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감리 돌나물
일기예보에는 전국적으로 황사가 심할 거라는 사월 중순 수요일이다. 그동안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제조업이 위축되고 교통량이 줄어서인지 미세먼지는 적은 편이었다. 그와 함께 봄날의 불청객 황사도 심하지 않았더랬다. 두 달 전 함안창녕보에서 칠서 강나루 생태공원을 트레킹했을 때 우리 지역에 황사가 엄습한 이후 처음이다. 황사를 무릅쓰고 자연학교는 변함없이 등교했다.
아침나절 시내버스를 타려고 정류소로 가는 길에 집 근처 농협 마트를 지났다. 농협 마트에서는 수요일과 토요일이면 매장 바깥 뜰에 알뜰 장터를 열어 둘러봤다. 산지가 어딘지 모르지만 농부의 손길에 길러진 각종 채소와 과일들을 진열해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제철 찬거리로 마늘쫑이 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맘때 마늘밭에서 손길이 바쁘게 끊어낼 쫑이었다.
알뜰 장터를 지난 정류소에서 동정동으로 가는 105번 시내버스를 타 북면 온천장으로 가는 농어촌버스로 갈아탔다. 지난 주말 진달래 축제로 각처에서 상춘객이 몰려왔을 천주암 아래를 지나 굴현고개를 넘었다. 외감 동구에서 내려 마을로 드는 길에서 들나물을 캐는 두 아낙을 만났다. 쑥은 웃자라 철이 지나는 즈음이고 수로의 돌미나리와 돌나물을 캐어 보자기를 채우고 있었다.
나는 돌미나리는 관심 종목이 아니고 돌나물을 걷을 참인데 그 아낙은 나와 동업자이면서 경쟁자이기도 했다. 동구에서 아낙들은 미나리를 키우는 비닐하우스단지로 들어가 나와 동선이 겹치지 않아 다행이었다. 나는 마을 앞 경작지 논둑에 자라는 돌나물을 걷어 뿌리와 검불이 붙은 채 비닐봉지에 담았다. 달천계곡 들머리를 지난 남해고속도로 창원 터널 입구 근처까지 진출했다.
언덕에 자라는 오리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길바닥에 퍼질러 앉아 아까 걷은 돌나물에 붙은 꼬투리와 검불을 가려냈다. 검불을 가려내는데는 시간이 제법 걸려 인내심이 요구되었다. 인적이 드문 곳인데 인상착의가 점잖은 한 사내가 지나가기에 등산객이냐 여쭈었더니 캠코에서 국유지 현황조사를 나왔다고 했다. 나는 캠고가 한국자산공사이며 그런 공기업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외감 동구에서 걷은 돌나물을 가려 배낭에 채워 담고 마을 뒤에서 농지로 흘러가는 수로를 따라갔다. 농약 오염은 염려되지 않는 길섶에 싱그럽게 자란 돌나물이 보여 주섬주섬 뜯어 모았다. 외감에 딸린 작은 마을 새터를 앞둔 텃밭에는 중년 부부가 금세 뽑았을 쪽파를 깔끔하게 가리고 있었다. 인생 후반부를 자연 속에서 흙과 더불어 해로하는 부부의 모습이 부러움을 살 만도 했다.
감나무 과수원 언덕에 이르기 전 돌나물을 더 걷었더니 손에 든 봉지가 묵직해 왔다. 조선 중기 학자이며 정치가였던 미수 허목이 젊은 날 한때 머문 구천과 달천정을 지났다. 감계 신도시 아파트단지가 바라보이는 새터 버스 정류소 쉼터에서 배낭을 벗어두고 나중에 걷은 돌나물에 붙은 검불을 가렸다. 먼저 가렸던 돌나물보다 잎줄기가 싱싱하고 굵어 찬거리로 삼기에 아주 좋았다.
돌나물을 가리는데 여념이 없는 사이 한 할머니가 유모차를 앞세워 와 옆에 앉으시기에 말벗이 되었다. 할머니는 이웃 중방마을에 사는 분으로 올해 여든일곱 살로 집에는 아흔셋 영감이 병석에 누운 지 삼 년째라 했다. 마산에서 임대업을 하는 큰아들이 과일과 반찬을 자주 챙겨와 그럭저럭 지낸다고 했다. 할머니는 가죽 순을 따려고 먼저 일어서면서 내가 집에 놀러 오길 바랐다.
할머니가 떠난 이후 남은 돌나물을 마저 가려 봉지에 챙겨 담아 배낭을 둘러멨다. 외감으로 가는 찻길에서 작은 저수지로 드는 수로를 지나 마을 한복판으로 흐르는 신천을 따라 걸었다. 천주산 달천계곡에서 발원한 신천은 화천리를 거쳐 동전 산업단지를 지난 본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들었다. 냇바닥에는 돌미나리가 자랐으나 걷을 마음이 없었고 돌나물 자생지는 눈여겨 봐두었다. 23.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