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나온 영화 상하이의 불나비에서 배호가 희미한 가로등이란 주제가를 불렀다. 가사를 요약하면 님 없는 거리 별 없는 거리에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은 괴로운 가슴에 스미는 바람을 안고 희미한 가로등이 역에서 운다는 내용이다.
가수 남상규의 가로등이라는 노래는 밤 깊은 로터리에 쓸쓸한 가로등이 외로운 그림자만 울려주는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이 밤을 어디서 새울까라는 방황하고 고독한 내용이다.
진미령이 부른 소녀와 가로등이란 노래도 별 하나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 창백한 가로등불만이 슬픔에 지친 소녀를 달래준다는 내용이다. 또 함중아의 안개속의 두 그림자라는 노래도 자욱한 안개 속에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 쓸쓸한 두 그림자가 마지막 작별의 손을 잡고 떠나보내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가로등은 방황하고, 외로워 쓸쓸하고, 창백하고, 상처입고 헤어지는 분위기에 딱 알맞은 조명시설인 것 같다. 이왕이면 안개 속에 뿌옇고 희미한 가로등불 아래로 바바리코트를 입은 청년이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는 소녀를 떠 올려보는 것도 한층 청승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서울 지하철 3호선이 수서역에서 가락시장역을 지나 오금역까지 연장된 것은 2010. 2 월이었다. 개통 전에는 강남구 수서동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송파구 가락시장까지는 광평다리를 걸어서 넘어 다녔다. 탄천을 가로지르기 위해 건설된 광평다리는 본격적인 차도로 바꿔지면서 가로등부터 최신식으로 꾸며졌다. 머리에 삿갓을 쓴 유선형의 쌍 가로등이 초입에 서있고 다리위에는 외 가로등이 각기 방향을 달리하여 조화롭게 서있다.
그런데 슬픈 이별의 가로등이라는 생각을 하고 보면 이 가로등을 설치한 기술자는 상당히 문학적인 것 같다. 초입에 서 있는 가로등은 쌍 가로등이지만 서로 등을 대고 서 있다. 그리고 다리 위로 올라가면서 외 가로등이 하나는 왼쪽 그다음에 오른쪽으로 서있는 데 두 청춘 남녀가 헤어져서 따로 따로 걸어가는 모습을 연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 쌍 가로등은 요즘은 새벽녘에 일을 하는 청소원들, 또 박스를 주워 담은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에게는 다리를 건너기전에 잠시 쉬어가는 쉼터가 되고 있다. 가로등이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일종의 기준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가로등은 낮이나 밤이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부나 한결같이 그 곳에 서 있는데 오가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의미를 붙이고 편의를 위해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들도 잠시 내려앉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다. 비바람이 몰아쳐 지나가도 끄떡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다. 이렇듯 가로등은 말없이 서 있는데 이곳에 갖은 의미를 붙이는 사람들을 보고는 어떤 생각을 할까.
데카르트의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의미다. 즉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뜻이다.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동안 의심하고 있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다라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생명을 가진 인간의 자아에 대하여 한 말이지만 가로등 같은 무생물은 과연 생각을 하기나 할까.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 이렇게 갖다 붙이면 말이다. 하기야 가로등이 생각한다고 갖다 붙이는 사람의 궤변이고 말장난일 것 같다. 안개가 끼면 희미하게 퍼져 보일 뿐이고 밝기는 30 룩스 정도로 고정적인 것이다. 가로등으로서 존재하고 있을 뿐인데 생각을 한다고 연상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인위적인 말이라는 뜻이다. 가로등은 그냥 가로등일 뿐이라는 말이다.
중국의 유신이 노자의 화광동진을 설법하면서 제자들에게 “삼십년 전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보았다가 수도를 한 후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게 보았는데 이제 휴식을 얻고 보니 산은 산이고 물이 물이더라” 라고 했다. 이 설법 중에서 성철스님이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라는 말을 인용했다. 성철스님의 법어는 외부세계나 자연을 주관의 작용과는 독립하면 사물이 존재한다고 관망하는 태도를 획득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평범하게 생각하면 산이나 물을 보고 이런 말 저런 말 갖다 붙이지 말고 그냥 쳐다보면 산은 산으로 보이고 물은 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사색해보면 산이나 물이나 우주에서 창조될 때의 성분은 같은 원소일 것이므로 산이나 물이나 서로 같다 라고 보지만 여기까지는 주관이 개입된 단계이고 그 단계를 초월하여 주관을 독립시켜 존재를 관망하는 태도를 얻게 되면 비로소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뜻인 것 같다. 다만 이 경지에 이르면 처음에 산이 산으로 보일 때와는 달리 마음이 한없이 즐겁고 화평하게 된다는 것이다.
보통사람도 마음의 평정을 취하게 되는 날은 꽃이 아름답게 보이고 똥은 냄새가 지독하여 더럽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눈에 기쁘게 보이거나 코에 냄새가 나서 더럽게 생각나거나 간에 그대로 보고 있다가 꽃이나 똥이나 우주에서 같은 원소로 만들어진 물질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꽃이 똥으로 보인다는데 어찌 혼란이 오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다가 꽃을 보는 시각을 없애서 주관적 아름다움을 버리고 똥냄새를 맡는 후각을 없애서 지독한 냄새를 맡지 않는다면 비로소 꽃이 꽃으로 똥이 똥으로 보이면서 마음이 지극히 평화로워진다는 것이다.
가로등이 가로등으로 보이는 것은 그나마 찾은 다행이지만 애잔한 이별이나 외로운 방황 그리고 안개 속에 희미하고 창백한 인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이것들을 머릿속에서 모두 지우고 가로등을 보고 어화둥둥 노래 부르며 따뜻하고 평화로운 마음가짐을 배울 수 있는 길은 진정 요원한가.
(2016. 7 백우 정진철 씀)
첫댓글 一切唯心造일세 백우선생~
어린 손자 똥 기저귀 갈아주다 보니 요즘은 냄새도 안나고 구수한것이 물로 보이네. ㅎㅎ
그런데 똥치우고 막상 물속에 들어가서 씻으려고 하다보면 내몸에서 오물이 아니라 피고름이 흘러 나와유
ㅎㅎ
가로등을 보며 데카르트에서 성철스님까지! 깊은사색과 사유를 우리에게준 백우! 고맙네.창희의 거듬도 반갑고!
가로등 쓰면서 가로수 생각했다우~ 같은 집안 이니까 ㅎㅎ
한림원은 노벨 철학상 외등상 추가하라 추가하라 추가하라
어휴 너무 그러지 마세유 ㅎㅎ
백우의 글이 뿌리가 깊구려! 즐감했음다. 그러면서 화두하나 던지리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하면, 사람은 무엇이리까?
창조론이니 무아론이니 암만 생각해 봐도 사람은 사람일뿐 아닐까 ? 다만 주관을 독립시켜 본 것 같은 흉내를 내 본 소리입니다~ ㅎㅎ
"사람의 아들"
계보대루면 신의 애비가 되느니
한편으룬 "son of god" 이라
헷갈리기가 홍길동 집안이로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