뜰이 놀라고
發激楚些(발격초사) : 이윽고 맑은 소리 격초를 뽑는다.
吳歈蔡謳(오유채구) : 한소리 어울리는 오와 채의 민요
奏大呂些(주대려사) : 대려의 화한소리 뒤따라 나선다.
士女雜坐(사녀잡좌) : 춤추고 노래하던 숱한 남녀들
亂而不分些(난이부분사) : 어지러이 섞여 앉아 분별을 잃고
放敶組纓(방진조영) : 인끈 갓끈 풀어 던지고
班其相紛些(반기상분사) : 너와 나 차별 없이 엉클어져 노는구나.
鄭衛妖玩(정위요완) : 정나라와 위나라의 사랑스런 미녀들
來雜陳些(내잡진사) : 모두가 여기 와서 뒤섞여 앉았는데
激楚之結(격초지결) : 격초를 노래하던 쪽진 미녀가
獨秀先些(독수선사) : 유독 아름다워 맨 먼저 눈에 뛴다.
菎蔽象棋(곤폐상기) : 살대와 주사위 그리고 상아 장기
有六簙些(유륙박사) : 육박 등 놀음 기구 죽 펼쳐놓고
分曹並進(분조병진) : 두 사람이 마주섰다 한꺼번에 나아가
遒相迫些(주상박사) : 서로들 상대편을 숨 막히게 몰다가
成梟而牟(성효이모) : 효를 얻어 이기고도 갑절을 이기겠다.
呼五白些(호오백사) : 오백을 외치며 주사위를 던진다.
晉制犀比(진제서비) : 진나라에서 만든 물 소뿔 놀이 기구
費白日些(비백일사) : 주사위 놀이로 한낮을 보내며
鏗鍾搖虡(갱종요거) : 북틀이 놀도록 쇠북을 땅땅 치고
揳梓瑟些(설재슬사) : 노나무 비파줄을 퉁기어 울린다.
娛酒不廢(오주부폐) : 술을 즐겨 끝없이 권하거니 잡거니
沈日夜些(심일야사) : 밤낮을 술에 묻혀 즐겁게 논다
蘭膏明燭(난고명촉) : 난초향 환한 기름불 밝혀놓고
華鐙錯些(화등착사) : 아름답게 장식한 촛대 위에 놓고
結撰至思(결찬지사) : 마음 속 깊은 정을 서로 엮어 읊조리니
蘭芳假些(난방가사) : 향기로운 그 마음 꽃다운 난초로다
人有所極(인유소극) : 사람들이 다 같이 진정을 풀어놓고
同心賦些(동심부사) : 같은 마음으로 시를 외우면서
酎飮盡歡(주음진환) : 마시고 또 마시고 끝없이 기뻐함은
樂先故些(낙선고사) : 선조와 옛 벗을 즐겁게 하여서라
魂兮歸來(혼혜귀내) : 혼이여, 돌아오시라
反故居些(반고거사) : 그대의 옛집으로 돌아오시라
亂曰(난왈) : 난에 말하기를
獻歲發春兮汨吾南征(헌세발춘혜골오남정) : 지난 해 초봄 강남으로 쫓겨 갈 때
菉蘋齊葉兮白芷生(녹빈제섭혜백지생) : 녹두잎 마름 잎에 구리떼가 돋았는데
路貫廬江兮左長薄(노관려강혜좌장박) : 여강의 길을 뚫고 장박을 외로 지나
倚沼畦瀛兮遙望博(의소휴영혜요망박) : 연못에 이 몸 서서 허허 벌판 바라보았다
靑驪結駟兮齊千乘(청려결사혜제천승) : 푸른 말 가라말 사마 천승 줄따르고
懸火延起兮玄顔烝(현화연기혜현안증) : 곳곳에 켜 든 불길 하늘을 찌르는데
步及驟處兮誘騁先(보급취처혜유빙선) : 걷는 이 앞서 달려 사냥군을 인도하며
抑騖若通兮引車右還(억무야통혜인거우환) : 서서히 수레끌어 우편으로 돌아간다
與王趨夢兮課後先(여왕추몽혜과후선) : 왕과 함께 몽중에서 앞뒤의 일을 분담할 때
君王親發兮憚靑兕(군왕친발혜탄청시) : 왕이 친히 살을 놓아 푸른 들소 놀랐도다
朱明承夜兮時不可以淹(주명승야혜시부가이엄) : 밤낮이 이어져 세월 매어두지 못하는데
皐蘭被徑兮斯路漸(고난피경혜사노점) : 연못가에 난초 뻗어 길을 덮다 사라지리라
湛湛江水兮上有楓(담담강수혜상유풍) : 넘실대는 강물 위에 백양이 너풀거리고
目極千里兮傷春心(목극천리혜상춘심) : 천리 밖을 둘러보며 애끓는 봄 마음
魂兮歸來哀江南(혼혜귀내애강남) : 혼이여, 돌아오시라 강남 땅은 슬퍼도다.
