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
“내가 아이한테 해 줄 것은 음...... 그림 바꾸어 주는 것하고, 이불, 커텐, 에어컨, 그리고 도배.” 수서역으로 아들을 배웅하러 나온 지 애비(내 동생)한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해주었다.
“지금은 고갱이 그린 사모아 여자들의 그림이 걸려있거든. 그 여자들이 애 기(氣)를 뺏아갈까 봐서.” 나중에 아이 보고 고르라고 했더니, 아이는 고호의 “아를의 방”(혹은 “고호의 방”)을 골랐다. 진품은 아님(20만원 대).
두꺼운 (목화솜) 이불을 틀어 얇은 이불을 만들었으며 그 중 한 채를 아이한테 주었다. 커텐은 거실에 다는 것을 가리킨다. 에어컨도 그렇다. 나는 그 동안 에어컨 없이 지냈다. 조카 아이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나는 요번 여름도 커텐 없이, 에어컨 없이 지냈을 것이다.
그리고 도배. 도배는 작은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쓸 방은 아버지가 쓰시던 방인데, 벽지가 군데군데 누렇게 바래있다. LED등으로 교체한 후 천장에 작은 구멍이 뚫려있기도 하다. 그래서 도배하는 사람을 부르기로 하였다. 그런데, 삼례의 ‘우정종합장식’에 물어보니, 도배사를 부르면, 무조건 일당 20만원을 줘야한다고 한다. 도배지 값은 얼마 들지 않으니, 도배사를 부르는 김에 다른 방도 같이 작업을 시키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맞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 — 큰아빠와 조카 — 는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의논을 하였으며, 이참에 큰아빠방(안방)까지 도배를 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계획에 없던 엉뚱한 일을 하게 되었지만, 이 엉뚱한 일은 정말로 큰일이었다. 안방에는 책상 두 개와 책장 세 개, 돌침대, 그리고 문제의 세 짝짜리 장롱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죽을 힘을 다해 책상과 책장, 그리고 물론 책, 또 돌침대를 거실과 부엌, 빈방으로 내왔다. 나는 이 때 이미 힘이 다 빠졌으며 이렇게 일을 키운 것을 후회하였다. 그러나 아직 장롱이 남았다. 그것은 내갈 수가 없다. 우리는 우선 장롱을 세 짝으로 분리하였으며, 한 짝씩 살살 옮겨주면서 도배 아줌마의 작업을 도왔다. 그렇게 일을 하는 중에, 어렵쇼, 장롱 모서리에 찍혀 장판이 한 군데 찢어져버린 것이 아닌가? 장롱 속에 든 것은 물론 다 꺼냈는데도 엄청나게 무거웠다. 어떻게 한다? 우리는 다시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의논을 하였으며, 최종적으로는, 도배 아줌마의 만류를 무릅쓰고 장판까지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아이의 방까지 장판을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다. 안방으로 도배 영역을 확대한 것과 같은 이유였다. 교체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뚜렷한 이유는 없었지만, 우리는 두 방의 블라인드까지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다.
제일 애를 멕인 것은 역시 장롱이다. 이제 장롱을 살살 옮겨가면서 장판까지 교체를 해야 하지 않는가? “못해낼 걸!” 나중에 들어보니, 아이의 어머니(나의 제수)가 아이한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안 될 거라는 것이다. 십 여년 전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내려올 때, 아이의 어머니가 그 장롱을 선물하였기 때문에 잘 아는 것이다. 우선 세 짝을 분리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항상 그렇듯이 한 짝이 말썽이었으며, 나사못 한 개가 말썽이었다. 한 개가 풀리지를 않는 것이다. 큰아빠와 조카는 드라이버를 들고 장롱의 안쪽과 바깥쪽에 서서 그 한 개의 나사못을 붙들고 20분 이상 땀을 뻘뻘 흘리면서 씨름을 하였다. 급기야 나사못 대가리의 홈이 뭉개어졌다. 억지로 힘을 쓰니 그렇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한다? 이 모든 일을 중간에 포기해야 하나? 중간에 포기한다는 것은 어떻게 한다는 거지? 이번에 알았는데, 나사못 대가리의 홈을 ‘야마’라고 부른다고 한다. “야마 돈다”는 말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된다. 아이를 남겨놓고 나는 아파트 관리사무소로 내려갔다. 사정을 설명한 후 전동 드라이버를 비롯해서 전동 드릴, 엄청나게 큰 뺀찌 같은 것, 심지어는 쇠톱까지 들고 올라왔다. 친절한 기사 아저씨 한 분도 같이 올라와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하나도 필요 없었다. “아드님이 해결했어요.” 도배 아줌마가 말했다. 해결했다고? 와, 너 대단하구나? 그렇게 안 돌아가던 것을 어떻게 돌렸다는 거지? 어떻게 어떻게 하니까 됐어요. 아이는 득의양양하게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도배와 장판 교체를 해낼 수 있었던 거다.
