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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만든 책이 아니다. 땀으로 만든 책이다. 그것도 44년 동안 수십 명의 땀으로 만든 결과물이다.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1969년부터 지금까지 묵묵히 험한 산길을 걸어 기록한 산꾼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실로 아둔한 일이다. 스마트폰 하나로 GPS며 인터넷이 다 되는 정보화 시대에 험한 산봉우리를 몸으로 부딪쳐 겪은 결과물을 펜으로 세심히 표시해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도 거슬러가 보면 결국 원작자가 있다. 제대로 된 저작권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도 월간山은 묵묵히 밀어붙여 왔다.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월간山이 잔머리 쓰지 않고 시대를 역행해 만든 무모한 뚝심의 완성판이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출판사에서도 4,000개가 넘는 산의 등산지도를 만든 곳은 없다.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대한민국에 산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산꾼들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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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100m대의 낮은 산도 등산로가 있는 곳은 표시했다. / 제주 올레 같은 걷기길을 지도에 표시했다. / 페이지 여백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등산로의 진행방향을 표시했다. / 유명하지 않은 산은 월간山 기자들과 만산회원들이 수기로 표기하여 작업했다. " src="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san.chosun.com%2Fsite%2Fdata%2Fimg_dir%2F2013%2F08%2F01%2F2013080102068_3.jpg" width=480 height=454>
- ▲ (왼쪽부터) 임도에 붉은 점선으로 표시한 MTB 코스. MTB 라이더들의 GPS 실트랙을 바탕으로 작업했다. / 100m대의 낮은 산도 등산로가 있는 곳은 표시했다. / 제주 올레 같은 걷기길을 지도에 표시했다. / 페이지 여백의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등산로의 진행방향을 표시했다. / 유명하지 않은 산은 월간山 기자들과 만산회원들이 수기로 표기하여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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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생은 1995년 1,000산을 올라 한국일보에 소개된 것을 계기로 한국 최다 산을 오른 인물로 인정받았다. 1990년대부터 2008년 정도까지 20여 년간 독보적인 한국 최다 산 오름 1인자로 산꾼들의 부러움을 샀으나 지금은 순위가 밀렸다. 같은 만산회의 문정남, 심용보 같은 회원들은 8,000개 산과 봉을 넘어섰다. 봉우리 헌터로 불리는 이들로 한 번 능선에 오르면 여러 개의 산을 빠르게 쳐 산 개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한 달 중 24일 이상을 산에 간다고 한다.
그러나 정확한 산행기록만큼은 이종훈 선생을 따라 올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전국 600산 등산지도> 책을 성지문화사에서 내기도 했다. 정확도를 중시하기에 개념도보다 등고선 지도를 선호한다. 그의 성향을 그대로 반영해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에 꼼꼼히 등산로를 수기로 표시했다. 그는 이 책의 장점으로 “등산로가 표시된 산의 개수가 많아서 좋다”고 한다. “산꾼들에겐 산의 개수가 많을수록 최고의 책”이라며 “골수꾼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한다. 또 “작업한 노고에 비해 거저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7만 원이면 산 하나에 10~20원이라는 건데, 이런 귀한 책을 그 가격에 살 수 있다면 거저나 마찬가지 아닌가요? 다른 데서 이 가격에 이런 책을 내놓을 수 없다고 봐요.”
