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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틴이 바닷가를 거닐면서 삼위일체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삼위일체를 이해할 수 없어 계속 고민하며 걸어가는데 자기 앞에 어느 어린 아이 하나가 바닷가에 앉아 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보니 조개껍질로 바닷물을 퍼서 자기 앞에 파놓은 조그마한 구멍에 붓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어거스틴은 물었습니다. '너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니?' 어린이가 대답하기를 '바닷물을 다 퍼서 여기 넣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어거스틴은 깨달았습니다. 내가 어리석은 생각을 했구나 다시는 삼위일체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거스틴이 바닷가에서 본 것은 환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계시했느냐 이것이 문제지 합리적이냐. 이치에 맞느냐 하는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쪽이 사실이냐 그것만 문제가 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오셨으면 오신 것으로 끝난 것이지 이것이 가능하냐 아니냐. 내 마음에 드느냐 안드느냐. 이치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무슨 상관입니까? 오직 믿음으로 묻지 말고 믿어야할 것입니다. 일본 사람들의 격언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습니다. '갈까 말까 하는 길은 가지 말라. 먹을까 말까 하는 음식은 먹지 말라. 할까 말까 하는 일은 하지 말라. 죽을까 말까 할 때는 죽으라'입니다. 우리에게 좀더 새로운 결단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지성, 우리의 판단이 다 충족된 다음에 무엇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하지 맙시다.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오직 믿음으로 만 받아 들이고 있습니까? 고후5:7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1.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주님의시선 회원님들께서 건강하게 올 겨울도 사역과 생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저는 일 주일에 4번 야외 찬양사역을 나가고 있습니다. 이 번 겨울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시고 영적인 은혜속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목 : 말씀으로 역사 하는 창조 사역 성경 : 고후5:17,창1:3-31,계21:1-27 말은 사람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말은 단지, 의사 전달 하는 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말 한 마디 잘 하여 천냥 빚도 갚는다'는 이야기는 말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실, 말 한마디 잘못하여 살인까지 부르는가 하면, 유순한 말 한마디로 원수가 친구 사이로 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잠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말은 자기 자신을 얽어 메기도 하고, 풀어놓기도 합니다. 그래서 (잠6:2)에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고 하며,(잠16:24)에는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은 그 사람 자체를 대변하기 때문에 말속에 그 사람의 성품과 인격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말이 이처럼 힘이 있고 중요하다면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더 큰 생명력과 창조력이 있을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창조력을 살펴 봄으로 말씀의 중요성을 새롭게 깨닫고자 합니다. 1.우주 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1:3-31) 창세기 1장에 창조 기사가 나옵니다. 창세기 1장을 주의 깊게 읽어 보면 매번 창조 때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라는 말이 먼저 기록되어 있음을 발견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창 1:에서 10번 사용되고 있는데(3,6,9,11,14,20,22,24,26,29절) 성경에서 10이란 숫자는 '완전'과 '충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우주 만물 창조는 순전히 창조력이 있는 말씀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절대로 공허하지 않습니다.(사55:11)에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하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능력이요, 행동이십니다. 피조 되어진 우주 만물 속에는 하나님의 숨결과 계시가 깊숙이 베어 있습니다. 천문학자 케플러는 하나님을 섬기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친구가 한 명 있었습니다. 그 친구의 견해에 따르면 우주는 어떤 기계적인 질서에 의해 생겨났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케플러는 그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이 우주는 하나님의 창조물이라네!"그러나, 그 친구는 "아니야, 어떤 궤도 안에서 가장 우세한 힘을 가진 별이 다른 별들을 지배함으로써 생겨난 우주의 법칙에 불과한 거야. 태양계란 그 자체의 힘으로 생성된 것이지 누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란 말일세!" 라고 하면서 이 우주가 저절로 생겼다는 것입니다. 케플러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 친구의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캐플러는 그 친구에게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이 창조하셨으며, 지금도 하나님이 이 우주를 주관하고 계시시는 사실을 곧 깨닫게 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케플러는 궁리 끝에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수성, 금성, 지구 등 태양계의 별들을 실제 크기의 축소 비율에 맞게 심혈을 기울여 정성 들여 빚어 만들고는 아름다운 색깔까지 칠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아갈 수 있게 서로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며칠 후,케플러의 천문 관측소를 방문한 그 친구는 아름다운 태양계의 모형을 보고 아주 감탄했습니다."