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니다.
심안이 녀석이
먼저번 처럼 한겨울 엄동설한에
아기들을 낳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 지 모른다.
작년 겨울,
심안이가 네 마리 아기를 낳았을 적,
세상 일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한 터라
심안이며 아기들이 불쌍하다고
보일러 실에
두툼한 이불을 깔고는
따뜻한 손난로 하나를 곁에 켜 주었다.
심안이와 녀석들이 난로 옆으로 모여들고
난로 온기에서 행복해 보였다.
나도 따라 심안이 옆에서 행복하게 지켜보았 다.
그런데 한밤중
갑자가 방이 냉해 지고
오들 오들 떨면서 잠에서 깨어났다.
언제부터인지
보일러가 귀뚤귀뚤 울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 지...
얼마 전에 기름을 부어 놓았는데...
하도 이상하다 싶어
보일러를 뒤척여 보니
이런 보일러로 연결되어 있는 무슨 선이
난로의 열기 때문에 끊어져 있는 것이 아닌 가.
그 날 밤
두툼한 두루마기 몇 개 끼어 입고
여름이불, 겨울이불 다 꺼내 덮고는
눈내리는 겨울 산
그 오래고 시린 밤을 지새운 기억이 있다.
다음날 그 이야기를 했더니
한 법우님께서 그럴 필요가 없단다.
강아지들은 겨울에도 저들끼리 서로 서로 부딛기며
어머님 품에서 충분히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고...
보일러 이불깔고 넣어 놓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노라고 말이 다.
그 좋은 기억 덕에
심안이의 한겨울 임신과 출산은
한동안 내 마음을 생기롭고 훈훈하게 만들어 주었었 다.
그런 일이 있은 터라...
이번에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번엔 요사 앞에
작은 방석 하나 놓아 두고 지켜보았더니
서로 뒹굴고 찍찍 대면서 잘 놀고 있다.
요즘이야 날씨 걱정도 없고,
눈송이가 이 도량을 얼려 놓을 즈음이면
이 녀석들 그 날씨에도
저들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커 있겠 지...
심안이가 아기를 낳고 나서
또다시 법당은 시끌시끌 아이들 놀이터가 되었 다.
심안이와 아기들 본다고
동네 아이들이 떼지어 몰려 오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동네 아이들이 여름학교 끝난 후부터
평일날에도 학교가 끝나면 몰려 와서는
힘차게 도량을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터였는데
이번 심안이 아기 소식을 듣고는
한 두 세배는 넘는 어린이들이 와서 뛰어 놀고 있 다.
하도 귀엽고 기특하여 놀아주기만 하다가
한번은 모두들 법당으로 모아 놓고
절 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합장하여 인사하는 법도 가르쳐 주고 했더니
효과가 그 날부터 바로 나타나고 있다.
법당에 오자마자
심안이와 아기들을 보기 전에
먼저 법당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고
내 방 문을 두들겨 합장을 한다.
초코파이도 주고 콜라도 주고
밥 때가 되면 밥도 함께 먹고
오늘은
법우님들 옆에 앉혀서는
녹차, 보이차 맛을 보여 주었더니
떨떠름한 표정을 한 모습이 얼마나 귀여웠던 지...
덕분에 법당이 요즘은 활기가 가득하다.
지금도 바깥에서는
이 녀석들 강아지와 또 우리 법우님들과
법당 앞 잔디밭에서 축구를 한 바탕 벌이고 있는 중이 다.
이 많은 아이들이 모두 불교 신자는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냥 순수한 아이들일 뿐
아무것도 아닐지 모르지...
여기 오는 아이들 중 다수는
'예수님 찬양' 뭐 그렇게 쓰여 있는 성경학교 옷을 입고도 오 고,
또 하루는 불교학교에서 내어 준
'부처님 만나러 가요' 티를 입고 오기도 한 다.
오늘은 불교학교에 못 와서
티를 못 받은 아이들에게 불교학교 티를 나누어 주었더니
어떤 아이는 엄마한테 혼난다고 머뭇 머뭇 거린 다.
"엄마에에게는 이렇게 말씀드리 렴,"
"부처님과 하느님은 아주 다정한 친구래요 "
하고 말해 주었더니 좋아라 입고 있다.
어린이는
불교신자도 아니고 기독교 신자도 천주교 신자도 아니 다.
그냥 그대로 그들일 뿐이다.
우리 어른들이
불교신자가 되라고, 기독교 신자가 되라고
자꾸 강요하고 고집하지만 않으면
이미 부처님, 예수님과 똑같이 친구가 될 수 있는거 지.
이런 천진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부처님을 보고, 예수님을 보게 된 다.
그건 정말 그렇다.
아이들은 참 깨끗하고 순수하다.
말씀을 들려주면
우리 어른들처럼 이것 저것 따지고 들지 않는 다.
설령 따지더라도 정말 따져야 할 것들을
한 두 번 따지다가 딱 얘기를 해 주어 의심을 풀고 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말씀을 꿀꺽 삼켜 버린다.
그리고는 바로 실천이다.
절에서 뛰어 놀면서
맑고 순수한 가르침의 인연 은은하게 짓고 있는 터 다.
우리 심안이가
몇 년동안 절집안에 살면서
그래도 이런 방법으로 밥값을 톡톡히 해 내고 있 다.
이 즈음 되면
우리 절 밝은도량 상임포교사라고 해야지.
밝은도량 구석 구석을 살펴보면
아주 사소한 그 무엇일지라도
이렇게 다 제 몫을 톡톡히 해 내고 있는 것들 뿐이 다.
몫이 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고
또한 그 몫을 온전히 소화하지 않는 이들도 하나 없이
모두가 제 자리에서 제 몫에 충실하다.
한밤중 법당 앞에
우뚝 서서 두 손 활짝 열고 숨을 들이키면
그 순간
난 혼자 서 있는 게 아니다.
모두가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와 함께 숨을 쉬고 있으며,
내 마음처럼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수많은 영혼의 눈으로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와 함께 한자리 하고 있는 것이다.
도량에 사소하게 피어난 풀 한 포기며,
외롭게 서 있는 탑과 법당의 부처님,
어딘가에서 사각거리며 열심히 걷고 있을
이름 모를 수많은 곤충들에서 부터,
저 하늘의 보일 듯 말 듯 한 하늘구름,
내 방안에 함께 살고 있는 바퀴벌레며,
모기와 파리들,
이 도량 위로 가득 내려와 앉은 달빛이며,
내 뺨을 사뿐히 스치는 바람결에 이르기까 지...
이 모든 이들이
다 나의 도반이고, 나의 스승이며
그대로 나, 나인 것이다.
내 마음을
다른 사람들은 몰라 주겠지만
이들은 다 알고 있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우뚝 서 있는 지...
내 마음과 이들의 마음은 이렇게 하나가 되어
함께 서 있고, 함께 지켜보고 있다.
그래서 혼자이면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그런가.
이 순간 난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