이종훈 선생과 김은남 선생은 이윤을 바라지 않고 월간山을 위해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 작업을 해주었다. 이 선생은 “다음 산꾼들을 위해 그리 했다”고 한다.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이걸 보고 잘 다닐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내가 1970~1980년대에 이런 책이 없어서 고생고생 하면서 다녔으니까, 뒷사람은 편하게 하는 마음에서 금전적인 득실 없이 도움을 주기로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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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위부터)이종훈, 김은남, 박성태 선생이 작업한 무수한 흔적. / 지도책 서두에는 신산경표 산줄기가 실려 있으며, 박성태 선생이 직접 감수했다. / 페이지마다 도북, 진북, 자북을 표시했으며, 등산로의 점선은 100m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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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남 “산악계에 길이 남을 지도책”
김은남(70) 선생이 산을 헤아리며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다. 은행 지점장 출신인 김은남 선생은 오르는 산을 시조로 쓰기 위해 산을 탔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 2,600여 개가 되었다. 즉 2,600여 편의 산 시조를 쓴 것이다. 그동안 1,000개의 산을 오르고 펴낸 <일천산의 시탑1>, <일천산의 시탑2>를 펴내 2,000개의 산을 시조로 출간했다. 그는 3,000편의 산 시조를 쓰는 것이 소망이라고 한다. 더불어 <시조시인 산행기>, <주말 난 어느 산으로 가지> 같은 산행가이드북을 펴냈으며 1997년부터 ‘알려지지 않은 산’이라는 산 소개 기사를 산악잡지에 연재하고 있다. 그는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의 발간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등산가이드책을 보면 약식 개념도가 많은데, 등고선이 있어야 산을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남들 따라가는 사람 말고, 사람들 이끌고 가는 대장이나 진정한 산꾼이라면 꼭 있어야 할 책이에요. 펼쳐서 복사하기도 좋고 낱장으로 뜯어서 비닐에 담아 산에 들고 다니기도 좋아서 실용성이 있어요. <신산경표>만큼 산악계에 길이 남을 책이라고 봅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돈이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누군가는 꼭 남겨야 할 책이고, 그 역할을 월간山이 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김은남 선생은 등산로를 직접 표기한 산중에서 기억에 남는 걸로 정선의 돌도끼산(968m)을 꼽는다. 평소 역사와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산행 중 신석기시대의 돌도끼를 직접 발견했으며, 이를 계기로 돌도끼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이번 지도 작업에 금전적인 실리를 따지지 않고 동참해 주었다.
“평생 은행에서 일했지만, 돈 몇 푼 가지고 따지면 작은 장사꾼입니다. 큰 일 하려면 작은 손해는 감수해야죠.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는 앞으로 산에 다닐 후손들에게 두고두고 도움될 텐데 당연히 해야죠. 이 일은 내가 꼭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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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후세의 산꾼들을 위해 흔쾌히 작업에 동참한 김은남 선생. <사진 이경민 기자>/ 대간, 정맥, 기맥, 지맥 선을 감수한 박성태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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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의미 있고 무척 편리한 지도집”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가 주목 받는 것은 백두대간, 정맥, 기맥, 지맥을 모두 표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쌀 한 톨에 반야심경을 새기는 것처럼 무모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할 우리나라 산의 숙제를 푼 이가 <신산경표> 저자인 박성태 선생이다. 우리나라 산줄기를 정리한 이를 여암 신경준-고산자 김정호로 잇고, 다시 발굴한 이를 이우형-조석필로 잇는다면 마지막 자리에서 현대적으로 완성한 이가 박성태다.
박성태 선생은 이번 지도집에 대해 “단위 산이 아닌 우리나라 전체를 대상으로 등산지도책을 만든 건 대단한 일”이며, “대간, 정맥, 기맥, 지맥 모두를 표시한 것도 최초”라며 “이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보통 지맥 산행을 하려면 일반지형도에 직접 펜으로 그어 지맥 산줄기를 표시해야 하는데, 그런 복잡한 작업 없이 지도만 들고 산에 가면 된다는 것이다. 박 선생은 “종주 산꾼들 입장에서는 무척 편리한 지도집”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월간山이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를 만드는 것을 두고 디지털 시대에 쌀 한 톨에 훈민정음을 새겨 넣겠다고 아등바등하는 무모한 일이라고 했다. 다른 이는 손해 보는 장사에 왜 불나방처럼 뛰어드냐고 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손익으로 따질 수 없는 일도 많다는 것을, 우리는 험산을 오르는 무모하고 행복한 행위를 통해 알고 있다. 산꾼 마음은 산꾼이 안다고 했다. 월간山은 이 땅의 산꾼들이 더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대한민국 4,000산 등산지도>를 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