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에 쌓인 찬밥덩이들
온다는
딸네도 약속을 어기고
아들은 예고 없는 회식을 하고 오니
준비한 밥과 찬은 고스란히 냉장고에 넣을 수밖에
찬밥은 늘 내 차지
찬밥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아이들에겐 금방 지은 밥을 해주는 게 좋아서 그렇게 하다 보니
밥솥에 갓 지은 더운밥이 있어도
난 찬밥을 렌지에 넣고 덥히고 있다
그러면 더운밥은 또 찬밥이 될 건데
뭘 하겠지만
그래도 먼저 있던 찬밥을 해치워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하다 보니 나는 늘 찬밥만 먹고 있는 셈이 된다.
찬밥신세란 말이 있다
사람의 신분이나 처지가 밑바닥으로 추락하면
그걸 비하한데서 비롯된 말이다
난 찬밥신세다
아니 평생 찬밥신세다
말 그대로 찬밥이 내 차지다 보니
그렇다는 말이지
내가
어디 지위란 걸 지녀봤던가
내가 살면서 한번이라도 남보다 우위에 서봤던가
그냥 원래 타고난 신세 꼬라지가
찬밥신세였으니
거기에 대해선 억울할 것도
불만스러울 것도 없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찬밥신세는 아니라는 말이다
늘 밥을 지어 먹고 먹이며 사느라
먹고 남는 찬이고 밥이고는
다 내 차지가 된 것 뿐이다
밥,
마시는 공기만큼 중요한 생명의 밥
7살부터
풍롯불 후후 불어 쌀을 익히던 꼬마가
60중반까지 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남이 차려준 밥상을 받으면 괜히 허둥거려지고
먹고 먹어도 밥상이 영 낯설다
차려서 다 먹이고 난 뒤 잔반 끌어 모아
앞에 두고 먹어야 맛이 나고 심신이 평안해지니
나만 그런가?
밥,
평생 밥을 지었고 찬거리를 다듬었지만
지루하거나 싫증은커녕 항상 부엌에만 서면 즐거워지는 나다
밥 짓는 걸 좋아 해서인지
그것밖에 배운 게 없어선지 (후자가 맞다 )
아이들 키울 때 밥벌이로 나선 일도 밥하는 일이었다.
공장 직원 밥,
영아원 밥 하숙집 밥
식당, 레스토랑 등등
음식과 관련된 모든 곳을 다니며
밥을 짓고 요리를 하여 돈을 받아
다시
그 돈으로 쌀을 사서 새끼들 밥을
지어 먹이며 살았다
내 평생 안팎으로 밥을 지으러 다니던 중에
내 밥을 상대가 어떤 표정으로 먹는지
어느 양을 먹어 치우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걸 즐겨했는데
어느 날
그 확인이 만족스러운 결과로 나오면
내 가슴이 기쁨으로 벅차오른다.
가령 ..
“이모 오늘 고등어조림 대박이예요!
“아줌마!” 깍두기 뭘 넣었기에 하! 예술이예요!“
라던가
그 보다 더
내 가슴에 해일같은 기쁨의 파도가 밀려오는 때가 있으니
잘생긴 지배인님이나
근엄한 사장님이 오셔서
“사모님” 반찬이 다 맛있어요.
“직원들이
솜씨 좋다고 하던 말이 사실이네요“ 라는 칭찬을 들을 때다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은 순간이다
그 시절엔 음식 레시피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을 때였고
잘해야 요리책 정도인데
그럴 여유도 없었다
그냥 귀한 재료가 넘치게 많으니
내 식대로 응용해보고
버리고 또 해보고
그런 식이었다.
밥,
밥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세월
그 시절 내 몸과 손은 항상
여러 가지 음식 향료들이 배어들어
아무리 씻고 털어도
모공 깊숙이 배어든 음식냄새는
어쩔 수 없었는지
어린 딸애가 일 갔다 들어온 엄마가 그리워
품에 안기면서 하던 말
“엄마!” 오늘 엄마냄새는 기름 냄새예요
또 어느 땐 “엄마!” 오늘 냄새는 매운 냄새예요 하던 일..
밥,
대량으로 하는 밥은
늘 가슴을 졸이게 했다
불 조절 물 조절
둘 중에 하나라도 잘못되면 타거나 설거나 진밥이 되니
장사 시작하기 전 밥부터 체크 한다
큰 요릿집에서 일하던 시절
사장 장모가 주방에 댓방으로 와 있어
늘 가시방석이었는데
그날따라 장모께서 안친 밥이 잘못되었다
사위에게 들을 잔소리가 겁이 난 장모
그 많은 밥을 식당 바닥 하수구 구멍으로 다 흘러 보낸다.