구변9(九辯9)-송옥(宋玉)
堯舜皆有所擧任兮(요순개유소거임혜) : 요는 순에 순은 우에 천하를 맡겨서
故高枕而自適(고고침이자적) :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즐기셨도다.
諒無怨於天下兮(량무원어천하혜) : 진정 온 천하에 원망이 전혀 없었으니
心焉取此怵惕(심언취차출척) : 어찌 그 마음에 두려움이 있었을까
乘騏驥之瀏瀏兮(승기기지류류혜) : 천리마 높이 타고 거침없이 달리는데
馭安用夫强策(어안용부강책) : 채찍이 무엇에 소용이 있었을까.
諒城郭之不足恃兮(량성곽지부족시혜) : 드높은 성곽도 믿지 못할 것인데
雖重介之何益(수중개지하익) : 무거운 투구가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邅翼翼而無終兮(전익익이무종혜) : 생전에 조심하여 그칠 날이 없었지만
忳惛惛而愁約(돈혼혼이수약) : 시름에 뛰는 울분 묶인 몸을 슬퍼하노라
生天地之若過兮(생천지지야과혜) : 천지간에 태어나 구름처럼 달렸어도
功不成而無效(공부성이무효) : 공하나 못 이루고 표적조차 없도다.
願沈滯而不見兮(원심체이부견혜) : 물러가 깊이 숨어 나타나지 않았어도
尙欲布名乎天下(상욕포명호천하) : 세상에 공명을 널리 펴 보였지만
然潢洋而不遇兮(연황양이부우혜) : 때 늦게 태어나 만나지도 못하고
直怐愚而自苦(직구우이자고) : 한평생 충성과 정직으로 어리석게 고생만 하였도다.
莽洋洋而無極兮(망양양이무극혜) : 드넓은 벌판이 끝이 없으니
忽翶翔之焉薄(홀고상지언박) : 사방을 훨훨 날아 어디 가서 발붙일까
國有驥而不知乘兮(국유기이부지승혜) : 천리마는 있어도 탈 줄을 모르니
焉皇皇而更索(언황황이갱삭) : 허둥지둥 이제 다시 어딜 가서 찾아볼까.
甯戚謳於車下兮(녕척구어거하혜) : 영척이 소먹이며 노래를 부르더니
桓公聞而知之(환공문이지지) : 환공이 듣고서 이 사람을 알아 보았도다.
無伯樂之善相兮(무백낙지선상혜) : 이름 높은 백락이 말을 볼 줄 몰랐다면
今誰使乎譽之(금수사호예지) : 오늘날 그 누가 그의 덕을 칭찬할까
罔流涕以聊慮兮(망류체이료려혜) : 주루루 눈물지며 가만히 생각하니
惟著意而得之(유저의이득지) : 평생을 찾았기에 어진 이를 얻었거니
紛純純之願忠兮(분순순지원충혜) : 오로지 한 마음으로 충성하기가 원이었지만
妬被離而鄣之(투피리이장지) : 찬소군의 질투 때문에 길이 막혀버렸도다.
亂曰(난왈) : 난에 말했다
願賜不肖之軀而別離兮(원사부초지구이별리혜) : 육신에 빌어서 이별하고 물러가
放遊志乎雲中(방유지호운중) : 내 영혼 멋대로 구름 속에 두고 싶어
乘精氣之摶摶兮(승정기지단단혜) : 둥실둥실 떠가는 해와 달을 잡아타고
騖諸神之湛湛(무제신지담담) : 온갖 신령들의 유풍을 뒤따르며
驂白霓之習習兮(참백예지습습혜) : 하늘 높이 흘러가는 흰 무지개를 참마 삼고
歷群靈之豐豐(력군령지풍풍) : 줄지어 늘어선 별들을 스쳐간다.
