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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 느낌표, 따옴표 등과 같은 서양에서 유래된 문장부호는
고대희랍에서 유래되온 여러 구두점들을 중세시대때 이탈리아의 유명한 인쇄업자 가문인 Aldus Manutinus(1547~1597)에 의해 정리되었고 이를 후대사람들이 개정해 사용했습니다.
느낌표같은 경우는 사람이 펄쩍 뛰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물음표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비유해서 사용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며 혹은 그밖의 여러 의견들이 많습니다만
실제로는 희랍에서 다양하게 나타내던 구두점들이 후대에 문장 부호로서 정리되어지면서 결정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래 답변에서)
ziq927 (2003-06-23 02:02 작성)
문장부호는 넓게는 구두법에 속하는 것이다. 글을 일정 단위마다 끊어 읽거나 쓰는 방법을 구두법(句讀法)이라고 한다면 (구두)점찍기나 토달기나 띄어쓰기나 모두 구두법을 이루는 하위 방법들이 된다.이는 곧 '구두법'과 '구두점'을 구별한다는 뜻으로 구두점은 구두법의 한 방법으로 구체적인 점 내지는 점찍기 방식을 말한다.
구두점(句讀點)은 표점(標點), 월점, 머무름표, 정류부(停留符) 등으로 불리는데 역사적으로 원래 중국에서 문장 마침표인 구점(句點)과 문장 중간 쉼표인 두점(讀點)을 함께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문장을 읽을 때 끊는 작용만을 하는 한문의 읽기 개념에서 나온 부점(附點)이다.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마침표.쉼표 외에
서양 작문법에서 유래하는 물음표,느낌표,따옴표 등의 다양한 문장부호도 가리켜 '문장부호'란 용어와도 상통하여 쓰인다..이러한 구두점은 띄어쓰기의 끊는 기능과 같은 가치를 지니므로 띄어쓰기의 선구적 방식으로 볼 수 있다.
구두법의 역사는 불확실하나 중국은 갑골문(甲骨文) 일부에 전하는 문단 구분선인 '계획'(界劃) 이라든가 일부 명문(銘文) 자료의 꺾쇠 부호, 죽간(竹簡)의 단락 부호 등이 원시적 분단부호(分段符號)를 보여 주며, 서한(西漢) 시대 자료 중에는 , , , ▲ 등의 부호를 사용한 예도 있다. 그후 꺾쇠( ),모점( ),권표(圈標, ) 등도 한대(漢代) 이래 일부 쓰였으나 바닷물같이 많은 중국 문헌에서 이런 부호가 쓰인 것은 바닷물 속의 좁쌀 한 알에 불과하다고 한다(관민의 1994:29).
대체로 중국 고문헌에서 구두 부호들은 (1)원저자가 쓴 경우, (2)초록으로 옮겨 적을 때 쓴 경우,(3)읽는 사람이 첨가한 경우로 나뉘는데 근본적으로 (1)(2)의 경우는 절대 다수의 고서들이 구두 부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었다. 쉼표와 마침표 기능의 구두점이 책의 출간시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송대(宋代)부터라고 하는데 마침표인 구점(句點)은 글자 옆에 찍고, 쉼표인 독점(讀點)은 글자 중간에 찍었다고 한다. 이 원리는 바로 '용비어천가'에도 나타난다.
그후 현대에 와서 서양 문장부호 개념이 전래되면서 5.4 운동기부터는 문장부호가 실용화되었다고 한다.
서양의 경우 외국의 사전들이 영어의 punctuation을 정의하는 곳에서도 확인된다. punctuation은 '점'(point)을 뜻하는 라틴어의 punctus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단어다. 가령, '브리태니카 백과사전'(The New Encyclopaedia Britannica) 권29의 'Writing' 부분의 'punctuation'(pp.1007-9)항목 서두에서 'Punctuation is the use of spacing, conventional signs, and certain typographical devices as aids to the understandig and correct reading,both silently and aloud,of handwritten and printed texts.'라고 하여 분명히 구두법 안에 문장부호는 물론 띄어쓰기(spacing) 개념까지 포함하여 정의하고 있다. 또한 크리스탈(D.Crystal,1987:205)의 언어학 백과사전에서도 'punctuation' 안에서 문장부호와 함께 'space'까지 포함하여 예시하고 있다.
