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정해진 운명이 있다!
2023년 1월 7일
이동승(李東升)
【정견망】몇 년 전, 만약 누군가 내게 “몇 천 년간 전승된 중화문화의 내함(內涵)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면 나는 그 정수를 말하는 것은 차치하고 정말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인생의 길에서 첫 번째 좌절을 만나 산천과 도관(道觀)을 넘나들 때까지 줄곧 그랬다.
관음동(觀音洞)의 고인(高人)
관음동은 축성(築城) 남서쪽 구석에 위치하는데 이 지방에서는 유명한 도관(道觀)이다. 수십 개의 누대와 전각이 절벽을 따라 세워져 굽이굽이 세워진 것이 기이하면서도 빼어나다.
이곳은 향불이 1년 내내 끊이지 않는 곳으로 그것도 아주 왕성하다. 그 기간에 나는 주말이 되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기분전환을 했다.
5위안짜리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면 바로 대문 옆에 탁자가 하나 있고 40대 중반의 한 남자가 점을 치고 있었다. 그는 주로 ‘팔자(八字)’와 ‘요납법(搖納法)’으로 사람들에게 길흉을 예측해주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 사람은 누구지? 도관에서 점을 보고 또 탁자까지 차려주다니.’
나는 비록 《역경(易經)》을 보긴 했지만 산명(算命 운명을 점치는 것) 따위는 결코 믿지 않았다. 자주 가다보니 알게 된 사실인데, 그는 오직 주말에만 즉 토요일과 일요일 낮 12시부터 1시까지만 사람들의 운명을 봐주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더는 봐주지 않았는데 장기간 그랬다.
그를 찾아와 운명을 물어보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나중에 나는 그가 귀주성 민정청(民政廳)에서 발급한 ‘역경증서(易經證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귀주성 고관들은 기본적으로 차를 보내 그를 집으로 초대했다. 하지만 가장 흔한 이들은 그대로 일반 민중이었다.
어떤 가난한 사람들은 점을 본 후 그에게 줄 돈이 없다고 했다. 그는 여전히 개의치 않았고 또 자발적으로 돈을 받지 않았다.
그의 성이 주(朱)씨라서 모두들 그를 주 선생님이라고 존칭했다.
나는 점을 쳐주고도 돈을 받지 않으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의 산명(算命)이 정말로 그렇게 정확한지는 몰랐다.
하루는 결국 참다 못해 집에 돌아와 어머니에게 내 사주팔자(태어난 연월일시에 해당하는 간지)를 물어보았다.
당시 그는 나의 팔자를 일렬로 늘어놓더니 한마디 했다.
“1990년에 자네 ‘세운(歲運)이 함께 오니 "죽지 않으면 한 층 껍질을 벗게 될 걸세.”
난데없는 이 한마디에 놀란 나는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이곳 사람들은 모두 나를 모르고 나는 또 혼자 다니기 때문에, 내 개인 정보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계산해 냈을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는 내가 《역경》을 좀 배웠다는 것을 알고는 약간의 가르침을 주었다. 또 본래 ‘사주’로 평생 운수를 보면 30위안을 받는데 나한테는 10위안만 받았다.
집에 돌아온 후 나는 오랫동안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세상에는 정말로 고인(高人)이 있어서 사람의 길흉과 화복을 계산할 수 있구나!
정말로 참을 수 없어서, 나는 이 일을 사촌 형의 절친한 친구인 육성위(陸成偉)에게 말했다. 그는 성격이 강직하고 비교적 솔직해서 다른 사람이 간계를 부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군대에서 전역한 후 나와 같은 직장에 다닌다.
그는 무슨 귀신에 관한 것도 일절 믿지 않았다. 어디서 귀신이 나온다고 하면 그는 직접 자신을 데려가서 보여 달라고 할 정도다. 그래서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연애도 못 했다.
여자 친구를 사귀어도 사흘을 넘지 못했다. 게다가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늘 그의 혼사를 걱정하셨다.
과연 그는 내 말을 듣자마자 “나를 데려가 봐, 나는 그가 정확히 계산할 거라고는 믿지 않아.”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집에 돌아가 그의 어머니에게 사주팔자를 물어본 후 우리는 관음동으로 향했다.
