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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번 정거장 축생계
지구에는 하늘 민족의 후손과 땅의 민족의 후손이 섞여 살고 짐승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들과 혼혈혼족의 인류들이 교배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의 탈을 쓰고 있으나 짐승처럼 행동하는 반인반수의 인간도 존재하고, 사람의 말을 입으로 하지만 그 혈통 속에는 피를 부르는 악마의 울부짖음이 들려오는 존재들과 삶의 한 판을 벌이고 있는 현상이 지구이기도 할 것이다.
한마디로 선과 악의 질탕한 혼전이 교차되는 세상이 지구의 환경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데, 우주에서 이처럼 극과 극이 혼전하는 세상은 드물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현상들을 우주여행을 통해서 수없이 목격하곤 했다.
우주에는 다양한 문명세계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구처럼 극과 극의 대립으로 혼전을 이루고 있는 세상은 흔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우주여행을 하면서 찾아간 세상에는 선한 모습의 세상도 존재하고 악한 모습의 세상도 존재했다. 영감이 증폭된 세상도 존재하고 영감이 마비된 채 살아가는 세상도 존재했다.
우주를 여행하면서 44개의 우주정거장을 거친 후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21번 우주정거장에서 선의 모습이 완전하게 사라진 순도 100%의 악한 세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름하여 축생계의 세상....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은 모두 인간의 탈을 썼으나 인간의 삶과는 무관한 짐승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인간의 어린 생명체들이 어른들에게 살육되어 그 고기가 술안주로 사용되고, 인간들이 짐승의 우리에서 식탁에 오를 고기로 사육되며, 힘이 약한 존재들은 힘 있는 자들에게 노예처럼 끌려다니며 쉴 새 없이 혹사를 당해야 하는 세상이 축생계였다.
지구가 아무리 선과 악이 대립된 질탕한 혼전의 세상이라 할지라도 축생계의 세상에 비하면 낙원과 같은 곳이라고 소개해도 지나치지 않았을 것이다.
축생계가 아닌 지구에 태어나게 해 준 내 운명의 신에게 무한 감사를 드리고 또 드려도 부족한 심정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우주공간에 떠 있는 축생계 세상의 삶은 절망적이었다.
21번 우주정거장의 축생계라고 하는 세상을 처음 방문했을 때, 도무지 인간세상을 찾았다는 생각보다는 악마의 세상을 방문했다는 첫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너무 가혹하고 참혹한 인간의 삶을 그곳에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축생계 세상의 별 이름은 카니우스시뇨스라고 불렀다.
외우기 어려운 긴 이름이어서 카니우스라고 줄여 부르기도 했다. 샤르별의 존재들은 지구와 마찬가지로 카니우스별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그 세상의 개화에 힘쓰고 있었다. 카니우스별은 밀림의 별이라고 할 만큼 온 세상이 원시림으로 덮여 있고, 그 세상의 사람들은 원시인에 가까운 문명생활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카니우스 인류들이 살아가는 주거지는 움막과 같은 형태이고 대부분 밀림 속에 집단으로 모여서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UFO 분체를 타고 카니우스별에 도착했을 때 그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지구에서도 구경한 적이 없는 처참한 모습 그대로였다.
사람이 사람의 손에 의해 짐승처럼 사육되고, 사람의 손에 의해 사육된 사람들이 시장에서 팔려 나가는 모습들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다. 짐승처럼 밧줄에 매여서 끌려다니며 온갖 험한 일들에 시달리면서 노예생활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 장면들도 여기저기 다양한 노동의 현장에서 발견되곤 했다.
사람이 사람의 손에 의해 끌려다니며 아무리 가혹한 학대를 당해도 누구 하나 동정하거나 가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오히려 재미있는 구경거리처럼 학대당하는 사람들을 조롱하고 놀리고 업신여기며 웃음거리로 삼고 있었다.
누가 언제 똑같은 신세가 되어 가혹한 운명을 맞이할지 모르면서 학대당하는 동족들을 향해 조롱하는 모습들이 더 가엾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사람의 손에 의해 사육된 사람들이 짐승처럼 도살되어서 그 고기가 시장에 팔려 나가기도 했다. 사람의 고기 중에서도 어린 사람의 고기가 더 비싸게 팔리고 그 세상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기이기도 했다.
