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꾸질꾸질한 밤이야. 왜냐고. 모두 퇴근했는데 혼자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까 그래.
게다가 스포츠조선에 매일 연재하던 용하다 무대리가 요 며칠 보이지도 않아서 심기가 더 불편해.
닝기리 조또를 외치는 무대리만이 신문보는 유일한 낙이었는데 도대체 무대리는 어디로 간 걸까.
아. 잡설은 그만하고. 오늘 보아하니 케베스 발표가 난 모양이네. 얼핏 글을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났어.
사실 언론사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서 케베스나 엠비씨가 꿈인 아닌사람이 어딨겠어. 누구나 기자가 혹은 피디가
아니면 아나운서를 꿈꾼다면 한번쯤 케베스와 엠비씨 명함을 주머니속에 지니고푼 기대가 있었을 거야.
근데 이놈의 회사가 들어가기 쉽냐. 경쟁률은 만날 수백대 일이고 강호의 고수라는 양반들은 다 몰리는 것 같잖아.
허나 또 막상 나중에 보면 내가 아는 년놈들이 들어가 있기도 해서. 자괴감에 더 빠지는 곳이 저 두 회사기도 하지.
여튼저튼간에 옛기억이 새삼 생각났어. 케베스 한국어능력어시험을 치르고 원서를 넣었던 몇 해전이 말야.
그때 학교 도서관에서 살포시 눌렀던 합격자 조회화면에서 나는 서류도 통과하지 못하고 말았지. 씁. 열라 쪽팔려서
어디다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 학교앞 순대국밥집가서 눈물반 콧물반 소주를 들이켰던게 마구 스쳐지나가네.
이제 연말도 다가오고 또다시 암에프같은 시기가 온다는데 취직도 안되고 여러 안타까운 청춘들이 많을 거라 봐.
죽자고 공부했는데 결국 합격 불합격 단순하게 갈리고, 그 와중에 누구는 떡하니 기자되고 피디되고 아나운서 되고.
이래저래 자괴감도 들고 자존심도 상하고 자신감도 사라지고 그러겠지. 나도 마이너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라
그런 기분이 어떤건지는 좀 알아. 예전에 고시원에서 화제사건나고 살인사건 났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부모님 계시는 동네에 사고 났다는 것보다 더 철렁거렸어. 나도 한때 고시원 골방에서 방세 걱정을 했던 때가 있어서였지.
이십대를 넘어서 서른이 좀 되다보니까. 확실히 여유란게 생기긴 해. 그 여유가 돈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밥벌이를 한다는 것 때문은 아닌거 같아. 그저 내가 남들과 생김새가 다르듯 내 인생도 꼭 남들처럼 되리라는
법은 없구나를 인정할수 있어서야. 누구나 강남의 삼십평 아파트에 중형차를 끌고 살수는 없는 거거든. 그 바운더리 안에
내가 들어가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더라. 그러다 어느날은 세끼 밥먹고 자는 건 다 같은데 뭘 비교하며 사나는
생각까지 이르게 됐어. 물론 남들보다 더 잘먹고 잘살고 싶다는 욕망도 마음속에 크게 자리잡고 있긴 하지. 헌데 그 욕망은
욕망대로 인정하고 놔두니까. 날 덜 괴롭히기도 하더군. 내가 배고픈걸 내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욕망도 그런거란걸 알게 됐지.
그냥 두서없이 자판을 두드리고 싶었던 건 그거야.
허허롭고 허탈한 마음에 여기서 조금이나마 동질감과 위로를 찾고 싶어 클릭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게야.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멀쩡한척 난 괜찮아 하고 있으면 민망하고 더 위축되잖아. 나만 이렇게 약해빠졌나 싶어서.
해서 자판을 두드리게 됐어.
내가 이런 주제넘은 말들을 적을 위치는 아니야.
다만 하다가 떨어져서 넘어져서 께지고 아파했던 과거가 있다고 누군가 털어놓으면
나도 그랬는데, 아니면 아. 나만 그런게 아니구나. 하고 조금은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었거든.
물론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기 원하는 마음의 이면에 내재한 심리는
자기기만일수도 있어. 잠시나마 현실을 외면하고 싶고 내 변명을 하고 싶은 그런 심리라는 거.
그런데 뭐 사람이 별거 있겠어. 그렇더라도 주변 가까운 지인들에게
술 한잔 할까? 하며 투정도 부리고 그러면서 이 생을 버티어가는 거지.
아...그리고 인생이란 꼭 직업을 통해서만 완성되거나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란 생각이 요즘은 또 마구 들어.
그나저나 왜 우리 데스크는 퇴근하라고 전화를 안하는 거냐. -.-
첫댓글 이상하게 아는 분이 쓴 글 같네요 ^^ 잘 읽었습니당~
저도 잘 읽었습니다~
그럼. 어서 서른이 넘었으면 좋겠어요..
글이 참 따뜻하네요. ^^
아는 오빠가 술자리에서 술 한 잔 기울이며 해주는 말 같은 느낌..^^ (언니면 어떡하지ㅠ) 잘 읽었습니다 ^^
백만배 공감... 마음추스리기에 딱입니다.. 진짜 술한잔이 생각나는 어제였는데..ㅋ
술한잔 시간되면 같이 해요~ㅎㅎ 글 잘읽었습니다... 술이 땡기네요~~
^^ 조아요.. 와.. 리플 보고는 두번 웃게 되네요 ^^
고맙습니다ㅋㅋㅋ건강잘챙기시구요..
이런 글 난 너무 좋아요.. ㅋㅋ
술한잔하고 와서 읽었는데 잘읽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