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소망 사랑의 참 뜻
믿음∙소망∙사랑의 중요성은 교회의 주초요, 근간입니다. 믿음이 있는 곳에 소망이 있고, 믿음∙ 소망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기 마련입니다. 믿음은 모험이며, 소망은 위로이며, 사랑은 아픔입니다. 신∙망∙애의 어휘는 너무나 쉬우나 실천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의 핵심을 이것들로 진단하였고, 만고불변의 교회 기치도 바로 신∙망∙ 애에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는 온전하게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방주도 짓고(히 11:7), 독자도 제물로 바치며(히 11:17), 홍해를 육지같이 건너기도 하고(히 11:29), 여리고 성도 무너뜨리며(히 11:30),나라들을 이기고(히 11:33),순교도 당하고(히 11:37),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히 11:38).
소망의 원수는 절망이며, 좌절이며, 반항입니다. 이 말은 소망이 있는 자만이 불요, 불굴의 자세로 걸어간다는 뜻입니다. 악한 시대인 까닭에 낙관적인 소망, 소망의 희열이 상실된 자는 신앙의 대열에서 폐인이요, 날개 부러진 새가 되기 쉽습니다. 부자간에 갈대아 우르를 떠났어도, 부친 데라는 하란에서 머물다가 죽었고, 아들 아브람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떠났습니다(창 11:31-12:4).
낙관의 반대는 비관이며 비관은 염세주의입니다. 슬퍼 할 비(悲)자는 아닐 비(非)자 밑에 마음 심(心)입니다. 그래서 슬플 비자는 '없는 마음’이요,‘마음이 없는 것’이니 참으로 슬픈 사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삼으니“내게 부족함이 없고, 내 잔이 넘치게”(시 23:1,5) 됩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받아 왔고, 주셨으니, 고맙습니다.’의 수동성에서 깨어나서 나누어 주고 베푸는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교회도 선교, 교육, 사회참여의 재검토와 비판을 받아야 할 때가 된 것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따르며(살전 1:3), 사랑은 눈물이며, 십자가입니다(마 27:45-50).
지금 프랑스에서는 2024년 제33회 파리 올림픽이 개최되어 17일간의 일정으로 206개국 10,500명이 32개 종목에 참여한 가운데 각 나라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웃고 울며 좋은 결과를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에는, 경기에는 승리냐 패배냐 둘 중의 하나이지 중간은 없습니다. 사랑은 먼저 희생하는 것이요(요 12:24),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합니다(아 8:6). 사랑은 넉넉히 이기며(롬 8:3), 온전하게 하며(요일 2:5), 두려움이 없습니다(요일 4:18).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은 밤하늘에 빛나는 세 개의 별이요, 점령해야 할 세 개의 철탑입니다. 별과 고지와 탑이 있는 사람은 하늘과 땅에 세워질 영원한 기념탑(기념비)입니다. 이것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삼대 요건이요, 삼대 강령이며, 그리고 삼대 서원입니다. 우리 모두 믿음 소망 사랑의 참 뜻을 깨달아 복되게 살아가게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