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한 편의 영화는 '사극'이기 앞서서, 잘 만들어진 정치 선전물
로 여겨졌다. '신라'의 상징에 파란색을 넣는 의도와, '당'나라에 미국을 연상시키게 하려는
이유는 분명했다. 이 영화는 과거에 '한-미 동맹'으로서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던 중세사 해석
을 뒤집고, '반미(反美)'의식을 중심으로 영화를 바라보도록 역사재해석한 것을 대중화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또, 이 영화가 여러 장면에서 두들기는 게 있는 데, '유교적 충의(忠義)관' 이
다. '화랑도'에 담긴 '호국불교'적이면서 일면 '유교적'인 측면이 조롱됨과, 계백장군의 명분의
식을 조롱하고 '거시기'의 진솔한 귀환으로 끝맺는 장면에서, '국가주의' 자체도 이 영화의
정치성이 의도하는 '타켓'이 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씨족제'의 분화 상태를 함의하는 중세
국가를 상징하면서, 중세국가의 더욱 더 씨족제적 분화상태의 면모를 그리려는 면모는, 마르
크스주의적인 가족관을 존중하는 '여성계'의 호주제폐지와 논리적으로 모순되지만, 실제적으
로는 잘 연결된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을 이어주는 면모를 파괴하기 위해서, '씨족제' 풍습을
살리는 부분이 유리한 곳에서는 살리고, 죽이는 게 유리한 곳에서는 죽이는 것이다. [황산
벌]은 한편의 코메디 역사극이기 앞서서, 현실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여 '반미친북좌파(反
美親北左派)'정치에 편을 들어주려는 편향성을 보이고 있다. '리터러춰(literature)=현대문학'
을 신봉하는 문학평론가들은 '역사극'으로의 편향을 현실로부터의 도피로 해석할 것이나,
[황산벌]을 본 사람들은 그러한 규정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한국 현대 역사 소설의 주류
도, 역사극의 현실반영과 현실참여가 뚜렷했다. 물론, 아시아적 가치의 긍정성을 추구했고,
[황산벌]은 아시아적 가치의 부정성만을 쫓아다녔다(그렇다고, 서구적 가치에서도 그렇게 긍
정적이 될 수 없는)는 점에서 결정적 차이를 갖는다.
영화 [황산벌]은 1970년대적인 민족주의(대한민국주의)를, 1980년대의 좌파논리로서의 격파
하는 한 편에 완성된 정치물이다. 그렇다면, 1980년대에 대학가를 다닌 사람이 1970년대 논
리의 독주가 사라지길 바랬던 것처럼, 이 시대의 젊은 사람들은 1980년대에 바르게 살아간
듯한 것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는 세력이 망하길 기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이치일 것이다.
1970년대적인 인식의 틀에 대한, 1980년대적인 좌표로서의 대중문화정치로서의 총공격이,
'애국(愛國)'에 대한 조롱조로 나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나는 과거의 인식의 틀이 2003년과
다를 수 있음을 진심으로 인정한다. 세계의 공산집단이 멸망하고 난 2003년의 입장의 독자
성을 인정하기 위해서, 과거의 과거적인 사고 한계를 인정한다는 말이다. 이 글은 1980년대
변혁사상의 전형성의 '매국적 성향'에 대하여 성찰해 보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는 1980년대
의 그 시대의 독자성에 폄하하려는 뜻이 전혀 없다. 그러한 사고가 일반인들의 '애국심'이
훼손되길 바라는 문화정치에 연결될 수 있다면, 일반인의 상식 수준에서 그러한 사고는 '매
국적 지향성'이 있다고 봐야 된다는 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 한국 사회의 레닌 귀신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주의'를 강화하고 높였다는 측면에도 불구하고, 세심하게 관찰하
는 후대인들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고 또렷한 '전향한 좌파'출신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와 혁명과 나](조갑제 해설, 지구촌, 1997.)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강철민
역, 새날, 1993.)과 제목에서 분명한 연속성을 갖는다. 1990년대 이후에는 서구 지식인들의
