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 / 김석수
일 년 열두 달 중 낮이 가장 긴 유월이다. 햇볕이 따사롭다. 낮에 산책하러 가면 얼굴에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낀다. 마스크와 밀짚모자를 쓴 뒤 나간다. 피부가 햇볕에 그을리거나 자외선에 노출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자외선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고 엑스(X)선보다 길다. 우리는 대부분 무지개색으로 알려진 가시광선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랜 세월 동안 다른 동물도 자외선을 볼 수 없을 거라고 여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개미는 인간이 보지 못하는 자외선을 볼 수 있다. 영국인 존 리벅의 《개미, 꿀벌과 말벌: 사회적 곤충의 습성 관찰 기록》(1884)에서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빛을 굴절, 분산시키는 광학 도구인 프리즘을 들고 개미가 모인 곳으로 갔다. 그가 프리즘을 비추자 개미는 갑자기 들이닥친 무지갯빛에 깜짝 놀라서 도망쳤다. 이상한 것은 무지갯빛이 닿지 않는 곳의 개미까지 허둥대며 달아났다는 점이다. 리벅의 눈에 그곳은 그저 어둡기만 한 구역이었는데 말이다. 그 이유는 자외선 때문이다. 그 뒤로 물고기, 새, 순록, 개, 돼지, 파충류 등 생각보다 많은 동물이 자외선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자외선을 볼 수 있는 동물은 생존하는 데 이로운 점이 많다. 몸집이 작은 쥐는 자외선을 이용해서 천적인 새로부터 자기를 보호할 수 있다. 날아다니는 새의 형상이 하늘에 퍼진 자외선으로 도드라져 쉽게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끼를 좋아하는 순록은 자외선을 반사하는 하얀 눈 더미에서 이끼를 금방 알아본다. 새의 깃털에도 자외선이 있다. 조류학자는 자외선을 이용해서 새의 암수를 구별한다. 물고기는 옆구리와 꼬리지느러미에 자외선을 반사하는 무늬가 있다. 주로 수컷이 이 무늬가 많은데 건강할수록 색깔이 진하다.
곤충은 대부분 자외선을 볼 수 있다. 단색으로 보이는 꽃을 자외선으로 촬영해 보면 꽃의 한가운데 독특한 무늬가 있다. 그래서 벌이 꽃을 잘 알아보고 금방 내려앉는다. 벌이 꿀을 잘 찾고 수분을 잘하는 것은 자외선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추흰나비는 암수 모두 흰색으로 보이지만 자외선으로 보면 수컷은 검게, 암컷은 희게 보인다. 해바라기는 우리 눈에는 노란색이지만 자외선을 볼 수 있는 곤충의 눈에는 다른 색으로 보인다.
자외선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독일인 빌헬름 리터다. 그는 ‘빨간색 너머에 적외선이 있다면 보라색 너머에도 그 무언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문을 품고 실험하다가 자외선을 발견했다. 우리 눈의 원추 세포는 자외선을 반사하지만 수정체와 각막은 그것을 흡수한다. 따라서 일반 사람은 자외선을 볼 수 없다. 백내장 수술로 수정체를 들어낸 사람은 자외선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이 자외선을 보면 푸른 듯한 흰색으로 보인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는 유월이면 연못 위로 올라오는 ‘수련’을 그리기 좋아했다. 그의 작품 ≪수련≫에 나오는 꽃은 대부분 우리가 아는 수련의 색과 다르다. 그는 여든둘에 받은 백내장 수술로 수정체가 상했다. 그 때문에 그는 자외선을 반사하는 수련을 신비롭게 그릴 수 있었다. 그의 그림 덕분에 우리는 자외선으로 보는 꽃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자외선도 어찌 보면 색의 한 종류다.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여름에 노화와 주름의 주범으로 자외선을 꼽는다. 지구 온난화로 갈수록 오존층이 얇아지고 햇빛이 강하다. 요즘 외출하려면 미세 먼지보다 자외선 걱정이 크다. 나이들어 피부에 주름이 잡히고 기미가 끼면 원상으로 복원하기 어렵다. 외출하려면 꼬박꼬박 선크림을 바르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써야 한다. 흐린 날씨나 비가 오는 날에도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줘야 한다. 구름으로 햇빛을 가리더라도 자외선은 막지 못한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밀짚모자를 눌러 쓰고 '광주호 호수생태원' 수변 길을 걷는다. 넓은 공원에 수국 망울이 올라오고 길옆에 수련이 하나둘 피기 시작한다. 물 위에 떠 있는 오리가 먹이를 찾아 다니느라 바쁘다. 물 아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자외선뿐만 아니라 내가 볼 수 없는 자연 현상이 많다. 어디든지 전쟁이 없는 세상, 평화로운 일상이 되기를 바란다. 이번 학기에 해외 여행 중에도 '일상의 글쓰기' 수업에 빠지지 않으려고 글을 올렸다. 한 학기 무사히 마치니 감개무량하다.
첫댓글 자외선에 대해서 공부하고 갑니다. 여행 많이 나가신 것 같은데, 한 번도 안 빠지고 글을 쓰셨네요. 모임 때 여행 다녀 온 거 많이 들려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저도 덕분에 자외선 공부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배추흰나비가 수컷은 검게, 암컷은 희게 보인다는 건 새롭게 알았네요. 모네 이야기도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와,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네요. 여행 중에도 글쓰기를 꾸준히한 원장님께 박수를 보냅니다. 짝짝짝!
고맙습니다.
'자외선 연구' 논문을 보는 듯합니다.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외선 뿐 아니라 내가 볼 수 없는 자연 현상이 많다.
오늘은 이 문장에 꽂힙니다.
여행 중에도 빠지지 않고 써 내신 선생님, 대단하고, 또 해내신 것 축하드립니다.
네, 고맙습니다.
과학적 지식을 쓴 글인데 작은아이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듣고 푹 빠져서 재밌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우와, 진짜 신기방기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선생님의 글 읽으며 공부합니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