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 강둑을 걸어
여기저기 흐드러진 꽃이 저물며 봄이 무르익어가는 사월 중순이다. 청명 이후 다가올 절기 곡우를 일주일 앞둔 금요일이다. 새벽녘 잠을 깨 전날의 산행기와 1일 1수 시조 창작 시도에 도전 한 달 넘게 작품을 한 수 남겼다. 그제 북면 외감 들녘에서 걷어온 돌나물이 시조을 소재로 삼았다. 한낱 보잘것없는 산야초일지라도 우리 집에서는 소중한 찬거리가 되고 나의 글감이었다.
아침 식후 변함없이 자연학교 등교를 나섰다. 마음에 둔 행선지가 대산면 유등 강가여서 거기는 식당이 없는 곳이라 출발 전 집에서 도시락을 쌌다. 소 박사 유튜브에는 아침부터 흐린 날씨로 늦은 오후 강수가 예보되었다. 비가 오기 전 일과 수행을 마치려고 서둘러 현장으로 향했다. 집 앞에서 105번 시내버스를 타고 동정동으로 나가 대산 유등으로 가는 2번 마을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어간 버스는 덕산 용잠삼거리에서 동읍 사무소 앞을 지났다. 근래 봉강으로 새로 뚫었던 지방도 공사가 마무리되어 어수선했던 현장은 깔끔했다. 주남저수지와 동판저수지 사이로 주남 들녘으 지나니 일모작 벼농사 지대는 아직 농사 채비가 더딘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은 볍씨 모판은 대규모 육묘장에서 길러내 현장에서 별도로 마련하지 않아도 되었다.
대산면 소재지 가술에서 모산을 지나니 농협 창고에서는 그간 매년 봄 열었던 대산 수박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펼침막이 내걸려 있었다. 코로나 펜데믹이 풀려도 당국에서 예산을 지원받지 못함이 원인일 테다. 대산 모산 일대 넓은 들판은 벼농사 이후 뒷그루로 비닐하우스에서 수박 농사를 지었더랬다. 그런데 근래는 비닐하우스 수박에서 당근 농사로 작목이 바뀜이 주된 이유였다.
남모산에서 북부동을 지나니 강둑에는 노거수 팽나무가 우뚝했다. 종점 유등에는 내 말고 한 분의 노인이 더 있었는데 초행으로 기사에게 다음 차편의 시간을 알아봤다. 나는 익숙한 주변 지형지물이라 강둑 배수장을 지난 둔치의 자전거길로 내려섰다. 드넓은 둔치에는 겨울을 넘겨 봄이 오면서 시든 물억새는 야위어져도 새로운 움이 트지 않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술뫼 둔치는 주말이면 자전거 라이딩을 나선 이들을 간간이 볼 수 있었는데 평일은 아주 드물었다. 그런 가운데 접근이 불편한 곳임에도 나처럼 산책을 나선 아주머니와 노부부를 만나기도 했다. 키가 높은 소나무 아래 쉼터에서 때가 일렀지만 가져간 보온도시락을 꺼내 비웠다. 반찬은 일전에 내가 구룡산 숲에서 채집한 참취를 된장에 무친 향긋한 나물만으로도 한 끼를 때웠다.
쉼터에서 배낭을 추슬러 술뫼 파크골프장을 비켜 강가로 난 길 따라 걸었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는 샛강을 지나면서 술뫼 언덕 농막에 지내는 지인에게 전화를 넣어봤다. 지인은 부산 자택이 아닌 농막에 머물러 거기로 찾아가니 가전제품 수리 기사가 방문해 냉장고를 살피는 중이었다. 기사가 떠난 뒤 지인과 결명자차를 들면서 그간 궁금한 근황을 알게 된 환담이 오갔다.
텃밭의 신선한 케일 잎을 몇 줌 따준 지인과 작별했다. 연초록 잎이 돋은 느티나무 가로수가 도열한 길고 긴 강둑을 걸어 화포천이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배수장으로 걸었다. 배수장에서 예각을 틀어 시전마을을 지나다 수로 언덕 검불 속에 자라는 머위를 뜯어 모았다. 사유지가 아닌 하천부지 머위라 누구든 채집 가능한데 아무도 거들떠보질 않아 외지에서 찾아간 내가 접수했다.
머위 봉지를 들고 한림정역에 이르러 광장 쉼터에서 검불을 가리면서 줄기의 껍질을 벗겼다. 그때 초등 교감으로 재직하는 후배가 보낸 카톡이 와 열었더니 그가 모교 개교 100주년 기념 대학신문 특집호에 기고한 글을 보내왔다. 40여 년 전 알게 된 후배는 나의 근황을 소상하게 드러내 쑥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런 글을 게재할 줄 미리 알았더라면 만류했을 텐데 어쩔 수 없었다. 23.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