한국 경제 분석은 멸망한 소련의 낙후된 경제 구조를 설계한 디자인과 똑같다는 염세론이
유행했었다. 생활인의 체험 범위 내에서는 서구 지식인들의 주장은, 분명히 헛소리이다. 레
닌은 소련 공산당의 우두머리이고, 박정희대통령은 대한민국주의를 드높인 인물이기 때문이
다. 또, 다른 나라 경제 문화를 좋아하는 이들이 자국(自國) 이기주의 관점에서, 성장 가능성
이 높았던 한국경제에 견제 심리의 발언이라고 보기 쉬웠다. 그러나, 오늘의 이 시점에서는
박정희대통령의 '5.16 정신'에서 좌파로부터 이어진 부분은, 분석을 통해서 솔직하게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만이 우파 정치가 어설프게
좌파 이념을 포함하려는 황당한 질긴 악습을 끊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로
등 전부 꺼진 길에서, 빠른 공을 던지는 것을 받아내야 하는 포수의 입장보다도 모호하게,
우파 군중들이 신뢰하기 때문에 명백하게 좌파 이념을 포용해야 하는 악습(惡習)을 끊지 못
하면, 우파 정치 실종의 사실상의 전체주의 사회(우파 정당에 소속된 좌파정치와 좌파정당
의 좌파정치만 존재하는)를 맞아들여야 할 지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 공산주의는 계급의식을 분명히 하고 있으면서도, 그 계급의식을 앞서 있는 것이 '민족
의식'이었다. 이 도식은 북한공산집단의 영향을 받은 국내의 좌파 문건에서도 일관되어 있
다. 식민지 시대의 공산주의자들에게는 '항일운동' 차원의 독립운동에서 선택되었다고 봐야
된다.(제4차 조선공산당 당원의 입당동기 표 참조, 신복룡, [한국분단사 연구], 한울아카데미,
2001. 276쪽.) 일제 시대 까지만 해도 '공산주의자'에 대한 장벽은 매우 적었다고 본다. 물론,
대한민국 건국과 더불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었던 국가적 차원의 '반공주의'를 국가정
치적 오명으로 돌리는 좌파적 용법에 동의할 수 없다. 일본인을 적대적으로 겨냥하고 식민
지 시대 주민내부가 뭉치던 상황에서, 식민지 시대를 공산주의자로 살아가면서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해소될 수준까지, 평범하게 살아간 일상인들을 식민지 시대의 공산
주의자들의 공식에 짚어 넣은 것은 명백하다. 힘없는 일상인들에게 피해의식을 느끼는 공산
주의적 대중들의 욕망을 분출하게 만들고, 그렇게 정치적 의도를 달성해 나가는 세력에 대
하여, 해방 이후의 정치적 혼란기에서 그들의 강렬한 반(反)인권성에 상응하거나 때에 따라
서는 몇 배 더 능가하는 상황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 좌파의 잔혹상만 나왔던 내용을 불신
하라고 유도했던 그들이 제시하는 우파의 잔혹상에 대한 홍보는, 처음부터 사회혼란을 자행
하는 공산세력에 반대할 목적이 있었던 우파의 그것보다 불신(不信)을 만든다.
1980년대 대학가에서 '부르주아적'이라고 호칭하면서 학생운동세력이 근절해야 될 삶의 방식
이라고 유도했던 것은, 식민지 시대를 항일의식으로 견뎌낸 공산주의자들이 민족 내부에 적
개감을 돌리면서 행동하는 그 전략 그대로이다. 최근에는 80년대 대학가의 공식을 '**권력'
이라는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살아있음을 알리는 것으로 보인다. 10대들의 생활 스타일로는
'이지메'와 '왕따'와 연결된다. '이지메'와 '왕따'를 하면서 "너, 좀 고쳐 줄려고"라고 하는 수
준을 말한다. 정상적인 사고 능력이 있는 이들에겐, 이것은 '진보'도 '좌파'도 아무것도 아니
라, 인간성을 경멸하는 속물의식의 정략적 사용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각급 학급에서 어떤
이들만 골라서 '왕따'와 '이지메'를 하라고 하는 직업적 세력이 있고, 그 세력도 조직화되어
서 '왕초'가 있다면? 그리고, 그 '왕초'의 조정에 의하여 학교의 통제력이 정지가 되고 나라
의 통제력도 정지가 된다면? 결국, 한국 사회에서 레닌주의는 극소수에게만 드러날 뿐 실제
적인 면모는 대중 앞에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대중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
중에서, 특정한 모티프의 반복이 있을 때에, 대체로 레닌주의에 경도된 세력이 집단에 영향
을 주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사실도 그러할 때가 많다.
