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9일은 성요셉 대축일이다. 얼마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미사경본의 수정안을 의결하였다고 기사가 나왔다. 다음 내용을 반영한 것이다.
재작년에 가톨릭 온라인에 올라왔던 글이다. 내용이 좋아서, 영어공부도 할겸해서 번역했다.
The Decree of the Congregation for Divine Worship and the Discipline of the Sacraments was made public on Tuesday, June 18, 2013. The decree was promulgated on May 1, 2013, the Feast of St. Joseph the Worker. The Decree mandates the insertion of the name of St. Joseph in the Prayer offered by every Catholic priest in the world when they offer Eucharistic Prayers II, III, and IV during the Holy Sacrifice of the Mass. St. Joseph is already included in Eucharistic Prayer I. So, why does this decree matter? What does it mean?
바티칸의 경신성사성은 2013년 6월 18일 화요일에 회칙을 공표하였다. 이 회칙은 2013년 5월 1일 노동자의 성요셉 축일에 공포되었다. 그 회칙은 세상의 모든 가톨릭사제들이 성찬의 전례때에 바치는 감사기도 제2, 3 그리고 4양식의 기도에서 성 요셉의 이름을 삽입하는 것을 명하는 것이다. 성 요셉은 이미 감사기도 제1양식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이 회칙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There is a Latin maxim describing the centrality of worship in the life, identity and mission of the Catholic Church; Lex Orandi, Lex Credendi. The phrase in Latin means the law of prayer (the way we worship), and the law of belief (what we believe). It is also written as, Lex orandi, Lex credendi, Lex vivendi, deepening the implications - how we worship determines how we will live.
가톨릭교회의 소명과 정체성, 삶에서 하느님 경배의 핵심을 묘사하는 라틴 격언이 있다 ;
Lex Orandi, Lex Credendi.
라틴어로 이 구절은 기도의 법칙(하느님을 경배하는 방법), 그리고 믿음의 법칙(우리가 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또한 Lex orandi, Lex credendi, Lex vivendi로 그 함축적인 의미를 깊게하는 것으로 쓰여진다. 하느님을 경배하는 방법이 삶의 방법을 결정한다.
The Church knows that part of her vital role as mother and teacher is to watch over worship, for the sake of the faithful and in obedience to the God whom she serves. How we worship reveals and guards the deposit of faith. What we believe guides us in how we live our Christian mission in the world.
어머니와 교사를 중대한 역할로 알고 있는 교회는 자신이 봉사하는 하느님께 대한 복종과 신앙을 위하여, 전례를 돌보아야 한다. 신앙의 유산을 보호하고 전례를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 우리가 믿은 것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안내한다.
Liturgical Worship is the foundation of Catholic identity; expressing our highest purpose. The Eucharist is the source and summit of the life of the Church (CCC#1324-1326). The Holy Sacrifice of the Mass is the highest worship. We enter into the heavenly liturgy at every Holy Mass (CCC# 1136-1199).
전례에 의한 하느님 경배는 우리의 가장 높은 목표를 표현하는 가톨릭의 정체성의 근본이다. 성체성사는 교회의 삶의 근원이며, 최절정이다. 미사에서 거룩한 희생제사는 최고의 하느님 경배이다. 우리는 모든 거룩한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천상의 전례안으로 들어간다.
The words said by the Priest at every Mass, standing in the person of Christ the High Priest, are of profound importance. The Eucharistic prayer is the very heart and summit of the celebration. (CCC # 1352).
미사에서 최고의 대사제인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서 있는 사제가 말하는 말은, 심오한 중요성을 가진다. 감사기도는 바로 그 의식의 핵심이며 절정이다.
The Decree from the Congregation explains the vital role of St. Joseph in the plan of salvation. It affirms his vital example as a model of virtue and his role as a patron and intercessor for the universal Church. It notes the great affection which the faithful have shown toward him for millennia.
바티칸의 경신성사성이 발표한 회칙은 구원의 계획안에서 성 요셉의 중요한 역할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회칙은 요셉의 덕을 위한 모델로서의 중요한 본보기와 보호자로서의 역할과 보편교회를 위한 중개자를 확고하게 한다. 천년동안 신자들이 요셉을 향하여 보여주었던 커다란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It explains that Blessed Pope John XXIII added the name of Joseph to the Roman Canon during the Second Vatican Council and that, since then, there have been petitions from the faithful requesting that his name be added to the other Eucharistic prayers.