늙은 사람의 고기는 질기고 맛이 없다고 선호하지 않았다.
때로는 사람을 생체로 포획하여 장작불에 구워 먹는 모습도 목격할 수 있었다.
카니우스 인류들이 사람의 탈을 쓰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을 도무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그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의 삶을 목격하고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에게도 사람처럼 영혼이 있을까?
카니우스별도 지구와 마찬가지로 샤르별에서 지속적으로 왕래하며 관리를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그 목적은 짐승처럼 살아가는 카니우스 인류들을 개화시키기 위해서였다.
카니우스 인류의 숫자는 120억에 이르렀다.
한 남성이 여러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살았고, 힘이 약한 남성들은 한 명의 아내도 거느리지 못하고 살다가 마지막은 짐승처럼 잡아먹히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아내를 많이 거느린 것은 그 세상에서 권력과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며, 권력이 높은 자는 100명도 넘는 아내를 거느리며 위엄을 떨었다.
카니우스 여성들은 출산율이 높고 다산을 했으며 한 번 임신하면 세 명 이상의 쌍둥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한 여성이 평생 동안 출산하는 숫자는 수십 명에 달했다.
카니우스 인류들은 자기가 낳은 자식이라도 짐승처럼 길러서 잡아먹는 버릇이 있었고, 대부분 힘이 좋고 잘생긴 자녀는 잘 양육하여 자식으로 삼지만 나약하고 못생긴 자녀는 짐승처럼 짐승의 우리에서 길러서 노예처럼 부려먹거나 잡아먹었다.
그러나 결국 힘세고 잘생긴 자식을 길러 놓고 끝내는 그 자식에게 잡아먹히는 신세를 못 면하는 것도 그 세상 인류들의 마지막 운명이었다.
카니우스 여성들은 모성애가 깊지 않아서 자신이 낳은 자녀에 대해서도 큰 애정을 보이지 않으며, 자신이 낳은 자녀가 자라서 아무리 무서운 학대를 당해도 슬퍼하거나 동정하는 버릇이 없었다.
자신이 낳은 자식을 짐승의 우리에 길러서 손수 도살하여 그 고기를 요리해서 식탁에 올려놓는 일조차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 세상에서 부모 자식의 관계라든가 가족의 관계 같은 끈끈한 정을 기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자식이 부모의 자리를 넘보는 일은 관습이고, 부모의 힘이 약해졌을 때 피를 보고서라도 그 자리를 탐내는 것이 성장하는 자식의 본능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동물적 본능만이 그 사회를 지배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법과 질서라고 설명할 수 있었다.
카니우스별에서 가장 유명한 밀림지대가 수부쳐디였다. 수부쳐디 밀림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한 수목이 끝도 없이 우거져 있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의 현상은 천태만상이었다.
수부쳐디 밀림 속에 샤르별 사람들이 거주하는 비밀기지가 건설되어 있었다.
아니와 내가 UFO 분체를 타고 수부쳐디 기지에 도착했을 때 170명의 요원들이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수부쳐디 기지의 요원들의 주요 임무는 카니우스 인류의 개화사업이었다. 짐승과 같은 본능으로 짐승처럼 살아가는 카니우스 야만인들을 문명인으로 개화시키기 위한 사업이 비밀리에 전개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하지만 카니우스 야만 인류들을 개화시키는 사업은 쉽지 않다고 했다. 원숭이들을 아무리 개화시킨다고 해도 사람처럼 살아갈 수 없듯, 카니우스 인류들을 개화시킨다고 쉽게 문명인으로 변화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카니우스 인류들은 사람과 동물의 중간종 쯤 되는 반인반수의 혈통을 가졌다고 설명할 수 있었는데, 그들을 온전한 사람으로 개화시키기란 꾸준한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수부쳐디 기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샤르별의 요원들은 지구에서 벌이는 사업과는 방법이 다르다고 했다.