주 선생님은 그의 ‘팔자’를 한 줄로 늘어놓고는 한마디 했다.
“먼저 한 가지 일을 말해봐서 정확하면 다시 말해보겠네. 자네는 18세에서 22세 사이에 반드시 집에서 멀리 떨어진 외지에서 녹봉을 먹었을 걸세.”
육성위(陸成偉)가 이 말을 듣고는 얼떨떨해졌다.
“어라, 어떻게 알았지? 내 친구(나를 지칭)도 모르는 일인데, 어떻게 알았을까?”
원래 그는 18살 때 4년간 다른 성(省)에서 군인으로 복무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군대는 기본적으로 3년을 복무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4년 복무는 나도 처음 들었다.
깜짝 놀란 육성위는 자신의 최대 관심사인 결혼에 대해 물었다. 주 선생님이 손가락을 한번 꼽고 자세히 보더니 말했다.
“자네의 결혼은 관운(官運)에서 비롯되네. 올해 연말 11월쯤 좋은 일이 있을 것이네.”
무슨 일이냐고 재삼 물었지만 주 선생님은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때가 되면 자네들이 곧 알게 될 걸세.”라고 한 마디만 했다.
그때 우리가 점을 칠 때가 5월 말이었는데, 우리는 차츰 이 일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뜻밖에도 연말에 육성위는 공장에서 선발하는 ‘10대 모범 청년’에 선정돼 단번에 전체 공장에서 유명해졌다.
그는 당시 누가 자기 이름을 올렸는지도 모른 채 뽑혔다. 왜냐하면 그는 성격이 강직해서 미움을 산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번에 그가 ‘10대 모범 청년’에 뽑힌 건 정말 의외의 일이었다.
좋은 일은 이렇게 왔고, 그 후 그의 결혼운도 움직였다. 성격이 온화하고 용모도 아름다운 한 아가씨가 자발적으로 그에게 데이트를 청해왔고, 두 사람은 이렇게 좋은 관계가 되었다.
여자쪽 집에서도 모두들 그를 좋아했다. 나중에 부부는 귀여운 아들을 하나 낳았다.
그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지만, 《역경》을 조금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오히려 늘 불안했다. 내가 ‘사주예측’으로 스스로 ‘팔자’를 따져 보니 나는 31세에 10년 대운(大運)과 연주(年柱)의 천간지지에 ‘천극지충(天克地衝)’이 있었다.
이런 상황은 사주팔자 오행(五行)에서 상생(相生)으로 풀지 못하면 앞날이 험난하고 마난(魔難)이 많거나 큰 흉사가 있을 것을 예시한다.
만약 사람의 일생이 정말로 배치된 운명이 있다면,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내 인생을 완수할 수 있을까? 설마 사람에게 정말로 운명이 있단 말인가?
여러 날 고민 끝에 가장 직접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것은 바로 더욱 뛰어난 고인(高人)을 찾아가 내 운명을 보는 것이다. 여러 날을 수소문한 결과 관음동에 또 한 명의 ‘고인’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도관 속의 당도장(唐道長)
듣자 하니 이 도장(道長)은 도관에서 이미 여러 해를 살았다고 한다. 아마도 도관이 자신에게 자리를 잡아준 것을 고마워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는 점을 치고도 돈을 받지 않았다.
다만 운명을 보기 전에 한 가지 요구 사항이 있었는데, 만약 점을 친 결과가 정말로 정확하고 응험해서 고마움을 느낀다면, 화분을 하나 사서 도관에 보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 요구조차도 강제하지 않았는데, 꽃을 보내든 말든 강요하지 않았다.
도장의 운명풀이가 아주 정확했기 때문에 꽃을 선물하는 사람이 많았고, 관음동에 들어서면 한 눈에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다양한 화분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렇게 명예나 이익에 담담한 도사는 나로서도 처음 보았다.
당도장은 당시 70대였지만, 사유도 명석하고 정신도 정정했다. 나의 ‘팔자’를 배열한 후, 그의 강의법은 주 선생님과 아주 비슷했다.
나더러 35세 이상이 되어야 운수가 트이는데 다시 말해 사는 것이 좀 편해질 거라고 말했다.
나 자신과 육성위의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일생이란, 이미 발생한 일이든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이든 모두 예측할 수 있다.
사람에겐 정말 운명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