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연봉 산기슭으로
어느 계절이나 내게 허여된 시간이 분주하지 않은 날이 없겠으나 봄철이면 더욱 그렇다. 야생화를 탐방해야 하고 찬거리로 삼을 산채도 해 와야 한다. 퇴직 첫해 얼떨결 의뢰받은 텃밭 경작은 1년으로 끝나게 됨이 나에게는 무척 다행이다. 거기 텃밭 가꾸기도 유의미한 일일 테지만 나에게 그보다 소중한 곳이 집을 나서면 경계가 어디까지인 줄 모를 발길 닿는 데까지가 텃밭이다.
아내가 몸이 불편한 뒤로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시장을 봐 나르는 일은 내 몫이다. 올봄 사파동 텃밭은 철수해 나왔으나 그간 우리 집에서 푸성귀라고는 풋고추 한 가지만 사 봤다. 나머지는 산천을 누비면서 냉이와 쑥을 캐고 산나물을 채집해 오고 있다. 산중 머위와 전호나물에 이어 두릅과 참취를 따오고 오가피 순과 다래 순도 따와 주변의 지기들에게도 아낌없이 나누고 있다.
산나물은 냉장이나 냉동 보관에는 한계가 있어 삶아 데쳐 묵나물로 해두면 저장성이 오래 가 겨울까지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집에서는 그 처리 과정의 번거로움으로 묵나물로 건조 시켜 나중에 먹지 않는다. 넘치는 양도 필요 없고 몇 끼 찬거리가 될 만큼 알맞게 채집해 그때그때 신선한 산나물을 먹고 있다. 모자라면 언제든 길을 나서면 귀로에 배낭을 채워왔다.
사월 중순 화요일 자연학교 등교는 산중 마트를 찾아가는 일이댜. 일주일 전에 한 차례 다녀온 천주산 꼭뒤 호연봉 능선의 오가피 순을 따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반송시장 노점으로 나가 김밥을 마련하려니 아직 전을 펼치지 않아 빈손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101번 시내버스를 타고 마산역 앞으로 나가 합성동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해 칠원 산정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로 갈아탔다.
지난번 오가피 순을 딴 호연봉은 천주암 아래에서 천주산을 넘어가면 되나 산세가 가파르고 동선이 멀어 칠원 산정마을까지는 버스로 갔다. 하루 서너 차례 다니는 농어촌버스는 산간마을 주민들이 외부로 통하는 유일한 교통편이었다. 1시간 정도 걸려 아침 첫차로 운행한 버스로 산정마을에 닿았다. 가구 수가 얼마 되지 않은 마을 앞에서 함안 경계 고개로 가는 골짜기로 들었다.
농지가 없는 깊은 산간지대지만 임도가 개설되어 오르내리기는 어려움이 없었다. 천주산에서 예곡으로 뻗친 호연봉 능선에서는 신록이 물드는 기색이 완연했다. 임도를 따라 점차 해발고도를 높여가니 길가에 트럭이 한 대 멈춰 있고 아래쪽 계곡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아마 외부에서 찾아온 이가 두릅을 찾아 꺾는 모양이었다. 깊숙한 응달 계곡이라 두릅 순은 이제 나올 듯했다.
임도를 계속 가다가 사방댐에서 골짜기로 내려가 계곡을 건넜다. 등산로가 있을 리 없고 숲이 무성한 다래나무 군락지를 통과하기도 했다. 오가피나무는 천주산 꼭뒤 무명고지 응달에 자생했다. 지난번 오가피 순을 딸 때는 잎이 완전하게 펼치지 않았는데 남겨둔 순에서는 잎이 알맞게 자라나 있었다. 배낭을 벗어두고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오가피 순 채집에 한동안 몰입 집중했다.
깊숙한 산중에 저절로 자란 오가피 순을 배낭은 물론 손에 든 보조 가방까지 가득 채웠다, 숲을 빠져나오다가 난초와 같은 잎맥에서 노란 꽃을 피운 금붓꽃을 봤다. 계곡을 건너 아까 내려왔던 임도로 올라가 무덤 앞을 지나면서 고깔제비꽃을 봤다. 짙은 자주색의 고깔제비꽃은 다른 제비꽃보다 꽃이 늦게 피는 듯했다. 진달래가 저문 숲에는 개꽃으로 불리는 철쭉이 피기 시작했다.
산정마을로 나가 마산에서 들어온 버스를 타고 칠원 읍내에 닿아 돼지국밥으로 맑은 술을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식후 귀로에 같은 아파트단지 꽃대감 친구와 현직이었을 때 카풀 기사에게 오가피 순 사진과 함께 문자를 보냈다. 산신령님 허락 없이 채집한 산나물을 건네받으십사고 했다. 차를 한 번 더 갈아타 아파트단지로 들어와 산나물을 나누었더니 배낭이 가벼워졌다. 23.04.11
첫댓글 아낌없이 주는 자연의 선물을
잘 챙겨 받으시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