지구 인류들은 사람의 말을 알아듣고 하늘의 소리를 이해하지만, 카니우스 야만 인류들은 사람이 사람을 훈계하는 사람의 말조차도 쉽게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사람이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세상... 그곳이 바로 카니우스 별의 야만사회였던 것이다.
수부쳐디 기지의 행동대장은 누스거스라는 이름을 가진 샤르별 여성이었다.
누스거스를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런저런 담화를 나누며 카니우스 인류사회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았다.
"수부쳐디 기지가 만들어진 역사에 대해서 간단히 들려주실 수 있나요?"
내가 먼저 누스거스에게 말문을 열었다.
"수부쳐디 기지가 만들어진 역사는 지금부터 4,500년쯤의 시간이 흘렀고 그동안 카니우스 인류사회의 개화를 위해 많은 활동을 벌여 왔지만 가시적인 큰 성과는 자랑할 만한 내용이 없는 편이야."누스거스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우주나이 220세에 달하는 누스거스는 자상한 어머니 같은 인상을 하고 있었고, 설득력 있는 언변이 뛰어난 외계인 여성이라는 첫인상을 갖게 했다.
“4,500년 동안 개화작업을 벌여도 큰 진전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카니우스 야만 인류들이 사람은 사람이되 그 혈통이 짐승과 유사하여 그 본질을 유전적으로 바꿔 놓기가 쉽지 않은 결과라고 설명할 수 있겠구나."
"카니우스 인류사회의 역사는 지구보다 앞서 있나요 아니면 뒤떨어져 있나요?"
"카니우스 인류사회의 역사는 지구보다 앞서 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거야."
"지구보다 앞서 있는 역사를 가진 인류사회가 아직까지 동물사회보다 뒤떨어진 원시적 사회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지구 인류의 혈통은 진화적 프로그램을 소유하고 있다면 카니우스 인류들의 혈통은 진화적 프로그램이 저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지구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명체들도 수억 년을 거치며 진화를 거듭하는데 인류의 존재들이 진화를 멈추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지요?"
"카니우스 인류들도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하는 진화는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으나 문명적 진화는 그 혈통의 유전적 프로그램에서 제외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지."
“인간의 혈통 속에 문명의 진화 프로그램이 제외되어 있다는 현상이란 이해하기 어렵군요. 그러면 참 궁금한 내용이 있는데요.”
"어떤 궁금증일까?"
“카니우스 인류들도 영혼을 소유하고 있을까요?"
“영혼? 영혼이라고 말했지?"
"네. 영혼이요. 사람의 탈은 썼으나 짐승처럼, 오히려 짐승들보다 더 포학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인류들에게 과연 영혼들이 존재할지 궁금합니다."
"슬프지만 카니우스 인류들도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영혼이 존재한다. 같은 영혼의 소유자들로서 그 점이 우리를 슬프게 하지. 그래서 우리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카니우스 인류들의 개화를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단다.”
“그렇지만... 4,500년을 힘써도 별 성과가 없는 일을 멈추지 않고 진행하는 일은 무모한 일이 아닐까요?"
"전혀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란다. 조금씩은 짐승의 혈통이 흐르는 카니우스 인류들의 혈통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유전적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단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우리들은 작은 가능성이라도 보이면 그 일을 멈추지 않는단다. 우리 샤르별에서 1만 년 동안 지구를 왕래하며 후천세계를 맞이하기 위한 마지막 날을 준비해 왔듯, 이곳 카니우스 별을 찾아오는 목적도 비슷한 이유 때문이란다."
이런 대담을 마친 후 누스거스는 우리를 어디론가 안내했다. 그곳도 역시 수풀이 우거져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밀림 속이었다.
그곳에는 여기저기 수풀 속에 가려진 움막들이 지어져 있고, 그중에서 의상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야만 인류들이 장마당처럼 웅성거리고, 한쪽의 장소에서 무언가를 흥정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그들이 흥정하고 있는 물건은 다름 아닌 밧줄에 묶여서 끌려 나온 사람들이었다. 밧줄에 묶여서 끌려 나온 사람들은 발가벗겨져 있고 얼굴에는 수염이 가득했으며 손과 발은 짐승의 것과 다르게 보이지 않았다. 온몸에는 분뇨 같은 오물들이 묻어 있고 나이가 많게 보이는 늙은 사람들과 아직 어리게 보이는 어린 사람도 섞여 있었다.