左朱雀之茇茇兮(좌주작지발발혜) : 퍼득 날아오르는 주작별을 왼편에 두고
右蒼龍之躣躣(우창룡지구구) : 구불구불 잘도 가는 창룡별을 오른편에 두고
屬雷師之闐闐兮(속뇌사지전전혜) : 우르르 소리치는 뇌신을 달고서
通飛廉之衙衙(통비렴지아아) : 길을 쓸며 앞서 가는 풍신을 뒤따른다.
前輊輬之鏘鏘兮(전지량지장장혜) : 방울소리 딸랑딸랑 침대차를 앞세우고
後輜乘之從從(후치승지종종) : 수슬 늘인 휘장 마차 뒤에다가 세우고
載雲旗之委蛇兮(재운기지위사혜) : 펄럭펄럭 구름깃발 수레에 꽂고서
扈屯騎之容容(호둔기지용용) : 앞뒤로 벌려 선 기마를 따라 간다.
計專專之不可化兮(계전전지부가화혜) : 나랏님 위한 마음 변할 수 없어
願遂推而爲臧(원수추이위장) : 충신을 지키는 것을 제일 원했는데
賴皇天之厚德兮(뢰황천지후덕혜) : 하느님의 후덕으로 부디 우리 임금님
還及君之無恙(환급군지무양) : 도리어 임금님 걱정 없음에 이르게 하옵소서.
구변8(九辯8)-송옥(宋玉)
何氾濫之浮雲兮(하범남지부운혜) : 뭉게뭉게 피어나는 뜬 구름 이여
猋壅蔽此明月(표옹폐차명월) : 아, 저 밝은 빛을 가려 버리는구나.
忠昭昭而願見兮(충소소이원견혜) : 내 충정이 밝으니 뵙기를 원하여도
然霠曀而莫達(연음에이막달) : 음산한 바람 불고 구름 가려서 못 이루노라.
願皓日之顯行兮(원호일지현항혜) : 밝고 밝은 태양이 나타나길 원했더니
雲蒙蒙而蔽之(운몽몽이폐지) : 구름이 자욱이 둘러 싸버렸으니
竊不自聊而願忠兮(절부자료이원충혜) : 죽음을 무릅쓰고 충성하고 싶었지만
或黕點而汙之(혹담점이오지) : 점점이 검은 때를 흠뻑 입혀 주는구나.
堯舜之抗行兮(요순지항항혜) : 요와 순 두 임금의 높으신 덕행
瞭冥冥而薄天(료명명이박천) : 아득한 저 하늘에 분명 닿아있을 것이여
何險巇之嫉妒兮(하험희지질투혜) : 험악한 무리들이 샘이 나서
被以不慈之僞名(피이부자지위명) : 사랑 없는 악당이라 오명을 씌웠구나.
彼日月之照明兮(피일월지조명혜) : 환히 비추는 저 해와 달도
尙黯黮而有瑕(상암담이유하) : 구름에 가리면 어두워지는 데
何況一國之事兮(하황일국지사혜) : 한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의 일이야
亦多端而膠加(역다단이교가) : 선악에도 일이 많으니 어긋날 적도 있으리라
被荷裯之晏晏兮(피하주지안안혜) : 연잎 도포 입어서 아름다워도
然潢洋而不可帶(연황양이부가대) : 너무 넓고 커서 띠를 이룰 수는 없도다.
旣驕美而伐武兮(기교미이벌무혜) : 자신이 곱다 자랑하고 용맹하다 뽐내며
負左右之耿介(부좌우지경개) : 좌우에 신하들을 강직한 줄 잘못 알고
憎慍惀之脩美兮(증온론지수미혜) : 충심으로 생각하는 곧은 이는 미워하고
好夫人之慷慨(호부인지강개) : 겉으로 강개하는 간신만 좋아하는구나.
衆踥蹀而日進兮(중첩접이일진혜) : 악당들만 부산하게 궁전을 드나드니
美超遠而逾邁(미초원이유매) : 어진 이는 다 버리고 몸을 피해 멀리 가는구나.