그 회칙은 복자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공의회기간동안에 로마 미사경본에 요셉의 이름을 추가한 것과 그 때 이후 신자들은 다른 감사기도에서 요셉의 이름을 추가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These petitions had the support of both Pope Emeritus Benedict XVI and Pope Francis. Pope Francis has now officially decreed the addition of the name of saint to all of the canons used during the Mass. It has been done n the official Latin. The implementation in every vernacular language used is underway.
이러한 청원들은 전임 베네딕트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하여 지지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 공식적으로 미사에서 사용되는 경본의 모든 성인들의 이름에 요셉의 이름이 추가되는 것을 반포하였다. 그 회칙은 공식적인 라틴어로 되어 있다.
The Decree explains "the Pontiffs had before their eyes the full communion of the Saints who, once pilgrims in this world, now lead us to Christ and unites us to Him."
회칙은 "주교들은 그들의 눈 앞에서, 한때 이 세상에서 순례자였으나 지금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고 그분과 하나가 되도록 해주는 성인들과 완전하게 친교를 나누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Pope Francis has a coat of arms which incorporates a flower used to symbolize St. Joseph. He chose March 19th, the Feast of St. Joseph, as the date for his Papal inaugural Mass.
교황 프란치스코는 성 요셉을 상징하는데 사용되었던 꽃이 포함된 겉옷을 입었다. 그는 자신의 교황취임미사의 거행날짜를 성 요셉 대축일인 3월 19일로 선택했다.
In his homily he referred to Joseph as a "strong and courageous man, a working man, yet in his heart we see great tenderness, which is not the virtue of the weak, but rather a sign of strength of spirit and a capacity for concern, for compassion, for genuine openness to others, for love."
강론에서 교황께서는 요셉을 "강하고 용기있으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서 우리는 강력한 부드러움을 본다. 그것은 나약함의 덕목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사랑으로 진심으로 열려있으며, 공감하며, 관심을 같는 능력의 상징이다."라고 하셨다.
The overriding experience we have had of Pope Francis in his first 100 days is humility. Humility is the virtue which characterizes St. Joseph. The readings for the Feast of Joseph were used for the papal installation Liturgy. The Gospel account (Matt 1: 16, 18-21, 24 A) records Joseph's Annunciation.
우리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취임하신지 100일 되는 날에 경험한 것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분의 겸손함이다. 겸손함은 성 요셉을 특징짓는 덕목이다. 성 요셉축일의 독서들은 교황 취임 전례에서 사용되었던 것들이다. 복음은 성 요셉의 고지에 대한 기록을 언급한다(마태 1:16, 18-21, 24 a).
An angel appeared to Joseph in a dream to prepare him for the significant role. He would play in God's saving plan. He was invited to exercise his human freedom, to give his assent to the Lord's invitation - and he did. He said yes by his actions.
천사는 요셉에게 꿈에 나타나 중요한 역할을 위하여 준비하라고 하였다. 그는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는 주님의 초대에 동의하였고,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의 자유를 위한 일에 초대받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서 예라고 대답을 하였다.
From antiquity, Christians have especially cherished Joseph as a model of manly virtue. We use an expression to refer to men who are comfortable in their skin. We say of such a man "He is a man's man". That is how I experience this Pope named Francis.
오래전부터, 그리스도인들은 특별하게 인간덕목의 모델로서 요셉을 중요시하였다. 우리는 완전하게 편안함을 주는 사람들을 언급하는 표현을 알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사람중의 사람이다." 이것이 내가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교황을 겪었던 방법이다.
In his first 100 days we have witnessed a man comfortable in his skin. He does not read the wind of opinion before he acts. Joseph was a man of few words who spoke through his actions; doing as the angel of the Lord commanded. We see a similar pattern of response in Pope Francis.
취임 100일이 되면서, 우리는 완전하게 편안함을 주는 이 사람을 목격하였다. 교황은 행동하기전에 말의 흐름을 읽어내지 않았다. 요셉은 행동으로 실행하였으며 거의 말을 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주님의 명령을 가져온 천사에 대해서도 그러하였다. 우리는 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요셉이 보여주었던 익숙한 반응의 형태를 본다.
The Scriptures say little about Joseph. That absence speaks volumes. Why? Because to Joseph, he was not the one who was important, others were. He was not self referential, to borrow a phrase commonly used by Pope Francis.