박정희 대통령의 행동은 '대한민국주의'를 바르게 세웠다는 측면의 명백한 우파적인 측면에
도 불구하고, 권력의 쟁취 측면에서는 분명하게 레닌주의의 영향이 있다. 해법을 위에서부터
정치지향적으로 과격하게 이행한다는 측면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5.16 혁명론'에서의 '혁명'
어휘의 한쪽은 레닌주의가 끼어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에, 1960년대 초반에 대다수를 낙담시
키는 사회의 좌경화 현상을 애써 눈감고, 좌파적인 논리가 옳지 않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1960년대 초반의 사회에 퍼진 좌경화정신은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레닌주의'에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전향한 좌파 측면에서의 인식론적 한계성이 있지만,
대한민국주의를 바로 세움이 주목되어야 한다는 차원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쿠데타적 사건
론'이 아니라 '반정(反正)론'으로 5.16을 바라봄이 우파 중심의 해석으로 안다.
대한민국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목적이 명백하되, 레닌주의적 사고 형식을 빌었다는 점을
과장하여, 박정희대통령의 5.16정신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다. 박대통령의 5.16 정신에 담겨진
레닌적 사고 흔적이, 우파정치가 계속 좌파에 약점 잡히듯이 끌려가는 듯한 원천이라는 점
을 명백히 하려는 측면이다.
우파도 '변화'를 주장하고 좌파도 '변화'를 주장하는 게, 한국 정치의 일반론이다. 다시 말해
서, 한국 정치는 레닌 귀신의 영향을 아직도 받고 있다는 셈이 된다. 좌파의 정치 주도성을
인정하면서 5.16 정신을 긍정하기 위해서는, 좌파주도의 과격한 요약이 불가능할만큼 세부가
다른 세대에도 경험이 이전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성공했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3. 레닌은 소련 민족의 '이완용'인가?
-인용문 시작-
레닌이 혁명 직전에 시민들에게 약속했던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권력
을 잡기 위한 선동 구호의 나열이었다. 레닌의 "전술은 불만을 품고 있던 모든 집단들이 원
하는 모든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즉, 농민에게는 토지를, 병사에게는 평화
를, 노동자에게는 공장을, 소수 민족에게는 독립을 약속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에
볼세비키의 프로그램에 들어가 있었던 사항은 하나도 없었고", 볼세비키가 집권만 하면 약
속은 즉시 파기될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 약속들은 "집단을 정부로부터 이질화시키는 목적
으로는 그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였다."(김민제, [러시아 혁명의 환상과 진실], 역민사,
1998. 171쪽.)
-인용문 끝-
지역마다 찾아다니면서 좋은 이야기만 하고, 그로 인해서 빚어지는 부작용에 대해서는 우파
정당과 우파 신문, 그리고 그 지지자에게 책임돌리는 어법의 기원은, '레닌주의'영향권이 맞
다. 대다수 군중들은 과정 과정의 합리성을 바라지만, 좌파정치의 먼저 설정된 시나리오 맞
춰진 군중심리 유발과 상황에 따른 말바꿈은, 권력 쟁취와 권력 중심적인 좌파정치의 어떠
한 패턴의 원형을 보여준다. '말바꾸기'와 '포퓰리즘'이라는 우파 정치의 좌파정치 비난은, 비
경제적이다. 그들의 의도가 군중심리 조작을 통한 정치적 목적 달성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것이 가져올 부작용을 홍보함과 포퓰리즘을 의도하는 밑그림을 설명하고, 이건 反민주다 라
고 이야기하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독일공산당의 후원을 입은 레닌이, 소련의 정치 제도에서 쫓겨다니면서 권력을 쟁취하는 과
정은, 세계사적인 상황에 대응하면서 소련의 정치공백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소련은 쿠데타
(공산당쪽은 혁명이지만)를 허락할만큼 잘못한 바 없다. 잘못은 레닌을 진압하는 데 경찰력
이 실패했을 뿐이다.