밧줄에 묶여 있는 어린 사람의 코에서는 누런 코가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흘러내린 코가 얼굴과 몸에 떡칠되어 있기도 했다.
그렇게 몸에 묻은 오물을 스스로 씻으려 하지도 않고 누가 닦아주는 사람도 없었다.
장마당에 팔러 나온 사육된 인간들의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윽고 사육된 인간들은 새로운 주인을 찾아 팔려 가기 시작했고, 사육된 인간들이 팔려 간 목적은 야만인들의 노예나 식육용으로 사용되기 위해서였다.
팔려 가는 사육인간들은 자신들이 곧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지 알고 있었지만 반항하거나 도망가려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숙명처럼 체념하면서 새로운 주인의 뒤를 따라 말없이 끌려갈 뿐이었다.
그날 저녁이면 대부분의 팔려 간 사육인간들은 야만인들의 먹잇감이 되어 식탁에 오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장터의 또 다른 장소에서는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즉석에서 살육하여 인육을 판매하는 현장이었다.
그곳에도 역시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인육의 맛있는 부위를 고르거나 흥정하는 모습들이 눈에 띄었다.
닭장처럼 생긴 좁은 공간에 사육된 인간들이 밧줄에 묶인 채로 여러 명씩 넣어져 있고, 그중에서 한 명씩 끌려 나와 도살장에 들어가면 잠시 후 고기로 변해서 인육을 판매하는 진열장에 전시되곤 했다.
인육을 판매하는 진열대 앞에는 인상이 험악한 야만인들이 입맛을 다시며 쭉 늘어서 있고, 주인과 흥정이 끝나면 피가 줄줄 흐르는 인육덩어리가 손에 들려져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인육을 판매하는 진열대에서는 역겨운 피비린내가 진동하지만, 인육을 사러 온 야만인들은 오히려 입맛을 다셔가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또 다른 장소에서는 인육을 삶아서 즉석에서 판매하는 식당들이 한골목을 차지하고 쭉 늘어서 있는 곳도 있었다.
이른바 인육식당 골목.
인육식당에서는 술도 판매되고 있었는데, 야만인들은 한 상 가득 차려진 인육고기를 입으로 물어뜯고 게걸스럽게 씹으면서 물동이처럼 술을 퍼마시며 소란들을 피우고 있었다.
인육식당에서는 접대부로 보이는 야만인 여성들이 의상도 걸치지 않고 손님의 곁에 앉아서 술 시중을 들면서 나름대로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야만인들은 접대부 여성들을 끌어안고 남의 눈은 전혀 의식하지 않은 채 짐승처럼 성행위를 하기도 하고 묘한 행동을 연출하고 있었다.
지옥이라 해도 그보다 잔인한 인간의 잔혹한 모습을 구경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누스거스는 이번엔 우리를 데리고 어느 밀림마을로 향했다.
그 밀림마을에서 누군가가 죽어서 이제 막 장례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전갈을 받고 그 장면을 구경시켜 주기 위해서였다.
장례의 주인공은 그 마을의 추장인 기니스디라는 남자였다. 기니스디는 70여 명의 아내를 거느리고 자녀만 500명이 넘을 만큼 큰 세력과 권력을 손에 쥐고 있던 인물이었다.
기니스디의 사망원인은 자신의 아들로부터 살해된 것이었다.
호시탐탐 아버지의 자리를 노리던 추장의 아들이 적당한 기회를 틈타 힘이 약해진 자신의 아버지와 결투를 하여 승리를 거둔 후 그 목숨을 빼앗고만 결과였다.
추장이 죽은 장례식장에 들어가 보니 지금 막 야만인들의 피의 만찬이 진행되려는 순간이었다.