성서는 요셉에 대하여 거의 말이 없다. 오히려 이러한 부재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왜? 요셉에게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중요하였지만 그는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주 사용하는 말을 빌리자면, 그는 자신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Neither is Pope Francis. He constantly reminds us all that it is not about us - but about the Lord, and challenges us to learn how to love others as Jesus does. In fact, through the Holy Spirit, to allow Jesus to continue offering that love through us.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그러하다. 그분은 줄기차게 우리에게 우리 자신에 관한 것들이 아닌, 주님에 관한 모든 것들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적극적으로 임하라고 하신다. 사실,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계속하여 주신다.
Joseph loved God first. He loved Mary above himself. He was prepared to do the right thing when she was found to be with child. He could have chosen otherwise. In just one hundred days we have seen a similar pattern in Pope Francis. We see he truly is a man for others.
요셉은 하느님을 첫 번째로 사랑하였다. 그는 자신보다도 마리아를 사랑하였다. 그는 마리아가 아이를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할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하였다. 그는 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 실제로 100일동안에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비슷한 행동유형을 보아왔다. 우리는 교황이 진정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보고 있다.
Joseph was a man of faith and courage. He had a close, intimate personal relationship with the God of His Fathers. He was the last Patriarch, completing the lineage. Through his response of faith, he was privileged to hold in His arms the One that His fathers had only longed to see. What a symbol of prayer, holding Jesus close to your heart.
요셉은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선조들의 하느님과 밀접하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의 족보를 완성하는 마지막 가장이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응답함으로써, 그는 선조들이 갈망하였던 하느님을 자신의 팔로 안을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 예수님을 껴안는 기도가 상징하는 것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마음에 가까이 모시는 것이다.
Joseph was a man of such deep prayer, the kind of life changing and intimate prayer which alone can fuel the living faith needed to be used by the Lord in a life of mission. Pope Francis is a man of deep prayer. It is evident in his simplicity and Gospel joy. He regularly reminds us we are all missionaries.
요셉은 그렇게 깊이 기도하는 사람이었으며, 구원사람의 삶에서 주님에 의해 사용되었던 믿음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기도와 삶을 변화시키는 그러한 기도를 하는 사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깊기 기도하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분의 단순성과 사도적 권고인 ‘복음의 기쁨’에서 명백하다. 교황은 규칙적으로 우리 모두는 사명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상기시킨다.
There was not an ounce of false bravado or machismo in Joseph. Named after the great Patriarch who was sold into slavery in Egypt; he bore the name with similar humility. As the Old Testament Joseph embraced his lot, rejecting the temptation to bitterness or victim-hood and actually came to rule Egypt, forgiving the brothers who had sold him into slavery; so too this son of the Covenant embraced the One who would establish the New Covenant on the altar of Calvary.
요셉에게는 조금의 거짓허세나 남자다움이 없었다. 이집트로 노예로 팔려간 위대한 족장의 이름을 딴 요셉은 겸손함을 의미하는 이름을 붙였다. 구약에서 요셉은 운명을 받아들였으며, 고난에 대한 복수의 유혹이나 희생되었다는 생각을 거부하면서, 그를 노예로 팔아넘긴 형제들을 용서하면서 이집트를 통치하였다. 그렇게 하여 이 계약의 아들은 갈바리아의 제단위에서 새로운 계약을 세우실 분을 안을 수 있었다.
Joseph emptied himself of self - and became filled with the love and life of God. He gave himself fully to God through accepting his unique and specific vocation as a guardian of the Redeemer. The child Jesus, God in the flesh, was given to Joseph.
요셉은 자신을 스스로 비워놓고 하느님의 사랑과 삶으로 그곳을 채웠다. 그는 구세주의 보호자로서의 특별하고 명확한 소명을 통해서 자신을 온전하게 하느님께 내어주었다. 육화된 하느님이신 어린 예수는 이렇게 요셉에게 주어졌다.
A Carpenter, Joseph taught this child how to work with wood. That was, after all, what he had to give. During these hidden years, Jesus was with Joseph and Joseph was with Jesus. This same Jesus who learned to work with wood from the hands of Joseph would save the world through the wood of the Cross.
목수인 요셉은 이 어린아이에게 나무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법을 가르쳤다. 결국 이것은 요셉이 주어야 하는 것이었다. 숨겨진 세월동안 예수님은 요셉과 함께 있었으며 요셉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요셉의 손에서 나무를 다루는 법을 배운 그 예수님은 십자가의 나무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Joseph uniquely participated in the mystery of God‘s plan of redemption through simply being the man he was called to be. How challenging in an age of narcissism and inordinate self-love. Since the fourteenth century there has been a specific day set aside in the Roman calendar to honor Joseph. He is the Patron of the universal Church, of all husbands and of social justice.