農夫輟耕而容與兮(농부철경이용여혜) : 농부는 밭갈이 그만 두고 한가하니
恐田野之蕪穢(공전야지무예) : 들과 밭이 쑥대밭이 될까 두려워라.
事綿綿而多私兮(사면면이다사혜) : 일이란 허구한 날 제 한 몸 위하는 일
竊悼後之危敗(절도후지위패) : 충신은 이것을 보고 뒷날을 슬퍼한다.
世雷同而炫曜兮(세뇌동이현요혜) : 부화뇌동하여야 어지러이 빛나니
何毁譽之昧昧(하훼예지매매) : 어찌 그리도 선악에 우매한가.
今脩飾而窺鏡兮(금수식이규경혜) : 몸과 마음 바로잡고 지난 일을 생각하던
後尙可以竄藏(후상가이찬장) : 이 몸을 강남 들판에 숨겨 둘 수 있는가
願寄言夫流星兮(원기언부류성혜) : 흘러가는 유성에다 이 말 좀 전하려도
羌儵忽而難當(강숙홀이난당) : 아, 너무 빨라서 만날 수가 없으니
卒壅蔽此浮雲兮(졸옹폐차부운혜) : 끝내는 뜬 구름에 몽땅 가리어
下暗漠而無光(하암막이무광) : 세상이 온통 어두운 빛, 충신이 빛을 잃었구나.
구변7(九辯7)-송옥(宋玉)
靚杪秋之遙夜兮(정초추지요야혜) : 고요한 늦가을 기나긴 밤
心繚悷而有哀(심료려이유애) : 슬픔에 얽힌 마음 애처롭구나.
春秋逴逴而日高兮(춘추탁탁이일고혜) : 봄 과 가을은 훌쩍 지나가고, 해는 높아
然惆悵而自悲(연추창이자비) : 넋 잃고 시름하다 스스로 슬퍼한다.
四時遞來而卒歲兮(사시체내이졸세혜) : 사시절 바꿔들고 세월이 다하여도
陰陽不可與儷偕(음양부가여려해) : 음양의 이치를 따라할 수가 없도다
白日晼晩其將入兮(백일원만기장입혜) : 빛나는 해는 천천히 서산에 지려는데
明月銷鑠而減毁(명월소삭이감훼) : 보름달은 점점 녹아 이지러져 가는구나.
歲忽忽而遒盡兮(세홀홀이주진혜) : 세월 총총히도 멀어져 가고
老冉冉而愈弛(노염염이유이) : 늙음은 성큼성큼 눈앞에 다가오는구나.
心搖悅而日幸兮(심요열이일행혜) : 아음은 두런두런 기뻐서 행운을 빌어보며
然怊悵而無冀(연초창이무기) : 그러나 서글퍼지며 기대할 것이 없도다.
中憯惻之悽愴兮(중참측지처창혜) : 마음 속 참담함에 절망스러워
長太息而增欷(장태식이증희) : 길게 한숨쉬며 거듭 탄식하노라.
年洋洋以日往兮(년양양이일왕혜) : 시절은 벌써 봄인가, 세월은 덧없이 흘러가고
老嵺廓而無處(노교곽이무처) : 늙음은 헛되이 발붙일 곳이 없도다.
事亹亹而覬進兮(사미미이기진혜) : 만사에 거침없이 나아가길 원하여도
蹇淹留而躊躇(건엄류이주저) : 아, 이대로 머물며, 오도가도 못하노라.
구변6(九辯6)-송옥(宋玉)
霜露慘悽而交下兮(상노참처이교하혜) : 이슬 서리 모질게 번갈아 내려도
心尙幸其弗濟(심상행기불제) : 이 마음 아직은 꺾이지 않았도다.
霰雪雰糅其增加兮(산설분유기증가혜) : 여기다가 진눈깨비 펄펄 날리어 덮쳐도
乃知遭命之將至(내지조명지장지) : 이 생명 다할 때라 이제야 느껴진다.
願徼幸而有待兮(원요행이유대혜) : 그래도 살아볼까 요행을 기다리며
泊莽莽與埜草同死(박망망여야초동사) : 청청한 이대로 들풀과 같이 죽어가리라
願自往而徑遊兮(원자왕이경유혜) : 나 혼자 곧바로 가볼까 하여도
路壅絶而不通(노옹절이부통) : 길 가리워지고 막혀서 통할 수가 없도다
欲循道而平驅兮(욕순도이평구혜) : 남이 가는 길을 따라 달려갈까 싶어도
又未知其所從(우미지기소종) : 이제야 좋을지 갈피를 못 잡겠구나.