아들에 의해 살해된 추장의 시체가 식탁 같은 곳에 피를 흘리며 누워있고, 그 주변에 마을의 세력가들로 보이는 야만인들이 둘러서서 만찬을 준비하고 있었다.
만찬장에 모인 야만인들의 손에는 각각 술병이 들려 있고, 백정으로 보이는 야만인의 손에 날선 식도가 들려 있는데 피범벅이 된 시체를 씻어 줄 생각도 없이 시체의 배를 가르고 손과 발을 날렵하게 잘라내면서 뼈와 살을 분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체가 놓인 식탁의 주변에 죽 늘어서 있는 야만인들의 접시에 추장의 시체에서 분리된 인육이 한 덩어리씩 놓여졌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은 교만한 모습으로 다른 야만인들보다 큰 인육덩어리를 접시에 담아 놓고 앉아서 산적처럼 생긴 얼굴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의기양양해 하고 있었다.
의기양양해 있는 아들 앞에서는 야만인 여인들이 교태를 부리며 새로운 권력자의 비위를 맞추느라 열심이었다. 그중에는 살해된 추장의 부인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피의 만찬장에 모인 마을의 세력가들도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추장의 아들 앞에서 온갖 아부를 떨기 시작했다.
추장의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때려서 숨지게 한 과정을 마을의 세력가들 앞에서 들려주며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 여기저기서 괴성과 같은 함성들이 터져 나오고, 피가 줄줄 흐르는 인육을 물어뜯으며 연거푸 술을 마셔대는 야만인들의 표정에서는 살인마들의 축제장을 바라보는 심정과 다르지 않았다.
저 끔찍하고 살인마와 다름없는 삶을 즐기는 야만인들에게도 그 마음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영혼을 소유한 인간들이 어쩌면 저토록 끔찍한 피의 만찬을 즐길 수 있을까?"
이런 착잡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때 누스거스가 이런 말을 꺼냈다.
나의 심정을 들여다보고 던지는 질문 같았다.
"저 살해된 추장의 영혼은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 것으로 너희는 생각하니?"
나는 조금 전의 생각에 이어서 이런 대답을 했다.
"저 추장의 영혼이 있다면 착잡하고 슬픈 표정으로 피의 만찬을 즐기는 야만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요?"
“그래 맞아…. 샤르앙이 아주 정확한 설명을 해주었어. 마치 슬픔에 잠겨 있는 추장의 영혼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스거스님은 추장의 영혼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눈에 보이고 있다는 뜻인가요?"
“그래. 나는 지금 피의 만찬장에서 서성이는 추장의 영혼을 바라보고 있다. 샤르앙의 설명대로 추장의 영혼은 지금 한없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피의 만찬을 즐기며 새로운 권력으로 등장한 자신의 아들에게 온갖 아부와 교태를 떨고 있는 야만인들을 회심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지만 참으면서 추장의 영혼은 장례 만찬장을 떠나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다. 할 말이 많은 것 같지만 참으면서……."
"추장의 영혼이 보인다면... 그 영혼과 대화를 나눌 수는 없나요?"“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지금 대화를 나누어 보시지요?"
“너희가 원한다면 마다할 일은 아니다."
이런 대화를 마치고 누스거스는 진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데 누스거스는 헛소리처럼 누군가와 상당히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대화를 끝내고 누스거스는 이런 설명을 들려주었다.
"나는 이제까지 너희의 희망대로 추장의 영혼과 대화를 나누었다. 추장의 영혼은 솔직한 심정을 나에게 들려주었고 그 영혼이 전생을 걸어온 과거의 업에 관한 이야기들도 들려주었다. 자신의 아들에게 살해당하고 비참한 마지막 운명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추장의 영혼이 지금 어떤 심정에 사로잡혀 있을지 궁금하다면 다 들려주겠다. 추장의 영혼이 들려준 모든 내용들에 대해서...."
"자신을 추종하던 세력들이 자신을 살해한 아들에게 아부하며 피의 만찬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영혼의 소회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내가 누스거스에게 먼저 던진 질문이었다.
