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의 두려움
역대상 13장에서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던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오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궤를 새 수레에 싣고 길을 나섰는데, 기돈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소들이 뛰는 바람에 궤가 떨어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손을 펴서 궤를 붙든 웃사가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다윗은 그날 하나님이 두려워 궤를 더 옮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궤를 모셔 두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이 시대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말씀입니다.
웃사의 손은 선한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흙바닥보다 더 더러운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궤는 오랫동안 그의 집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날마다 곁에 두고 지내는 동안 거룩함 앞에서 느끼던 두려움이 무디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익숙함' 때문에 경외함이 사라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목회자에게는 이보다 더 두려운 일이 없을 것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그랬습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그랬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 가까이에서 섬기던 이들이었지만, 바로 그 익숙함이 그들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러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순간에 주님이 함께하심을 믿고 주님을 의식하며 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것이 참된 경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자는 예수동행운동의 신앙입니다.
익숙함의 함정은 예수동행일기를 쓰는 이들에게도 찾아옵니다.
일기는 계속 쓰는데, 어느 순간부터 영적 침체가 찾아옵니다.
'일기를 쓰는데도 왜 주님을 놀랍게 경험하지 못하는 걸까? 왜 나는 더 이상 변화가 없는 걸까?‘
그것은 주님의 임재 안에 살면서도 어느 순간 그 임재를 깨닫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는 주님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 기도하는 것, 은혜를 사모하는 것, 말씀과 찬송 앞에서 마음이 녹아지는 것이 다 주님의 역사입니다.
심지어 영적 침체라고 여기던 근심과 낙심조차 주님의 역사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엡 4:30)
악독과 분냄과 비방하는 마음 때문에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엡 4:31)
그 괴로움은 바로 성령께서 근심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근심'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마음이 괴로우십니까?
그렇다면 주님께서 크게 외치고 계신 것입니다.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괴로움도 큽니다.
"악의를 버려라. 친절하게 대하여라. 불쌍히 여겨라. 용서하여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를 그렇게 용서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성령의 음성입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하면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서도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답답해하게 됩니다.
그러니 마음이 괴로울 때 오히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이시군요!“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뒤, 낙심하고 좌절하여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미칠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무엇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어디에서도 기쁨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영적인 실패와 낙심이 그를 덮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예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를 찾아오신 주님께서 물으셨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자기 사랑을 자신 있게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의 아심에 기대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요한복음 21:15)
낙심과 실패 가운데서도 마음은 예수님으로 가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면, 세상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면 주님을 떠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면, 여러분의 마음은 이미 주님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을 더 친밀히 알고 싶고, 주님과 하나 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십니까?
그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품을 수 없는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익숙함'의 함정만은 조심하십시오.
익숙함은 경외를 무디게 하고, 임재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눈을 뜨면, 주님은 언제나 거기 계십니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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