然中路而迷惑兮(연중노이미혹혜) : 그래서 중도에서 어쩔 줄을 모르다가
自壓桉而學誦(자압안이학송) : 마음을 진정하고 시를 높이 읊어보노라.
性愚陋以褊淺兮(성우누이편천혜) : 어리석은 천성에 소견이 좁고 앝아
信未達乎從容(신미달호종용) : 그 깊은 도량을 아직 얻지 못했지만
竊美申包胥之氣盛兮(절미신포서지기성혜) : 신포서의 기백을 남몰래 기다리다
恐時世之不固(공시세지부고) : 시세가 다른 것에 새삼 놀란다.
何時俗之工巧兮(하시속지공교혜) : 아, 시속의 기막힌 재주여
滅規矩而改錯(멸규구이개착) : 그림쇠를 없애고 멋대로 고치는데
獨耿介而不隨兮(독경개이부수혜) : 나만 혼자 절개 지켜 따르지 아니 하고
願慕先聖之遺敎(원모선성지유교) : 오직 옛 성현의 가르침을 사모하노라.
處濁世而顯榮兮(처탁세이현영혜) : 어지러운 세상에서 영화를 누리는 것
非余心之所樂(비여심지소낙) : 진정 마음이 원하는 바가 아니어라.
與其無義而有名兮(여기무의이유명혜) : 의리을 저버리고 이름을 얻기보단
寧窮處而守高(녕궁처이수고) : 차라리 궁한 채로 절개를 지켜 가리라.
食不婾而爲飽兮(식부유이위포혜) : 배불리 먹기를 행여나 원하며
衣不苟而爲溫(의부구이위온) : 따뜻하게 옷입기를 내가 어찌 자라리오
竊慕詩人之遺風兮(절모시인지유풍혜) : 시인의 유풍이나 남몰래 사모하며
願託志乎素餐(원탁지호소찬) : 저 할 일 하고 먹는 큰 사람을 본받고자
蹇充倔而無端兮(건충굴이무단혜) : 부귀가 좋다고 끝도 없이 날뛰는데
泊莽莽而無垠(박망망이무은) : 이 몸은 산 속에 이웃 하나 없도다.
無衣裘以御冬兮(무의구이어동혜) : 추위를 막아낼 옷 하나 없이
恐溘死不得見乎陽春(공합사부득견호양춘) : 아, 미처 새 봄 못 보고 죽을까 두려워라
구변5(九辯5)-송옥(宋玉)
何時俗之工巧兮(하시속지공교혜) : 아, 시속의 교묘한 재주여
背繩墨而改錯(배승묵이개착) : 먹줄을 버리고 멋대로 고치며
卻騏驥而不乘兮(각기기이불승혜) : 그 좋은 천리마는 타지도 않고
策駑駘而取路(책노태이취로) : 노둔한 말을 잡고 의젓이 길을 간다
當世豈無騏驥兮(당세기무기기혜) : 지금이라 세상에 천리마가 없으리오
誠莫之能善御(성막지능선어) : 말 잘 아는 사람이 없는 탓이로다
見執轡者非其人兮(견집비자비기인혜) : 말고삐 잡은 이가 사람 아닌 걸 보고는
故國跳而遠去(고국도이원거) : 네 굽을 곤두세워 멀리 피해 달아나는구나
鳧鴈皆唼夫粱藻兮(부안개삽부량조혜) : 물오리 기러기는 먹이 찾아 배부르고
鳳愈飄翔而高擧(봉유표상이고거) : 봉황은 훨훨 날아 높이도 오르는구나.
圜鑿而方枘兮(환착이방예혜) : 둥그런 구멍에 네모진 자루야
吾固知其鉏鋙而難入(오고지기서어이난입) : 못 들어 갈 것을 내가 정말로 알고 있다.
衆鳥皆有所登棲兮(중조개유소등서혜) : 온갖 새들은 저 살 곳이 다 있어도
鳳獨遑遑而無所集(봉독황황이무소집) : 봉황은 쩔쩔매며 의지할 곳 없도다.