-인용문 시작-
(중략) 러시아 제국이 붕괴된 원인의 일부는 어이없게도 풍문에 있었다. 수도에서 밀가루와
빵이 부족하여, 배급제를 실시한다는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떠돌았던 것이다.(앞의 책, 181
쪽)
-인용문 끝-
레닌적 지향성을 갖는 군중심리 유도물의 코메디 역사사극이 의도하는 바는, 결국은 '대한민
국'이 붕괴할 수 있음을 알리는 '풍문 형성'일 것이다. 계백의 처가 주장한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는 말에 뒤이어, 거시기가 어머니 역할의 전원주와
포옹하는 장면은, '망국(亡國)'에 대처하는 현명(?)한 삶의 처세인양 계몽하는 효과도 보이고
있다. 여기서, 나라가 망한 쪽은 신라가 아니라 백제라고 주장하여 얄팍한 변명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유교적 가치를 맹폭격한 것은 영화 전반부의 감독과 각본작가의 시각이었
다. 그러나,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겐 이러한 반론이 가능하다. '잇쇼껜메이'식으로 나라를 지
켜야만 하는 것을 옹호하려는 뜻이 없더라도, 그렇다고 대한민국 국민이 전부 '거시기'가 되
어야 쓰겠냐 하는 점이다. '거시기'는 pennis가 정확한 번역어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비루
하고 흔하고 나쁜 것을 의미할 때 남자의 성기를 자주 의미한다. 동방 예의 지국 대한민국
에서 말하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대상의 대표는, 남(여)자의 성기가 대표일 것이다. 한국 사
회 도덕에서 차마 말하지 못하고 말을 얼버무릴 때 채워야 하는 어구임과 동시에, 비루한
하찮은 것의 의미를 동시에 의미하는 '거시기'가 대단해 보이는 사회는, 망한 사회가 맞다.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을 이유도 없고, 이름 없이 '거시기'가 될 이유도 없고, '거시기'도 못
되는 '걸레'가 될 이유는 더더군다나 없다. '잇쇼껜메이'의 상상력을 전제로 하는 '거시기'타
령을 벗어나면, '거시기'의 정략성이 분명히 보인다. 전국민의 가슴에 '애국심'을 제거하려는
의도가 있기에, '거시기'와 잇쇼껜메이논리의 이분법적 사고를 한 듯 보인다.
-인용문 시작-
볼세비키의 승리는 민중의 지지에 의해서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승리 과정도
전혀 민주적이지 못하였다. 볼세비키 당은 주로 지식인들로 구성된 행동주의자 당원이 주류
를 이루었고, 이들은 "소수의 음모자"에 불과하였다. 볼세비키의 승리는 고도로 중앙집중화
된 '혁명 전문가'들의 월등한 조직력에 의하여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소수의 무자비한
당원들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들 자신의 능력에 있었다고 하기 보다는 2월 혁
명 후에 나타난 사회의 혼란에 있었다. (앞의 책, 190쪽)
-인용문 끝-
한국 사회에서 대학가에서 학생운동권들이 세력을 갖추게 된 것은, 최근에 보도된 바로서의
유력한 가능성은 6공화국의 중간평가 무산 때 좌파정치에 맺어진 이면합의가 핵심원인으로
보여진다. 특히, 문민정부이후에 서울대학 중심의 세계적 중심의 인문학 육성이란 이름하에
벌어진 '대학원중심대학론'으로 국가적 차원으로 좌익학문을 양성해 나가도록 허락한 점은,
경제에만 몰두하고 문화는 저절로 되겠지라고 생각한 우파세력의 사고의 착오가 결정적이었
고 좌파세력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박홍총장님의 '주사파'공격 때에 전국적으로
일어난 학생운동권들에 대한 구역질 나는 염증의 토로는, 기억해 봐야 한다.
-인용문 시작-
레닌이 없는 러시아 혁명을 생각할 수 없다면, 레닌의 개인적 도덕성과 정당성은 러시아 혁
명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레닌은 10월 혁명이 일어날
즈음에 많은 의혹을 받던 인사였다. 우선 레닌의 혁명 자금은 제국주의의 온상이었던 독일
로부터 공급되어, 스칸디나비아를 통하여 조달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이 의혹은, 조비
에트 견해에서는 부정하고 있지만, 의혹 정도가 아니라 엄연한 사실이었다. 이 사실은 당시
에 외국에 도피해 있으면서 독일 정부와 공조하고 있던 급진주의자 파루부스와 레닌의 심복
이었던 하네키의 행적을 면빌히 추적해보면 잘 알 수 잇다. 레닌은 파루부스 조직을 통하여
하네키로부터 자금을 받았으며, 어떤 경우에는 하네키에게 일정 액수를 송금해 줄 것을 직
접 요구하기도 하였다. 물론 돈의 원래 출처는 독일이었다. 1917년 3월에 레닌이 가능하면
러시아로 빨리 돌아가기를 결정하였을 때, 그는 다시 하네키에게 자문을 청했다. 이에 하네
키는 독일 정부의 인정 하에 독일을 통하여 행로를 잡을 것을 제안하였다. 레닌은 결국 하
네키의 제안대로 움직였다. (중략) 레닌이 제국주의자 독일의 도움을 받았다는 문헌적인 증
거는 이외에도 많이 남아 있다.(앞의 책, 197-198쪽)
-인용문 끝-
결국, 러시아 혁명이라 불리는 사건은 망할 이유가 없는 자신의 조국을, 마르크스주의 이념
을 실현하는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몇 몇 자신의 파벌과 뭉쳐서 공격하여, 국
가를 무너뜨리고 새 정권을 만든 것으로 기록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에서, 못 배운 사람들
의 감성 동원을 많이 했고 그것이 공수표가 되자, 자유주의를 점차적으로 탄압해 갔고, 다음
지도자인 스탈린에 이르러서는 공포스러운 전체주의로 이르렀다고 파악된다.
