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볼리비아 우유니 소금사막
2월 10일 라파스일정을 마치고 아침 7시경 공항으로 이동 볼리비아 제3의도시 코차밤바 공항에서 환승 우유니행 비행기를 탔다.
볼리비아는 페루와 달리 코로나 접종증명서를 검사했고 비자도 발급받아야한다.
출입국장과 비행기 탑승시에도 마스크를 착용하라며 공항 종사자들이 독려하여 일행들도 잠시 혼동이 왔는데 일행중 한사람이
마스크를 미쳐 준비 못해 안절 부절하고 있어 여분 마스크를 건네 주었다.
비행시간은 1시간이내 였고 점심시간때쯤 우유니공항에 도착, 특이 하게도 공항출구에 군인들이 장구를 갖추고 부동자세로
서있다.
손수레로 여행자들의 짐을 옮기는 작은 공항을 빠져나오니 현지 원주민의 4륜구동차가 대기중이라 4명씩분승하여탔다.
1호차 부터 6호차까지였던가? 나는 2호차에 배정되어 초등교사출신 60대 아줌마와 그의 생질녀, 나이든 여성김?숙이 탔고
운전사는 30대 이름"세미"라했다.
"세미" 2박3일동안 우유니 소금사막과 설산과 호수 화산 등이 펼쳐진 광활한 자연을 멋지게 달렸고 순박하고 쾌할하게 꾸밈없이
잘 안내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우유니소금사막을 가는 중간기착지에 기차무덤이 있다.
1950년대 볼리비아가 광산개발을 하고 난뒤 폐광되면서 방치한 기차들이 녹슬어 있다
조잡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
광활한 우유니 마을 최소 해발3500 이다보니 고산증 증세는 여전하다.
4륜구동 - 볼리비아는 주유소가 드물고 우유니사막과 매마른 고원사막을 끝없이 달려야 되므로
자동차 지붕에 예비 유류와 여행자 짐도실었다.
1905년부터 1950년대에 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볼리비아 광산들이 전성기를 누렸던 시기에 달리던 것인데
광산의 쇠퇴와 폐광이 된 후 수명을 다하고 우유니 외곽에 버려져 있는 것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을 가는 중간에 기차무덤이 있다. 잠시 인증사진만 찍고 떠나는 곳이다.
우유니 소금사막 입구
어김없이 입장료를 받았다.
소금사막입구는 과거 우리고장 화목동 대흥마을 등 갈밭 저습지 진창 길을 들어가는 느낌이였다.
소금사막은 진창뻘밭으로 시작되는 느낌이다
우유니 소금사막 풍경
소금사막은 우기와 건기에따라 환경이 달라진다는데 우기여행이라 소금사막에서 장화를 신고 다녀야했다.
건기에는 소금결정체들이 각이 만들어 진 상태로 넓은 천지를 신비롭게 장식하고 우기에는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 된다.
공기가 맑고 미새먼지가 없는 우유니 물에 비췬하늘은 거울처럼 눈부시게 아름답다.
저기 수(지)평선 끝까지 거울같은 뭉개구름이 너무좋았다.
3천 5~6백 고지대에 소금은 옛날 바다가 지층 충돌로 돌출되면서 땅밑에 저장된 바닷물이 올라온다는 원리다
진짜소금 천일염 맛 그대로이고
여기 소금사막에서 점심 밥상이 차려지는데 육류와 바나나 등 과일이 식탁에 오르고
삶은 계란은 물에 찍어 먹으니 간이 딱 맞았다.
군데 군데 모아진 소금이 여기저기 있다.
세상은 희얀한 곳도 다있다.
소금사막이 영생불며하면 볼리비아는 밥은 안 굼겠다. 전망이 시원하다
천지가 명경알같이 훤하니 어디 몸 숨길데가 없으니 용변처리가 곤란 한점도있는데 특히 여성들 ...
우유니 소금사막은 한나절 영화셋트장으로 변하는데..
원주민 운전기사는 연출자가되고 여행자들은 연기자가 된다.
연출자는 능숙한 촬영감독자이면 여행자들은 초짜 연기자이다.
미리 준비한 허접한 소도구를 이용하여 여행자들을 연기지도하며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고산증도 잊고 모두가 즐거웠던 시간..
우유니 사막에서 자동차경기가 있었던 기념물이다. 옆에 소금호텔등 건축물들이 있다.
우리 태극기가 없을리 없지...
각종 포즈로 사진찍는 사람들
붉은 석양...구름만 없었다면 물에 비치는 석양이 더 멋질건데 조금 아쉬웠다.
해질녁
저녁때가 되어 아쉬운 마음으로 우유니를 떠나 여행자들의 숙소에 왔다.
원주민이 차려주는 저녁을 대강먹고 잠들시간 고산증이 안면을 방해한다.
강선생 이봉식선생과 한방을 썻다.
강선생이 누룽지 라면 준비 해온 것이 있다고 배를 채우자고 하여 서로 먹을 것을 내놓고 시간을 보냈다.
밤새 비가내렸다.
아침일찍부터 또 다른 환경의 매마른 고원길을 달리게 되는데 원주민 운전수들이 새벽부터 와서 부산하게 움직였다.
고산증으로 잠은 자는 둥 마는 둥 했고 아침식사는 밀가루 빵 종류라 누룽지로 대강 끼니를 때웠다.
떠날때까지 비는 그칠 기미가없고 앞유리창이 여기저기 금이간 2호차에 짐을 실었다.
세인(미)이 서툰 한국말로 인사하며 시동을 걸었다. 내가 앞에 타고 여자셋은 뒷좌석에 앉았다.
도로에 통행차량은 별로 없으나 가끔 운전자가 졸거나 하여 사고 사례도 있어 선임탑승자의 역활도 중요했다.
동승한 일행 중 나이살 먹은 매마른 여성은 정이 안갔다.
情이 갈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같은 차로 동행하자면 말이라도 편하게 오고 가야되는데 표현은 안했지만 내내 ...
피곤 그자체였다.
나이를 숨기려 염색한 머리밑은 햐얏게 올라오는데 유식한 척, 고상한척 하면 뭣해 그냥 나이대로 살면 되지..
다른 일행들도 서먹서먹함이 아직은 해소가 안되어 서로간에 대화는 별로 없다.
자기 짝만 죽을똥 살똥 끼고 다닌다. 그게 좋은 점도 있다,
서로 간섭하고 간섭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지마는 이역만리와서 급한 일이라도 생기면 도와줄사람은 같은 일행밖에 없는데?
나는 일행이라도 막걸리타입이 편한데 대다수가 말끔한 와인족들이라 여러가지로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일행중에는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어것저것 배려해줄때는 고마웠다.
특히 가이드(팀장)라는 사람의 행동거지를 보니 여행자들의 어려움을 챙겨 줄사람도 아닐 거 같고...
여행내내 여행자들과 가이드와의 대화는 단절된 상태였다고 봄이 정확한 표현이다.
여행자입장에서는 가이드를 믿고 여행을 온건데 자신은 팀장이고 가이드가 아니라는 논리로 일행들과 대화를 단절하니
일행들도 별일이야 그냥 참고넘기며 일정을 소화했다.
해발 4000미터 고원에 화산과 호수 매마른 황무지 상상이 잘 안가는 또다른 환경의 대지를 달리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