"추장의 영혼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나의 아들에게 살해당하고 나의 시체가 나의 추종세력들의 술안주 감으로 사용된 것은 평생 동안 저질러 온 나의 업 때문이오.' 라고...."
"추장의 영혼은 앞으로 이 마을에서 떠나지 못하고 서성거리게 될지 아니면 어디론가 자신의 영혼이 머물 곳을 향해 떠나게 될 것인지의 내용이 궁금해요."
"추장의 영혼은 자신의 장례식이 끝나는 대로 자신의 갈 길을 떠날 것이라 했다. 모든 아픔과 미움과 회한을 뒤로 하고 말이다."
"추장의 영혼이 떠나고 싶은 자신의 길은 무엇일까요?"
“모든 영혼들이 꿈꾸는 세상이 아니겠니? 싸움과 대립이 없는 평화로운 그 세상 말이다."
"살아서 온갖 살상을 자행하며 살인마처럼 피를 마시며 살아온 추장과 같은 영혼들도 사후에 자신이 원한다고 하여 싸움과 대립이 없는 평화로운 안식처로 찾아갈 수 있을까요?"
"영혼들이 원한다고 자신의 길을 바로 찾아가지는 못하겠지. 자신이 생전에 저질러 온 업장을 해결하고 그 업장의 대가를 모두 지불하기 전에는 말이다."
“생전의 업장을 해결하는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업장의 대가를 지불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하늘에서 정해 놓은 법과 질서에 따라야 하겠지."
"하늘에서 정해 놓은 법과 질서의 내용이 궁금해요."
"하늘의 법과 질서를 단 몇 마디로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단다. 네가 샤르별을 찾아가면 지금 궁금한 내용들까지 다 알게 되는 계기가 있을 것이다.”
"어떻든 저 살인마의 영혼도 하늘의 법과 질서에 따른다고 하여 뜨거운 지옥불에 던져지지 않고 그 영혼이 원하는 평화로운 땅을 밟을 수 있을까요?"
"하늘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영혼을 버리지 않는단다. 하늘은 결코 죄지은 영혼을 뜨거운 지옥 불에 던지지 않으며 개과천선하는 새로운 영혼으로 탈바꿈시켜 결국은 하늘가족으로 받아들인단다."
“세상에서 아무리 살인마처럼 살다 죽은 영혼들도 끝내는 하늘가족이 되어 평안한 삶을 누릴 수 있다구요?"
"그것이 하늘이 정해 놓은 순리요 이치란다."
"그러면 세상에서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아름다운 영혼들만 억울하지 않은가요?"
"하늘은 공평하며 착한 영혼들에게는 큰 복이 기다리고 악한 영혼들에게는 큰 벌이 기다리고 있단다. 세상에서 지은 죄만큼 벌을 받은 후에야 하늘가족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이 하늘 질서의 엄한 규율이란다."
이런 대화를 마친 후 누스거스는 우리를 데리고 또 어디론가 향했다. 카니우스별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집들이 지어져 있는 마을이었다. 으디커디란 이름을 가진 밀림의 촌락이었다.
으디커디 마을 이름에는 새마을이란 뜻이 숨겨져 있고 그 새마을에는 카니우스 별의 곳곳에서 뽑혀 온 야만인들이 훈련을 받고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카니우스 야만인들이 살고 있는 집들은 집안에서 악취가 심하고 마치 짐승우리를 방불하게 할 정도로 어지럽기 마련인데 으디커디 새마을의 집들은 깨끗하고 악취도 풍기지 않았다.
으디커디 새마을에서 살고 있는 촌민들은 다른 마을의 야만인들과 달리 의상을 만들어서 입고 살았으며, 얼굴에는 산적처럼 험악한 수염이나 손에는 무서운 살인무기도 들려 있지 않았다.
카니우스 야만인들은 대부분 힘의 상징인 무서운 살인무기를 손에 들고 다니거나 허리에 차고 다니는데, 으디커디 새마을의 촌민들은 그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피비린내가 풍기는 야만인들의 모습만 보다가 모처럼 사람 냄새가 풍기는 새마을 촌민들을 만나게 되니 매우 반가운 생각이 들었다.