마르크스주의를 성서처럼 떠받드는 소련 공산당 어법은 이렇다. "위대하신 동지 마르크스
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위대하신 마르크스 레닌 동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공산당의
권력을 장악한 이들만이 마르크스 성서에 해석권을 독점하고, 그것만이 진실이란 소리이다.
군중심리 조종술에는 분명히 종교적인 요소가 도구적으로 개입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북한
공산 정권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가 있고 불교 신자가 있고 천주교 신자가
있고, 종교를 갖지 않는 무교의 종교가 있다고 본다면, 마르크스주의를 중심으로 한 획일적
신앙 체계는 분명히 억압적이다. 그것을 넘어서서 바라보는 일반론에서는 러시아혁명의 수
준은, <소련 민족의 이완용=레닌>이다.
한국의 공산세력은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덮어쓰고, 그것을 북한정권에 대한 옹호와 대한
민국의 부정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완용에는 내재적 접근법을 안하는 면을 보이고 있다. 물
론, 이완용에 내재적 접근법을 시도함은 단순한 매국노가 '마르크스주의적 사변'으로 치장하
고 나설 때를 비판하기 위해서이고, 매국노를 변론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은 80년대 후반에 요란 법석했던 '사회구성체 논쟁'이, 아무런 역사이론과
연결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 수입상의 초보꾼들의 요란법석한 홍보술이었다고 한다면, 의아
해 할 것이다.
신식민지독점자본주의론에서 적화통일 공산사회가 도래하든가, 식민지 반봉건 사회론에서
그렇게 되던가, 핵심은 말해지지 않은 그들 역사의 종말에 있었지 식민지 시대를 분석하는
사회구성체의 명명에 있는 게 아니었다. 또, 이 두 이론의 종합으로서의 '분단체제론'이란 것
도 매우 웃기는 것이다. 조만 간에 '분단체제론'을 분석해보겠지만, 학문적으로 가치가 전혀
없는 친북정치의 환상을 고상하게 풀어놓는 것에 가깝다. 결국, 사회구성체 논쟁을 국내에서
후견한 세력이 논쟁의 종점을 맞이하고자 할 때, 의도한 성과물이었을 뿐으로 본다. 짜고 치
는 고스톱을 자유민주주의적인 경쟁에 의한 성과로 오독한, 나를 포함한 동시대의 대학생들
에 강한 연민을 느낄 뿐이다.
역사이론은 역사가 어떻게 발전하리라고, 공식적으로 적어놓은 단계론에 맞춰서 현실을 바
라보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박정희대통령의 '조국근대화'론에서의 '국토개발5
개년 계획론'식의 상상력에서, 아무런 하자가 없는 듯이 여겨졌으나, 역사론이 역사적 재앙
을 초래할만한 낙제점수를 받기에 족한 것이다. [공산당선언]에 포함된 식의 역사관에 경도
된, 좌파 노인 세대들이 30대와 40대를 길들이고자 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기획으로 여겨진
다. 초보자 수준에서 [공산당선언]을 읽을 때의 '역사 흐름'에 대한 이해는, '국토개발 5개년
계획'이 나을 때의 낙관적 기대관과 기묘하게 맞물린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
에 학생운동 흐름의 격변은, 어릴 적에 박정희대통령에 대한 기억이 핵심 요인이었다. '반정
(反正)차원'으로 대한민국주의를 높이세우지 않고 피상적 차원의 기억만을 높이 세우지 않는
다면, 대한민국주의를 높이세운 박정희대통령의 '전향한 좌파 흔적'이란 말단을 높이 세우고,
본질인 대한민국주의를 숨겨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마르크스의 [독일이데올로기]와 [공산당 선언]에 나타난 사회구성체의 발전은, 실제로는 마
르크스가 제시한 공산주의의 도래를 믿지 않는 이들에겐, 자의적인 역사 짜깁기에 가깝다.