그리고는 옆에 서 있는 날 더러
어서 새로 밥을 안치라고 소리를 지르길래
놀라 쌀을 꺼내 씻는데
황망 중에 씻다보니
쌀알이 하수구로 흘렀던 모양이다 (식당 하수구 아가리는 태평양만큼 넓다)
갑자기
장모님의 비명소리
“야! 쌀을 씻는 거야!
버리는 거야!
아마 밖에 사장님 들으라고 직원 교육시키는 양
일부러 더 큰 소리로 질책하는 것 같은데
나라고 어찌 가만있을 소냐
쌀 씻던 손을 멈추고
치켜 뜬 눈으로 올려다보던 내가 낮은 소리로
“그런 사람이
아까 그 많은 밥을 하수구로 처넣었어? 했다
순간 그녀의 샐쭉한 눈 꼬리가 아래로 미끄러지며
“말이 맞네”
밥 한 솥 버린 내가 하며 자리를 피했다
밥,
밥벌이로 밥을 지어 바치고 그 삯으로
밥을 먹던 세월
따뜻한 온돌방 하나
갓 지은 하얀 쌀밥
빨간 배추김치가 있는 풍경
동그란 양은 상 앞에
볼이 빨간 아이 둘과
종일 밥솥에 고개 처박고 밥을 푸던
지친 홀어미가 있다
나에게 밥이란
찬밥이건 더운밥이건 상관없이 소중하다
이젠 밥을 벌어 오지 못하니
내 밥을 누구와도 나누고 싶다.
그래서
이웃 간에 만나면 인사가
우리 집에 밥 드시러 오세요~ 한다
단,
할머니들에게만 .....
첫댓글 아~~~
참 맛깔나는 글맛 ㅎ
언젠가는 운선님 밥 먹으러 가야지
내가 만든 색다른 밥도 챙겨서~~ㅎ
세상에 밥 만큼 고맙고 소중한게
어디 있을까요?
많은 사람에게 밥보시 하였으니
훈훈한 기운이 듬뿍
마음그릇에 들어오실꺼예요~^^♡
밥 글에 또 배가 고파지네요.
저녁은 굶으려 점심에 많이 먹었는데...
누군가를 위해서만
밥을 짓다가 온전히 나만을 위해
밥을 하기 위해 쌀을 씻던 어느날
울어 버린적이 있지요.
요즘은 혼자먹는 밥도
맛이 있어요.
찬밥은 전자렌지에 돌리면
따뜻한 밥이라 저는 늘
따스한 밥만 먹어요
밥?
지금까지 생명을 부지해준 것이기에
맨날 찾는게 아닐까요?
옛날에
엄마는 맨날 찬밥만 먹고 사는 줄
알았어요
나중에 엄마의 마음을 알았을 때
미안한 생각과 자식에 대한
당신의 희생이
안타깝게 느낀답니다
아마
님께서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요?
아
운선님
내 맘이 왜 이리 아릿해 오는지 ?
늘 먹거리 음식 맹그는 일을 즐거움으로 하신거~
존식당에 진수성찬 반찬이 암만 많아도
밥이 설익은까 못먹겠더라고요
밥이 잘 지어져야 반찬맛이 돋보이더라고요
운선님 손맛을 함 맛보고 싶어요
그라고
글맛이 조리정연하게 왜이리 좋습니껴?
음식이든 글이든
맛을 낼줄 아는 당신은
진정한 멋쟁이 이십니다
울운선님과 마주앉아 따뜻한 밥상 함께 나누고 싶어 집니다.
금손 소유자이신 울운선님의 음식 솜씨가 무늬만 주부인 제게 마냥 부러운 존재로 다가옵니다. ^^~
저는 밥이 다되어 밥솥뚜껑 열때 나오는
그 밤냄새를 엄청 좋아해요
혼자 살게되니 한공기 밥을 할수없어
저는 늘 적당해서 남은 밥은 곧바로
락앤락에 넣어 냉동실로 갑니다
혹시 식은밥이 남게 되면 누룽지 만들어요
시골가면
엄마가 꼭 갓지은밥도 남는데
식은밥 먼저 처리해야한다고 드시는거 보면
보기싫어서
시골가서도 식은밥은 제가 다 챙겨와서
누룽지 만들어요
저의 누룽지만드는 방법은
식은밥에 밥알이 풀어지게 물을 살짝넣고
프라이팬에 기름아주 약간 두르고
밥을 최대한 얇게 펴서
처음에는 중불
뒤집어가며 연한불로 천천히 하면
아주 고소하고 맛있죠
저는 엄청좋아해요
운선님께서는 손맛이
좋을것 같아요 ㅎ
뭐든지 해놓으면 맛나는
분이 있어요
손맛도 큰 복 이더라구요
글맛 손맛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시는 모습이 ᆢ
존경스럽습니다
운선님~ 화이팅 ㅎ ^^
나에게 밥은 하늘이다
마이먹고 오후도. 힘내자 ㅎ
밥 지으시는 것 만큼 글도 잘 지으셔서 어찌나 달고 소화도 잘 되는지요..^^
요즘들어 제가 과식을 좀 합니다 밥솥에 밥이 어정쩡히 남으면 그리 되더군요
나도 주분가?하는 생각을 하며 꾸역꾸역 먹게되는데 문득, 가오가 있지...하며 웃습니다
한때는 햇반인가 햅반인가 사서 먹기도 했는데 왠지 삶의밥이 아니란 생각이 들더군요
밥통에 표시되는 시간이 48시간이 지나도록 다 먹지 못하면 버립니다
남은밥 따로떠다 냉동실 넣는걸 모르는바는 아니나 궂이 그러고 살아야되나 싶어 버립니다 갓지은 따신밥의 의미를, 철학을 다 알지못하는 이유겠지요
살아가면서
밥보다 더 중한 게 있을까요.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그 밥을 짓는 손길을
깊이 생각하지 않지요.