"카니우스별에서 이런 평화로운 마을을 발견하기란 처음인데, 이 마을은 본래부터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었나요?"
으디커디 새마을에 도착해서 내가 누스거스에게 던진 질문이었다. 누스거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 새마을은 우리들이 4,500년 동안 카니우스별을 찾아다니며 그동안의 노력으로 결실을 본 총재산이란다. 이 마을의 모든 집들은 카니우스별의 곳곳에서 뽑혀 온 사람들이 직접 터를 닦고 돌 하나 나무하나를 깎아서 만든 집들이란다.”
“이 마을 사람들이 뽑혀 온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었나요?"
“야만인들 중에서도 심성이 착한 존재들이 가끔씩은 섞여 있단다. 그들을 뽑아서 이곳으로 데려와 훈련을 시키고 있지."
"야만인들의 근성을 문화인으로 탈바꿈시키는 개화사업이군요?"
"그렇단다."
“이 마을에서 훈련된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일을 수행하게 되지요."
"카니우스별의 곳곳에 문화마을을 건설하고 야만 인류들에게 문화정신을 전하는 일을 맡기는 것이 우리들의 희망사항이란다. 하지만 야만인들에게 문화정신을 전하는 일이 만만한 과제는 아니란다.”
"야만인의 습성을 몸에서 벗기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뜻이군요?"
"그렇단다.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새마을 촌민들도 다른 야만인들에 비해 심성은 고운 편이지만 아직도 야만의 습성을 온전히 벗지 못하고 피를 즐기는 버릇이 여전하단다.”
"피를 즐긴다면 어떤 버릇이지요? 다른 야만인들처럼 동족을 살해하여 인육을 즐긴다는 뜻인가요?"
“방치한다면 그럴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못하지. 하지만 엄격하게 행동이 통제되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사람이 사람의 고기를 먹는 버릇은 용납되지 않지만 살아 있는 동물들을 잡아서 피가 줄줄 흐르는 생고기를 즐기는 버릇들이 아직 남아 있단다. 인간이 피를 보거나 피를 즐기면 저절로 살상의 본능이 살아나 악해지기 마련이어서 그러한 악습을 고쳐 주려고 우리들이 노력하고 있단다. 지구 인류들도 짐승의 혈통이 흐르는 혼혈족들은 피가 피를 부르는 악습을 본능적으로 행하는 이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 으디커디 새마을에서 살아가는 촌민들은 얼마나 훈련을 받아야 온전한 문화인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을까요?"
"훈련만으론 혈통 속에 흐르는 유전적 프로그램을 바꿀 수는 없으며, 10대를 지나면 야만의 습성을 온전히 벗고 문화인으로 태어나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서 야만의 근성을 벗기란 쉬운 일이 아니란 뜻이군요?"
"짐승에게서 사람의 본능을 재현시키기 어렵듯 야만인에게서 문화적 근성을 양육하기란 쉽지 않단다.”
으디커디 새마을을 시찰한 후 누스거스는 다시 우리를 데리고 카니우스별의 이곳저곳으로 안내했다.
어디를 가든지 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고, 짐승처럼 살아가는 야만인들의 삶만 살벌하고 을씨년스럽게 펼쳐진 세상이 그곳이었다.
현대화된 어떤 건물이나 도구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세상은 어디를 가든지 야만적인 살상 전쟁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었고, 피를 흘리거나 피를 즐기는 악습만 만연한 세상이기도 했다.
용맹스럽고 무자비하며 목숨을 전혀 아깝지 않게 생각하는 그 야만인의 세상에서 생명이라고 하는 의미를 곱씹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최소한 자신의 목숨이라도 소중히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면 생명을 무자비하게 다루는 습성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세상에서는 어떤 소중한 생명체라도 생명으로서 가치를 존중 받을 길은 없었다.
다행히 샤르별 인류들의 도움으로 으디커디 새마을에서 문화훈련을 받고 있는 야만인들의 개화가 이루어진 후 카니우스별에도 문명의 새날이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4차원 문명세계의 메세지 3 <4차원 문명세계를 향한 UFO 여행기> - 박천수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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