사회구성체의 발전 사이에 신약성서를 철학화한 헤겔사상을 거꾸로 뒤집은 논리로 채웠다
하더라도, 여전히 분명하게 종교적이다.
문제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 스타일과, 박정희 대통령의 [국가와 혁명과 나]의 유사성 인식
의 시대적 요청이다. 반미친북좌파 세력이 이 부분을 띄우고, 본질적인 차이를 파묻어 버리
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우파 정치가 오랫동안 꺼려온 부분을 분석하는 게 차라리 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유사성
마르크스주의는 결국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철학하기를 바란다는 측면에서, 독일 고전철학의
인본주의(人本主義)적 성격이 강하다. 그런데, 레닌에 이르러서는 우매한 러시아 농민들이
다수인 상황에서, 자발적인 수준에서 지지자를 만날 가능성을 단념하고, 상층부 수준에서의
쿠데타적인 방법과 정치 이데올로그적 합리화 논리를 수행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5.16 정신은, 자발적인 여론을 믿지 않는 전제로 권력 상층부의 과격한 변
동을 의식한다는 측면에서 레닌주의와 분명한 유사성이 있다.
레닌주의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국가 없는 세상을 실천으로 구현하는 척하고, 자기 말을 잘
듣는 프롤레타리아트 세력의 국가를 과도기적으로 설정한다. 실제로는, 지속된 과도기 였을
뿐이다. 레닌주의에서 남아있던 혁명의 수출가능성은 스탈린에 이르러서는 '일국사회주의'로
국가주의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전위'와 '진리 독점체 정당'과 지도자 레닌의 의
미가 떠오른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민에 있어서 가장 최고의 국가가 하는 봉사가 '잘 살게 만드는 정치를
하는 것'으로 설정하고, 그러한 의미에서 새로운 정치의 지지세력을 모아서 새롭게 만드는
국가정치를 차별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 차이점
레닌은 러시아 국가를 절단내고 새 국가를 창건했다. 그리고, 지금은 레닌이 절단낸 국가는
붕괴되고, 과거의 국가 방식으로 되살아났다.
박정희대통령은 절단나기 직전의 국가를 새롭게 되살렸다.
레닌은 공산주의 이념의 실현이라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박정희대통령은 국민에게 최대한
잘살게 해주고, 부강한 대한민국이라는 목적이 있다. 레닌의 정치 지배는 특수한 좌파 이념
선택을 통한 私的 정치 지배의 성격이 강했고, 박정희대통령의 지배는 아시아 사회의 전통
적인 공공적인 지배의 성격이 강했다.
레닌의 시대에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최대한 억압당했다. 그리고, 레닌이 언론플레이로 갖고
놀았던 노동자들의 권익도 대단히 침해되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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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통치 방식은, 한국 좌파 정치의 성격을 결정지었다. 국민소득 1000달러가
되면 도달될 것이라 여겨진, 그 세상은 도래하지 않았다. 박정희대통령이 국민적 단합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의도한 '근대화'를 통한 부국강병의 의도는, 정통 레닌주의적인 의도로서의
좌파의도를 살렸다. 박정희 대통령은 서구의 선진 조국의 예를 들어서, 우리가 그렇게 발전
하자고 하면서, 보편적 리더십에 입각한 통치를 하려 했지만, 그로 인해서 소외되는 지역에
한국의 좌파는 박대통령이 수입하지 않은 다른 요소를 끌어들이면서 낙담을 시켰다. 그리고,
박대통령의 리더십을 깨부수는 것만이 '민주'라고 우기면서 '레닌적 변혁론'을 대중 속에 남
아 있는 '일제 잔재'를 불지르며 합리화해 나갔다.
