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워킹맘
“밥해 놓았다. 냉장고에서 반찬 찾아서 먹어라.” 내가 이런 문자를 보내게 될 줄이야. 학교에 출근해서,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때 이런 문자를 아이한테 보낸 적이 있다. 저녁에 퇴근해서는 양복 저고리를 그대로 입은 채 냉장고 문을 열고 주섬주섬 반찬통을 꺼내고, 가스 불을 켜고 물을 올려놓으며, 이런 저런 주방 일을 할 때가 많다. 영락없는 워킹맘이다. 그것도 싱글맘. 물론 불량맘이기도 하다. 아주 엉터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요리라는 것은 현미밥 짓는 것 이외에, 삼촌네 마트에서 사온 삼호 어묵이나 프랑크 소세지를 데우는 것, 두부 데우는 것, 계란 삶는 것, 냉동 만두 튀기는 것, 훈제 오리 데우는 것 등에 불과하다. 참, 지난번에는 삼례 장날, 장에서 오징어 네 마리를 사와 대치기도 하였다. 동네 반찬 가게에서 동그랑땡이나 달걀조림, 시금치 무침, 무생채, 그리고 육개장, 미역국, 아욱국 등을 사와 그대로 밥상에 올려놓기도 한다. (반찬 가게 신세를 많이 진다. 가게에 다른 손님이 없던 어느 날, 반찬 가게 아줌마(40대 후반)가 넌지시 두어 가지 반찬을 공짜로 넣어 주면서 나한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이것저것 좀 싸드리려고 해도,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요. 삼례는 워낙 좁고, 워낙 말이 많이 나는 고장이잖아요.”)
멕이는 게 이러니, 먹성 좋은 아이로서는 항상 배가 고플지도 모른다. 참으로 불량맘이다. 그래도 설거지는 해준다. 세탁기도 돌려준다. 물론 베란다에 널어주기도 하고. 단, 다림질은 없다. 나는 원래 다림질을 안 하고 그냥 입는 버릇이 있다.
내가 불량맘이니 싱글맘, 워킹맘이라고 말하는 데에는, 나는 어쨌건 맘 쪽에 가깝다는 뜻도 들어있다. 즉 나는 대디는 되지 못한다는 뜻도 들어있다. 대디라는 것은 아이를 먹이고 씻기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치는 사람이다. 말로 가르치건, 모범을 보임으로서 가르치건, 가르쳐야 대디이다. 그리고 가르치자면 야단을 쳐야하므로, 야단을 쳐야 대디이다. 아이가 내려온 후, 나는 아이한테 누워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로 결심한 바 있지만, 며칠 못가서 그 결심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 동안 내가 아이에게 가르친 것이라고는, 기껏, 자동차 문을 닫을 때 정중하게 두 손으로, 그리고 살살 닫으라는 것과 식사가 끝난 후 빈 그릇을 싱크대로 옮길 때 겹쳐서 들지 말라는 것, 닳아빠진 칫솔을 쓰지 말고 새 칫솔로 자주 교체하라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아이는 내 가르침을 무겁게 듣고 민첩하게 배우며 결코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그렇겠지만, 아직 아이를 야단 친 적이 없다.
아이가 여기에 내려온 뒤로 야단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그 전에도 야단친 적이 없다. 단 한 번을 빼고 말이다. 아이와 (세 살 터울의) 아이의 형을 동시에 혼내주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학생이었을 것이다. 제사를 지내는 중이었다. 그 엄숙한 자리에서 두 아이가 킥킥 거리면서 장난을 쳤다. 내가 주의를 주었지만 아이들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엄한 목소리로 “너희들은 방에 들어가 있어”라고 말하였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나는 지금껏 그 일을 기억하고 있다.
제자가 공자한테 질문하였다.
“군자에게도 사(私)가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아들이 아프다고 하면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러나 조카가 아프다고 하면 하룻밤에 몇 번이라도 들여다본다.”
이 말을 듣고, 제자는 군자(공자)에게는 역시 사가 없는 모양이로구나 하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공자의 말이 끝나지 않았다.
“조카가 아프다고 하면 하룻밤에 몇 번이라도 들여다보지만, 그렇게 들여다보고 돌아와서는 깊이 잠에 든다. 아들이 아프다고 하면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밤새 잠들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논어>에 나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기>(공자세가)라든가, 다른 문헌에 나오는 것 같다.)
첫댓글 머지않아 주부습진 걸린 교수님의 손이 찍힌 사진을 볼 것 같은 유쾌한(?)예감이 듭니다.
군자에게도 마음 깊은 곳에는 私가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 가서 조교수 옆에 붙어 먹고 자도해도 극락이겠네.. ㅎㅎ
주부습진? ㅋㅋ 난 설겆이할 때 고무장갑을 안 써. 군대에서도 그랬어. 한겨울에 지푸라기를 수세미 삼아서빨래비누로 냇가에서 설겆이할 때도 말이야. 기모 오랜만. 극락? 지옥일 수도. ㅋㅋ 반갑.
반찬 가게 아줌씨도 함께 동거를~ ㅎㅎ
며칠 전에 갔더니, 가게에 어떤 젊은 남자가 있더라고. 식탁에 앉아서 다리를 꼬고 삶은 달걀을 까먹던데? ㅠㅠ
주춤 거리면 후회를 할 수 있지.. 젊은 남자라고 기 죽지 마시압! 머리 까많게 물 들였잔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