願銜枚而無言兮(원함매이무언혜) : 저를 입에 가로 물고 말하지 않으려도
嘗被君之渥洽(상피군지악흡) : 옛날에 입었던 그 은총 생각하면
太公九十乃顯榮兮(태공구십내현영혜) : 태공은 구심에야 영화를 얻었지만
誠未遇其匹合(성미우기필합) : 아, 나는 지금까지 성군을 못 만났다니.
謂騏驥兮安歸(위기기혜안귀) : 천리마가 간다더니 어디로 돌아갔나
謂鳳皇兮安棲(위봉황혜안서) : 봉황은 훨훨 날아 어디 가서 사는가
變古易俗兮世衰(변고역속혜세쇠) : 옛 법을 얻었으니 세상은 다 되었구나
今之相者兮擧肥(금지상자혜거비) : 말 잘 안다는 사람은 살찐 것만 치켜준다
騏驥伏匿而不見兮(기기복익이불견혜) : 천리마는 깊이 숨어 나타나지 않고
鳳皇高飛而不下(봉황고비이불하) : 봉황은 높이 올라 내려오지 않는구나
鳥獸猶知懷德兮(조수유지회덕혜) : 새 짐승도 이렇게 덕을 볼 줄 아는데
何云賢士之不處(하운현사지불처) : 어째서 어진 이가 없다고들 하나.
驥不驟進而求服兮(기불취진이구복혜) : 천리마는 미련도 없이 가버리고
鳳亦不貪餧而妄食(봉역불탐위이망식) : 봉황도 애서 먹이를 탐내지 않는구나.
君棄遠而不察兮(군기원이불찰혜) : 그대가 아주 버려 돌보지 않으니
雖願忠其焉得(수원충기언득) : 충신을 원한다 하여도 어떻게 얻을 것인가
欲寂漠而絶端兮(욕적막이절단혜) : 고요히 소리없이 인연을 끊으려도
竊不敢忘初之厚德(절불감망초지후덕) : 두터운 옛 은혜 잊을 수가 차마 없서
獨悲愁其傷人兮(독비수기상인혜) : 혼자서 애통하며 이렇게나 애을 태우니
馮鬱鬱其何極(풍울울기하극) : 가슴 가득 쌓인 울분 어찌해야 다하리오
구변4(九辯4)-송옥(宋玉)
竊悲夫蕙華之曾敷兮(절비부혜화지증부혜) : 여기저기 피어나는 해초꽃이 애닯도다
紛旖旎乎都房(분의니호도방) : 꽃 동산에 나풀나풀 아름다우나
何曾華之無實兮(하증화지무실혜) : 어찌나 그 꽃이 열매가 없어서
從風雨而飛颺(종풍우이비양) : 비바람 부는대로 날러가 버리리니
以爲君獨服此蕙兮(이위군독복차혜혜) : 홀로 그대만이 혜초를 입었대도
羌無以異於衆芳(강무이이어중방) : 아, 다른 많은 꽃들과 다를 바가 없도다
閔奇思之不通兮(민기사지불통혜) : 보배로운 이 생각이 통하지 않아
將去君而高翔(장거군이고상) : 애태우다 그대를 버려두고 가려하니
心閔憐之慘悽兮(심민련지참처혜) : 애틋한 이 마음 너무도 슬퍼구나.
願一見而有明(원일견이유명) : 한번만 뵈옵고 밝히려 했지마는
重無怨而生離兮(중무원이생리혜) : 아무런 허물없이 생이별을 당하다니
中結軫而增傷(중결진이증상) : 가슴을 찢는 듯 저리고 아파온다.
豈不鬱陶而思君兮(기불울도이사군혜) : 아, 가슴 치며 그대 생각 않을까만
君之門以九重(군지문이구중) : 구중궁궐 깊이 계서 뵈올 수가 없구나.
猛犬狺狺而迎吠兮(맹견은은이영폐혜) : 사나운 개 왕왕거리며 날 맞아 짖어대고
關梁閉而不通(관량폐이불통) : 궁문도 돌다리도 꽉 막혀 갈 수 없구나.
