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령 상원의원, 다이앤 파인스타인(90). 올해 2월 사진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의 인생이 쉬운 적은 없었지만, 90세를 맞이한 올해는 기념비적이다. 파인스타인은 미국 5선 상원의원이자 자신이 나고 자란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지냈다. 여성 정치인의 선구자로 추앙받아온 건 그러나, 과거 이야기다. 지금은 그가 평생 몸담은 민주당의 열혈 지도자 일부조차 그를 두고 "반 송장(half-dead)"이라며 사퇴 요구를 쏟아내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근엔 사망한 남편의 자녀들과 법정 분쟁까지 하며 내우외환을 겪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2일(현지시간) "의원직 수행 자체도 힘겨운 파인스타인에게 가족 간의 법적 분쟁은 그의 길었던 커리어의 마지막을 괴로운 시간으로 채우고 있다"고 평했다.
AP통신에 따르면 파인스타인은 지난 5월 대상포진까지 걸렸다고 한다. 격심한 스트레스가 이유인 것으로 풀이된다.
파인스타인은 1933년생으로, 스탠퍼드대 졸업 직후 정계에 발을 들였다. 미국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한 건 1920년이지만 피선거권에 도전하는 여성은 드물던 때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시정 활동 관련 위원회에서 활동하다 1971년, 1975년 두 차례에 걸쳐 시장 선거에 도전장을 냈으나 패배했다.
그러나 그는 시정 감독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며 계속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 1978년, 당시 시장이었던 조지 모스코니가 암살되면서 시장 대행으로 추대됐고, 이어 시장으로 선출됐다.
그의 꿈은 곧 샌프란시스코를 넘었고, 역시 몇 번의 고배를 마셨지만 1992년 상원의원으로 선출됐다. 캘리포니아 지역의 첫 여성 상원의원으로 기록됐고, 2009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선 여성 최초로 사회자 역할을 맡았다.
그사이 5선 의원으로 당 중진이자, 현재 당 최고령 상원의원이 됐다.
업무를 보는 다이앤 파인스타인 의원.
건강 문제는 2020년 가을 불거졌다. 고령으로 인한 인지 능력 저하가 의심된다는 목소리가 민주당 내에서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대법관 지명자인 에이미 배럿의 인준 청문회에서의 그의 언행이 문제가 됐다.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에도 상황은 좋지 않았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 수가 팽팽하면서 한 표라도 아쉬운 상황인데, 파인스타인은 건강 문제로 회의 및 표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당내 볼멘소리가 거세졌다.
당시 하원의장이었던 동년배 동료 여성 정치인 낸시 펠로시가 "남자라면 그런 얘기를 안 할 텐데, 너무들 하다"고 일침을 놓았을 정도다.
다이앤 파인스타인보다 7세 어린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의 의회 연설 직후, 연설문을 찢고 있다.
그 펠로시도 의사봉을 놓은 지금, 파인스타인에 대한 사퇴 요구는 더 거세지고 있다. 파인스타인은 사퇴는 하지 않는 대신, 내년 선거 불출마선언을 했다. NYT는 "그를 두고 '반 송장'이라는 목소리까지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와중에 지난해 사별한 그의 세 번째 남편 리처드 블럼의 세 자녀와, 파인스타인이 두 번째 결혼에서 낳은 딸 캐서린 사이에 자산 처분을 둘러싼 갈등도 생겼다.
부유했던 금융가였던 블룸의 저택 중 하나를 처분하는 문제를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해 법정까지 간 것. 파인스타인 본인 역시 어린 시절부터 부유한 편이었지만 자녀들 간의 유산 분쟁에선 자유롭지 못한 셈이다.
NYT는 파인스타인의 지인을 익명으로 인용해 "화려하고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정치인의 마지막치곤 쓸쓸하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