얼마나 숭고한 일인데요.
오늘도 밥심으로 하루를 살았습니다.
운선님~~!
어쩌면 그리도 희생하시고 ...
이렇게 따뜻한 글은 찬밥신세(^^) 에서 나오신건 정말 아니실거구요
자녀분들이 그런 엄마의 정을 가슴으로 받고 성장했으니 지금도 찬밥을 보면 엄마 생각에 울컥할거에요
더운밥은 먼저 어르신부터~~~
그래서 일부러 찬밥.더운밥.안가리고 주었어요
냉동된거 살짝 돌리라고도 했구요
저~~반성문 써야해요
운선님~
소중한 아이들 건강하게 키우느라 수고하셨네요.
참 아름다운 어머니~ 운선님을 칭찬합니다.
우리 엄마가 생각나네요.
평생~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신... 우리 엄마...
밥 얼마나 소중한지
고기 와 빵으로 거의매일 식사를
그리고 훌훌 날러다니는 알랑미 쌀로 지은 밥에
계란 후라이에 에 소금 쳐서 비벼먹던
그 당시에 난 세상에서
젤 부러운 사람은 하얀 쌀밥에 김치 한쪽 얻어서 먹는 사람이였는데 ㅎㅎ
지금은 먹고픈것 다 먹을수 있는데
운선님의 그 맛난 음식 솜씨 입맛 다셔 보네요
밥짓는 솜씨가 프로 이상일겁니다. 저도 쌀밥에 고추장ㅊ비벼 먹는거 좋아합니다. 구내식당 자유배식 점심때 백미밥. 잡곡밥. 저는 백미밥 주거으로 퍼서 먹습니다. 쌀밥 애용 하고 있습니다. 운선님 쌀밥 명인전에 나가십시요.
참 좋은 재주를 타고 나셨네요.
삶에 있어 먹는거 만큼 중요한일이 없지요.
맘먹고 한다면야 걍 그럭저럭
끓여먹고 사는 솜씨이긴 하지만
주방일이 내겐 고역입니다.
나이드니 30평생 내손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들도 이젠 질리고
주방에서 해방되고픈 1인
입니다.ㅎ
절라도 지방에 가뭄이 들었던 시절
깡보리밥을 먹었던 시절이 있읍니다.
하얀 쌀밥이 먹고싶었지요.
보리가 하나도 섞이지 않은
하얀쌀밥~~~~
제삿날 저녘엔 젯상에 올려진 하얀 쌀밥을
먹었읍니다.
윤기가 자르를 흐르는 하얀 쌀밥 이었지요.
그 쌀밥의 맛이 그리도 좋았지요.
밥...
운선님께선 밥에 관하여 프로패셔널 이셨네요~~
이곳 씨애틀에서도 찬솜씨 좋다는 소문이 들려오는듯
합니다.
항상 건강 하시고요~~.
늘 밥을 짓고
먹이며
베풀며 살아온 일생을
어느 뉘 있어 찬밥이라 할수 있겠습니까.
저도 오늘
볼 발갛게 물들이며
고봉으로 담아낸 님의 밥을 큰 숟가락 가득 담아보고 싶습니다.
음식맛이 좋앗을 거라는걸 글맛으로 짐작해 봅니다.
저는 84세의 영감탱이지만 찬밥이 있으면 양파 김치넣고 볶아먹는데 마짓쪄요 하하하
뒀다 데워 먹어도 맛있고요,운동삼아 설거지도 잘 해요
버리면 안되지요 ^)*
동그란 양은상의 기억.^^
오늘 점심을 먹고나서 내내 체기가 있어서 불편 했었는데 운선님 글 읽으며 기분이 좋아져서 그런지 좀 편안해진 것 같아요.ㅎ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