오 정말 아름답군! 이 근사한 모형을 누가 만들었지?" 케플러는 내심 그 질문이나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케플러는 조용하고도 침착하게 대답했습니다. "아무도 만들지 않았어! 저 모형은 그저 자기 힘으로 생겨 난 거야!" 그러자 케플러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그런 엉터리 같은 대답이 어디 있나? 어서 말해 보게 누가 만들었지? 자넨가?" 그러자 케플러는 친구의 어깨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대답하였습니다. "여보게, 자네는 이 장난감 같은 모형이 결코 저절로의 힘으로는 만들어 질 수 없다는 것처럼 말했네. 하지만 이것은 자네가 저절로 생겨났다고 믿는 진짜 우주에 비하면 아주 망가지기 쉬운 모형에 불과한 거야. 이 보잘것없는 장난감도 누군가의 손이 아니면 만들어 질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 자네가 어찌 거대한 우주에 대해서는 저 혼자 저절로 만들어진 것 이라고 그렇게 쉽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반문하므로 그 친구는 우주 창조가 저절로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한 창조임을 인정하지 안을 수가 없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심묘 막측한 우주 만물 자체가 도저히 저절로 생겨날 수 없는 것임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우주 만물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일찍이 알았던 시인은 (시19:1-4)에서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날은 날에게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라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자연 속에 깃들어 있는 하나님의 자연계시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다. 그러면 풀 한 포기로 부터 시작하여 뭇 별들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세미한 말씀과 음성을 듣고 감사하며,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2.거듭남(새 피조물, 구원)도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고후5:17)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을 때 사람을 맨 마지막에 창조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조의 중심이 사람이었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사람이 창조되기 전에 있었던 6일 동안의 모든 창조는 사람이 기거하며 살아갈 수 있는 부대조건과 환경을 조성 하기 위한 창조 였던 것입니다. 더욱더 분명한 것은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후 복을 주시며 말씀 하시기를,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 리라"고 하시면서 천지 만물을 사람에게 주시고 관리하게 하신 것을 볼 때 창조의 중심이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포함한 피조된 만물은 선하게 창조되었습니다. 모든 창조를 끝내신 후 하나님의 평가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였습니다. 이 말씀은 '보시기에 심히 선(good)하였더라'는 뜻으로서 히브리어로 <토브>라는 말인데 영어의 GOOD에 해당되는 말이며 '위대한','놀라운','완벽한','아름다운'등의 뜻으로 쓰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는 선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죄와 타락이 들어 왔습니다. 만물의 대표였던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이 같이 죄의 오염 중에 신음하게 되었습니다.(롬8:22)에서는 이것을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회복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회복은 오직 재창조의 사역을 행하시는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회복을 위해 말씀을 보내 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처음 창조의 방법과는 달리 사람의 몸을 입은 인격체로 보내 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구속과 피조물의 회복이라는 재창조의 사역을 위해 성육신 하신, 말씀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말씀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범죄 타락하여 죽음과 절망의 늪에서 방황하는 인생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의 몸을 입으신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인하여 새로워지고 변화되며,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진리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5:17)라고 기쁨에 찬 고백으로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말씀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변화가 일어납니다. 말씀이 들어 가는 곳에 옛사람이 죽어지고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 나는 것입니다. 물리 학자요, 수학자였던 파스칼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새로 태어나는 날이 있었습니다. 1654년 그의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총의 해 1654년 11월24일, 화요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나 식자의 하나님이 아닌 하나님. 확실, 감정, 환희, 평화. 나의 하나님,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 일체의 것이 망각되었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은 당신을 모르나 나는 당신을 아옵나이다. 