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이산 솔숲 둘레길
사월 둘째 목요일이다. 지난주 트레킹을 다녀온 문우들과 연이어 동행한 걸음을 나서게 되었다. 본디 여행사에서 기획한 전남의 어느 섬에서 열리는 튤립 축제를 전세버스로 다녀올 예정이었는데 희망자가 적어 취소되었다고 한다. 나는 나대로 생활권을 맴돌면서 제철에 핀 야생화만 구경해도 좋아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들이 가게 될 대체 행선지는 내가 정했다.
나는 여정 중 간편식으로 때울 김밥을 반송시장 노점에서 마련 문우들과 합류했다. 창원역 앞에서 운전자가 교체되면서 목적지를 향해 떠났다. 서마산에서 국도를 따라 내서에서 신당고개를 넘는 무학산과 건너편 자양산에는 신록이 싱그러웠다. 지금 사월 중순이 아닌 오월로 여겨도 될 풍광으로 일행은 지난날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배웠던 이양하의 ‘신록예찬’이 떠올랐다.
여행사에서 기획했던 전라도 섬으로 떠나는 여행을 대체해 내가 정한 목적지는 함안 군북 백이산이다. 그보다 먼저 일행들과 의견 수렴 과정에서 진전 둔덕에서 미산령을 넘어 가야 파수로 나가는 트레킹 코스 제안에도 동의받아 그곳으로 갈 뻔했다. 전날 한 회원이 인터넷 검색으로 미산령을 넘는 코스는 아무래도 무리가 된다고 해서 행선지를 바꾸어주어 나는 마음이 가벼웠다.
가야를 지나 군북에 닿기 전 고갯길에서 차를 멈춰 커피를 마시며 환담을 나누었다. 쉼터 그늘막이 되는 등나무는 보라색 꽃이 피어났다. 창원에서 옮겨간 향토 사단이 드러났는데 인구 소멸 위기를 맞은 경북 청송이 교정시설로 지역 경제가 명맥을 잇듯 그곳 면 단위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군북역 지상부 역사 지하공간에 차를 세우고 인접한 등산로로 들면서 일정을 의논했다.
어제부터 기승을 부리는 황사는 여전했지만 우리의 트레킹 여정을 가로막지 못했다. 나는 백이산을 몇 차례 등정했는데 다른 문우는 초행길이었다. 산행 들머리 등산 안내도에는 ‘팔자가 펴이는 백이산 둘레길’이라고 적혀 있었다. 생육신의 한 분인 조려가 고향으로 낙향 은둔한 원북 앞산이 백이산으로 그 곁의 숙제봉과 함께 산허리 둘레길이 8자 형이라 그렇게 부를 만도 했다
백이산은 진주를 거쳐온 낙남정맥이 오곡재에서 분리된 오봉산의 분맥 끝자락으로 솔숲이 우거졌다. 국립공원 경주 외곽 포항 가는 길목 안강 흥덕왕릉의 옹글어지고 비틀어진 솔숲이 유명한데 거기 견줄 만큼 인상적이었다. 600년 전 생육신 조려의 기개를 연상하게 하는 산 이름이고 소나무였다. 인적이 드문 소나무 숲 바닥에는 이맘때 피는 보라색 각시붓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백이산 정상부를 앞둔 정자 쉼터 앉아 쉬면서 나는 나아갈 산행 방향을 안내했다. 정상 등정보다 산허리로 개설된 둘레길을 걷자고 했다. 산행 표지판이 가리키는 오른쪽의 화살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아까 본 각시붓꽃 말고도 제비꽃을 비롯한 제철 야생화들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병꽃나무에서도 노란 꽃이 피어나고 참취가 한 포기 보여 짚어주며 이게 산나물이라고 일러주었다.
산허리를 돌아간 명관리 공룡 발자국 화석에서 인류 이전 지구상에 출현했던 거대한 맘보스를 떠올려 봤다. 숙제봉으로 건너기 전 약수터에 준비한 김밥으로 간단히 점심 요기를 때우고 숙제봉 둘레길로 들었다. 출발 전 내가 짐작한 바였던 다래나무 군락지가 나왔다. 일행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고 이게 산나물이 되는 다래 순임을 알려주고 채집 방법을 시연해 각자 봉지를 채웠다.
숙제봉 산허리를 돌아 남겨둔 백이산 둘레길까지 걸었으니 8자가 펴이는 길을 완주하고 차를 둔 군북역으로 갔다. 운전대를 잡은 문우는 귀로의 차창 밖 눈 호강을 위해 동선을 멀게 잡아 법수와 대산을 거쳐 남강 하류 합강정까지 둘렀다. 창녕함안보를 지나 북면에서 시내로 들어와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일조했다. 생선회를 앞에 두고 맑은 술을 비우다 예전 근무지 동료들을 만났다. 23.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