皇天淫溢而秋霖兮(황천음일이추림혜) : 하늘은 그지없이 비를 내리시니
后土何時而得漧(후토하시이득건) : 아, 이 땅은 어느 때나 마를 건가
塊獨守此無澤兮(괴독수차무택혜) : 외로이 나 혼자서 은혜를 못 입고서
仰浮雲而永歎(앙부운이영탄) : 뜬 구름 바라보며 한없이 탄식하노라.
구변3(九辯3)-송옥(宋玉)
皇天平分四時兮(황천평분사시혜) : 하늘은 고르게 사계절 나누시니
竊獨悲此廩秋(절독비차름추) : 생각하면 쌀쌀한 가을철은 유난히도 슬퍼진다
白露旣下百草兮(백로기하백초혜) : 흰 이슬 이미 온갖 풀에 내렸으니
奄離披此梧楸(엄리피차오추) : 노나무와 오동나무 잎이 우수수 떨어진다.
去白日之昭昭兮(거백일지소소혜) : 환한 대낮의 밝은 빛을 버리고
襲長夜之悠悠(습장야지유유) : 영원히 어두운 밤 속에 들었도다.
離芳薆之方壯兮(이방애지방장혜) : 한참 꽃다운 시절인데
余萎約而悲愁(여위약이비수) : 이 몸은 시들어 쓸쓸해지는구나.
秋旣先戒白露兮(추기선계백로혜) : 가을이 돌아옴을 백로가 알리는데
冬又申之以嚴霜(동우신지이엄상) : 매서운 서리가 또 겨울을 알리는구나.
收恢台之孟夏兮(수회태지맹하혜) : 만물을 길러주는 여름기운 거두고
然欿傺而沈藏(연감제이심장) : 구덩이에 빠뜨려 깊이 감춰버리신다.
葉箊邑而無色兮(엽어읍이무색혜) : 잎이 말라서 고운 색 없어지고
枝煩拏而交橫(지번나이교횡) : 가지는 부딪쳐 소란스레 옆으로 누웠구나.
顔淫溢而將罷兮(안음일이장파혜) : 핏기 없는 얼굴은 지쳐 넘어질 듯하고
柯彷彿而萎黃(가방불이위황) : 큰 가지는 말라서 누렇게 되었도다.
箾櫹槮之可哀兮(소소삼지가애혜) : 앙상한 나뭇가지 너무도 애처로워
形銷鑠而瘀傷(형소삭이어상) : 형체는 다 녹아 골병들어 상했도다.
惟其紛糅而將落兮(유기분유이장락혜) : 이대로 너와 나 떨어질 일 생각하니
恨其失時而無當(한기실시이무당) : 좋은 일을 만날 때에 때를 잃어 한스럽다
擥騑轡而下節兮(람비비이하절혜) : 고삐를 휘어잡고 천천히 말을 몰아
聊逍遙以相佯(요소요이상양) : 할 일 없이 소요하며 노니는데
歲忽忽而遒盡兮(세홀홀이주진혜) : 덧없는 세월이 총총걸음으로 달아나니
恐余壽之弗將(공여수지불장) : 두려워라, 이내 목숨 오래 살지 못하리라
悼余生之不時兮(도여생지불시혜) : 때 못 만나 태어난 나의 인생 슬퍼하며
逢此世之俇攘(봉차세지광양) : 두렵고도 걱정 많은 이 세상을 내가 만나
澹容與而獨倚兮(담용여이독의혜) : 나만 오다가다 외로이 기대어 있노라
蟋蟀鳴此西堂(실솔명차서당) : 귀뚜라미는 이 서당에서 울음 우니
心怵惕而震盪兮(심출척이진탕혜) : 가슴이 울렁거리고 흔들리며 끓어오른다.
何所憂之多方(하소우지다방) : 어찌하여 근심거리 그리도 많은가
卬明月而太息兮(앙명월이태식혜) : 맑은 달을 쳐다보고 긴 한숨을 지으며
步列星而極明(보렬성이극명) : 별빛 아래 거니니 달빛은 지독히도 밝구나.
구변2(九辯2)-송옥(宋玉)
悲憂窮戚兮獨處廓(비우궁척혜독처곽) : 슬프고 답답하기 그지없어 홀로 사는 집
有美一人兮心不繹(유미일인혜심불역) : 아름다운 한 사람이 있어, 마음 편치 않다
去鄕離家兮徠遠客(거향이가혜래원객) : 고향을 버리고 집 떠나 먼 곳에서 나그네 되어
超逍遙兮今焉薄(초소요혜금언박) : 멀리로 떠돌다가 지금은 어느 곳에 멈추리오.