요셉은 단지 불림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통해서 하느님의 구원계획의 신비안에 특별하게 참여하였다. 자아도취와 터무니없는 자기애의 시대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14세기이후 로마전례력에는 요셉을 공경하기 위하여 특별한 날을 마련하였다. 그는 보편교회의 보호자이며, 모든 남편들과 사회정의의 보호자이다.
He has also been designated as the patron of all workers, this Carpenter who taught the Word Incarnate, the Child Jesus, how to work with wood. This man was the foster father of the Incarnate Word of God and he loved Jesus with an exemplary love which is a model for all men who bear the name Christian.
사람이 된 말씀인 어린예수에게 나무를 다루는 법을 가르친 이 목수는 또한 모든 노동자들의 보호자로 선정되었다. 그는 사람이 된 하느님의 말씀의 양부이었으며, 그리스도인들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모델이 되는 훌륭한 사랑으로서 예수님을 사랑하였다.
In an age that has lost its way, given over to the selfish pursuit of illusory pleasure, Joseph is being lifted up again by Holy Mother Church as a model to everyone who desires to follow Jesus Christ. The Canon of every Holy Mass will constantly seek his intercession.
길을 잃어버린 시기에, 이기적인 허상적인 기쁨을 추구하는 시기에, 요셉은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바라는 모든 사람들에게 모델로서 다시 한번 들어올려지고 있다. 모든 거룩한 미사경본은 끊임없이 요셉의 중개를 구할 것이다.
Those words of the Canon which become a part of the fabric of our lives as Catholics will regularly be recalled within us after we leave the sanctuary. They get inside of our hearts and we find them coming up wothin as we live out our daily routines of service in love. Lex orandi, lex Credendi, Lex Vivendi.
가톨릭신자로서 우리의 삶의 일부가 되는 미사경본의 말씀은 규칙적으로 제단을 떠난 후에도 우리안에서 기억될 것이다. 미사경본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안에 있으며, 사랑안에서 매일의 봉사의 삶을 현실화시킬 때, 마주치게 된다.
Lex orandi, lex Credendi, Lex Vivendi.
In one hundred days we have witnessed the heart and spirit, the character, of this Pope named Francis. I am increasinly taken with how much he reminds me of Joseph. How we need his kind of prophetic witness in this hour.
100여일 동안에 우리는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진 이 교황의 개성과 마음, 그리고 영성을 목격했다. 나는 점차적으로 어떻게 교황이 요셉을 나의 마음속에서 생각나게 하는가에 직면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교황의 예언자적인 말씀이 얼마나 필요한가?
Over two millennia, the mission of Jesus has continued through His Body on earth, His Church. He has entrusted the work of that mission to all who accept the invitation to empty themselves in order to be filled with the very life and love of God and be used in His redemptive mission for the world.
2천년에 걸쳐 예수님의 사명은 지상에서 당신의 성체를 통해서 계속되고 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비우고 세상을 위한 당신의 구원사업에 사용된 하느님의 사랑과 삶으로 가득채우라는 초대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사명을 맡기셨다.
Through the Fount of living water called Baptism, he invites each one of us into His new family, the Body of His Son, the Church. He needs more men who, like Joseph, cultivate ears to hear and choose to exercise authentic manly virtue and act out of courage. He still invites men to turn the ordinary into extraordinary through cooperation and participation.
세례라고 불리는 살아있는 물의 샘을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 모두를 당신의 새로운 가족 당신 아들의 몸인 교회로 부르신다. 하느님은 요셉과 같이 듣기 위하여 귀를 씻고 선택하기 위하여 인간의 참된 덕을 연마하고 용기있게 행동하는 보다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하신다. 하느님은 아직도 사람들이 협동과 참여를 통해서 보통에서 비범하게 되도록 초대하신다.
The Lord is looking for men like Joseph who will work in the workshop of the world that He created in order to recreate it anew in His Son. He has found one in this Pope named Francis. We are blessed to be alive during this pontificate. The addition of the name of St. Jospeph, the great Patron of the Church, to every Liturgy is a welcome gift.
주님은 당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아드님안에서 새롭게 하고 재창조하기 위하여 작업장에서 일을 할수 있는 요셉과 같은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하느님은 프란치스코라고 불리는 이 교황에게서 그것을 발견하셨다. 우리가 이 교황의 시대에 살아가는 것은 축복이다. 모든 전례에서 교회의 위대한 보호자인 성요셉의 이름이 덧붙여진 것은 환영받을 은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