환희, 환희, 환희, 눈물, 눈물, 눈물." 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파스칼은 이날 말씀에 의해 주님을 영접한 후 매일 아침 5시면 기도하고, 많은 날을 금식하면서 성자처럼 살았다고 합니다. 가장 명상적이었던 파스칼은 그 모든 책은 다 집어치우고 성경과 어거스틴의 참회록만 읽었다고 합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은 심령을 새롭게 하며 변화시키는 사역을 일으키십니다. 이 사역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새사람으로 창조함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 속에서 끊임없는 재창조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부단히 지속되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재창조의 생명력을 가진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 심령에 역사 하도록 마음 문을 열고 기다리며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재창조하는 말씀의 역사가 충만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앞으로 이루어질 새 하늘과 새 땅도 말씀으로 창조될 것입니다.(계21:1-27)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이 땅이 욕심과 교만에 빠진 인간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죄의 오염과 함께 더러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보시기 그렇게도 아름답고 선하던 이 땅이 고통과 눈물의 장소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사랑이 변하여 시기가 되고, 시기가 커져 미움이 되고, 미움이 자라나 살인이 되고, 살인이 문제되니, 싸움이 되고, 싸움이 확대되어 전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 땅은 잠시라도 분쟁과 전쟁이 그칠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 땅 위에는 반목과 질시와 전쟁으로 인한 상처가 아물 날이 없었던 것입니다. 곳곳에서 전쟁의 희생자가 이슬처럼 사라져 갔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도처에서 그럴듯한 미명하에 서로를 향해 총구를 돌리고, 무서운 증오심으로 방아쇠를 당겨 대고 있습니다. 이렇게 한바탕 서로를 죽이고 나면 과연 서로에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끝도 없고, 결론도 없이 눈덩이처럼 커져 가는 증오심만이 있을 뿐 입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기근을 당하여 당장 먹지 못하여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이 수백만에 달하고 있는데도 수백만을 한꺼번에 죽일 수 있는 핵무기 실험을 위해 수백만 달러씩 사용하고 있었다고 하니 이 무슨 웃지 못할 비극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해 버린 인간의 최후가 이토록 몽매하며, 비참해 지고 말았습니다. 이같이 끝없는 혼돈과 미궁만이 온 지구촌을 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찾아 오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 이신 것입니다. 사람이 말씀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끝내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은 먼저 수많은 인간들의 심령에 새로운 피조물로서 창조하는 사역을 계속 하시다가 마침내는 그 새로운 피조물들이 들어가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우리들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으로 말미암아 중생 받고, 구원 얻은 새 피조물이 들어갈 곳은 어떤 곳이 겠습니까? (계21:1-4)에 보니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니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 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고 했습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도 말씀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되어 질 것입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에는 그렇게도 인간을 끈질기게 유혹했고 유혹해 왔던 사단과 마귀가 모두 붙잡혀 무저갱 속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온 누리에 의와 평강 만이 가득찬 새 세상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같은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비록 힘이 들고 어려워도 영원한 소망을 가슴에 간직한 채 감사 찬송 부르며 힘차게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주 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인간의 불순종으로 부패 타락하여 죽음과 슬픔과 절망밖에 없었던 이 세상에 말씀되신 그리스도께서 사랑으로 친히 찾아 오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소망 없는 죄인들이 죄용서 받고 새롭게 거듭나므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살아갈 소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모든 역사가 말씀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말씀의 종교라고도 합니다. 모든 창조와 변화와 축복의 역사가 살아 계신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삶이 피곤하고 어려울 때 우주 만물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말씀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까지도 능히 변화 시키실 수 있는 말씀이 계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죄중에 신음하고 있는 형제 자매 이웃들에게 이 능력의 말씀을 가지고 찾아가십시다. 무엇보다도 항상 나 자신이 이 능력의 말씀에 의지하여 날마다 새롭게 재창조함 받으므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주님의 영광과 설교와 선교와 목회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오늘의 말씀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