장판 교체는 우정종합장식의 박사장이 직접 해주었는데, 장롱을 옮기는 일은 박사장과 아이가 도맡아서 하였다. 내 역할은 약간 거드는 것에 불과하였다. 박사장이 짜증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 보통은 아무런 가구도 들어와 있지 않은 빈방에서 작업을 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박사장이 그 정도로 짜증을 내는 데에서 그친 것은 아이 때문이다. 아이가 말귀를 잘 알아듣고 고분고분할 뿐 아니라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힘도 셌기 때문이다. 나는 박사장이 “뷰는 좋네요”라고 말하였을 때, “힘은 좋네요.”라고, 아이를 가리키면서 말하는 줄 알았다.
커텐 걸이를 벽에 달 때의 일이다. 이것도 녹록치 않았다. 벽이 너무 단단해서 문제가 된 것이 아니라 너무 물러서 문제가 되었다. 나는 포기하고 출근하였는데, 퇴근해서 보니, 아이가 또 혼자서 그것을 붙들고 씨름을 하고 있었다. 어디에서 찾아내었는지 순간접착제까지 동원하여 커텐 걸이를 벽에 붙이려고 애를 썼다. 지 애비를 빼다 박았다. 어렸을 때 지 애비는, 누가 일을 시키면, 자기를 믿고 일을 맡긴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그야말로 어떻게건 일을 해 내었다. 예컨대, 통행금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술 사오라고 시키면 이상하게 사왔다.
이렇게 해서 도배와 장판 교체는 끝났다. 가구와 물건들을 제자리로 돌리는 일이 남아있었는데, 나는 그 일을 마치지 못하고 출타하여야 하였다. “일을 끝내지 못한 채로 의리 없이 혼자 나가네.” 내가 이렇게 말하자 아이는 “진작에 나가셨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같이 해 주셨잖아요.”라면서 나를 봐주었다. 아이는 이 일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하였다. 아이는 남은 방과 거실까지 새로 도배를 하고 장판을 교체하고 싶어 하였다. 아이 말을 듣고 지 애비가 그 비용을 나한테 보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신중하게 의논을 하였으며 추가 작업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였고 그 돈으로 에어컨을 사서 달기로 결정하였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며,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3월 중순경의 일이니 벌써 두 달이 되었다.
너무 힘들었고, 또 지금 생각해 보면 상당히 재미있었다. 일종의 운동회였다고 할까? 체육대회였다고 할까? 내가 대학교에 입학한 그 해, 아마도 이 때쯤의 일이다. 체육 시간을 이용하여 반(班) 대항 축구대회가 개최되었다. 우리 반이 우승을 하였는지, 성적이 좋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것은, 축구 경기 몇 게임을 한 후, 반 아이들이 급작스럽게 친해졌다는 사실이다. 그 전에는 대체로 서로 대면대면하였으며 심지어 존댓말을 쓰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이야, 세상이 우리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다. “못해낼 걸......” 내가 조카와의 동거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성경재 사람들과 학교 동료들이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하여 내 친구들한테도 털어놓고 있는 중이다. 조카도 자기 친구들한테 이야기하였을 것이다. 두 사람의 동거인은, 동거를 통하여 달성하고자 하는 특별한 목적도 가지고 있지만, 그 이전에,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일차 목표로 하고 있다. “쉽지 않을텐데......” 그러나 우리는 그 힘든 도배까지 잘 해냈지 않았니? 팀워크도 어느 정도 다졌고......
첫댓글 큰아버지와 조카!
충분히 화목하신 것 같고,
one team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영태교수님은 한팀이라는 미명하에 대를 이어 동생 부자를 부려먹네...
놀부형과 흥부동생 아들이 동거 생활..아이구 이거 어째야스까나~ 잉 ㅎㅎ
Oh one team? yeah. 멋진 표현이군. 놀부형, 흥부동생? 기발한 착상이군. ㅎㅎ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