80년대에 대학가에 입학한 사람들은, 박정희대통령과 전두환대통령을 긍정하면 대학가의 운
동권 선배들에게 '이지메'당하기의 표적 0순위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의 연
속체를 갈아 엎어야만, 그날이 온다는 타령을 듣게 되었다. 박정희대통령의 리더십과, 한국
우파 정치의 리더십에서 음지를 전략적으로 높이고, 사람들을 울화통을 터뜨려 끌어모으게
하는 파괴력이 있을 뿐, 그러한 전략이 실행성이 의미가 있는 일관된 측면은 거의 없었다.
그 당시의 대학가에서 레닌이즘적인 대한민국 부정론은 이러한 의미 때문에 변명되었다. (1)
박정희대통령의 근대화정치의 중앙집중적 발전론과 사고 구조에서의 유사성. 아무것도 모르
는 이들에게, 공산당 논리도 그저그러하게 비슷할 것이란 선전선동술. (2) 주변적인 사람들
이 설혹 좌경 성향이 있어도, 어떻게 신고? (3) 사회과학을 철저하게 부정하면서 종교문학을
순수문학으로 인정하는 김동리 문학론의 합리화. 김동리 문학론이 기대어 선 실증주의의 적
절한 사용.
대학가 학생운동 논리에서, '통일타령'의 단계론은 정확하게 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계보에
서 바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가를 전복하여, 노동자 농민들이 꿈꾸어온 어떠한
이상향이 이루어지도록 바라는 것으로서, 그리고 그들에게 박탈감을 주었던 세력에 가해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정치논리는 레닌이즘이 아닐 수 없다. 즉, 레닌주의를 성경으로 보지 않
는 이들에게는, 대학가 통일타령은 매국노 정신 확장 운동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
대학가의 통일 타령을 매국노 정신의 확장운동으로 비평하여, 사회적인 가치의 포폄을 바르
게 세우기 위해서는, '80년대'적 학문이 주변화되는 선으로 퍼지게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문제는 백낙청의 대학원 중심 대학론이란 이름하에서, 대한민국의 중심을 이루는 대
학부터가 레닌이즘 비슷한 코드로만 채워지도록 되어있다. '사회구성체 논쟁'부터 시작되어
서, '통일문학사론'을 거쳐서, '동아시아론'으로 이어지는 시간성은, 레닌의 [국가와 혁명]의
시간성이 원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의 중심부 대학에 고급지식이 90% 이상이
좌익 코드로 채워짐도 모잘라서, 우파정치는 세대 교체란 이름하에서 구제불능의 '좌익정치'
를 소장파란 이름으로 합리화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띄우기까지 하고 있다.
5. 레닌의 시간축으로부터 박정희 대통령의 시간축으로 변화가 국민적으로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황산벌]로 돌아오자. [황산벌]은 레닌의 시간축을 국민적인 자기화로 느끼는 사람들에게, 국
가는 곧 망할껀데, 어떻게 할꺼냐는 점을 사실상 묻고 있다. 국가의식이 내용에는 조금도 없
고, 주말 밤에 오락프로그램 수준으로 희화화되었다는 점은, 따지기가 귀찮다. 여기에서, 잇
쇼껜메이 주장하면 젊은 층에서 더욱 외면 받는다. 죽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주장보다는, 국
민에게 '거시기'가 매력적인 이유를 느끼고 느껴야만 한다.
'거시기'는 pennis가 정확한 번역어이다. 왜, [황산벌]은 국민성을 좇만하게 만들지? 왜, 극소
수의 순국지사와 좇만한 인간성의 이분법으로 여론을 만들려고 하지?
또, 강한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자가 강하다 란 주장도 우파 정치는 비판해야 마
땅하다. 그렇다면, 5.16 정신의 한축인 제이피 어르신이, 김정일 주장파벌과 5.16 정신의 양
다리를 걸치면서 우파정치에 재를 최근 몇 년간 집요하게 뿌려 온 것은, 그것은 존경되어야
하겠구만요. 하고 말이다.
어떻게 '짜르 국가'를 멸망시키느냐는 레닌이즘의 실천전략이 대한민국의 지배 언어가 된 듯
여겨진다. 그런데, 이것이 국지화될 수 있도록, '이름 때문에 꼭 대한민국을 지지한다'라는
선을 넘어서도록, 대한민국 국민이 친북좌파의 선전술에 말릴 '걸레'냐? 하고 따지는 게 옳
을 것이다.