專思君兮不可化(전사군혜불가화) : 오직 임금만을 그리워하며 마음 변함 없건만
君不知兮可奈何(군불지혜가내하) : 임금님 알아주지 않으니 어찌할거나.
蓄怨兮積思(축원혜적사) : 쌓인 원망과 그리움 때문에
心煩憺兮忘食事(심번담혜망식사) : 마음이 번잡하여 식사도 잊었다.
願一見兮道余意(원일견혜도여의) : 원컨대 한 번 뵙고 나의 뜻 말하려도
君之心兮與余異(군지심혜여여이) : 임금의 마음은 나와 다르도다.
車旣駕兮朅而歸(차기가혜걸이귀) : 수레를 타고 고국으로 가고 싶어도
不得見兮心傷悲(불득견혜심상비) : 뵈러 가지 못하니 마음만 슬프구나.
倚結軨兮長太息(의결령혜장태식) : 수레 난간에 기대어 길게 한숨 쉬니
涕潺湲兮下霑軾(체잔원혜하점식) : 눈물이 흘러 떨어져 방석을 적신다.
忼慨絶兮不得(강개절혜불득) : 마음의 분함이 절정에 다다름을 알지 못하고
中瞀亂兮迷惑(중무란혜미혹) : 어지러운 중에 방향도 알지 못하는구나.
私自憐兮何極(사자련혜하극) : 내 스스로 가련하지만 어찌 다하리오.
心怦怦兮諒直(심평평혜량직) : 마음의 충직함을 그대로 알리고 싶어라.
구변1(九辯1)-송옥(宋玉)
悲哉秋之爲氣也(비재추지위기야) : 슬프구나, 가을이 되는 기운이여
蕭瑟兮草木搖落易變衰(소슬혜초목요락이변쇠) : 소슬하구나, 초목이 떨어지고 쇠하게 변하고,
憭慄兮若在遠行(료율혜약재원행) : 먼 길을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오는데
登山臨水兮送將歸(등산임수혜송장귀) : 산을 올라 강물에 임하니 사람을 보내는 듯 하고
沆寥兮天高而氣淸(항요혜천고이기청) : 적막한 하늘은 드높고 기운은 청명하여
寂寥兮收潦而水淸(적요혜수료이수청) : 고요히 흐르는 가을 물은 맑기도 하다
憯悽增欷兮(참처증희혜) : 슬픔에 잠겨 탄식만 나오는데
薄寒之中人(박한지중인) : 추운 기운이 사람을 덮치는구나.
愴怳懭悢兮(창황광량혜) : 한스럽고, 슬프도다.
去故而就新(거고이취신) : 옛 사람과 헤어져 새 사람에게로 가다니
坎廩兮貧士失職(감름혜빈사실직) : 너무나 가난한 선비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가니
而志不平(이지불평) : 불평한 마음이 생겨나
廓落兮羇旅而無友生(곽락혜기여이무우생) : 멍하니 우뚝 서 있네, 벗도 없는 나그네 신세여.
惆愴兮而私自憐(추창혜이사자련) : 서글픈 마음을 스스로 달래보노라.
燕翩翩其辭歸兮(연편편기사귀혜) : 제비는 훨훨 날며 집으로 돌아가려 하고
蟬寂漠而無聲(선적막이무성) : 매미는 조용히 아무 소리 내지 않는구나.
鴈廱廱而南遊兮(안옹옹이남유혜) : 기러기는 기럭기럭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鵾雞啁哳而悲鳴(곤계조찰이비명) : 곤계는 서글픈 울음소리를 내는구나
獨申旦而不寐兮(독신단이불매혜) : 밤마다 홀로 뜬눈으로 새우나니
哀蟋蟀之宵征(애실솔지소정) : 밤이면 귀뚜라미의 소리가 날 더욱 슬프게 하고
時亹亹而過中兮(시미미이과중혜) : 세월은 쉬지 않고 흘러 절반이 넘었으나
蹇淹留而無成(건엄유이무성) : 고생하며 머물러도 긴 세월 이룬 것 하나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