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송가 542장(구 340장) / 요한계시록 18 : 9 - 20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542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요한계시록 18장 9절부터 20절 말씀입니다.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한 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들의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그릇이요.
값진 나무와 구리와 철과 대리석으로 만든 각종 그릇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이요.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이 탐하던 과일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 옷과 자주 옷과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모든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원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외쳐 이르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냐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며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으로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아멘!
우리 사람에게는 눈물이 있습니다. 감격의 눈물,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 애통의 눈물 등등, 여러 상황에서 사람들은 눈물로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무엇에 대해서 우는가를 살펴보면, 그가 과연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소중하고 귀한 것으로 여긴 것이기 때문에 얻었을 때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나오는 것이고, 잃어 버렸을 때는 애통의 눈물이 나오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무엇을 얻었을 때 기뻐하셨고, 무엇을 잃었을 때 울며 애통해 하셨습니까?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울며 애통해 한다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9절 말씀에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가 불타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라고 말씀하였고, 11절에 "땅의 상인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고 했습니다. 그리고 15절에 "바벨론으로 말미암아 치부한 이 상품의 상인들이 그의 고통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라고 말씀하였고, 19절에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이르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한 시간에 망하였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이 말씀들을 살펴보면 울며 애통하는 자들은 땅의 왕들, 땅의 상고들 즉 세상의 상인들이며, 배 부리는 모든 자들, 즉 선장과 선원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울고 애통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바벨론의 권세 아래서 사치하고 음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바벨론의 멸망은 그들에게는 행복의 끝이었기에, 바벨론의 망하자 울며 애통해 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절 - 13절을 보면, 바벨론 사람들이 얼마나 사치에 마음을 빼앗기고 향락을 즐기는 삶을 살았는가를, 그들이 사들인 값비싼 상품들의 목록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벨론이 망하자 그 물건들을 살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바벨론의 멸망은 그런 물건을 팔아 이득을 보았던 상인들에게는 더 이상 이득을 볼 수 없어서 울며 애통함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물건을 운반하던 배를 부리는 선장이나 선원들도 할 일이 없어져 망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도 울며 애통해 한 것입니다. - 이들은 철저하게 바벨론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바벨론만 바라보고 바벨론의 부요함이 곧 자기들의 부요를 의미하고, 바벨론의 몰락은 곧 자신들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믿은 사람들입니다. 바벨론이 곧 그들의 힘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앞서 생각해본 4절 말씀에 보면, 이런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라는 것과 바벨론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가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왜 경고 했을까요? 바벨론은 자기들의 부강함을 의지했습니다. 자신들의 능력과 힘으로 이룩한 부요함을 과시하며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죄에 참여한다는 것은, 바벨론의 부요함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벨론의 부요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요함을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바벨론의 사고방식에 거하지 않고 거기서 나온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멸망 때문에 울고 애통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물질을 의지하는 바벨론과 같은 사고방식으로 살아간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은 누구 덕분에 산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국가입니까? 하나님 덕분이라는 믿음을 가졌다면 국가가 어떤 상황에 빠지던 그 믿음에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국가가 아닌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0절 말씀에서 보면, 바벨론으로 인해서 울고 애통해 하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그에게 심판을 행하셨음이라 하더라." 아멘! 아멘! 바벨론이라는 죄악 된 세상의 멸망이 오히려 즐거움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히 살아갈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은 바벨론이라는 세상 덕분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바벨론에 의해서 고난을 많이 받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서 2장 5절 - 6절 말씀에서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시고 다시 사신 부활로 인하여 우리 성도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자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살아가는 성도라면 죄악으로 멸망할 바벨론이라는 이 세상의 힘을 의지하고 살아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망할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합니까? 우리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부활의 소망을 결코 지워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우리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우리가 주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피 흘리시고 고난 받으신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서 무시 받고 짓밟히고 있음에 대해서 오히려 우리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연 무엇에 대해서 울며 애통해 하십니까? 세상 살기가 어렵다고 염려하고 근심하면서도, 우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고 근심하신 적은 있습니까? 세상 것으로는 즐거워하고 기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즐겨하지 않고, 교회에서 형제를 위해서 수고하고 봉사하기를 기뻐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 애통해 하고 근심하고 염려하신 적은 있습니까? 지금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우리, 정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은 성도로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야 함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일에 안 되면 애통해하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애통함이 없다면, 결국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그만큼 무관심하고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 자신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무엇에 대해서 애통해 하고 울며 살았는지 여러분의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우리의 애통함과 울음의 대상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세상으로 인해서 운다면 그것은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허물로 인해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피 흘리신 주님의 고난을 깊이 생각하시고 주님의 은혜가 어떠함을 다시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세상으로 인해서 애통해하고 울기보다는 그리스도로 인해서 애통해하고 우는 복 있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