최근에, 정치 개혁 논의가 많이 주장된다. 국민들은 박대통령의 목소리가 아니라 레닌의 목
소리에 맞춰서, 대중들에게 '앗살하게 거시기'한 측면의 바람이 잔뜩 쥐어들어 있다. 서구 문
화 이론을 세금을 통해서 지원하고, 그 지원된 지식정보로 우파 리더십에 파괴를 하는 습관
의 끝은 우파 지식 정보 개발 밖에 없지만, 이것은 계속 지연되고 있다. 균형이 잡힌 공론장
이 형성된다면, 국민들에게 '거시기'한 욕망을 끌어내고 아무런 내재적 합리성을 갖추지 못
하는 것을 지적하기 쉬우련만, 한국 사회에서는 우파의 중심담당층이 6.25 전쟁을 기억하거
나 영향력이 있는 세대라고, 우파 지식 컨텐츠 개발을 등한시 한다. 등한시 할수록, 박대통
령 정신에 숨어있는 좌익적 요소는 좌익들이 더욱 부풀릴 것이다. 그래서, 본질보다 끝부분
이 더욱 강조되는 기이한 세상을 생활 속에 맞이하게 될 것이다.
우익인사 집결론은 하향식에 고비용 정치구조를 의미한다. 또, 국민적인 시대 감각 없이, 무
조건 '천황'은 놀자판 '장군'은 책임져 차원의 대통령과 총리의 주장을 하는 제이피 주장은,
박대통령의 선택이 '반정'의 측면임을 더욱 감춘다. 박대통령은 대한민국주의라는 투철한 신
념이 있었지만, 내각제를 주장하는 제이피에겐 그게 조금도 없어보인다.
국민적 '거시기'인 '자기 가족의 안정'을 이룸이, 레닌의 시간축을 파괴하지 않고는 불가능함
을 주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시간축을 주장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시간대를 주장하지 못하
도록, 세금을 통해서 좌익의 시간대로 통일하도록 하는 대학원중심대학 프로젝트는 박멸되
어야 한다. 전액 국고지원을 삭감하던지, 절반을 애국가와 태극기를 지원하게 하도록 하는데
에 돌려야 마땅하다.
레닌주의에서 알튀세주의로 그리고 들뢰즈 주의로 이어지는 세력의 문화정치 주장을 풀어써
보려는 것은 다음기회로 미룬다. 70년대적 인식소의 80년대적 인식체계를 통한 비판에 대한,
정당한 답변은 70년대 우파인식의 긍정성을 2003년에 되살리는 젊은 우파정신의 합리화일
것이다.
우파 내부는 박정희대통령의 '반정'적 요소에 숨겨진 좌익적 요소로, 레닌주의를 합리화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 또, 우파는 정치 자금을 통해서 정치를 하려는 의지를
좀 버려야 한다. 우파는 우파정치의 '거시기'(욕망의 중심=pennis)인 대한민국주의의 굳건화
와 부국강병의 평안한 사회 달성이 전 사회적으로 실현되는 상태를 생각해야 한다.
서구에서는 레닌 타령, 모택동 타령 하는 좌파놈들과 대결하고자, 우파는 국가론 논쟁을 했
었다. 결국은 서구 좌파는 꼬리를 내렸다. 우리에게 그러한 프로젝트가 가능할만큼, 우파 지
식정보의 고급지식인이 있었던가? 90년대를 채웠던 대중들에게 기억될 우파지식인은 매우
적었다. 커밍스에 대결한 신전통주의 학자들과 탈근대좌파에 대항한 '전통과 현대'중심의 탈
근대 우파 정도가 겨우 기억된다. 이 정도의 우파 지식의 양적 크기로 국민에게 우파정치의
욕망을 불지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레닌적인 매국노의 박자에 전국민적으로 길들어버린 상황의 개혁은, 일단 '대학원중심대학
론'의 예산을 전액삭감하려는 열기에서 시작될 것이다. 80년대 세대들에게 '레닌이즘'으로 세
뇌되었으며, 너희 주장을 따라갈 때 보편이익이 훼손됨을 주장해야 한다. 서구 좌익들은 서
구 우파에 박살이 났다. 한국의 우파에서는 고급지식에서 언제 싸워서 이길 수 있을까? 인
터넷 문화정치 시대의 상징적 승부는, 고급지식의 숫자에서 논쟁적인 맞불의 활성화와 그것
의 이김에 있다. 친북좌파의 무조건 편드는 논리에 겁먹을 게 아니라, 토론과정에서 순수한
논리 측면으로 나아가는 것을 어떻게 만들까의 궁리도 해야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