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28. 금요일: 치앙마이, 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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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세 밤을 잤다. 비행기에서 잔 것까지 치면 네 밤이다. 나는, 그토록 경멸하던 관광객들 틈에 끼어 출국 수속을 밟았다. 목적지는 치앙마이.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고 한다. 특히 불교 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어있다고 한다. 이곳에 도착해 보니, 과연 그 말이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역사와 문화의 도시라면, 그곳은 관광의 도시가 되게 되어있으며, 관광의 도시라면 환락의 도시가 되게 되어 있다.
나는 캐리어에 불교에 관한 서적 세 권을 집어넣었다. “오전에는 이 책들을 읽어야지.” 나는 대체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면 오후에는? “오후에는 관광을 좀 해야지. 그토록 대단하다는 사원들도 좀 둘러보고.” 그러나 세 밤 자는 동안 이곳에서 내가 한 제일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제일 중요한 시간도 따로 있다고 말해야 하겠다. 나는 미처 “밤에는 무엇을 하지?” 하고 묻지 않았다. 나는 사흘 밤 내내 치앙마이 거리를 휘젓고 다녔다. 치앙마이의 야시장 거리를. “나이트 바자”라고도 한다.
우연히도 내가 묵고 있는 호텔이 바로 야시장에 접해있다. 첫날 호텔 입구로부터 3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야시장 팻말을 보았다. 우리는 이쪽에 작은 야시장이 서는 모양이네 하고 생각했다. 이쪽에 야시장이 서는 것은 맞다. 그러나 작은 것은 아니었다. 그 규모는 가히 “엄청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다. 남대문 시장의 서, 너 배는 넘을 듯하다. 나는 사흘 밤 내내 시장을 돌아다녔다고 말했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그 끝을 본 것 같다.
인구 20만의 소도시에 이렇게 큰 시장이 열리다니. 그것이 가능한 것은 물론 관광객들 덕분이다. 관광객 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서양인들이지만,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들도 많다. 파는 물건은 그렇게까지 다양하지는 않다. 티셔츠 등의 가벼운 옷가지, 민속무늬의 천으로 만든 가방들, 귀거리 같은 여성 장신구 등등. 대부분의 점포는 물론 손바닥 만한 규모이다. 에누리는 일상사. 나는 반바지를 하나 샀는데, 200바트(8천원) 달라는 것을 110바트 까지 깎았다. 올빼미 모양의 목거리형 장신구는 여러 셋트를 샀는데, 한 셋트(두 개)에 30바트(1200원)정도. 그러니까 물가가 한국에 비해 상당히 싼 셈이다.
당연히 음식점도 많이 있다. 특징적인 것은, 여기저기에 식당군(群)이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파타이 샐러드 등을 파는 점포, 꼬치구이를 파는 점포, 해산물을 파는 점포, 딤섬과 춘권을 파는 점포, 맥주를 파는 점포 등등이 한 곳에 모여 있다. 이런 식당군이 십여군 데가 넘는다. 그 중 한 곳에서 나는, 사지를 쫙 벌린 채 막대기에 꽂혀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익고 있는 악어를 발견하고 용기를 내어 보았다. 악어 고기는 육질이 닭다리와 비슷했다. 맛있었다.
버스킹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팁 박스를 놓아둔 연주자들도 있지만, 그들은 식당(군)에 고용된 사람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연주 형태는 다양하다. 그제 밤에는 팝송과 태국 노래를 부르는 태국 청년의 노래를 들었다. 이 사람은 기타를 치면서 반주기도 사용하였다. 브루스만 연주하는 서양청년의 노래도 들었다. 이 사람은 반주기는 사용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일곱 명으로 이루어진 보컬 그룹도 있었다. 그런 연주자들을 고용한 곳은 당연히 수십 개의 식당들로 이루어진 큰 식당군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음식을 시키지 않은 채 노래만 들었는데, 그곳에 이르렀을 때쯤 되어서는, 연주자나 연주 그룹들마다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컨대 일곱 명으로 구성된 보컬 그룹은 에미넴의 노래 같은 요즘 노래를 연주하였고, 그 그룹 앞에 나가 춤을 추거나 자리에 앉아 노래를 듣는 관객들은 주로 젊은이들이었다. 한 식당은 나이든 태국인 남자 연주자 세 명과 남미계인 듯 보이는 여가수를 고용했는데, 이들은 주로 비지스나 비틀즈 등의 옛날 팝송과 콴도 콴도 콴도나 라밤바 등의 옛날 라틴 넘버를 연주했다. 그 식당은 스테이크나 파스타 등을 내놓았으며, 고객들도 나이가 들어 보였다.
치앙마이 야시장. 나는 지금 못 보던 것을 보고 있다. 혹은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것을 현장에서 실물로 보고 있다. 시장 바닥은 오징어 잡이 배의 집어둥처럼 눈부시게 밝은 조명으로 가득 차 있다. 끝없이 늘어선 꾀죄죄한 점포에는 알록달록 이국적인 문양의 물건들이 즐비하고, 식당 근처에서는 야릇한 고수향과 두리안의 오묘한 냄새가 피어난다.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면 부브카를 뒤집어 쓴 여인들이 지나가고 그 뒤를 트잰(트렌스 잰더)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비키니보다도 작은 브라질 축제의 복장을 하고 따라간다.
호기심이 난다고 해서 바구니의 뚜껑을 열어보는 것은 권장되지 않는다. 장마당에서는 코프라를 본 적이 없지만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놋쇠 주발들을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그 중 한 개를 집어 슬슬 문질러 보고 싶었다. 나에게 세 가지 소원을 말하라고 하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러나 조심하라. 갑자기 썽태우니 툭툭이니 하는 이곳 고유의 교통수단들 사이로 40마리의 말을 탄 도둑떼가 나타나 순식간에 당신이 산 물건들을 갈취해갈지 모르며, 그런 기막힌 일이 일어나도 이곳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당신의 하소연을 묵살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자 가게에서인가, 누가 나에게 물었다. “한국 사람이쇼?” 한국 아저씨 한 명이 오랜만에 바다를 건너와 낯선 거리를 헤매고 다닌다. 그래 정말로 “펑” 소리와 함께 연기를 피우면서 거인이 나타나 “주인님, 주인님, 무엇을 도와드릴깝쇼?” 하고 말하면, 나는 무슨 소원을 말해야 할까?
첫댓글 악어고기?.....질길 것 같네 ㅎㅎ
치앙마이가 태국이지? 야시장 다니느라 다리 아팠을텐데 마싸지는 안받았어??
악어고기, 안 질김. 마싸지는 받았음. 발마싸지만. 30분에는 6;천원. 한 시간에는 1만원.
@조영태 나는 발이 간지러워 3분도 못버티는데.. ㅎㅎ
소원이 여러개가 있나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