구두점은 동서양문화권에서 자연스럽게 씌여져 왔구요.이것이 문장부호의 모태가 됩니다.마침표와 쉼표의 경우는 동서양 공통으로 씌여졌고(구두점들의 정리) 물음표, 느낌표는 서구문화권에서 나온 거라 합니다.
물음표, 느낌표, 따옴표 등과 같은 서양에서 유래된 문장부호는
고대희랍에서 유래되온 여러 구두점들을 중세시대때 이탈리아의 유명한 인쇄업자 가문인 Aldus Manutinus(1547~1597)에 의해 정리되었고 이를 후대사람들이 개정해 사용했습니다.
느낌표같은 경우는 사람이 펄쩍 뛰는 모양을 나타내는 것으로 알고 물음표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비유해서 아님 그밖의 여러 의견들이 많습니다만
실제로는 희랍에서 다양하게 나타내던 구두점들이 후대에 문장 부호로서 정리되어지면서 결정된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내용출처 : 민현식씨의 부호 최종
prettykke (2002-12-14 21:39 작성)
마침표는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야 출현했다. 그 이전에는 구두점들이 개인적 취향에 따라 변덕스럽게 사용되어 왔었다. 오랫동안 서기들은 온갖종류의 기호와 상징들을 구두점으로 사용해 왔다. 어떤 이는 그냥 한 칸을 띄워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점을 여러개 찍거나 사선을 긋기도 했다. 8세기에 이르러서는 지금의 마침표와 같은 점이 쉼표와 마침표로 동시에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566년 베니스의 위대한 인쇄업자의 손자인 알두스 마누티우스가 자신이 쓴 구두법 안내서에 세계 최초로 문장의 끝이 지니는 의미와 역할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마침표를 썼다. 아이삭 바벨은 이 마침표의 업적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그 어떤 쇳조각도 올바른 자리에 찍힌 이 마침표처럼 우리의 가슴을 찌르지 못했다."
알베르토 망구엘도 "독서의 역사"에서 이런말을 했다.
"언어가 지닌 힘과 무기력함을 깨닫게 해주는 데 있어 이 충실한 작은 점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1831년 역사소설로 유명해졌지만 많은 시간 을 시작에 몰두했다.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활발히 활동하다가 나폴레옹 집권 후 나라밖으로 쫓겨나 19년 동안 망명생활을 했다. 그동안 위고는 틈틈이 을 썼고 마침내 1862년 출판업자에 게 원고를 보냈다. 책이 출간되자 위고가 출판사에 보낸 세상에서 가장 짧은 내용의 편지는 유명하다.
? 독자들 반응에 대한 궁금증을 물음표 하나로 표현한 것이다. 이에 출판사 사장은 느낌표(!) 하나뿐 인 답장을 보냈고, 위고는 그걸 보고 매우 기뻐했다. 이때의 느낌표는 작품이 감동적이라는 뜻도 되고, 깜짝 놀랄 만큼 반응이 좋다는 의미도 되는 까닭이다.
그런데 느낌표는 어떤 유래를 가진 기호일까?
느낌표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어떤 이는 어려운 문제로 고민하다가 문득 해답을 찾아 기뻐할 때 펄쩍 뛰어 오른 사람 모습을 간략히 나타낸 기호라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뭔가에 부딪쳐 깜 짝 놀랐을 때의 얼굴과 입 모양을 표현한 기호라고도 주장하고, 농담 삼아 대변 볼 때 모습을 나타낸 기호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느낌표(!)는‘기쁜 탄성’의 뜻으로 사용된 라틴어 감탄사(혹은 의성어) 이오(io)에서 유래된 말이다. 다시 말해 느낌표는 감탄할 때 외치는 소리 ‘이오’‘오’‘와우’등을 나타낸 라틴어 이오(io)를 변형시켜 세로로 된 하나의 기호로 만든 것이다
느낌표는 라틴어에서 Φ형태로 쓰이다가 영어에 들어와 느낌표(!)로 바뀌었다. 느낌표(!) 기호는 15세기 영문서적에서 처음 사용되었고 독일에서는 1797년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쓴 에 처음 등장 했다. 앞서 언급한 위고가 출판사와 편지를 주고받은 게 1862년이니 그때쯤 유럽에서 느낌표가 널리 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07년 백악춘사가 쓴 에서“아아! 내 세상은 진실로 눈물이 많았도 다!!”라는 감탄문에 느낌표가 쓰였고, 1914년 10월 발행된 잡지 의 시계점 광고에서 다음과 같 은 내용의 느낌표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물음표(?) 기호는 어떤 모양에서 유래됐을까?
