쾰른은 독일 서부 라인강에 걸쳐 있다
'쾰른(Koln)'이라는
도시명은 로마 제국의 식민지를 의미하던 말인 '콜로니아(Colonia)'에서 유래.
중세 시대인 10세기부터 쾰른은 독일에서 가장 크고 부유한 도시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라인강을 끼고있어 교통의 요충지
직물 공업, 가죽 공예와 금속 세공이 특히 발달
이 시기 쾰른은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였지만, 쾰른 대주교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중세 시대 유럽에서는 성직자도 영지를 소유하며 세속 군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기에
도시가 경제적으로 번영하자 시민들은 더 자유로운 무역을 위해 통치자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려했다
13세기 무력 투쟁으로 대주교를 몰아내고, 자치권을 획득해 자유도시가 된다
쾰른 대주교는 쾰른에서의 정치적인 권력을 포기하고 영적인 지도자로 남게 된다
쾰른 대성당은 157m 높이로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독일의 울름 대성당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높은 성당이다
쾰른 대성당은 신성한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지어졌다고 한다
쾰른이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1164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밀라노에서
전리품으로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유골이라고 전해지는 유골을 가져왔다 .
동방 박사는예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팔레스타인 동쪽에서 온 이방 출신들
이 유골은 대주교가 통치하는 쾰른으로 넘겨졌고,
1248년 쾰른 대주교는 유골 보관을 위해 쾰른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덕분에 쾰른 대성당은 유럽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순례지 중 한 곳이 됐다.
쾰른 대성당은 로마카톨릭교회의 성당이다
자금 부족으로 16세기부터 약 300년간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
이후 쾰른이프로이센으로 편입된 19세기 들어 사람들은 다시 중세의 역사와 고딕양식 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주도로 재건이 추진된다
쾰른 시민들은 대성당 공사를위해 기부금을 냈고, 정부도 일부 비용을 지원했다
그리고 마침내 1880년 쾰른 대성당이 완공된다
완공 당시 이곳은 미국의 워싱턴 기념탑이 완공된 1884년까지 4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쾰른 대성당도 14번이나 공습을 받았다
쾰른 대성당의 쌍둥이 첨탑은 눈에 잘 띄어서 표적물로 삼아서이다
이때 파손된 부분은 1956년 복원이 완료됐어요.
쾰른 대성당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는데
'인류의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드문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동방 박사의 유해를 담고 있다고 전해지는
성당 안의 황금색 유골함은 중세 황금 세공 기술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힌다.
③쾰른 대성당 안에 있는 동방 박사의 유골함/펌/위키피디아
고딕양식의 첨탑의 높이가 150m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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