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14절
요한은 왜 ‘거하시매(장막을 치다)’라는말을 사용했을까요?
성탄은 초막절의 언어로 해석됩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요한은 왜 굳이“말씀이육신이 되어 태어나셨다”라고하지 않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고말했을까요?
더 정확히 말하면,
요한은 왜 ‘장막을 치다(거하시다의 원어 의미)’ 라는 표현을 선택했을까요?
이 단어는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은 헬라 철학의 언어를 빌린 것이 아니라,
유대 신앙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불러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에게 “장막”은단순한 거처가 아닙니다.
그것은 광야의 기억,하나님 임재의 기억,
그리고 지금도 유대인들이 지키는 절기인 초막절(Sukkot) 의 기억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매년 가을이 되면 집을 떠나 임시로 만든 초막에 거했습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라 …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그들을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라”
초막절은 풍요의 절기이지만,동시에 불안정함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집이 있지만 집을 떠나고,지붕이 있지만 하늘이 보이는 곳에 머무는 절기입니다.
왜입니까?
이스라엘은 이 절기를 통해 매년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안전해서 살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셨기 때문에 살았다.
이제 요한의 말이 새롭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거하시매).”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광야에서 장막 가운데 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장막을 치셨다.”
“초막절이 기억하던 하나님의 임재가 한 인격 안에서, 한 몸 안에서 완전히 드러났다.”
성탄은 새로운 절기가 아닙니다.
성탄은 초막절의 완성입니다.
광야에서는 장막 위에 구름과 불기둥으로 임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아기 예수로 우리 가운데 들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탄은“하나님이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살기로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성탄절이 몇 년 몇 월 몇 일을 계산하는 날짜의 문제가 아님이 분명해집니다.
초막절이 특정한 집이나 장소보다 ‘함께하심’ 자체를 기념하는 절기이듯이,
성탄절 역시 정확한 생일이 아니라 하나님 임재의 현실성을 선포하는 절기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해하게 됩니다.
왜 교회가 정확한 날짜를 알지 못하면서도 성탄절을 포기하지 않았는지,
왜 요한이 탄생 이야기를 전하지 않으면서도 가장 깊은 성탄 신학을 전했는지 말입니다.
성탄은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어디에 장막을 치고 계시는가?”
나의 몸 안에 장막을 치고 계신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낯설은 이 질문을 안고,
이제까지 습관적이고 막연했던 성탄의 신비 한가운데로 더 깊이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제 오신 분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기다리는 다시 임하시는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십니다.
2천 년 전에 창조주 삼위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시간, 인간의 공간, 인간의 삶 속에 오셔서 장막을 치셨습니다.
요한복음 1:14의 원어는 명확합니다
καὶ ὁ λόγος σὰρξ ἐγένετο
καὶ ἐσκήνωσεν ἐν ἡμῖν
ἐσκήνωσεν (eskēnōsen)
→ “장막을 치다, 성막에 거하다”
이 단어는
“집에 살다”(οἰκέω)
“머물다”(μένω)
같은 일반적 표현이 아니라,
구약 성막·초막절을 의도적으로 불러오는 단어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매 "는 사도 요한의 의도이며
유대인들에게 광야에서의 하나님에 대한 기억,
광야에서 하나님의 임재(불기둥, 구름 기둥)의 기억을 소환하는 의도입니다.
그러나 당시 수 많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고위관리들, 학자들은
이런 하늘의 진리를 전혀 알아 듣지 못했기에 깨달을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에에도 당시 유대 사회 지도자들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의 적나라한 예수님의 지적과 평가가 마태복음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 바른 신학을 잘 배우지 못하면 이단 사이비 집단에 속절없이 빠져 들어 가고 직접 찾아 가기까지 합니다.
교회가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성찰하시길 요청드립니다.
교회(유형과 무형의 교회(우리 마음) 모두)는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삼위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깨어 나서 바른 진리를 찾아 말씀 속으로 들어가길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대한 민국의 교회의 신실한 예배자들이 되길 기도 드립니다.
## 혹시 생소한 용어와 내용으로 궁금해 하실 분은 아래 글을 참고 하시면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1. Raymond E. Brown (가톨릭, 요한복음 권위자)
“John deliberately uses skēnoō to recall the wilderness tabernacle,
where God dwelt among Israel.”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Anchor Bible)
*요한은 광야 성막–하나님 임재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소환한다
2. D. A. Carson (복음주의, 정통 개신교)
“The Word tabernacled among us…
This evokes Old Testament imagery of God’s dwelling with his people.”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Pillar Commentary)
*성막/초막절 이미지는 정통 복음주의 주석의 공통 해석
3. Craig S. Keener (역사·사회적 배경 연구)
“The language suggests the reminders of the Feast of Tabernacles,
when God’s presence was celebrated.”
(The Gospel of John, Baker)
*초막절(sukkot)과의 연결을 명시적으로 인정
4. N. Wright (정경·성취 신학)
“In Jesus, Israel’s God has returned to Zion in person.”
*하나님의 임재가 인격 안에서 ‘완성’되었다는 정경적 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