물음표는 동양에서는 사용하지 않던 부호로 서양에서 만들었다. 현재와 같은 형태의 물음표는 본래‘… 을 찾는’이란 뜻의 라틴어 퀘스티오(quaestio)에서 비롯됐다. 중세 유럽 수도원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연 구하면서 문장의 속 깊은 의미를 전하려 애썼는데, 종종 신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신자의 질문은 곧 신학자의 문제가 되었던 바, 이에 연유하여 퀘스티오라는 말은‘질문’‘의문’‘물음’‘문제’라는 뜻 으로 통했다. 그리고 질문이 있을 때마다 문장 끝에 퀘스티오를 쓰자니 매우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 서 퀘스티오의 머리글자를 대문자 Q로 쓰고 이어 꼬리글자 o를 붙여 간략하게 표기했다. 그러다가 아 예 Q자 아래에 o자를 붙여 하나의 글자로 썼고 마침내 물음표(?) 모양으로 바뀌게 됐다
고대 그리스 학자들이 의문부호로 사용한 세미콜론(;)의 위아래를 뒤바꿔서 물음표(?) 기호를 만들었다 는 학설도 있지만 전자의 설이 유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물음표(?) 기호는 20세기부터 사용했다. 1914년 10월 발행된 잡지 에 보면 어느 기인을 설명한 본문에서“웬 사람이니?”“…망하여도?”등의 의문문에 물음표를 썼다. 이때만 해 도 물음표는“들어오너라?”처럼 느낌표가 어울릴 문장에도 감탄문 기호로 더불어 쓰였으나 점차 의문 문에 국한된 기호로 자리매김했다.
1933년조선어학회 에서다음과 같이 설명했는데, 그 원칙은 지금도 적용되고 있다.
‘? 의문을 나타낼 적에 그 말 다음에 쓴다.’
오늘날 물음표는 의심이나 의문을 나타낼 때 혹은 빈정거림이나 비웃음을 표시할 때 사용되고 있다.
https://naver.me/FqHqEJrV
요약하자면 이렇다. 천 년이 넘도록 인류는 구두점 없이 문자를 사용했다. 고대에는 1회독으로 글을 읽어내는 건 상식이 아니었다. 독자가 글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며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구술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글보다는 언변과 수사가 중요하게 여겨졌다.
기원전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사서 아리스토파네스가 휴지의 점을 개발했으나 로마 시대에 사라졌다. 스피치 중심이었던 로마인들과 달리 박해받던 기독교인들은 글을 중시했고 글을 통해 기독교를 전파했다. 이게 6세기다. ("Whereas pagans had always passed along their traditions and culture by word of mouth, Christians preferred to write down their psalms and gospels to better spread the word of God. Books became an integral part of the Christian identity, acquiring decorative letters and paragraph marks (Γ, ¢, 7, ¶ and others), and many were lavishly illustrated with gold leaf and intricate paintings.")
Incipit page of St John's Gospel, beginning with decorated initial 'I', showing the evangelist writing his gospel. Bible ('The Arnstein Bible'). Germany [Arnstein]; 1172. Source: Harley 2799, f.185v. Language: Latin. Author: Lunandus.
7세기에는 isidore라는 성인이 아리스토페네스의 점 표기를 되살리고 처음으로 의미를 부여했다. (period이 문장 끝을 나타내는 것처럼) 곧이어 어려운 라틴어에 지친 아이리시 스코티시 수도승들이 띄어쓰기를 도입했다. 12세기: 이탈리안 라이터 Boncompagno에의해 slash (/), dash(-) 개발되었다. 15세기 르네상스에 이르러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구두점들이 상용화되었다. 특히 요하네스 구텐버그 성경과 프린팅의 개발로 더욱 이 기호들이 완성된 체계로 자리잡게 되었다.
-comma, periodo, colon은 원래 speech를 분절할 때 그 구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우리나라의 구두점 수입:
"구점(.)과 두점(、)을 형태상으로 구별하여 사용한 것은 1910년 이후였으며, 영어문법을 통하여 들어온 서양의 구두점이 국어문법에 적용되면서 종류가 많아지고 체계가 서게 되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구두점(句讀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